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6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러자 토마스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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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사랑이신 주님!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하시며 당신을 믿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제자들을 안심시키시는 것을 보면서
    저 또한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이 말씀을 들으니 마음 한 구석 평화의 물결 스르르 들어와
    앉으니 참 좋습니다
    현세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주 아버지 집에 가면 평안히 쉴 곳을 마련해 주신다고 하니
    이 얼마나 마음 든든한 말씀인가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하신 말씀을 보더라도 우리 신앙인의 삶의 중심은 그 어느 것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 없는 신앙인의 삶이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를 따라 그분의 길로 나아갈 때,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음을
    잊지 말고 주님께서 주신 계명을 실천하며 착히 살아간다면, 우리가 영원히 살 집을 마련해
    주실 것을 굳게 믿고 기쁘게 살아내렵니다

    주님!
    오늘 하루 나와 만나는 이웃에게 밝은 모습 전하며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상황과 주어진 일들을 기쁘게 맞이하게 하소서!

    211.203.36.83 임 찬미: 주님! 자매님의 예쁜 기도를 들어주소서! [05/16-07:55]
    211.179.143.29 이헬레나: 루실라자매님 자매님의 깊은 묵상 항상 감명깊게 읽고 있습니다 시도 잘쓰시고 부럽습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05/16-09:20]

  2. user#0 님의 말:

    사랑이신 주님!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하시며 당신을 믿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제자들을 안심시키시는 것을 보면서
    저 또한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이 말씀을 들으니 마음 한 구석 평화의 물결 스르르 들어와
    앉으니 참 좋습니다
    현세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주 아버지 집에 가면 평안히 쉴 곳을 마련해 주신다고 하니
    이 얼마나 마음 든든한 말씀인가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하신 말씀을 보더라도 우리 신앙인의 삶의 중심은 그 어느 것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 없는 신앙인의 삶이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를 따라 그분의 길로 나아갈 때,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음을
    잊지 말고 주님께서 주신 계명을 실천하며 착히 살아간다면, 우리가 영원히 살 집을 마련해
    주실 것을 굳게 믿고 기쁘게 살아내렵니다

    주님!
    오늘 하루 나와 만나는 이웃에게 밝은 모습 전하며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상황과 주어진 일들을 기쁘게 맞이하게 하소서!

    211.203.36.83 임 찬미: 주님! 자매님의 예쁜 기도를 들어주소서! [05/16-07:55]
    211.179.143.29 이헬레나: 루실라자매님 자매님의 깊은 묵상 항상 감명깊게 읽고 있습니다 시도 잘쓰시고 부럽습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05/16-09:20]

  3. user#0 님의 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해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하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수 없다”

    당신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도 아버지께 갈수 없다고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을 믿는다고 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된 우리의 삶의 중심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진리를 따라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갈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수 있다고……..

    어제 저녁 운동을 한다고 유등천변을 두시간을 걷고 집에 와서
    복음을 묵상하려고 컴퓨터를 켜고 앉아있으려니 너무 피곤하고 집중이
    되지 않아 조금만 쉬었다가 해야지 하고 누웠는데 일어나니 새벽두시…
    전에도 이런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일어나면 잠을 자지못해 하루종일
    피곤해서 정신이 몽롱해지고 했기에 두눈을 딱감고 잠을 잤습니다
    하지만
    자면서도 일어나야 하는데하는 생각으로 잠을 잤더니 아침이 된 지금도
    피곤해 컴에 앉아있는데도 정신이 없어 복음묵상이 잘 되지를 않아
    한시간이 넘도록 앉아 있는데 누가 자꾸 저를 부르는 소리가 ……..
    밍키와 예삐는 계속 짖어대고 아침에 올 사람이 없는데 하면서 나가보지를
    않았는데 친정아버지께서 열무김치 한통을 아래층 집에다 놓고 가셨습니다
    손이 귀하고 단명한 집안인 친정에서 유일하게 80살이 넘게 사시는
    아버지 이십니다
    김치통을 보는 순간 죄송한 마음이 자전저를 타고 오시느라 김칫국물이
    흘렀는데 옷은 버리지 않으셨는지……
    요즘들어 기운이 없으신 것같고 위험해서 자전거를 타시지말라고 했는데
    딸에게 주려고 이른아침부터 오신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도 정신이 없어
    환청으로 들리는 줄 알았는데 …..
    가정의 달인 오월
    부모님께 잘해드려야 하는데 아들이 군대간후
    그동안 내 자식걱정 하느라 부모님생각을 소홀히 한 딸을 섭섭해 하지않으시고
    결혼해서 20년이 지난 지금도 체중이 10k가 넘게 살이 쩠는데도 저를 보실때마다
    너 얼굴이 왜 그러냐? 하시며 걱정하시는 아버지를 보면 부모님은 자식이
    나이가 먹어도 어린애로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자꾸 살이쪄서 운동을 하는데 보실때마다 얼굴이 수척하다고 느끼신는 것을 보면…
    오늘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수없다고
    하십니다 당신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서 세례를 받고 주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될것입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이해가 되고 알아듣는 것같은데 자꾸만 내뜻대로
    살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길이 영원한생명의 길이라고 가르쳐주시는데…..
    오늘점심에는 친정아버지께서 가지고 오신 열무김치와 보리밥을 해서
    맛있게 먹어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봐야겠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성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묵상한 글을 올리면서도 아직도 정신이 몽롱합니다
    이런정신으로 보리밥을 맛있게 할수 있을런지……..

