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일상의 삶을 사노라면
기쁨은 근심이 되고
근심은 기쁨이 되는 체험을 늘 하게 됩니다.
자기의 이익을 생각하고 살 때는 기쁨이 근심이 되기가 쉽고
자신을 비우는 삶을 살 때는 근심이
기쁨으로 변화되는 체험을 하면서
더욱 당신을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기쁨이란 댓가를 요구하지요?
세상이 주는 기쁨은 현란하지만 덧없이 사라지고
당신이 주시는 영원한 기쁨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아픔을 통해 얻어 누리지요?
빠스카 축제를,
이 어둔밤을 지내야만 누릴 수 있는 변하지 않는 기쁨은
버려야 채워지는 눈물입니다.
주님.
오늘 말씀에서 당신은
“너희는 내가 떠난다고 근심하겠지만 그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이 말씀은 마치
당신 조차 버려야, 진정한 당신을 만난다는 말씀으로
안나는 알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인성을 초월하지 않고는 진정한 당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떠나야만 알아 들을 수 있는 이 신비는
근심을 통해 누리는 기쁨의 근원입니다.
가이사르의 것은 가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야 하는 분별입니다.
모든 것을 비우고,
모든 것을 제 자리에 돌려주는 겸손에서
얻어 누리는 천상의 선물이 기쁨임을 알아 들었습니다.
당신을 떠나 보내는 아픔을 겪지 않고서는
하느님이신 당신을 만날 수 없다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설령 이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지 않을지라도
안나는 당신의 말씀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