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 (루가 21, 5-11)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허물어질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전쟁과 반란이 일어날것이라고…..
성전은 하느님이 선택된 백성과 맺은관계를 상징 한다고..
예수님께서는 특정한 제도의 종말이 세계의 종말이나 하느님과 인간들
사이의 관계의 종말이 뜻하지 않음을 강조하십니다
“내가 그리스도다 혹은 때가 왔다”고 떠들더라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몆년전에 세상에 종말이 온다고 ….
몇월 며칠이라고 날짜까지 정해놓고..
하지만 그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몆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할것입니다
내일 세상끝날이 온다해도 사과나무를 심는 그런마음으로….
“또 전쟁과 반란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말라 그런일이 먼저 일어나고
말것이다 그렇다고 끝날이 오는 것은 아니다”
이 성서말씀을 묵상하며
“내가 그리스도다 혹은 때가 왔다 고 떠들더라도 속지않도록 조심하며
그들을 따라가지 않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이헬레나: 복음묵상열심히 해서 글을 올렸는데 …에러가(어휴 내가 쓴 글이 다 어디갔는지…. 다시 썼는데 …..묵상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먼저묵상글내용이 생각이 나지않아ㅓ 이렇게 머리가 나쁘니 금방쓴글내용도 모르면서 묵상을 한다고 ….한심한 저의 수준입니다 [11/26-01:33]
이헬레나: 다시 묵상해서 올리려니 시간이 ….잠도 자야하고 ….다음에 잘하겠습니다 봐주세용…죄송합니다 [11/26-01:35]
탄알 1: 일찍 주무세요. 건강이 쓰러집니다요 [11/26-10:40]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
예수님 시대에 아직도 건축 중이었던 성전(기원전 20/19년-기원후 63년)은 고대 세계의 일곱 가지 경이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하얀 대리석 건물은 화려하게 빛났고, 그 예물, 특히 성소문을 덮고 있는 황금 포도덩굴은 장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영광 가득한 예루살렘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일생에 아무런 기쁨도 보지 못한 사람이다. 한껏 장식된 성소를 보지 못한 사람은 일생에 아무런 기쁨도 보지 못한 사람이다. 한껏 장식된 성소를 보지 못한 사람은 즐거움을 주는 도시를 도대체 보지 못한 사람이다”
요세푸스 플라비우스는 “아름다운 돌”에 대해 “돌 하나의 길이가 약 12미터 반, 높이가 4미터, 폭이 5미터 정도였다”고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예물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헤로데왕이 바친 황금 포도나무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에 대해서 감탄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초를 치는(?)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바라보고 있지만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허물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아름다운 석조 건물이나 값진 예물에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자신들의 삶으로써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원하십니다. 성전은 아름답지만 그 성전을 통해서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지 않기에, 하느님께로 향하지 않기에 결국 그 성전은 파괴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놀라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생님, 그럼 언제 그런 일들이 있겠으며 그런 일들이 일어나려 할 때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사람들은 성전 파괴의 날짜에 관심을 갖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성전이 파괴되지 않을 지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하느님 백성이 하느님을 찾지 않는 다면 하느님을 만나 뵌다 하더라도 칭찬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찬양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그 때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속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예수님께서는 파괴의 시기와 그에 앞서 있게 될 징조에 대해서는 아무 답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경고와 주의의 말씀을 해 주십니다.
1. “내가 (그리스도)이다” 또 “때가 닥쳐왔다” 하더라도 현혹되지 마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메시아임을 자처하면서 나타났습니다. 로마 총독 시대에(기원 후 44-45년) 튜다가 나타나서 자기를 위대한 인물이라고 선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갈릴래아 사람 유다가 들고 일어나 백성들 가운데서 상당한 추종자를 얻었습니다. 펠릭스 총독 시대에도 에집트에서 온 한 열광가가 자기의 음성이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린다고 자랑하며 약 3만의 백성을 모았습니다.
