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다시는 죄짓지 말아라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11 그 때에 예수께서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또다시 성전에 나타나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 앉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그 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앞에 내세우고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의 모세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예수께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계속 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 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그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 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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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다시는 죄짓지 말아라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의 구원 (요한 8,1-11)

    나도 네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죄짓지마라‘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는 예수님을 곤경에 쳐하게 하려고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데리고 오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사람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속셈을 알아차리시고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돌로 치라고 하시자 나이많은 사람들부터 돌아갔다고 하는데……..
    나이가 많다는 사실에 …..
    상식적으로 나이가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인생을 더 살았기에 이해와 용서
    하는 마음이 많다는 뜻도 있고 나이가 많기에 죄를 더 많이 짓고 살았다는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죄를 짖지 않고 살아간다고 장담을 할수없기에
    예수님께서는 남을 판단하는 우리에게 자신의 죄는 합리화하면서
    남에게 인색한 우리들에게 경고와 회개를 요구하시며 우리에게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며 하느님께 돌아가는 은총의 삶을 바라고 계실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남을 판단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은총의 시기인 사순시기에 우리의 삶을 예수님께 향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회개하여 기쁨의 부활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간음하다 붙잩혀왔지만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게된
    여인처럼 우리자신도 남을 판단하고 모함하기에 앞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스스로 뉘우치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교우분의 자녀의 결혼식에 갔습니다
    신랑측 부모님이 불교신자이기에 성당이 아닌곳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남동생이 신학생이라 교구의 동창신학생들이 와서 누나의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면서 남동생인 신학생이 누나의 시부모님들께 사랑하는 누나를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 달라는 부탁의 멘트까지 했을때 같은신자인
    우리들은 동생의 누나를 사랑하는 마음에 가슴이 찡하여 눈물이 났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누나가 혹시 시집살이는 하지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부탁하는 남동생의 사랑과 축가를 부르는 신학생들 또한 내년이면 부제품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기에 얼마남지않은 미래의 사제들을 보는 우리들의 마음
    도 그들이 무사히 사제품을 받을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하는 마음과 함께
    그동안의 인간적인 잘못을 하며 살아온 자신들에 대한 반성을 하면서…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에게 불이익이 오는것에는
    목숨걸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정작 영생이 걸려있는 하느님께 잘못을 하며 살을때는 수없이
    많지만 용서해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리고 회개를 하는때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결혼식에서도 누나를 사랑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신학생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우리들의 마음에속에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느낀 감정의 표현이었지만 결혼식을 보고 식사를 하면서 우리들
    모두는 누구하나 하느님께서 그들을 잘 보살펴주실 것이라는 말을
    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남동생인 신학생의 누나사랑하는 마음이 갸륵하다는 인간적인
    생각들만 했음을…..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무슨일이든지 하느님께
    감사하며 모든기쁨과 슬픔 어려운 일등을 하느님과 함께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주일이면 미사를 가고 회합하는날도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신앙생활을 악세사리로
    생각하며 살아온 것같은 반성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돌아가서 다시는 죄짓지 마라”
    하시며 한없이 용서해주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을 돌로 쳐라”
    이 성서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의 죄는 합리화 시키면서 남의 잘못을 판단하고 탓했던 저의
    교만을 용서해 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해봅니다

    .

  2. user#0 님의 말: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의 구원 (요한 8,1-11)

