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아무도 빼앗지 못할 기쁨

나이가 들어 중년의’아줌마’가 되고보니 또래의 아줌마 아저씨들과 어울리게 되면 그 어울리는 ‘문화’가
음담패설도 자연스러워지는 나이인 것같아요.
처녀적에나 30대에서는 낯뜨거워 거북스럽던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리며 웃게 되고 그런 얘기를 잘하는 사람이 무리중에 꼭 한명은 있구요.
그러나 그렇게 웃고 떠들고 집에 오면 뭔가 허탈하고 진정한 기쁨의 웃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하느님 안에서 어울리고 동요라도 부르고 자연을 보며 느끼는 기쁨은 ‘참기쁨’으로 마음속에 평화와 함께하는 기쁨이라고 느끼곤 합니다.

세상살이를 고민하면서 진지하게 살아야하는 걸로 오해하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어요.
어려운 사람도 많고 억울하고 우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히히덕거리며 푼수처럼 산다는 것은 있을 수없다고 말이죠.
고개를 한쪽으로 기웃하고 ‘인생이란 무엇이더냐?’ “삶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 것이런가?’ 뭐 이런 고민도 해야할것 같으고……….
그러니 제 얼굴은 늘 진지하고 우울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을테지요…
그러다 저희 본당의 박찬용 신부님(너무나 존경하는 분)이 강론중에 크리스챤의 표시는 뭔줄아느냐는 질문을 던지셨어요.
“기쁨’이 ‘크리스챤의 표시’는 것입니다. 우울한 얼굴의 신자는 뭔가 잘못됬다고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뭐라고라? 무조건 기쁜 표시를 하라고라?…………..’ 뿅망치로 얻어맞은 듯 놀랍기도 하고 이해도 좀 안되더라구요.
그 후 그말씀을 계속 생각하면서 이해하게 되었고 저에겐 언제까지 은혜 갚아도 모자랄 감사하고 은혜로운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기쁘고 기쁜 해방이었습니다.

살다보면 우울하고 슬픈때가 있는데 억지로,가짜로 기쁜 얼굴을 못하겠지만 우울을 은근히 즐기면서 살고 있었던 저로선
얼른 근심 걱정 슬픔을 주님께 맡겨 드리는 쪽으로 기도하게 되어 우울에서 빨리 벗어나는 은총을 받게 되는 것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매일 복음묵상을 하면서 기쁘게 살것을 주님께 말씀드리면 주님이 기쁨의 은총을 풍성히 주심도 느낍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이 넘치길 기도하였습니다.
특히 이곳에 들르시는 모든 분들께도 ‘아무도 빼앗지 못할 기쁨’이 넘쳐나는 나날되시길 기도합니다……….

210.95.187.35 김종성: 환한 얼굴, 기쁨을 머금은 얼굴 그것이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05/30-08:44]

이 글은 카테고리: 지난 묵상 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