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심판하지 마시오

 

남을 심판하지 마시오


 


쉽지 않은 것을 말씀하실 때는 좀 난감합니다. 참 어려운데…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이니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여러분도 자비롭게 되시오.”


어떤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일까요? 타인을 자신의 틀 안에 가두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단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용서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심판받지 않을 것입니다. (남을) 불의하다고 단정하지 마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불의하다고 단정받지 않을 것입니다. (남을) 용서하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용서받을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나의 행동은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행동의 척도가 됩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너그러우심을 바란다면 우리 스스로도 이웃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심판 받을 사람이기에 남을 심판해서는 안됩니다. 남을 나쁘게 단정 지어서도 안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제일 많이 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 사람은 어떻고, 이 사람은 어떻고…. 이것은 하느님만이 하시는 것이니 내가 그것을 하면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에게 용서를 받기를 원한다면 남을 먼저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남에게는 용서받기 원하면서도 나에게 잘못한 사람은 왜 그리도 용서가 안되는지…마치 무자비한 종의 비유에 나오는 무자비한 종이 바로 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남에게) 주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받을 것입니다. 좋은 되를,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한 되를 여러분의 품에 (안겨) 주실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되어 주는 되만큼 여러분에게 도로 되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칙 하나를 말씀해 주십니다. 남에게 주면 받을 것이라는 것. 황금율에서도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하느님께서도 나에게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넘치도록 후하게…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미운 사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남 욕 안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덜 미워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얼마나 남 욕 안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2.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습니다. 용서해주면 나 또한 용서를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내가 남에게 주면 나 또한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물론 주시면 좋고 안 주시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내가 남에게 주어서 혹시 도로 받은 적이 있으면 함께 나눠 주세요. 후하게 받은 적이 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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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심판하지 마시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미운 사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남 욕 안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덜
    미워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얼마나 남 욕 안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1)사실 남을 미워한다는 것은 어떤 원인의 결과인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마음의 상처나 물적 피해를 입혔을 때 미운 감정이 들게 되거든요
    남을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스스로의 마음속은 지옥이 되기에, 미워하는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일단 미운사람이 생겼을때는 고백성사를 자주 봅니다
    한 두번 성사 본다고 쉽게 희석되지 않기에 시간 나는대로 보는 편이지요
    그리하고 나면 조금씩 미운감정이 사라지고, 제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 온답니다
    2)남을 판단하는 것 또한 다 나쁜 것 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에게 사랑과 관심이 없다면 판단도 하지 않을테니까요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에서 헐뜯고 욕하는 행동이야
    해서는 안될 판단이겠지만, 혼자서 살아갈 수 없듯이, 집에서나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좋고 나쁜점을 판단하며 살아가게 마련인데, 어찌 오늘 복음말씀처럼 남을 판단하는
    것이 아주 있을 수 없다는 식의 사고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자신도 모르는 어떤 생활습관이나 언어습관을 상대방이 지적해주었을 때
    참으로 고맙게 받아들이고 고치려 노력하는 자세로 살아가기에 판단해 주는 이가 정말
    고맙다고 여길 때가 많습니다
    물론 저도 남을 판단하길 좋아합니다만 , 함부로 판단하는 행동은 지양되어야 겠지요

