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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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루가 4,24-30)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한 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
    복음을 묵상하려니 ….
    며칠전에 종교문제로 가슴이 아팠던 일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들의 한 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반대하고 무시당했던 예수님께서 묵묵히 당신의 갈길을 가셨을 때의 심정이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생각하니 ….
    저 역시 종교문제로 시댁식구들의 반대로 요즈음 마음이 답답했는데…
    오늘복음에서 당신의 갈길을 가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사때 저에게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않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간청을 했던
    저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은 누가 뭐라고 해도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있는 제 자신을
    느낄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신앙인의 운명 역시 하느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믿고 싶기에 저에게 닥쳐오는 시련을
    극복할수 있는 신앙을 주시리라 믿고 싶습니다
    우리 신앙인들 역시 믿음을 보여 주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에…
    나아만이 자신의 뜻을 굽히고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의 말에 따라 행동하여 병을 낫는
    은총을 입었듯이 저 역시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달아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 때 만이
    하느님께서 저희가족에게 은총을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동안을 괴롭고 힘들었는데 예수님께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가운데를 지나서 가셨다는 말씀에 용기가 생깁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람이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사순시기에 저에게 신앙을 시험하시려고 주신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한 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
    이 성서 말씀을 묵상하며
    저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도록 다짐해 봅니다

  2. user#0 님의 말: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루가 4,24-30)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한 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
    복음을 묵상하려니 ….
    며칠전에 종교문제로 가슴이 아팠던 일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들의 한 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반대하고 무시당했던 예수님께서 묵묵히 당신의 갈길을 가셨을 때의 심정이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생각하니 ….
    저 역시 종교문제로 시댁식구들의 반대로 요즈음 마음이 답답했는데…
    오늘복음에서 당신의 갈길을 가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사때 저에게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않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간청을 했던
    저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은 누가 뭐라고 해도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있는 제 자신을
    느낄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신앙인의 운명 역시 하느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믿고 싶기에 저에게 닥쳐오는 시련을
    극복할수 있는 신앙을 주시리라 믿고 싶습니다
    우리 신앙인들 역시 믿음을 보여 주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에…
    나아만이 자신의 뜻을 굽히고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의 말에 따라 행동하여 병을 낫는
    은총을 입었듯이 저 역시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달아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 때 만이
    하느님께서 저희가족에게 은총을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동안을 괴롭고 힘들었는데 예수님께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가운데를 지나서 가셨다는 말씀에 용기가 생깁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람이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사순시기에 저에게 신앙을 시험하시려고 주신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한 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
    이 성서 말씀을 묵상하며
    저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도록 다짐해 봅니다

  3. user#0 님의 말:

    † 구원자 예수님

    오늘 제1독서를 통해서 보았듯이,
    나병에 걸렸던 나아만이 요르단 강에서 몸을 씻으므로 깨끗히 나은 것은 주님께서 모든 백성에게
    믿음을 주시고 세례를 통하여 당신의 구원을 실천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의 시렙다 마을의 과부에게 보인 엘리야의 기적과, 시리아 사람 나아만의 치유를
    통해 당신께서 고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기적이 자신들에게만 베풀어지기를 바라지만, 예수께서는 유다인들을 위해서만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님을 보여주시고자 그들의 생각을 완강히 거부하십니다
    자신들의 뜻을 거부당한 ”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께 배신감을 느껴 폭력적인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예수님의 앞으로 다가올 수난을 예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처럼 나아만이 자신의 뜻을 굽히고 하느님의 뜻대로 행동하므로써 병이 깨끗히
    낫는 은혜로움을 입은 것 처럼, 우리도 이 사순시기를 진정 참회의 기회로 삼아 매사에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어 보다 큰 은총을 주실 것 입니다

    ”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이스라엘밖에는 온 세상에 신이 없습니다” 하신 말씀을 묵상하며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 기도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녁노을님! 오늘 올려주신 ” 구원자 예수 너의 사랑 ” 이 음악 참 좋습니다
    저희가 요즘 성가대에서 연습하고 있는 곡이라서 더욱 반갑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선곡하시는데 만만치 않으실텐데 너무 감사합니다(아무래도 하루종일 듣게 될 것 같습니다)