    나도 네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죄짓지마라‘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는 예수님을 곤경에 쳐하게 하려고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데리고 오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사람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속셈을 알아차리시고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돌로 치라고 하시자 나이많은 사람들부터 돌아갔다고 하는데……..
    나이가 많다는 사실에 …..
    상식적으로 나이가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인생을 더 살았기에 이해와 용서
    하는 마음이 많다는 뜻도 있고 나이가 많기에 죄를 더 많이 짓고 살았다는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죄를 짖지 않고 살아간다고 장담을 할수없기에
    예수님께서는 남을 판단하는 우리에게 자신의 죄는 합리화하면서
    남에게 인색한 우리들에게 경고와 회개를 요구하시며 우리에게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며 하느님께 돌아가는 은총의 삶을 바라고 계실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남을 판단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은총의 시기인 사순시기에 우리의 삶을 예수님께 향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회개하여 기쁨의 부활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간음하다 붙잩혀왔지만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게된
    여인처럼 우리자신도 남을 판단하고 모함하기에 앞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스스로 뉘우치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교우분의 자녀의 결혼식에 갔습니다
    신랑측 부모님이 불교신자이기에 성당이 아닌곳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남동생이 신학생이라 교구의 동창신학생들이 와서 누나의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면서 남동생인 신학생이 누나의 시부모님들께 사랑하는 누나를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 달라는 부탁의 멘트까지 했을때 같은신자인
    우리들은 동생의 누나를 사랑하는 마음에 가슴이 찡하여 눈물이 났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누나가 혹시 시집살이는 하지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부탁하는 남동생의 사랑과 축가를 부르는 신학생들 또한 내년이면 부제품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기에 얼마남지않은 미래의 사제들을 보는 우리들의 마음
    도 그들이 무사히 사제품을 받을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하는 마음과 함께
    그동안의 인간적인 잘못을 하며 살아온 자신들에 대한 반성을 하면서…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에게 불이익이 오는것에는
    목숨걸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정작 영생이 걸려있는 하느님께 잘못을 하며 살을때는 수없이
    많지만 용서해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리고 회개를 하는때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결혼식에서도 누나를 사랑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신학생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우리들의 마음에속에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느낀 감정의 표현이었지만 결혼식을 보고 식사를 하면서 우리들
    모두는 누구하나 하느님께서 그들을 잘 보살펴주실 것이라는 말을
    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남동생인 신학생의 누나사랑하는 마음이 갸륵하다는 인간적인
    생각들만 했음을…..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무슨일이든지 하느님께
    감사하며 모든기쁨과 슬픔 어려운 일등을 하느님과 함께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주일이면 미사를 가고 회합하는날도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신앙생활을 악세사리로
    생각하며 살아온 것같은 반성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돌아가서 다시는 죄짓지 마라”
    하시며 한없이 용서해주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을 돌로 쳐라”
    이 성서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의 죄는 합리화 시키면서 남의 잘못을 판단하고 탓했던 저의
    교만을 용서해 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해봅니다

    .

  3. user#0 님의 말:

    † 찬미예수님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
    하시는 명 판결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려 했던 울법학자들과 바이사이파 사람들은 얼마나 힘이 빠졌을까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죄를 지으며 살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하지만 어떠한 죄라도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다는 것과
    인간으로서 조그마한 죄도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셨으며,
    자신의 죄는 보지 않고 남의 죄만 들추려 하는 우리 인간의 모순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어쩌면 작은 잘못이나 실수도 지나치지 못하고 용서에 인색한 우리네 좁은소견을 따끔하게
    나무라시는 것만 같아 여러가지로 마음 찔리는 일이 빠르게 스쳐갑니다

    간음한 여인에게 무죄판결을 하시고 ” 다시는 죄짓지 마라” 하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용서하심에 회개와 뉘우침으로 지금까지의 죄를 반성하고
    더이상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으로 거듭나야 하겠으며,
    사람의 죄를 물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심을 깊이 인식하여
    남을 탓하고 남의 죄를 캐려하기전에 먼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아는 멋진
    신앙인이 되도록 작은노력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주님!
    제가 남의 눈의 티를 찾아내려 애쓰기 보다
    먼저 자신의 눈 속의 대들보를 찾아내어 진심으로 용서 청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고
    같은 죄를 반복하여 짓지 않도록 깊은성찰과 기도의 생활로 나날이 새로나게 하소서

  4. user#0 님의 말:

    † 찬미예수님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
    하시는 명 판결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려 했던 울법학자들과 바이사이파 사람들은 얼마나 힘이 빠졌을까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죄를 지으며 살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하지만 어떠한 죄라도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다는 것과
    인간으로서 조그마한 죄도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셨으며,
    자신의 죄는 보지 않고 남의 죄만 들추려 하는 우리 인간의 모순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어쩌면 작은 잘못이나 실수도 지나치지 못하고 용서에 인색한 우리네 좁은소견을 따끔하게
    나무라시는 것만 같아 여러가지로 마음 찔리는 일이 빠르게 스쳐갑니다

