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제의 기도(2)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 주십시오

 

대사제의 기도(2)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 주십시오


<말씀연구>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까? 가족입니까? 이웃입니까? 아니면 나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제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키시어, 우리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소서.”




11 거룩하신 아버지,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 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느님께서 세상에서 선택하신 제자들, 예수님께로부터 들은 계시 말씀을 지키는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은 바로 하느님의 사람들이요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사람들입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의 기도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는 제자들을 지켜달라는 것이요, 두 번째는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구약성서와 유다이즘에서는 하느님의 신성을 “거룩한”이란 말로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세상을 초월한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두려움과 경외를 드러내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감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아버지”라고 하는 표현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친밀한 관계를 드러냅니다. 즉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을 가리키므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에 더 밀접한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 달라고 기도를 하십니다. “당신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계시한 “아버지의 이름”을 가리킵니다. 아들 예수가 계시한 아버지의 이름은 아버지께서 친히 아들에게 “주신” 바로 그 이름을 뜻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요청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계시한 아버지 하느님의 모습 그대로 아버지께서 친히 그들을 지켜 달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몸소 하느님에게서 체험한 사랑과 기쁨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며 또한 전달하고, 하느님의 생명에로 그들을 인도하는 것을 총체적으로 가리킵니다. 한마디로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내적으로 열어 보이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듯이 제자들도 일치된 공동체를 이루도록 해달라는 뜻입니다. 이 일치는 신적 본질 또는 실존, 곧 사랑의 표현이요 표징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12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이 사람들을 지켰습니다. 그 동안에 오직 멸망할 운명에 놓인 자를 제외하고는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를 잃은 것은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 제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키고 보호했습니다. 멸망의 아들 외에는 그들 가운데 하나도 멸망하지 않았으니 이는 성경(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함이었습니다.”


멸망의 아들은 배신자 유다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유다가 예수님의 보호에서 벗어나 구원에서 제외되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유다를 잃은 것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이해되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유다를 잃은 것은 예수님 탓이 아니며, 예수님은 제자 보호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승을 배반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조차도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이용하셨습니다.




13  지금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아직 세상에 있으면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 사람들이 내 기쁨을 마음껏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훌륭히 완수하셨기에 이제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세상에서 이런 일들을 말씀드리는 것은 그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앞으로 이 기도를 회상할 때, 자신들이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보호를 받는 사람들임을 믿고,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자신들이 받은 사명을 다하겠다는 신념을 불태울 것입니다. 뼈저리게 느낀 이 신념은 그들에게 있어서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기쁨의 샘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뜻만을 받들며, 아버지의 능력을 가지고서 아버지 사업을 다하고 있음을 느끼신 예수님 자신이 맛보셨던 기쁨인 것입니다.