    2.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습니다. 용서해주면 나 또한 용서를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내가 남에게 주면 나 또한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물론 주시면 좋고 안 주시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내가 남에게 주어서 혹시 도로 받은 적이 있으면 함께 나눠 주세요. 후하게 받은
    적 있으면…
    1)용서라는 것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나 또한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를 입히며 살아가기에
    그들에게 용서를 청해야 겠지요
    ” 용서해주면 나 또한 용서를 받을 자격이 생긴다” 고 하는데 참 걱정입니다
    자신은 진심으로 용서하지 못하면서 용서 받으려고 한다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이지요
    2) 내가 남에게 주어서 도로 받은적은 많이 있었지요
    그러나 내가 받은 이에게 도로 받으려는 마음보다는, 내가 주지 않았던 사람에게 되돌려
    받은적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나 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건네면
    머지않아 또 다른 사람에게 생각지도 못한 큰 선물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되돌려 받기를 바라고 주기 보다는, 내가 주어서 느끼는 기쁨은 기쁨대로
    다른 사람에게 받아서 느끼는 기쁨대로의 또 다른 의미의 기쁨이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의미로 오늘 저는 누군가에게 작은마음 하나라도 나누려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2.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미운 사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남 욕 안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덜
    미워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얼마나 남 욕 안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1)사실 남을 미워한다는 것은 어떤 원인의 결과인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마음의 상처나 물적 피해를 입혔을 때 미운 감정이 들게 되거든요
    남을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스스로의 마음속은 지옥이 되기에, 미워하는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일단 미운사람이 생겼을때는 고백성사를 자주 봅니다
    한 두번 성사 본다고 쉽게 희석되지 않기에 시간 나는대로 보는 편이지요
    그리하고 나면 조금씩 미운감정이 사라지고, 제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 온답니다
    2)남을 판단하는 것 또한 다 나쁜 것 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에게 사랑과 관심이 없다면 판단도 하지 않을테니까요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에서 헐뜯고 욕하는 행동이야
    해서는 안될 판단이겠지만, 혼자서 살아갈 수 없듯이, 집에서나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좋고 나쁜점을 판단하며 살아가게 마련인데, 어찌 오늘 복음말씀처럼 남을 판단하는
    것이 아주 있을 수 없다는 식의 사고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자신도 모르는 어떤 생활습관이나 언어습관을 상대방이 지적해주었을 때
    참으로 고맙게 받아들이고 고치려 노력하는 자세로 살아가기에 판단해 주는 이가 정말
    고맙다고 여길 때가 많습니다
    물론 저도 남을 판단하길 좋아합니다만 , 함부로 판단하는 행동은 지양되어야 겠지요

    2.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습니다. 용서해주면 나 또한 용서를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내가 남에게 주면 나 또한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물론 주시면 좋고 안 주시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내가 남에게 주어서 혹시 도로 받은 적이 있으면 함께 나눠 주세요. 후하게 받은
    적 있으면…
    1)용서라는 것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나 또한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를 입히며 살아가기에
    그들에게 용서를 청해야 겠지요
    ” 용서해주면 나 또한 용서를 받을 자격이 생긴다” 고 하는데 참 걱정입니다
    자신은 진심으로 용서하지 못하면서 용서 받으려고 한다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이지요
    2) 내가 남에게 주어서 도로 받은적은 많이 있었지요
    그러나 내가 받은 이에게 도로 받으려는 마음보다는, 내가 주지 않았던 사람에게 되돌려
    받은적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나 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건네면
    머지않아 또 다른 사람에게 생각지도 못한 큰 선물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되돌려 받기를 바라고 주기 보다는, 내가 주어서 느끼는 기쁨은 기쁨대로
    다른 사람에게 받아서 느끼는 기쁨대로의 또 다른 의미의 기쁨이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의미로 오늘 저는 누군가에게 작은마음 하나라도 나누려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3. user#0 님의 말:

    후배가 공무를 처리함에 있어 완전하지 못하여 그 여파가 내게로 미쳤음에 민감히 반응한 결과 서로의 관계가 서먹해진 직장후배에게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하였으나, 대답이 없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시간만 흘러감을 고백합니다.

    좀 더 유연하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할 수도 있었을텐데..
    왜 그랬을까?
    공무원으로서의 기본적인 것을 나는 너무나 의식한 탓이었던 듯합니다.
    자신의 틀에 맞지않을 때는 가차없이 형편없는 별종으로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지요.

    어찌해야 그 후배와 전과 같은 부드러운 관계가 될 수 있을까요?
    진정한 부활을 맞고 싶습니다.

  4. user#0 님의 말:

    후배가 공무를 처리함에 있어 완전하지 못하여 그 여파가 내게로 미쳤음에 민감히 반응한 결과 서로의 관계가 서먹해진 직장후배에게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하였으나, 대답이 없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시간만 흘러감을 고백합니다.

