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말(言)이란
신비로울 때가 참 많습니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말의 역활은 아주 크지요?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의 마음을 알려주는 말은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잘못 알아 들을 때도 있습니다.
말은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매개체이지만, 받아 들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말 하는 사람의 생각과는 거리가 먼 아주 다른 뜻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왜 그럴까 살펴보니 인식의 정도에 따라서도,
관습에 따라서도
언어 구사 능력에 따라서도,
지적 수준에 따라서도 현저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여하간 안나는 수준이 표준에 미치지 못하여 늘 엉뚱한 소리를 하곤 합니다.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여 영 다른 말을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
안나는 성향에 관계없이 말하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는 능력이 있잖아요.
무엇을 뜻하는지 궁구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알아 듣는 것 말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화투’를 치면서 “설사했다” 하면 안나는 놀라서 ‘배가 아파 설사하는구나’ 싶어
“많이 아프세요? 약 사다 드릴까요?” 하고 안나는 묻습니다.(지금은 아닙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답답해라. 속 터진다”
안나는 참 의아했습니다.
왜 속이 터지는지, 왜 답답한지 지금도 잘 모르는 것은 사실입니다.
“모른는 거야? 모르는 척 하는 거야?”하고 묻지만 안나는 하도 그런 말에 단련이 되어
대답을 정직하게 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이며 상대방을 바라 봅니다.
모른다고 하면 바보라 하고,(바보가 아니어서 아니라 그 사람이 화날까봐)
모른 척 한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니 차라리 가만히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도 하여 그러기도 합니다.
안나로 인해 상대방이 속상하고 마음 아파할까봐 그냥 그렇게 가만히 있게됩니다.
(약을 올린다고 하니)
얼굴이 빨게지고 숨이 조금 가빠지기는 하지만 그렇게 가만히 있는 것이
양쪽을 편하게 하기도 하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
말은 여하간 참 좋습니다.
나를 표현하고 자신의 입장을 알릴 수 있어 정말 좋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담아 함께 표현하니
거짓말을 해도 오래가지 못하고 들통이 나버립니다.
상대방을 시험하는 말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욕심이 있는 사람이나,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이나,
귀찮아 따돌리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이 하게 되지요?
안나가 거짓말을 하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아! 이렇게 고통스럽구나”
거짓말 하는 사람 위해 기도도 합니다.
주님!
안나가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하는 단순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를 솔직하게 표현 하지 않는 일이 안나에게는 참 고통이었습니다.
당신도 이웃도 시험하지 않고, 차라리 어려우면 안나도 당신 닮아
“나도 말 하지 않겠다.” 할래요.
해도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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