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 자식이 죽기 전에 같이 좀 가 주십시오
-고관의 아들을 치유하시는 예수님-
<말씀연구>
자식의 죽음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그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어디 용하다는 의원이 있다면 아무리 먼 길이라 할지라도 단숨에 달려갈 것이다.
이틀 뒤에 예수께서는 그 곳을 떠나 갈릴래아로 가셨다.
언제는 벼랑에서 밀어 버리려고 하더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하신 일들을 보더니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예수님을 환영하고 있다. 예수님 속도 참 좋으시네. 당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계시니. 나자렛에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갈릴래아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예수께서는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레아의 가나에 다시 가셨다. 거기에 고관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가파르나움에서 앓아 누워 있었다. 그는 예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레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를 찾아 와 자기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으니 가파르나움으로 내려 가셔서 아들을 고쳐 달라고 사정하였다.
가파르나움에서 가나까지는 33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당시 그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온 아버지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보아야겠다. 아들을 살리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예수께서는 그에게 “너희는 기적이나 신기한 일을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는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그 고관은 “선생님, 제 자식이 죽기 전에 같이 좀 가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예수께서 “집에 돌아 가라. 네 아들은 살 것이다” 하시니 그는 예수의 말씀을 믿고 떠나 갔다.
<웃어봅시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고관의 아들을 치유하신 이유는?
1. 33킬로미터를 걸어가기 싫어서. 2. 가나에 볼 일이 있어서. 3. 그냥
<만일 내가 예수님이었다면 귀찮다고 하면서 그냥 말씀으로 고쳐줬을 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예수님께 청을 합니다. 아들이 죽기 전에 제발 같이 가 달라고. 그 고관은 예수님의 능력이 멀리있는 자신의 아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같이 가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잘 몰랐다. 그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고관에게 예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꾸짖으신다. 아니 주변에 있는 갈릴레아 사람들에게 꾸짖으시는 것이다. 그저 보고야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 온전하게 믿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고 있으니 아버지의 말씀을 믿는다면 예수님께 온전히 믿음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고관의 청을 물리치지 않으신다. 그의 불쌍한 처지를 가엾게 여기신 것이다. “집에 돌아가라. 네 아들은 살 것이다”라고 그 고관에게 말씀을 하신다. 그리고 그 고관은 그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간다. 같이 가 달라고 청하던 고관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집으로 향한 것이다.
그가 집으로 돌아 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길에 마중나와 그의 아들이 살아났다고 전해 주었다.
그가 종들에게 자기 아이가 낫게 된 시간을 물어보니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그 아버지는 그 때가 바로 예수께서 “네 아들은 살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와 그의 온 집안이 예수를 믿었다.
아들이 치유되기를 믿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믿고 돌아갔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고 있을때 다행히 자신의 종들을 만나게 되었다. 기쁜 소식을 전해 줄 종들을…그리고 아들이 살아났다는 말을 듣고 불신의 감정은 사라지고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얼마나 기뻤을까? 죽어가던 아들을 살린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감사할까? 죽음에 처한 아들을 살려준 예수님께. 그래서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자녀가 아프기 때문에 가슴 아팠던 기억을 함께 나눠 주세요. 그리고 병상에서 일어났을 때의 기쁨이 어떠했는지 함께 나눠주세요.
2. 고관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함께 가자고 했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도중에 아들이 나았다는 말을 듣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고관의 마음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내 경우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자녀가 아프기 때문에 가슴 아팠던 기억을 함께 나눠 주세요.
그리고 병상에서 일어났을 때의 기쁨이 어떠했는지 함께 나눠주세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가 아프면 차라리 내가 아프면 얼마나 좋을까 희망합니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고 무엇도 대신 할 수 없는 우리 아이들.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을 체험합니다.
아이가 회복되면 온 세상을 얻는 마음이구요.
2. 고관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함께 가자고 했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도중에 아들이 나았다는 말을 듣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고관의 마음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내 경우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고관의 마음은 그만큼 절박했겠지요?
안나 경험으로는 아이가 아프다는, 어쩌면 백혈병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아프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자 검사결과를 뼈아프게 기다렸습니다.
차리리 날 대신하게 해달라 간절히 청하며 살려달라 애원하였습니다.