14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 주었는데 세상은 이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것처럼 이 사람들도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내가 아버지께 원하는 것은 그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 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서 지켜 주시는 일입니다. 16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 사람들도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외롭게 남을 제자들에게 자기 자신이 취한 그 기쁨과 평화를 주어서 그들이 증오와 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도 잘 견디어 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하느님의 보호를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예수님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그들을 미워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것처럼 그들도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지켜주십사” 하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청하지 않고 그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청합니다.”  악은 세상의 두목 또는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세속적인 것들을 받아들이거나 오염되지 않도록 지켜 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17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악한 세상의 감화를 피할 뿐 아니라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믿음의 승리를 노래하였습니다. 악에서 보호된 사도들은 이런 의미에 있어서도 거룩하게 되어야 할 것이며, 이것은 그들의 소명과 사명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아들을 보내신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이름으로 사명을 이어 가도록 그들을 세상에 보내십니다. 아들은 거룩한 분이시며 완전히 아버지의 사업에 자신을 바치셨는데 제자들도 이것을 닮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의 성덕은 진리 안에서, 진리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진리는 복음에 계시되어 있는 절대적으로 진실하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진리가 제자들 영혼의 정신적 분위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 날 이런 뜻에서 제자들을 위하여 자신을 의생 제물로 바치셨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자신의 희생의 목적은 진리의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충실보다도 제자들을 자신의 희생에 참여케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희생으로써 자신을 축성하시지만, 제자들도 ‘참으로“ 곧 실질적으로 그분과 같이 사제 또는 희생제물로서 축성되어야만 합니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이 사람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 안에는 사랑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무장되어 세상에 파견되었듯이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파견하신 것처럼 저 또한 그들을 세상에 파견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고 청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 파견하신 거룩한 아들로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고 하느님의 영역까지 이끌 수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의 그러한 일을 위임받아 수행하기 위해 제자들 자신도 거룩해 져야 합니다. 바로 여기서 예수님의 중개 역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위해서 저는 제 자신을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 또한 진리로 거룩해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도 거룩해지기 위해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대속적 죽음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다라는 것은 희생제물에 관한 동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칠십인역 성서에서 이 동사는 제물로 바치는 짐승을 신성시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희생제 예절을 주관하도록 제관들을 축성하는 것도 바로 이 동사로 표현합니다. 히브리서에서도 예수님을 대사제요 희생제물로 언급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자들을 ”거룩하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기도는 자신의 속죄 죽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희생 죽음을 통해 자신을 거룩하게 했듯이 제자들도 세상에 파견되기 위해 예수님처럼 거룩해져야 합니다. 거룩함으로 무장해야 됩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거룩하신 아버지,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 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하느님안에서, 그리고 형제 자매들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2.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진리란 무엇이고, 예수님께서는 어떤 진리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치길 원하고 계십니까?






이 글은 카테고리: 지난 묵상 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대사제의 기도(2)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 주십시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내가 하느님안에서, 그리고 형제 자매들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가까운 이웃들 가운데는 정말 봉사를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다.
    이렇게 한 공동체에서 봉사하다보니
    각기 개성도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르고
    각양각색의 모습 안에서 때때로 일치되지 않는 것을 본다.

    이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끼리끼리 어울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요즈음 많은 생각을 한다.
    나만 슬쩍 빠져 여기저기 어울리지 말자..
    내가 특별히 맡은 직책도 없는데 굳이 끼어들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알게 모르게 내가 함께 해야할 일도 생기는 것이다.
    비공식이지만.. 아무래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밖에….

    이 과정을 통해 많이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적어도 가족에게라도 어떤 영향도 주어서는 안되는데..
    고민도 했다……그리고 나는 지금 충만한 사랑으로 이웃과 어울리기 위하여
    자신을 돌아 보며 나를 변화시키려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석하며 노력한다.

    나의 것으로는 절대적으로 불충분하다.
    주님의 사랑, 그 사랑을 내 안에 흡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뜨거운 성심의 사랑으로 이웃을 향해 나가야 겠다고…

    내 안에는 편견과 아집이 있어 이내 또 다른 목소리로 편가르기할 징조가 농후하기에…

  2. user#0 님의 말:

    내가 하느님안에서, 그리고 형제 자매들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가까운 이웃들 가운데는 정말 봉사를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다.
    이렇게 한 공동체에서 봉사하다보니
    각기 개성도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르고
    각양각색의 모습 안에서 때때로 일치되지 않는 것을 본다.

    이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끼리끼리 어울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요즈음 많은 생각을 한다.
    나만 슬쩍 빠져 여기저기 어울리지 말자..
    내가 특별히 맡은 직책도 없는데 굳이 끼어들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알게 모르게 내가 함께 해야할 일도 생기는 것이다.
    비공식이지만.. 아무래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밖에….

    이 과정을 통해 많이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적어도 가족에게라도 어떤 영향도 주어서는 안되는데..
    고민도 했다……그리고 나는 지금 충만한 사랑으로 이웃과 어울리기 위하여
    자신을 돌아 보며 나를 변화시키려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석하며 노력한다.

    나의 것으로는 절대적으로 불충분하다.
    주님의 사랑, 그 사랑을 내 안에 흡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뜨거운 성심의 사랑으로 이웃을 향해 나가야 겠다고…

    내 안에는 편견과 아집이 있어 이내 또 다른 목소리로 편가르기할 징조가 농후하기에…

user#0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