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가장 작은 이

주님.
천상의 가족들이야 말로 진정 작은 이들이셨지요?
언제나 뒤로 물러나 드러나기를 주저하는
부끄러움을 아는 분들,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겸손되이 물러서는
그들의 가난함이 세상의 평화를 가르치지요?
아무리 바빠도 기도 할 시간은 있어 좋다는 가르멜의 헬레나 수녀님이 작은 이지요?
작은 이들,
순하고 아름다운 지칭입니다.
그 이름으로 더불어 평화를 누리는 안나도 행복합니다.
작은 이들이 누리는 가난이
가장 작은 이들의 양식입니다.

그제는 멀리 떠난 친구를 회상하며 편지를 쓰다 안나 울었습니다.
그 때 잘할 것을 회개하며 뉘우쳐 많이 많이 울었습니다.
받을 줄만 알았지 주는 것을 몰랐던 안나,
언제나 받기만 했던 안나는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가까이 있어 주기를 그리도 소망했지만 도망 가는게 미덕인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잘 할 수 있는데,
이제는 안나, 숨지 않고 곁에 있으며 화나게 하지 않고,
힘들게 하지 않을 수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얘기하는 것을 귀담아 듣지 않고
꼭꼭 숨어 잘못했노라고,
다시는 그러지 않을 수 있는데” 고백하며 그립다 하였습니다.

참으로 그리웠습니다.
안나가 냉정하고 쌀쌀맞다고 말한 친구가
못내 그리웠습니다.
‘왜 그랬을까.
왜 그 친구에게는 그리도 무정했을까?’
사랑하면서도, 깊이 깊이 사랑하면서도
왜 더 묵묵했을까 반성하였습니다.
안나는
그리해야 위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친구가 그랬습니다.
“항상, 즉시, 기쁘게 예!” 하며 사는 것이 복음적인 삶이라구요.
이제는 안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항상, 즉시, 기쁘게 예!’하며
작은 자가 되도록 안나를 열겠습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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