2. “전쟁과 반란 (소문)을 듣게 되더라도 질겁하지 마시오. 사실 이런 일들이 먼저 생기게 마련이지만 즉시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임박한 오심을 예언한 거짓 예언자들은 당대의 사건들을 종말이 다가왔다는 징조로 해석하였습니다. 네로의 죽음에 뒤이어 갈바, 오토, 비텔리오의 반란이 일어났습니다(기원 후 68-69년). 하지만 전쟁과 반란들이 종말이 곧 온다는 징조는 아닙니다.
3. “민족이 민족을 거슬러 일어나고 나라가 나라를 거슬러 일어나며”
4. “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흑사병이 돌며 기근이 들 것이고, 하늘에서는 두려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 일들은 어제도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징표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멸망했습니다. 마음을 돌리지 않았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멸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폭력과 갈등 속에서 우리가 마음의 중심을 하느님께 두지 않는 다면 내 성전은 파괴될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세상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고 하느님께 마음을 둔다면 내 마음의 성전은 영원할 것입니다.
<함께 묵상해 보아요>
1. 성당에 가시면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를 평안하게 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당 건물입니까? 아니면 형제나 자매들입니까? 아니면 그곳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까?
2. 나는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볼 때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
예수님 시대에 아직도 건축 중이었던 성전(기원전 20/19년-기원후 63년)은 고대 세계의 일곱 가지 경이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하얀 대리석 건물은 화려하게 빛났고, 그 예물, 특히 성소문을 덮고 있는 황금 포도덩굴은 장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영광 가득한 예루살렘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일생에 아무런 기쁨도 보지 못한 사람이다. 한껏 장식된 성소를 보지 못한 사람은 일생에 아무런 기쁨도 보지 못한 사람이다. 한껏 장식된 성소를 보지 못한 사람은 즐거움을 주는 도시를 도대체 보지 못한 사람이다”
요세푸스 플라비우스는 “아름다운 돌”에 대해 “돌 하나의 길이가 약 12미터 반, 높이가 4미터, 폭이 5미터 정도였다”고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예물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헤로데왕이 바친 황금 포도나무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에 대해서 감탄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초를 치는(?)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바라보고 있지만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허물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아름다운 석조 건물이나 값진 예물에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자신들의 삶으로써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원하십니다. 성전은 아름답지만 그 성전을 통해서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지 않기에, 하느님께로 향하지 않기에 결국 그 성전은 파괴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놀라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생님, 그럼 언제 그런 일들이 있겠으며 그런 일들이 일어나려 할 때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사람들은 성전 파괴의 날짜에 관심을 갖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성전이 파괴되지 않을 지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하느님 백성이 하느님을 찾지 않는 다면 하느님을 만나 뵌다 하더라도 칭찬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찬양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그 때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속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예수님께서는 파괴의 시기와 그에 앞서 있게 될 징조에 대해서는 아무 답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경고와 주의의 말씀을 해 주십니다.
1. “내가 (그리스도)이다” 또 “때가 닥쳐왔다” 하더라도 현혹되지 마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메시아임을 자처하면서 나타났습니다. 로마 총독 시대에(기원 후 44-45년) 튜다가 나타나서 자기를 위대한 인물이라고 선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갈릴래아 사람 유다가 들고 일어나 백성들 가운데서 상당한 추종자를 얻었습니다. 펠릭스 총독 시대에도 에집트에서 온 한 열광가가 자기의 음성이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린다고 자랑하며 약 3만의 백성을 모았습니다.
2. “전쟁과 반란 (소문)을 듣게 되더라도 질겁하지 마시오. 사실 이런 일들이 먼저 생기게 마련이지만 즉시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임박한 오심을 예언한 거짓 예언자들은 당대의 사건들을 종말이 다가왔다는 징조로 해석하였습니다. 네로의 죽음에 뒤이어 갈바, 오토, 비텔리오의 반란이 일어났습니다(기원 후 68-69년). 하지만 전쟁과 반란들이 종말이 곧 온다는 징조는 아닙니다.