    사이버 성당에 오시는 모든 분들 !
    주님안에 멋진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4. user#0 님의 말:

    † 구원자 예수님

    오늘 제1독서를 통해서 보았듯이,
    나병에 걸렸던 나아만이 요르단 강에서 몸을 씻으므로 깨끗히 나은 것은 주님께서 모든 백성에게
    믿음을 주시고 세례를 통하여 당신의 구원을 실천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의 시렙다 마을의 과부에게 보인 엘리야의 기적과, 시리아 사람 나아만의 치유를
    통해 당신께서 고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기적이 자신들에게만 베풀어지기를 바라지만, 예수께서는 유다인들을 위해서만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님을 보여주시고자 그들의 생각을 완강히 거부하십니다
    자신들의 뜻을 거부당한 ”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께 배신감을 느껴 폭력적인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예수님의 앞으로 다가올 수난을 예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처럼 나아만이 자신의 뜻을 굽히고 하느님의 뜻대로 행동하므로써 병이 깨끗히
    낫는 은혜로움을 입은 것 처럼, 우리도 이 사순시기를 진정 참회의 기회로 삼아 매사에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어 보다 큰 은총을 주실 것 입니다

    ”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이스라엘밖에는 온 세상에 신이 없습니다” 하신 말씀을 묵상하며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 기도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녁노을님! 오늘 올려주신 ” 구원자 예수 너의 사랑 ” 이 음악 참 좋습니다
    저희가 요즘 성가대에서 연습하고 있는 곡이라서 더욱 반갑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선곡하시는데 만만치 않으실텐데 너무 감사합니다(아무래도 하루종일 듣게 될 것 같습니다)

    사이버 성당에 오시는 모든 분들 !
    주님안에 멋진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5. user#0 님의 말:

    +찬미예수님
    예수께서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처음으로 가르치시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의도가 예언자는 무조건 고향에서 존경받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시 거기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 자세를 문제삼습니다.
    그들의 닫혀진 마음,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문제입니다. 자기 사고의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는 도저히 하느님 말씀을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직접 만나기 전에, 그보다 더 자주 우리는 이웃 사람들과 자연사물을 더 먼저, 더 많이 대합니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더해 갈수록 이웃과 자연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기보다 무감각해져서 그저 그런 것, 다 아는 것으로 지나쳐 버립니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도 우리는 쉽게 옛 경험으로 그 사람을 이해해 버립니다.
    자연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지만 그 변화의 경이로움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하물며 인(人)과 물(物) 차원에서도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대해서야 오죽하겠습니까?

    하느님께 대한 내 알량한 지식과 편견이 오히려 그분과의 만남을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실상 이 얘기는 나자렛 사람들만의 얘기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나자렛 사람들과 같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나를 비추어 보기보다 내 잣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재단하려 한다면 말입니다.
    신학 지식이 아니라 언제나 부드러운 바람처럼 성령을 통해 말씀해 주시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배울 수 있도록, 주님께서 나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유경촌 신부(서울 가톨릭대학교)

  6. user#0 님의 말:

    +찬미예수님
    예수께서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처음으로 가르치시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의도가 예언자는 무조건 고향에서 존경받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시 거기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 자세를 문제삼습니다.
    그들의 닫혀진 마음,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문제입니다. 자기 사고의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는 도저히 하느님 말씀을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직접 만나기 전에, 그보다 더 자주 우리는 이웃 사람들과 자연사물을 더 먼저, 더 많이 대합니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더해 갈수록 이웃과 자연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기보다 무감각해져서 그저 그런 것, 다 아는 것으로 지나쳐 버립니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도 우리는 쉽게 옛 경험으로 그 사람을 이해해 버립니다.
    자연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지만 그 변화의 경이로움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하물며 인(人)과 물(物) 차원에서도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대해서야 오죽하겠습니까?

    하느님께 대한 내 알량한 지식과 편견이 오히려 그분과의 만남을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실상 이 얘기는 나자렛 사람들만의 얘기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나자렛 사람들과 같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나를 비추어 보기보다 내 잣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재단하려 한다면 말입니다.
    신학 지식이 아니라 언제나 부드러운 바람처럼 성령을 통해 말씀해 주시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배울 수 있도록, 주님께서 나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유경촌 신부(서울 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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