    211.42.85.34 루실라: 헬레나 자매님! 잘 드시고 잘 주무시는 것이 보약인 것 같습니다..건강해야 복음묵상도 잘 할 수 있잖아요^^ [05/16-11:21]
    218.53.7.177 흑진주: 자매님의 묵상을 읽으면서 친정아버님의 따스한 정이 저에게도 다가오는군요. 작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셔서 저를 당황하게 하신 울아버지가 너무 보고싶어지는 오늘입니다.살아계실때 정말 잘해드리세요. 그래도 자매님은 행복한분이신군요. 아버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05/16-13:41]

  4. user#0 님의 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해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하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수 없다”

    당신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도 아버지께 갈수 없다고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을 믿는다고 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된 우리의 삶의 중심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진리를 따라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갈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수 있다고……..

    어제 저녁 운동을 한다고 유등천변을 두시간을 걷고 집에 와서
    복음을 묵상하려고 컴퓨터를 켜고 앉아있으려니 너무 피곤하고 집중이
    되지 않아 조금만 쉬었다가 해야지 하고 누웠는데 일어나니 새벽두시…
    전에도 이런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일어나면 잠을 자지못해 하루종일
    피곤해서 정신이 몽롱해지고 했기에 두눈을 딱감고 잠을 잤습니다
    하지만
    자면서도 일어나야 하는데하는 생각으로 잠을 잤더니 아침이 된 지금도
    피곤해 컴에 앉아있는데도 정신이 없어 복음묵상이 잘 되지를 않아
    한시간이 넘도록 앉아 있는데 누가 자꾸 저를 부르는 소리가 ……..
    밍키와 예삐는 계속 짖어대고 아침에 올 사람이 없는데 하면서 나가보지를
    않았는데 친정아버지께서 열무김치 한통을 아래층 집에다 놓고 가셨습니다
    손이 귀하고 단명한 집안인 친정에서 유일하게 80살이 넘게 사시는
    아버지 이십니다
    김치통을 보는 순간 죄송한 마음이 자전저를 타고 오시느라 김칫국물이
    흘렀는데 옷은 버리지 않으셨는지……
    요즘들어 기운이 없으신 것같고 위험해서 자전거를 타시지말라고 했는데
    딸에게 주려고 이른아침부터 오신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도 정신이 없어
    환청으로 들리는 줄 알았는데 …..
    가정의 달인 오월
    부모님께 잘해드려야 하는데 아들이 군대간후
    그동안 내 자식걱정 하느라 부모님생각을 소홀히 한 딸을 섭섭해 하지않으시고
    결혼해서 20년이 지난 지금도 체중이 10k가 넘게 살이 쩠는데도 저를 보실때마다
    너 얼굴이 왜 그러냐? 하시며 걱정하시는 아버지를 보면 부모님은 자식이
    나이가 먹어도 어린애로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자꾸 살이쪄서 운동을 하는데 보실때마다 얼굴이 수척하다고 느끼신는 것을 보면…
    오늘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수없다고
    하십니다 당신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서 세례를 받고 주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될것입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이해가 되고 알아듣는 것같은데 자꾸만 내뜻대로
    살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길이 영원한생명의 길이라고 가르쳐주시는데…..
    오늘점심에는 친정아버지께서 가지고 오신 열무김치와 보리밥을 해서
    맛있게 먹어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봐야겠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성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묵상한 글을 올리면서도 아직도 정신이 몽롱합니다
    이런정신으로 보리밥을 맛있게 할수 있을런지……..

    211.42.85.34 루실라: 헬레나 자매님! 잘 드시고 잘 주무시는 것이 보약인 것 같습니다..건강해야 복음묵상도 잘 할 수 있잖아요^^ [05/16-11:21]
    218.53.7.177 흑진주: 자매님의 묵상을 읽으면서 친정아버님의 따스한 정이 저에게도 다가오는군요. 작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셔서 저를 당황하게 하신 울아버지가 너무 보고싶어지는 오늘입니다.살아계실때 정말 잘해드리세요. 그래도 자매님은 행복한분이신군요. 아버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05/16-13:41]

  5. user#0 님의 말:

    서울은 말할것도 없고.. 대전두 집값이 마니 올라..
    내년 걱정을 벌써부터 쪼끔씩 하고 있습니다.
    근데.. 천국엔 있을 곳이 많다네욤..
    예수님이 요즘 집짓느라 바쁘신가 봅니다…
    모델하우스 어데 없나요~~
    내도 맘속에 집장만 하나 해야되는뎅…

