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책상을 정리하다 연년에 보내주신 신부님의 편지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2000. 3. 17일
주님 안에 우리의 힘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에 보다 충실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의 뜻 안에서 크건 작건 힘들건 쉽든지 간에
하느님이 원하시면 응답하는 자세는 우리를 단순하게 하고 순수하게 만듭니다.
소금이 녹지 않으면 제 구실을 못하는 것 처럼
우리의 신원이 상실되는 것 처럼 느낄 때
우리의 소명이 이루어질 때가 가까이 온 것입니다.
이것을 성인들은 마지막 자아가 죽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마음 깊숙한 곳을 주님께서 치시는 것으로서
세상과 모든 것에서 끊겨 나가는 고통을 받습니다.
어둠과 혼란이 지배하는 것 처럼 보여도
하느님께서는 은밀히 우리 안에 새 생명의 씨앗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수록 더욱 좋으시고 자비하신 하느님께 맹목적으로 신뢰를 두어야합니다.
그리고 이 작업은 하느님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신뢰하고 애정어린 눈길을 주님께 두면
주님의 빛이 늘 우리를 감싸고 우리를 조촐하게 만들어
외적으로는 풍파가 일어도 마음 깊이 흔들리지 않음을 느낌니다.
주님
안나라는 소금이 녹지 못했습니다.
제 신원이 상실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내적인 평화도 상실 되었습니다.
혼돈.
혼돈.
익숙하지 못한 감정에 혼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제 자신의 일부이며 저항없이 인정할 때 그것도
은총의 인도임을 배웁니다.
보내주신 지도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오늘을 맞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태양이신 당신만을 바라보겠습니다.
당신이 그리 원하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무엇에도 놀람없이
그 무엇에도 저항없이 교만한 자신의 가난을 위해 필요한 아픔의 은사를
순히 받아들이며 님 앞에 머물겠습니다.
거룩한 이들의 구석자리에라도 머무르기를 주께서 원하신 듯 합니다.
혼란도 혼돈도 은총입니다.
제 부족함을 더 선명히 인식하기 위해 필요한 사랑임을
이 아침 배웁니다.
그대로 두겠습니다.
그대로 바라보겠습니다.
그대로,
그대로 지나가게 두며
죄인이 님의 발치에 머문다
설령 아름운이들로 부터 구박 받는다 하여도
탓 아니 하며(그럴 자격도 실은 없지만)
머무르겠습니다.
그러면 이 죄인도 언젠가는
주님의 사랑에 아주 조금이라도 응답하겠지요?
그러면
정말 그러하면
언젠가 님이 날 부르시겠지요?
이 귀양살이에서 구원해 주시겠지요?
잠들면 다시는 깨어나 고된 세상 아니기를
빈다면 욕심이지요?
예수의 데레사 詩 일부입니다.
오직 하나 죽으리란 미쁨을
지니기에 나는 살아가노라.
죽어야 산다함이
희망을 내게 다짐함이어라.
너로써 삶이 트이나니 죽음아
너 오기를 더디 말라 너를 기다리노라
아니 죽어져 나 죽겠음을
주님!
자아가 죽으면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게 되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