3. “민족이 민족을 거슬러 일어나고 나라가 나라를 거슬러 일어나며”
4. “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흑사병이 돌며 기근이 들 것이고, 하늘에서는 두려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 일들은 어제도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징표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멸망했습니다. 마음을 돌리지 않았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멸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폭력과 갈등 속에서 우리가 마음의 중심을 하느님께 두지 않는 다면 내 성전은 파괴될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세상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고 하느님께 마음을 둔다면 내 마음의 성전은 영원할 것입니다.
<함께 묵상해 보아요>
1. 성당에 가시면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를 평안하게 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당 건물입니까? 아니면 형제나 자매들입니까? 아니면 그곳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까?
2. 나는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볼 때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함께 묵상해 보아요>
1. 성당에 가시면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를 평안하게 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당 건물입니까? 아니면 형제나 자매들입니까? 아니면 그곳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까?
안나는 하느님을 만나러 성당에 갑니다. 안나 마음을 사로 잡고 계신 주님을 뵈오려구요.
그런데요, 주님 만나러 성당에 가서는 엉뚱한 곳에 마음이 쏠려 구경하고 논답니다. 꽃이 참 예쁘구나.
어머, 성모님이 발 시리겠다. 아유! 예수성심이 추우시겠다 수선 피우며 정작 중요한 일에는 조금 소흘한 마음입니다.
안나 마음이 평화롭게 되는 것은 꽃도, 형제자매도, 성당 건물도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정 안나 마음이 평화로운 것은,
어떤 매개체를 통해서가 아니라 일이나, 시간이나, 공간이 아니라
그분이 내 안에 사시고 안나가 그분 안에 있기 때문이랍니다.
우리 주님이 안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믿음으로 안나는 평화롭습니다.
2. 나는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볼 때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안나는 사람이나 사물을 볼 때 따뜻한 호감이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친하려는 생각도, 좋아하려는 노력도, 잘 보이려는 마음은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그냥 받아 들입니다.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내면이 보이고 그 사람만이 가진 장점이 눈에 들어 옵니다.
생각하기 보다는 안나는 먼저 인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물일 때도 마찬가지로 있는 모습을 통해 친교를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동반자로써 교감합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께 받은 공통의 유산인 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써 우월이 아닌 동반자의 자세입니다.
<함께 묵상해 보아요>
1. 성당에 가시면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를 평안하게 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당 건물입니까? 아니면 형제나 자매들입니까? 아니면 그곳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까?
안나는 하느님을 만나러 성당에 갑니다. 안나 마음을 사로 잡고 계신 주님을 뵈오려구요.
그런데요, 주님 만나러 성당에 가서는 엉뚱한 곳에 마음이 쏠려 구경하고 논답니다. 꽃이 참 예쁘구나.
어머, 성모님이 발 시리겠다. 아유! 예수성심이 추우시겠다 수선 피우며 정작 중요한 일에는 조금 소흘한 마음입니다.
안나 마음이 평화롭게 되는 것은 꽃도, 형제자매도, 성당 건물도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정 안나 마음이 평화로운 것은,
어떤 매개체를 통해서가 아니라 일이나, 시간이나, 공간이 아니라
그분이 내 안에 사시고 안나가 그분 안에 있기 때문이랍니다.
우리 주님이 안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믿음으로 안나는 평화롭습니다.
2. 나는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볼 때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안나는 사람이나 사물을 볼 때 따뜻한 호감이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친하려는 생각도, 좋아하려는 노력도, 잘 보이려는 마음은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그냥 받아 들입니다.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내면이 보이고 그 사람만이 가진 장점이 눈에 들어 옵니다.
생각하기 보다는 안나는 먼저 인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물일 때도 마찬가지로 있는 모습을 통해 친교를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동반자로써 교감합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께 받은 공통의 유산인 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써 우월이 아닌 동반자의 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