    211.179.143.29 이헬레나: 청접장 받을 때가 된 것같으네요 어른들 말씀이 마음만 맞으면 산다고
    하는데 베로니카자매님 마음이 맞는 분을 찾으셨나요? 짧지만 함축된
    재매님의묵상글을 읽으면서 ” 아 맞아 묵상은 이렇게 하는건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좋은추억 많이 만드시고 좋은글 부탁해요
    저에게도 묵상거리 만들어 주시고 알았죵 감사 또 감사해요 제 부탁들
    어주셔서 [05/16-10:23]
    211.42.85.34 루실라: 베로니카야 오늘 복음에서 ” 너희는 걱정하지 말아라” 라고…말씀하셨잖아…미리 당겨서 걱정하지 말자꾸나^^ [05/16-11:24]

  6. user#0 님의 말:

    서울은 말할것도 없고.. 대전두 집값이 마니 올라..
    내년 걱정을 벌써부터 쪼끔씩 하고 있습니다.
    근데.. 천국엔 있을 곳이 많다네욤..
    예수님이 요즘 집짓느라 바쁘신가 봅니다…
    모델하우스 어데 없나요~~
    내도 맘속에 집장만 하나 해야되는뎅…

    211.179.143.29 이헬레나: 청접장 받을 때가 된 것같으네요 어른들 말씀이 마음만 맞으면 산다고
    하는데 베로니카자매님 마음이 맞는 분을 찾으셨나요? 짧지만 함축된
    재매님의묵상글을 읽으면서 ” 아 맞아 묵상은 이렇게 하는건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좋은추억 많이 만드시고 좋은글 부탁해요
    저에게도 묵상거리 만들어 주시고 알았죵 감사 또 감사해요 제 부탁들
    어주셔서 [05/16-10:23]
    211.42.85.34 루실라: 베로니카야 오늘 복음에서 ” 너희는 걱정하지 말아라” 라고…말씀하셨잖아…미리 당겨서 걱정하지 말자꾸나^^ [05/16-11:24]

  7. user#0 님의 말: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말씀연구>

    최후의 만찬을 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배반, 베드로의 부인 등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께서 떠나가실 것(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예고하시면서 당신께서 아주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제자들에게 돌아오실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의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믿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특별한 신뢰입니다. 나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하기에 감당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는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끊임없는 세상의 적개심과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들의 마음을 불안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3년간 함께 했던 예수님. 자신들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걸었는데 이제 예수님께서 떠나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믿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당신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신앙은 구원의 메시지에 대한 응답이며, 또한 마음의 걱정을 떨쳐 버리고 굳게 믿는 신뢰이며, 걱정을 극복하고 넘어서 내적 평화와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내가 할 수 있는 노력 외에 나머지 것은 모두 하느님께 맡겨 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따르듯이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약속과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뢰에 무조건적인 의탁과 변함없는 충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믿음에 대하여 이와 같이 호소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떠나시는 이유를 하나 말씀해 주십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이 있을 곳을 준비하려 하신다는 말씀. 제자들에게 있어서 아마 가장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삶을 합당하게 준비시키셨고, 제자들은 합당하게 하늘나라를 위해 준비했으니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하늘나라에 불러올리실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들어 있는 지상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우리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들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워 주시는 집입니다.”(2고린5,1). “집”이나 “거처”라는 개념은 인간의 깊은 욕구, 즉 확실한 안전과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장소, 급격한 변화에 대해 안정과 평화를 갈망하는 인간의 욕구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영원한 집, 또는 영원한 거처를 이해한다면 지상의 삶을 망명생활이나 순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갈 곳은 지금 이곳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있을 곳입니다. 그곳을 생각한다면 더 힘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발을 땅에 딛고 산다 할지라도 언제나 내 마음은 하늘 고향을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3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이후에 많은 혼란을 겪었습니다. 만일 제자들이 이 말씀을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면 그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엄마 장에 갔다 올게”

    “엄마 가지마. 무섭단 말야”

    “엄마가 갔다 오다가 맛있는 것 사다줄게. 엄마 장에 갔다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지?”

    “알았어 엄마! 빨리 와야 돼!”

    하지만 엄마가 좀 늦게 오면 아이는 불안해하고, 결국에는 울음을 터트립니다. 엄마가 늦게 오시는 이유를 모르고, 그저 아이 편에서만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힘을 주는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가서 여러분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여러분을 내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여러분도 있게 하겠습니다.”

    거처할 곳이 많다는 것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버지의 집”에 거처할 곳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아버지의 일치된 공동체를 시사하십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가셔야만 합니다. 아버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을 가리키시지만 그 전에 예수님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으니 죽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천상세계에서 거처할 자리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하늘에서의 자리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니 지금도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나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죽음 이후에 예수님과 나의 함께 함은 완성될 것입니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예수님의 사명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자신의 희생입니다. 어떤 세상적인 영광을 받으러 오신 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받아들이려 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거절하셨습니다(예를 들면 오천명을 먹이신 후 사람들이 억지로라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할 때 그들을 피해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아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가르치셨기에 안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습니다.”

    5  그러자 토마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목적지는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바로 제자들의 길입니다. 이것이 고대 사본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 길도 알고 있습니다.”