    좀 더 유연하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할 수도 있었을텐데..
    왜 그랬을까?
    공무원으로서의 기본적인 것을 나는 너무나 의식한 탓이었던 듯합니다.
    자신의 틀에 맞지않을 때는 가차없이 형편없는 별종으로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지요.

    어찌해야 그 후배와 전과 같은 부드러운 관계가 될 수 있을까요?
    진정한 부활을 맞고 싶습니다.

  5.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미운 사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남 욕 안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덜 미워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얼마나 남 욕 안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우리 강아지 코코가 마루에 가끔 오줌을 싸서 미워하지 않고 욕 안하려고 노력합니다.
    강아지에게도 이러니 사람에게야,

    2.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습니다. 용서해주면 나 또한 용서를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내가 남에게 주면 나 또한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물론 주시면 좋고 안 주시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만. 내가 남에게 주어서 혹시 도로 받은 적이 있으면 함께 나눠 주세요.
    후하게 받은 적이 있으면 …

    후하게 받은 적이 있느냐구요?
    예.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선물들을 안나는 넘치게 또 넘치게 받았습니다.
    주는 것은 좁쌀 만큼 주고 받는 것은 말(되어 주는 말)로 받는다는 표현도 부족하겠지요?
    누군가 그랬어요. 안나는 주는 은총을 받은게 아니라 받는 은총을 받았다구요.
    잘 받는 것도 은총이래요.

    한번은 친정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져 고난을 당하고 계셨는데 안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든 중 안나를 사랑해 주시던 의사 선생님 한 분이 안나 얼굴이 왜 슬퍼보이느냐고 묻기에
    아버지가 어려움 중에 계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제재소와 목재업을 하셔서 산이 많았는데 그 산을 처분하여 위기를 좀 면하려 하셨습니다.

    몇일 후, 그 의사 선생님이 안나에게 친정집을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놀란 안나는 영문도 모르고 저희 집에는 왜 가느냐고 여쭈니 그저 가 보자 하였습니다.
    병원을 하루 쉬고는 아버지께 갔습니다.
    선생님은 아버지께 큰 절을 올리시더니 산을 일부 사겠다 하였습니다.
    선생님께는 소용이 없는 산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아주 시골 깡촌에 있는 산이어서 도시에 계신 의사 선생님께는 소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산을 사시고, 아버지는 산을 팔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명의이전 때 산의 일부를 안나에게 주었습니다.
    7만평이 넘는 산을 안나에게 주었습다.
    아무리 부당하다 말씀드려도 그것은 안나 몫이라 하였습니다.

    놀라운 일은 이것 뿐이 아닙니다. 이 감사한 일은
    바닷가의 모래 한알 밖에 아니 될 만큼 안나는 넘치게 받았습니다.
    안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안나는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몇일 전에는 글라라 잠옷을 사야하는데 워낙 키가 큰 위인이라 여기저기 찾아 보아도 마땅치
    않아 키가 큰 요안나에게 물어 보았더니 잘됐다며 그것은 자기가 선물하겠다 하였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졸업선물을 주지 못했다며 오히려 기뻐하였습니다.

    안나는 이렇게 받기만 합니다.
    안나를 더 감동시키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고귀한 그들의 사랑입니다.
    그분들의 아름다운 마음. 넉넉함은 이루 다 헤일 수 없습니다.

    주여, 찬미 받으소서.
    아무 것도 아닌 안나에게 내리시는 이 넘치는 은총은 당신의 선물임을 안나는 잊지 않습니다.
    팔을 다친 안나에게 매일 매일 파스 바르기와 맛사지를 해 주시던 사랑스런 안나의 은인.
    지친 안나에게 기타를 치며 노래하여 위로하시던 친구.
    교통사고 나서 어찌해야 할 줄도 모르는 안나에게 자신의 택시를 세워 놓고는 도와주시던 형제님.
    미음도 마시지 못하던 안나에게 죽이란 죽은 다 끓여 나르던 자매님들,
    맹한 아내라 내치지 않고 인내하며 살아 준 남편.