    간음한 여인에게 무죄판결을 하시고 ” 다시는 죄짓지 마라” 하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용서하심에 회개와 뉘우침으로 지금까지의 죄를 반성하고
    더이상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으로 거듭나야 하겠으며,
    사람의 죄를 물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심을 깊이 인식하여
    남을 탓하고 남의 죄를 캐려하기전에 먼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아는 멋진
    신앙인이 되도록 작은노력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주님!
    제가 남의 눈의 티를 찾아내려 애쓰기 보다
    먼저 자신의 눈 속의 대들보를 찾아내어 진심으로 용서 청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고
    같은 죄를 반복하여 짓지 않도록 깊은성찰과 기도의 생활로 나날이 새로나게 하소서

  5. user#0 님의 말:

    +찬미예수님

    어제는 무척 화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짜증과 분노가 용암이 솟구쳐오르는 듯했습니다.
    정말 그 뜨거운 감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차를 거칠게 몰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잠시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를 멈추고 내가 왜 그러는지 생각했습니다.
    숨을 깊이 내쉬면서 그 느낌이 주는 신호가 무엇인가 나를 바라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조금 전과는 다른 행동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노신은 ‘조화석습(朝花石拾)’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어떤 상황에 즉각즉각 대응하지 않고 꽃이 다 떨어진 저녁까지 기다린 다음에 매듭짓는 것이 현명하다는 의미입니다.
    아침에 떨어진 꽃을 저녁까지 그대로 두지 못한다 해도 숨 한번 깊게 쉴 만큼이라도 여유를 갖고 싶습니다.

    돌로 사람을 쳐죽이겠다는 급박한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어릴 적 우리가 나무막대기나 쇠못을 주워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듯 무언가를 쓰고 계십니다.

    뭐라고 썼는지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이 중요하다면 복음사가를 통해 무엇을 썼다고 알려주셨을 테니까요.

    돌로 치는 율법을 주장하며 예수님을 시험해 보겠다는 똑똑하나 매정한 사람들이 딱하고, 죄짓고 붙들려 나와 떨고 있는 여인이 안쓰러워 잠시 생각에 잠기셨는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벌어진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선택의 공간을 충분히 두십니다.

    행동하기를 멈추고 더 나은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상황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행동하기 전에 생각할 공간을 확보해 더 성숙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 오늘 예수께서는 제게 그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역시 그분은 영원한 스승이십니다.

    정재돈(인천교구 선학동 천주교회)

  6. user#0 님의 말:

    +찬미예수님

    어제는 무척 화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짜증과 분노가 용암이 솟구쳐오르는 듯했습니다.
    정말 그 뜨거운 감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차를 거칠게 몰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잠시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를 멈추고 내가 왜 그러는지 생각했습니다.
    숨을 깊이 내쉬면서 그 느낌이 주는 신호가 무엇인가 나를 바라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조금 전과는 다른 행동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노신은 ‘조화석습(朝花石拾)’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어떤 상황에 즉각즉각 대응하지 않고 꽃이 다 떨어진 저녁까지 기다린 다음에 매듭짓는 것이 현명하다는 의미입니다.
    아침에 떨어진 꽃을 저녁까지 그대로 두지 못한다 해도 숨 한번 깊게 쉴 만큼이라도 여유를 갖고 싶습니다.

    돌로 사람을 쳐죽이겠다는 급박한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어릴 적 우리가 나무막대기나 쇠못을 주워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듯 무언가를 쓰고 계십니다.

    뭐라고 썼는지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이 중요하다면 복음사가를 통해 무엇을 썼다고 알려주셨을 테니까요.

    돌로 치는 율법을 주장하며 예수님을 시험해 보겠다는 똑똑하나 매정한 사람들이 딱하고, 죄짓고 붙들려 나와 떨고 있는 여인이 안쓰러워 잠시 생각에 잠기셨는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벌어진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선택의 공간을 충분히 두십니다.

    행동하기를 멈추고 더 나은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상황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행동하기 전에 생각할 공간을 확보해 더 성숙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 오늘 예수께서는 제게 그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역시 그분은 영원한 스승이십니다.

    정재돈(인천교구 선학동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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