    그 길은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이고, 그 길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라고 예수님께서는 힘주어 강조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 사도는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그 길을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시작하시려고 하시는 그 여행(수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이 예사로운 경우에서 말하는 여행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토마 사도는 제자들 모두를 대표하여 의견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로서는 예수님의 여행 목적지를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그곳으로 가는 길을 알 수가 있냐고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면서 서로 섬길 것을 말씀하시고, 당신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그렇게 사랑할 것을 말씀하시지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오늘 토마사도의 고백과 다를 바가 없는 듯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누가 나에게 무슨 말을 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경우, 사랑하는 사람이 먼 곳으로 떠나갈 때 일어나는 두려운 마음,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 우리는 이런 저런 경우를 언제나 접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를 좀 믿어 달라고. 내가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요, 그 답을 풀 수 있는 진리요, 평온함을 주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자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지 알아봅시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느님께로 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생각해 본다면 그 길은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이고, 그 길은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계시하시기 때문에 길이십니다.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은 길의 의미를 더욱 명료하게 설명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으로 이끄는 진리를 계시하고, 그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내가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고 있기에 나는 그분께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그 길. 십자가의 길. 그 길의 목적지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 자신이 길이라고 말씀하시니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알 수 있고, 또한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놓으시려고 당신을 십자가상의 제물로 바치실 것입니다.

    불트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길로 표현하심으로써 두 가지 사실을 명확히 하셨다. ➀ 예수님은 제자들의 처지와는 다르다. 제자들처럼 자신에게는 길이 필요치 않았으며 오히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한 길이 되셨다. ➁ 길과 목표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구원은 계시자이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길은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또한 길은 하늘로부터 세상으로, 그리고 다시 성부께로 돌아가신 예수님의 삶의 여정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이제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다.

    진리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➀ 허위나 거짓에 반대하면서 생각과 의도를 말하는 것. ➁ 거짓에 반대하면서 사실과 일치하여 표현되는 사고, 말, 가르침. ➂ 올바른 실천에 대한 가르침. ➃ 이성, 논리 또는 과학적 탐구의 규법을 따르는 선언이나 이론”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이 중의 어떤 것과도 부합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진리는(히브리어: emet 에멧)에 대한 구약성서의 이해를 고려해야만 할 것입니다. 에멧(emet)의 신학적 의미는 하느님의 행동, 계시,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믿고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란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 하느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것, 즉 하느님의 말씀, 약속, 하느님의 충실함을 조건 없이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존재는 하느님의 신뢰, 충실 그리고 진리에 의해 살 수 있는 것이며, 이로써 삶의 근본적인 항속성과 안정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계시에 의지하며 신앙 안에서 진리를 행함으로써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진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8,31-32).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확실한 것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알게 될 때만이 내가 자유로울 수 있으며, 참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와 유대교 사고와 연관시켜 볼 때, 생명(영원한 생명)은 구원에 대한 이해, 그리고 계시가 제시하는 모든 것의 핵심 단어입니다. 인간생명의 필수조건은 음식, 의복, 주택 등입니다. 하지만 보다 충만한 인간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삶의 어떤 수준 내지는 문화적 가치들을 향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인간적 삶은 오직 하느님과의 통교를 통해서만 완전히 충족될 수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신앙인이 하느님과의 통교가 없는 삶은, 즉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하느님께 사랑을 드리는 삶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7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깊은 초자연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벌써 아버지께 대한 인식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들에 대한 인식은 아버지께 대한 인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정말 멋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을 볼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저 사람의 부모님은 누구일까? 어떻게 자녀를 저렇게 아름답게 성장시켰을까?”자녀를 보면 그 안에서 부모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또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아버지의 모습도 알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벌써 아버지를 보았다고 확신해야 했던 것입니다.


    8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번에는 필립보 사도가 봉창을 두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완전한 모습이었고, 아버지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필립보는 아버지를 보게 해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형제 자매들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내 모습 안에서 하느님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립보는 모세(출애33,18),혹은 이사야서(6장)에도 있었던 그런 하느님에 대한 감각적인 계시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런 하느님의 모습을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당신의 존엄하신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하고 간청하자 야훼 하느님께서는 “나의 얼굴만은 보지 못한다. 나를 보고 나서 사는 사람이 없다” 모세에게 허용된 가장 큰 권한은 하느님의 뒷모습만을 보는 것이었습니다.(출애굽기33,18-23).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9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니 무슨 말이냐?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 안에 있는 하느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필립보의 청은 아직도 예수님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필립보가 믿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충분치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문하십니다. “뭔 봉창 두드리는 소리여! 나를 봤으면 아버지를 본 것이쥐…”


    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있다는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의 생명과 행동이 아버지 하느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동은 하느님을 계시하며 따라서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면 하느님을 볼 수 없고, 신앙이 없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예수님의 모든 일이 결국 하느님의 일이고, 예수님의 모든 의지는 하느님의 뜻이며,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느님을 보여주는 통로요, 하느님께로 인도해주시는 길입니다. 즉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필립보의 믿음은 확실했지만 충분치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필립보의 모습은 지금의 나의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거듭거듭 말씀하셨던 것을 회상시키십니다. 자신이 말씀하실 때는 스스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또 행하실 때도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즉 아버지는 아드님 안에 계시고, 아드님은 아버지 안에 계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를 들어서 믿게 하십니다. 아버지는 아드님 안에 계시고, 아드님은 아버지 안에 계시다는 것을…그래도 못 믿겠다면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서라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을 하십니다.