    어찌 필설로 그분들의 공로를 조금이라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분에 넘치는 은총을 말로 흔들어 후하게 내리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안나는 째째하다 했으니,
    주님,
    감사와 감사를 드립니다.

  6.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미운 사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남 욕 안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덜 미워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얼마나 남 욕 안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우리 강아지 코코가 마루에 가끔 오줌을 싸서 미워하지 않고 욕 안하려고 노력합니다.
    강아지에게도 이러니 사람에게야,

    2.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습니다. 용서해주면 나 또한 용서를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내가 남에게 주면 나 또한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물론 주시면 좋고 안 주시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만. 내가 남에게 주어서 혹시 도로 받은 적이 있으면 함께 나눠 주세요.
    후하게 받은 적이 있으면 …

    후하게 받은 적이 있느냐구요?
    예.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선물들을 안나는 넘치게 또 넘치게 받았습니다.
    주는 것은 좁쌀 만큼 주고 받는 것은 말(되어 주는 말)로 받는다는 표현도 부족하겠지요?
    누군가 그랬어요. 안나는 주는 은총을 받은게 아니라 받는 은총을 받았다구요.
    잘 받는 것도 은총이래요.

    한번은 친정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져 고난을 당하고 계셨는데 안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든 중 안나를 사랑해 주시던 의사 선생님 한 분이 안나 얼굴이 왜 슬퍼보이느냐고 묻기에
    아버지가 어려움 중에 계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제재소와 목재업을 하셔서 산이 많았는데 그 산을 처분하여 위기를 좀 면하려 하셨습니다.

    몇일 후, 그 의사 선생님이 안나에게 친정집을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놀란 안나는 영문도 모르고 저희 집에는 왜 가느냐고 여쭈니 그저 가 보자 하였습니다.
    병원을 하루 쉬고는 아버지께 갔습니다.
    선생님은 아버지께 큰 절을 올리시더니 산을 일부 사겠다 하였습니다.
    선생님께는 소용이 없는 산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아주 시골 깡촌에 있는 산이어서 도시에 계신 의사 선생님께는 소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산을 사시고, 아버지는 산을 팔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명의이전 때 산의 일부를 안나에게 주었습니다.
    7만평이 넘는 산을 안나에게 주었습다.
    아무리 부당하다 말씀드려도 그것은 안나 몫이라 하였습니다.

    놀라운 일은 이것 뿐이 아닙니다. 이 감사한 일은
    바닷가의 모래 한알 밖에 아니 될 만큼 안나는 넘치게 받았습니다.
    안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안나는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몇일 전에는 글라라 잠옷을 사야하는데 워낙 키가 큰 위인이라 여기저기 찾아 보아도 마땅치
    않아 키가 큰 요안나에게 물어 보았더니 잘됐다며 그것은 자기가 선물하겠다 하였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졸업선물을 주지 못했다며 오히려 기뻐하였습니다.

    안나는 이렇게 받기만 합니다.
    안나를 더 감동시키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고귀한 그들의 사랑입니다.
    그분들의 아름다운 마음. 넉넉함은 이루 다 헤일 수 없습니다.

    주여, 찬미 받으소서.
    아무 것도 아닌 안나에게 내리시는 이 넘치는 은총은 당신의 선물임을 안나는 잊지 않습니다.
    팔을 다친 안나에게 매일 매일 파스 바르기와 맛사지를 해 주시던 사랑스런 안나의 은인.
    지친 안나에게 기타를 치며 노래하여 위로하시던 친구.
    교통사고 나서 어찌해야 할 줄도 모르는 안나에게 자신의 택시를 세워 놓고는 도와주시던 형제님.
    미음도 마시지 못하던 안나에게 죽이란 죽은 다 끓여 나르던 자매님들,
    맹한 아내라 내치지 않고 인내하며 살아 준 남편.

    어찌 필설로 그분들의 공로를 조금이라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분에 넘치는 은총을 말로 흔들어 후하게 내리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안나는 째째하다 했으니,
    주님,
    감사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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