섭리는 안나 자신의 아픔 보다 아이의 아픔이 더 큰 아픔으로 올 걸 아시고
안나의 교만을 자각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다 무엇도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안나는 모든 걸 버리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주신 생명이니 거두어 가심도 당신 뜻이라면 그리 하십시오.”
두려움에서 해방되자 감사, 기쁨으로 그것은 평화 자체였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자녀가 아프기 때문에 가슴 아팠던 기억을 함께 나눠 주세요.
그리고 병상에서 일어났을 때의 기쁨이 어떠했는지 함께 나눠주세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가 아프면 차라리 내가 아프면 얼마나 좋을까 희망합니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고 무엇도 대신 할 수 없는 우리 아이들.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을 체험합니다.
아이가 회복되면 온 세상을 얻는 마음이구요.
2. 고관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함께 가자고 했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도중에 아들이 나았다는 말을 듣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고관의 마음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내 경우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고관의 마음은 그만큼 절박했겠지요?
안나 경험으로는 아이가 아프다는, 어쩌면 백혈병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아프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자 검사결과를 뼈아프게 기다렸습니다.
차리리 날 대신하게 해달라 간절히 청하며 살려달라 애원하였습니다.
섭리는 안나 자신의 아픔 보다 아이의 아픔이 더 큰 아픔으로 올 걸 아시고
안나의 교만을 자각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다 무엇도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안나는 모든 걸 버리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주신 생명이니 거두어 가심도 당신 뜻이라면 그리 하십시오.”
두려움에서 해방되자 감사, 기쁨으로 그것은 평화 자체였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자녀가 아프기 때문에 가슴 아팠던 기억을 함께 나눠 주세요. 그리고 병상에서 일어났을 때의
기쁨이 어떠했는지 함께 나눠주세요.
혹여 간이 졸아지는 듯한 느낌을 경험해 보셨는지요?
저는 아이들이 아플때마다 느끼는 경험이었습니다
아파도 그냥 아픈게 아니라 거의 넘어가기 직전 119 응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가는 수준이었지요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서인지 아이아빠는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저에겐 이상하게도 오히려 침착함을 주시더군요(차라리 전 조용히 기도
드리는 차분함을 보이는 편이죠..)
그러다가 점점 나아지고 퇴원을 하게 되면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답니다
아전인수격인지 몰라도 꼭 제 기도 덕분에 나은 것만 같은 착각을 할 때도 종종 있었답니다
2. 고관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함께 가자고 했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도중에 아들이 나았다는 말을 듣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고관의 마음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내 경우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오늘 고관의 모습이 바로 제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엔 반신반의(?) 하는 모습이 바로 저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확실하게 나으면 “역시 하느님은 계시며 나의 편이시구나”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곤하지요
아쉬울때만 주님! 주님! 하며 청원하는 저의 간절함도 모른척 하지 않으시는 주님께 감사 또
감사 드릴 따름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자녀가 아프기 때문에 가슴 아팠던 기억을 함께 나눠 주세요. 그리고 병상에서 일어났을 때의
기쁨이 어떠했는지 함께 나눠주세요.
혹여 간이 졸아지는 듯한 느낌을 경험해 보셨는지요?
저는 아이들이 아플때마다 느끼는 경험이었습니다
아파도 그냥 아픈게 아니라 거의 넘어가기 직전 119 응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가는 수준이었지요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서인지 아이아빠는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저에겐 이상하게도 오히려 침착함을 주시더군요(차라리 전 조용히 기도
드리는 차분함을 보이는 편이죠..)
그러다가 점점 나아지고 퇴원을 하게 되면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답니다
아전인수격인지 몰라도 꼭 제 기도 덕분에 나은 것만 같은 착각을 할 때도 종종 있었답니다
2. 고관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함께 가자고 했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도중에 아들이 나았다는 말을 듣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고관의 마음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내 경우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오늘 고관의 모습이 바로 제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엔 반신반의(?) 하는 모습이 바로 저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확실하게 나으면 “역시 하느님은 계시며 나의 편이시구나”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곤하지요
아쉬울때만 주님! 주님! 하며 청원하는 저의 간절함도 모른척 하지 않으시는 주님께 감사 또
감사 드릴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