    12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이제 아버지께 가서


    예수님의 일들!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치유하시고…”이 모든 일들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역사 안에서, 그리고 나를 통해서 그 일들이 이루어졌고,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께로 가셨지만 예수님의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아니 이제 시작인 것입니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이루어 주겠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일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힘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니 안 들어 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만사가 순조롭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바란다면, 말을 달리 표현한다면, 잘 기도한다면 그것은 훨씬 순조롭게 되어 갈 것이다.”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 기도가 이루어질 때 나보다 더 기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나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보다는 세상을 위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한 기도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들어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내가 했으면 좋겠습니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내게 이루어 주겠다.”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하고 기도합니다. 즉 공동체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을 위하여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며 온 마음으로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는 모든 기도를 다 들어주실 것입니다. 이 말씀을 굳게 믿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을 청할까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할까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어떻습니까? 나는 예수님 안에서 길을 찾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받아들임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받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길에 서 있습니까? 어떤 진리를 받아들이고 있고, 어떤 생명을 원하고 있습니까?


    2. 필립보의 청은 우리 모두의 청일 것입니다.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우리들을대신해서 필립보는 예수님께 질문을 드리고 있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형제 자매의 모습 안에서 발견되는 하느님의 모습을 외면하고, 내가 보여 주어야 하는 하느님의 모습을 가리워 놓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청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모습을 바라봅시다.


    3.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 기도는 아버지와 동시에 직접 예수님께도 이르고 그분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시지만 그들의 청을 듣고 또 도우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사도직을 다하기 위한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나는 어떤 기도를 바치고 있었는지 나의 기도를 들여다 봅시다.



    4.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기도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고 하면 결국 분열되는 것을 많이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일을 위해, 교회 공동체를 위해 어떤 기도를 바치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8. user#0 님의 말: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말씀연구>

    최후의 만찬을 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배반, 베드로의 부인 등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께서 떠나가실 것(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예고하시면서 당신께서 아주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제자들에게 돌아오실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의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믿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특별한 신뢰입니다. 나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하기에 감당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는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끊임없는 세상의 적개심과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들의 마음을 불안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3년간 함께 했던 예수님. 자신들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걸었는데 이제 예수님께서 떠나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믿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당신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신앙은 구원의 메시지에 대한 응답이며, 또한 마음의 걱정을 떨쳐 버리고 굳게 믿는 신뢰이며, 걱정을 극복하고 넘어서 내적 평화와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내가 할 수 있는 노력 외에 나머지 것은 모두 하느님께 맡겨 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따르듯이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약속과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뢰에 무조건적인 의탁과 변함없는 충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믿음에 대하여 이와 같이 호소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떠나시는 이유를 하나 말씀해 주십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이 있을 곳을 준비하려 하신다는 말씀. 제자들에게 있어서 아마 가장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삶을 합당하게 준비시키셨고, 제자들은 합당하게 하늘나라를 위해 준비했으니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하늘나라에 불러올리실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들어 있는 지상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우리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들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워 주시는 집입니다.”(2고린5,1). “집”이나 “거처”라는 개념은 인간의 깊은 욕구, 즉 확실한 안전과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장소, 급격한 변화에 대해 안정과 평화를 갈망하는 인간의 욕구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영원한 집, 또는 영원한 거처를 이해한다면 지상의 삶을 망명생활이나 순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갈 곳은 지금 이곳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있을 곳입니다. 그곳을 생각한다면 더 힘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발을 땅에 딛고 산다 할지라도 언제나 내 마음은 하늘 고향을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3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이후에 많은 혼란을 겪었습니다. 만일 제자들이 이 말씀을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면 그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엄마 장에 갔다 올게”

    “엄마 가지마. 무섭단 말야”

    “엄마가 갔다 오다가 맛있는 것 사다줄게. 엄마 장에 갔다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지?”

    “알았어 엄마! 빨리 와야 돼!”

    하지만 엄마가 좀 늦게 오면 아이는 불안해하고, 결국에는 울음을 터트립니다. 엄마가 늦게 오시는 이유를 모르고, 그저 아이 편에서만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힘을 주는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가서 여러분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여러분을 내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여러분도 있게 하겠습니다.”

    거처할 곳이 많다는 것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버지의 집”에 거처할 곳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아버지의 일치된 공동체를 시사하십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가셔야만 합니다. 아버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을 가리키시지만 그 전에 예수님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으니 죽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천상세계에서 거처할 자리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하늘에서의 자리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니 지금도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나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죽음 이후에 예수님과 나의 함께 함은 완성될 것입니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예수님의 사명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자신의 희생입니다. 어떤 세상적인 영광을 받으러 오신 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받아들이려 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거절하셨습니다(예를 들면 오천명을 먹이신 후 사람들이 억지로라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할 때 그들을 피해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아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가르치셨기에 안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습니다.”

    5  그러자 토마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목적지는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바로 제자들의 길입니다. 이것이 고대 사본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 길도 알고 있습니다.”

