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신 분은 나를 혼자 버려 두시지는 않는다

사순 제5주간 화요일(4/8)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1-30 그 때에 예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간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찾다가 자기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을 터이니 내가 가는 곳에는 오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유다인들은 "이 사람이 자기가 가는 곳에 우리는 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니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지만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너희가 자기 죄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죽으리라고 한 것이다. 만일 너희가 내가 그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그와 같이 죄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죽고 말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하고 그들이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처음부터 내가 누구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너희에 대해서 할 말도 많고 판단할 것도 많지만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기에 나도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그대로 이세상에서 말할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올린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 내가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만 말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 두시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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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신 분은 나를 혼자 버려 두시지는 않는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사순 제5주간 화요일(4/8)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1-30 그 때에 예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간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찾다가 자기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을 터이니 내가 가는 곳에는 오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유다인들은 "이 사람이 자기가 가는 곳에 우리는 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니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지만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너희가 자기 죄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죽으리라고 한 것이다. 만일 너희가 내가 그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그와 같이 죄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죽고 말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하고 그들이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처음부터 내가 누구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너희에 대해서 할 말도 많고 판단할 것도 많지만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기에 나도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그대로 이세상에서 말할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올린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 내가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만 말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 두시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2. user#0 님의 말:

    † 은총의 샘이신 예수님

    “나는 간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찾다가 자기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을 터이니 내가 가는
    곳에는 오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저의 지난 시간이 참다운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참으로 걱정이 됩니다
    회개할 시간이 절실히 필요함을 알지만 생각뿐이고 몸은 그대로 머물러 있으니 이 또한
    문제가 아닐런지요 …참으로 한심한 저의 모습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사사건건 시비와 반대를 하며 예수님을
    박해했던 유다인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속으론 얼마나 뜨끔하였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죄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결국 죽게 될 것이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빛으로 나아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임을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하느님을 불신하고 하느님께 대들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뱀에 물려 죽자
    모세가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로 애원하자 ”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놓고 뱀에게
    물린 사람마다 그것을 바라보게 하여라 그러면 죽지 아니하리다” 하시면서
    당신께 배은덕한 백성들을 살려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둥에 매달린 구리뱀을 바라보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된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며 십자가의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과거의 잘못된 삶을 반성하며 오늘과 앞으로의 삶속에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신앙인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 두시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신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사건을 통해 오히려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신
    하느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우리도 주님이 기뻐하시도록 주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며
    또한 널리 전파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이 앞서야겠습니다
    다가오는 부활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 우리의 무딘 마음과 고집을 버리고 새로나야겠습니다

  3. user#0 님의 말:

    † 은총의 샘이신 예수님

    “나는 간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찾다가 자기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을 터이니 내가 가는
    곳에는 오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저의 지난 시간이 참다운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참으로 걱정이 됩니다
    회개할 시간이 절실히 필요함을 알지만 생각뿐이고 몸은 그대로 머물러 있으니 이 또한
    문제가 아닐런지요 …참으로 한심한 저의 모습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사사건건 시비와 반대를 하며 예수님을
    박해했던 유다인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속으론 얼마나 뜨끔하였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죄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결국 죽게 될 것이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빛으로 나아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임을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하느님을 불신하고 하느님께 대들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뱀에 물려 죽자
    모세가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로 애원하자 ”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놓고 뱀에게
    물린 사람마다 그것을 바라보게 하여라 그러면 죽지 아니하리다” 하시면서
    당신께 배은덕한 백성들을 살려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둥에 매달린 구리뱀을 바라보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된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며 십자가의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과거의 잘못된 삶을 반성하며 오늘과 앞으로의 삶속에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신앙인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 두시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신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사건을 통해 오히려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신
    하느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우리도 주님이 기뻐하시도록 주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며
    또한 널리 전파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이 앞서야겠습니다
    다가오는 부활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 우리의 무딘 마음과 고집을 버리고 새로나야겠습니다

  4. user#0 님의 말:

    +찬미예수님

    나는 태어날 때부터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다른 장소·다른 일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나 아닌 다른 것과의 관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형이며, 누구의 남편이고 누구의 아버지이며, 누구의 친구이고, 어디서 왔고 몇 살 먹었고 누구와 함께 무슨 일을 하고’….

    그렇습니다.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 알고 체험할 수 있는 도구는 이렇게 ‘관계’ 안에서입니다.

    내 정체성은 결국 타자(他者)와의 차이를 통해 드러납니다.

    ‘자신’이란 내가 나 이외의 모든 것과 관계하기 위해 스스로 창조해 낸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관계는 성스러운 것입니다.
    모든 관계는 축복해야 합니다.
    모든 관계를 특별한 것으로, 자신을 형성해 주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려면 먼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받는 존재로 여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려면 먼저 자신이 축복받는 존재로 여겨야 합니다.
    일정한 독주 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멋진 합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고(和而不同)’,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차이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릇 관계는 의존적 관계에서 독립적 관계로, 독립적 관계에서 상호협력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로 성숙하나 봅니다.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자신과의 관계’-‘하느님과의 관계’-‘이웃과의 관계 이 세 측면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입니다.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가운데 함께 있겠노라”(마태 18,’20) 하신 것처럼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때 비로소 관계가 올바로 이뤄지고 발전하게 됩니다.

    그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는 주님의 말씀을 우리의 ‘관계’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찾는다. 그러나 찾지 못했다. 나는 하느님을 만나려 했으나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웃 형제를 찾았을 때 이 셋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춥고 배고프고 살벌했을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 벽에 적힌 낙서입니다.

    정재돈(인천교구 선학동 천주교회)

  5. user#0 님의 말:

    +찬미예수님

    나는 태어날 때부터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다른 장소·다른 일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나 아닌 다른 것과의 관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형이며, 누구의 남편이고 누구의 아버지이며, 누구의 친구이고, 어디서 왔고 몇 살 먹었고 누구와 함께 무슨 일을 하고’….

    그렇습니다.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 알고 체험할 수 있는 도구는 이렇게 ‘관계’ 안에서입니다.

    내 정체성은 결국 타자(他者)와의 차이를 통해 드러납니다.

    ‘자신’이란 내가 나 이외의 모든 것과 관계하기 위해 스스로 창조해 낸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관계는 성스러운 것입니다.
    모든 관계는 축복해야 합니다.
    모든 관계를 특별한 것으로, 자신을 형성해 주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려면 먼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받는 존재로 여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려면 먼저 자신이 축복받는 존재로 여겨야 합니다.
    일정한 독주 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멋진 합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고(和而不同)’,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차이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릇 관계는 의존적 관계에서 독립적 관계로, 독립적 관계에서 상호협력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로 성숙하나 봅니다.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자신과의 관계’-‘하느님과의 관계’-‘이웃과의 관계 이 세 측면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입니다.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가운데 함께 있겠노라”(마태 18,’20) 하신 것처럼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때 비로소 관계가 올바로 이뤄지고 발전하게 됩니다.

    그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는 주님의 말씀을 우리의 ‘관계’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찾는다. 그러나 찾지 못했다. 나는 하느님을 만나려 했으나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웃 형제를 찾았을 때 이 셋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춥고 배고프고 살벌했을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 벽에 적힌 낙서입니다.

    정재돈(인천교구 선학동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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