    그 길은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이고, 그 길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라고 예수님께서는 힘주어 강조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 사도는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그 길을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시작하시려고 하시는 그 여행(수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이 예사로운 경우에서 말하는 여행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토마 사도는 제자들 모두를 대표하여 의견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로서는 예수님의 여행 목적지를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그곳으로 가는 길을 알 수가 있냐고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면서 서로 섬길 것을 말씀하시고, 당신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그렇게 사랑할 것을 말씀하시지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오늘 토마사도의 고백과 다를 바가 없는 듯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누가 나에게 무슨 말을 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경우, 사랑하는 사람이 먼 곳으로 떠나갈 때 일어나는 두려운 마음,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 우리는 이런 저런 경우를 언제나 접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를 좀 믿어 달라고. 내가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요, 그 답을 풀 수 있는 진리요, 평온함을 주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자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지 알아봅시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느님께로 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생각해 본다면 그 길은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이고, 그 길은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계시하시기 때문에 길이십니다.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은 길의 의미를 더욱 명료하게 설명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으로 이끄는 진리를 계시하고, 그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내가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고 있기에 나는 그분께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그 길. 십자가의 길. 그 길의 목적지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 자신이 길이라고 말씀하시니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알 수 있고, 또한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놓으시려고 당신을 십자가상의 제물로 바치실 것입니다.

    불트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길로 표현하심으로써 두 가지 사실을 명확히 하셨다. ➀ 예수님은 제자들의 처지와는 다르다. 제자들처럼 자신에게는 길이 필요치 않았으며 오히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한 길이 되셨다. ➁ 길과 목표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구원은 계시자이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길은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또한 길은 하늘로부터 세상으로, 그리고 다시 성부께로 돌아가신 예수님의 삶의 여정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이제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다.

    진리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➀ 허위나 거짓에 반대하면서 생각과 의도를 말하는 것. ➁ 거짓에 반대하면서 사실과 일치하여 표현되는 사고, 말, 가르침. ➂ 올바른 실천에 대한 가르침. ➃ 이성, 논리 또는 과학적 탐구의 규법을 따르는 선언이나 이론”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이 중의 어떤 것과도 부합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진리는(히브리어: emet 에멧)에 대한 구약성서의 이해를 고려해야만 할 것입니다. 에멧(emet)의 신학적 의미는 하느님의 행동, 계시,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믿고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란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 하느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것, 즉 하느님의 말씀, 약속, 하느님의 충실함을 조건 없이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존재는 하느님의 신뢰, 충실 그리고 진리에 의해 살 수 있는 것이며, 이로써 삶의 근본적인 항속성과 안정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계시에 의지하며 신앙 안에서 진리를 행함으로써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진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8,31-32).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확실한 것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알게 될 때만이 내가 자유로울 수 있으며, 참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와 유대교 사고와 연관시켜 볼 때, 생명(영원한 생명)은 구원에 대한 이해, 그리고 계시가 제시하는 모든 것의 핵심 단어입니다. 인간생명의 필수조건은 음식, 의복, 주택 등입니다. 하지만 보다 충만한 인간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삶의 어떤 수준 내지는 문화적 가치들을 향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인간적 삶은 오직 하느님과의 통교를 통해서만 완전히 충족될 수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신앙인이 하느님과의 통교가 없는 삶은, 즉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하느님께 사랑을 드리는 삶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7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깊은 초자연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벌써 아버지께 대한 인식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들에 대한 인식은 아버지께 대한 인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정말 멋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을 볼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저 사람의 부모님은 누구일까? 어떻게 자녀를 저렇게 아름답게 성장시켰을까?”자녀를 보면 그 안에서 부모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또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아버지의 모습도 알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벌써 아버지를 보았다고 확신해야 했던 것입니다.


    8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번에는 필립보 사도가 봉창을 두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완전한 모습이었고, 아버지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필립보는 아버지를 보게 해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형제 자매들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내 모습 안에서 하느님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립보는 모세(출애33,18),혹은 이사야서(6장)에도 있었던 그런 하느님에 대한 감각적인 계시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런 하느님의 모습을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당신의 존엄하신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하고 간청하자 야훼 하느님께서는 “나의 얼굴만은 보지 못한다. 나를 보고 나서 사는 사람이 없다” 모세에게 허용된 가장 큰 권한은 하느님의 뒷모습만을 보는 것이었습니다.(출애굽기33,18-23).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9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니 무슨 말이냐?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 안에 있는 하느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필립보의 청은 아직도 예수님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필립보가 믿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충분치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문하십니다. “뭔 봉창 두드리는 소리여! 나를 봤으면 아버지를 본 것이쥐…”


    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있다는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의 생명과 행동이 아버지 하느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동은 하느님을 계시하며 따라서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면 하느님을 볼 수 없고, 신앙이 없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예수님의 모든 일이 결국 하느님의 일이고, 예수님의 모든 의지는 하느님의 뜻이며,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느님을 보여주는 통로요, 하느님께로 인도해주시는 길입니다. 즉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필립보의 믿음은 확실했지만 충분치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필립보의 모습은 지금의 나의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거듭거듭 말씀하셨던 것을 회상시키십니다. 자신이 말씀하실 때는 스스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또 행하실 때도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즉 아버지는 아드님 안에 계시고, 아드님은 아버지 안에 계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를 들어서 믿게 하십니다. 아버지는 아드님 안에 계시고, 아드님은 아버지 안에 계시다는 것을…그래도 못 믿겠다면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서라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을 하십니다.

    12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이제 아버지께 가서


    예수님의 일들!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치유하시고…”이 모든 일들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역사 안에서, 그리고 나를 통해서 그 일들이 이루어졌고,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께로 가셨지만 예수님의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아니 이제 시작인 것입니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이루어 주겠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일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힘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니 안 들어 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만사가 순조롭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바란다면, 말을 달리 표현한다면, 잘 기도한다면 그것은 훨씬 순조롭게 되어 갈 것이다.”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 기도가 이루어질 때 나보다 더 기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나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보다는 세상을 위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한 기도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들어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내가 했으면 좋겠습니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내게 이루어 주겠다.”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하고 기도합니다. 즉 공동체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을 위하여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며 온 마음으로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는 모든 기도를 다 들어주실 것입니다. 이 말씀을 굳게 믿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을 청할까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할까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어떻습니까? 나는 예수님 안에서 길을 찾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받아들임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받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길에 서 있습니까? 어떤 진리를 받아들이고 있고, 어떤 생명을 원하고 있습니까?


    2. 필립보의 청은 우리 모두의 청일 것입니다.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우리들을대신해서 필립보는 예수님께 질문을 드리고 있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형제 자매의 모습 안에서 발견되는 하느님의 모습을 외면하고, 내가 보여 주어야 하는 하느님의 모습을 가리워 놓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청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모습을 바라봅시다.


    3.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 기도는 아버지와 동시에 직접 예수님께도 이르고 그분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시지만 그들의 청을 듣고 또 도우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사도직을 다하기 위한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나는 어떤 기도를 바치고 있었는지 나의 기도를 들여다 봅시다.



    4.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기도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고 하면 결국 분열되는 것을 많이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일을 위해, 교회 공동체를 위해 어떤 기도를 바치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9. user#0 님의 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개신교신자였던 남편이 자신이 믿는 천주교로 개종을 한 후
    신앙생활을 하는동안 주일을 거른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얼마 전부터 예전에는 봉사를 하면서도 기쁘고 즐거웠는데
    요즈음은 봉사하면서도 기쁨보다는 짜증이 날 때가 많고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게되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당분간 성당에 다니지
    않겠다고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엇습니다

    그런데

    냉담하겠다는 갑작스런 남편의 협박(?)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곰곰 생각을
    해보니 남편이 신앙생활을 하지않겟다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개신교신자였던 남편을 천주교로 개종을 시켰던 정성의 반이라도
    노력을 했더라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남편의 입에서 냉담하겠다는
    말을 나오게 하지는 않았을텐데 자신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겸손한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헸는데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남편 앞에서
    사사건건 불평을 하며 기도하는 모습보다는 교만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잘못을 남에게 돌렸던 옹졸한 모습이 남편을 냉담(?)하게 한
    원인인 것같아 하느님께 죄스런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하신말씀에 그동안 하느님을 믿는다며 입으로는 떠들어댔지만
    하느님을 믿기보다는 자신의 의지대로 신앙생활을 하며 보여지는 모습에
    충실(?)햇던 자신이 얼마나 교만하고 오만방자했는지…..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교만한 사람인지를
    깨달들을 수 있으니 ……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봉사를 한답시고 겸손한마음보다는 교만하고 오만방자했던 자신
    겸손한마음으로 하느님의 자녀로써 그 분의 뜻을 헤아리며 그 분의
    자녀답게 그 분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그 분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수 없다는 말씀을 명심하며….
    새롭게 다짐을 해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성령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묵상하며

  10. user#0 님의 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개신교신자였던 남편이 자신이 믿는 천주교로 개종을 한 후
    신앙생활을 하는동안 주일을 거른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얼마 전부터 예전에는 봉사를 하면서도 기쁘고 즐거웠는데
    요즈음은 봉사하면서도 기쁨보다는 짜증이 날 때가 많고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게되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당분간 성당에 다니지
    않겠다고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엇습니다

    그런데

    냉담하겠다는 갑작스런 남편의 협박(?)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곰곰 생각을
    해보니 남편이 신앙생활을 하지않겟다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개신교신자였던 남편을 천주교로 개종을 시켰던 정성의 반이라도
    노력을 했더라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남편의 입에서 냉담하겠다는
    말을 나오게 하지는 않았을텐데 자신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겸손한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헸는데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남편 앞에서
    사사건건 불평을 하며 기도하는 모습보다는 교만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잘못을 남에게 돌렸던 옹졸한 모습이 남편을 냉담(?)하게 한
    원인인 것같아 하느님께 죄스런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하신말씀에 그동안 하느님을 믿는다며 입으로는 떠들어댔지만
    하느님을 믿기보다는 자신의 의지대로 신앙생활을 하며 보여지는 모습에
    충실(?)햇던 자신이 얼마나 교만하고 오만방자했는지…..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교만한 사람인지를
    깨달들을 수 있으니 ……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봉사를 한답시고 겸손한마음보다는 교만하고 오만방자했던 자신
    겸손한마음으로 하느님의 자녀로써 그 분의 뜻을 헤아리며 그 분의
    자녀답게 그 분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그 분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수 없다는 말씀을 명심하며….
    새롭게 다짐을 해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성령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묵상하며

  11. user#0 님의 말: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사랑이신 주님!
    믿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주님!
    당신을 믿게 해주셔서….
    저 같은 사람을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주님!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그동안의 불안했던 마음이 모두 사라지는 것같아 기쁩니다
    당신을 믿으라고 하시는 말씀에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을 해보니
    믿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저에게 영생을 주시는 당신을 믿으라는 말씀에
    참 졍겹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쁨을 주는 것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믿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니………
    당신을 믿고 당신을 사랑해서
    당신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이 행복합니다
    당신을 믿는다는 생각만으로도 기쁩니다
    저 같은 사람이 감히….
    저 같은 사람도 당신의 자녀라는 사실이….

    복음을 묵상하면서
    믿음만큼 행복을 주는 것도….
    믿음만큼 신뢰가 가는 것도….
    믿음만큼 기쁜 것도 …..
    없다는 생각이 드니 당신을 믿고 마음이 산란해지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당신의 사랑에 기쁩니다
    설령 당신을 믿음으로 저에게 세속적인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해도
    후회는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믿으며 당신의 사랑을 기대하며
    하루 하루를 기쁘고 행복한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저의 영원한 사랑이신 당신을 믿으며
    아멘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묵상하며

  12. user#0 님의 말: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사랑이신 주님!
    믿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주님!
    당신을 믿게 해주셔서….
    저 같은 사람을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주님!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그동안의 불안했던 마음이 모두 사라지는 것같아 기쁩니다
    당신을 믿으라고 하시는 말씀에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을 해보니
    믿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저에게 영생을 주시는 당신을 믿으라는 말씀에
    참 졍겹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쁨을 주는 것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믿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니………
    당신을 믿고 당신을 사랑해서
    당신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이 행복합니다
    당신을 믿는다는 생각만으로도 기쁩니다
    저 같은 사람이 감히….
    저 같은 사람도 당신의 자녀라는 사실이….

    복음을 묵상하면서
    믿음만큼 행복을 주는 것도….
    믿음만큼 신뢰가 가는 것도….
    믿음만큼 기쁜 것도 …..
    없다는 생각이 드니 당신을 믿고 마음이 산란해지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당신의 사랑에 기쁩니다
    설령 당신을 믿음으로 저에게 세속적인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해도
    후회는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믿으며 당신의 사랑을 기대하며
    하루 하루를 기쁘고 행복한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저의 영원한 사랑이신 당신을 믿으며
    아멘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묵상하며

  13. user#0 님의 말: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막내며느리구나 네가 어쩐 일이냐?
    녜! 어머니 어버이날이 며칠 남지 않아서 왔어요
    어머니 건강은 어떠세요? 저 번에 뵐 때보다 건강해지신 것 같은데…..
    응 많이 좋아졌어 고맙다 밥 안먹었지 밥 먹고 천천히 놀다 가거라
    그리고 집에 올 때는 아무 것도 사오지 말고…..
    우형애비하고 싸우지 말고 재미있게 살아라
    속이 상한 일이 있어도 참고……..
    건강하게 잘 살아라 녜! 어머니
    저희 잘 살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주님!
    오늘……
    어버이날이 며칠 남지 않아 시부모님을 뵈러 시댁에 다녀왔습니다
    저를 보신 어머니께서 얼마나 반가워 하시는지 가슴이 뭉쿨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 뵙지 못했는데 그런 저에게 꾸중 한마디 하지
    않으시고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뵈니 죄송했습니다
    더구나 시어머님은 당신 마음에 서운한 점이 있으시면 때와 장소에 개의치
    않으시고 하시고 싶은 말씀을 가슴에 담아 놓지 못하시고 말씀을 하시는 분이라
    가끔 씩 상처를 받는데 며느리 네 명 중 막내인 저에게는 배려를 해주시는
    시어머님께 감사하고 죄송하기도 합니다
    더욱 기쁜 것은….
    자식들이 당신께 드리는 용돈을 모았다가 형님들 몰래 저에게 주십니다 ^^
    그리고 한마디 당부의 말씀을 꼭 하십니다 내가 돈을 줬다는 말을
    당신아들한테는 하지 말라고 ^^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니 반가워 하시면서
    저에게 당신 방으로 오라고 눈짓을 하시더니 꼬깃꼬깃 접은 거금(^^)을
    저의 가방 속에 넣어 주시며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순간…….
    힘들고 속이 상했던 일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같앗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가 가장 행복한 사람같았습니다
    90이 넘으신 시어머니께 용돈을 받는 며느리가 몇이나 될까 생각하니
    기뻤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사실 돈은 어머님 말씀대로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있다는 사실이………
    어머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부모님께 효도를 하러갔다 제가 사랑을 받고 나니 …….
    그동안 힘들었던 모든 일이 사라지는 것같았습니다
    그리고 용기가 생깁니다
    힘이 생깁니다
    저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저의 이런 생각 모두가………
    당신을 믿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축복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을 믿고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려 노력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고 돈(^^)도 생기고…..
    사랑도 받고 ^^
    깨닫습니다
    느낍니다
    저의 이런마음 모두가 당신을 믿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아멘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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