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
<말씀연구>
죽은 다음의 일을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가 나를 씻기고 옷을 입히고 틀어막고 묶고…관에 넣고 땅에 묻고…그리고 땅 속에서는 이런 저런 생명체들이 내 몸에 달라 붙어… 이런 생각하면 죽기 싫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 맘대로 되지 않으니…
죽은 다음에는 내 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육신은 말할 것도 없을뿐더러 영혼도 하느님 앞에 나아가서 그분의 처분에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육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앞당기기 위해 다리를 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31 그 날은 과월절 준비일이었다. 다음 날 대축제일은 마침 안식일과 겹치게 되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그냥 두지 않으려고 빌라도에게 시체의 다리를 꺾어 치워 달라고 청하였다.
유다인들의 규정에 의하면, 기둥에 처형된 자의 시체는 축복의 땅을 더럽히지 않도록 당일 저녁이 되기 전에 반드시 치우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을 처형하고는 나무에 달아 효시할 경우가 있다. 이렇게 나무에 달린 시체는 하느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니, 그 시체를 나무에 단채 밤을 보내지 말고, 그 날로 묻어라. 그렇게 두어서 너희 하느님 야훼께 유산으로 받은 너희 땅을 더럽히면 안 된다.”(신명21,22-23).
그런데 유다인들은 안식일 규정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형집행을 빨리 마무리 짓고자 하고 있습니다. 로마인들은 시민들의 범법행위를 막기 위해서 처형된 자의 시체를 온종일 기둥에 그대로 방치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상에서 가능한 빨리 치워 없애 버림으로써 “유다인들의 왕”으로서 더 이상 공포되지(요한19,19-21 참조) 않기를 원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32 그래서 병사들이 와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의 다리를 차례로 꺾고 33 예수에게 가서는 이미 숨을 거두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는 대신 34 군인 하나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
처형된 자의 죽음을 앞당기기 위해서 병사들은 다리를 차례로 꺾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미 숨을 거두셨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리를 꺾는 대신,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옆구리에서는 피와 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즉 생명의 문이 활짝 열려서 그 안에서 교회의 성사들이 흘러 나왔습니다. 이 성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참된 생명에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피는 우리 죄인들의 용서를 위해 흘리신 피 이며, 물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나를 씻어줄 물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창으로 찌른 사람이 론지노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회개하고 성인이 되었다는 말도 있고…>
35 이것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의 증언이다. 그러므로 이 증언은 참되며, 이 증언을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여러분도 믿게 하려고 이렇게 증언하는 것이다.
여기서 증언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증언 내용이 진실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36 이렇게 해서 “그의 뼈는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성서의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 말씀은 과월절 양에 대해 “너희는 어느 뼈도 부러뜨려서는 안된다”라는 출애굽기 12장 26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그리스도 인들을 위한 새롭고, 참되며, 종말론적인 과월절 희생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제 새로운 질서(새계약)가 효력을 발생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도 낡은 누룩을 깨끗이 없애 버리고 다시 순수한 반죽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월절 양으로서 희생되셨으므로 이제 여러분은 누룩 없는 반죽이 되었습니다. ”
37 그리고 성서의 다른 곳에는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라는 기록도 있다.
이 말씀은 즈가리야 12장 10절의 내용이 그대로 인용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론적으로 인용된 것입니다.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리라는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잇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적인 의미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자초한다는 의미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살아가면서 많은 잘못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화에서처럼 자신의 잘못을 덮어두기 위해 남을 모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모함하여 십자가에 매달고, 이제 그들의 잘못을 덮어 두기 위해 그분을 십자가 위에서 내리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잘못을 감추기 위해 나보다 약한 사람이나 가까운 사람을 이용하고픈 마음이 든 적이 있습니까?
2. 언젠가 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뵙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살아온 이들에게는 구원의 기쁜 만남이겠지만, 좀 소홀하게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만남이 될 것입니다. 언제일지 모르는 그 만남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주님!
이른 아침에 미사 가느라
쏟아져 내리는 비를 아량곳 않는
나는 누구인가 의문이 일었습니다.
비가 너무나 많이 내리니 친구가 미사 중에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그러네. 오늘은 예수성심 대축일이니 아마 우리 죄 씼어라고 큰 비를 내리시나봐.”
안나는 수다를 떨었습니다.
‘…………………
창으로 찌르자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
…………..’
이 상황에도
당신이 피와 물 쏟으시는 처절한 이 상황에도
주님,
눈물도 사랑도 없는 냉혹한 안나에게 진저리가 났습니다.
주님.
수도원은 정적으로 고요하였습니다.
눈을 돌려 정원을 보니 유리창에 비치는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었습니다.
춤을 추는 촛불들,
탐스럽게 핀 능소화,
쭈룩 쭈룩 내리는 비 소리들.
수시로 변하는 자신들이지만
바람으로 출렁이는 촛불을 보며
‘아하! 촛불은 수선을 피워도 근원인 초는 묵묵하구나.’
그래도 희망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바깥으로 나오신 당신께 절 올렸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있는 소리 다하여 당신 앞에 재롱을 떨었습니다.
그 동안 상해드린 성심께 마음아파
아는 노래 모르는 노래 부르며 수선을 피웠습니다.
주님.
당신 성심을 바라보니 손으로 옷을 헤집으시며
“안나! 나를 보라.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나를 보라.”
말씀하시는 듯 하여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예수성심이여!
모든 사제들을 지켜주소서.
주님!
이른 아침에 미사 가느라
쏟아져 내리는 비를 아량곳 않는
나는 누구인가 의문이 일었습니다.
비가 너무나 많이 내리니 친구가 미사 중에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그러네. 오늘은 예수성심 대축일이니 아마 우리 죄 씼어라고 큰 비를 내리시나봐.”
안나는 수다를 떨었습니다.
‘…………………
창으로 찌르자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
…………..’
이 상황에도
당신이 피와 물 쏟으시는 처절한 이 상황에도
주님,
눈물도 사랑도 없는 냉혹한 안나에게 진저리가 났습니다.
주님.
수도원은 정적으로 고요하였습니다.
눈을 돌려 정원을 보니 유리창에 비치는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었습니다.
춤을 추는 촛불들,
탐스럽게 핀 능소화,
쭈룩 쭈룩 내리는 비 소리들.
수시로 변하는 자신들이지만
바람으로 출렁이는 촛불을 보며
‘아하! 촛불은 수선을 피워도 근원인 초는 묵묵하구나.’
그래도 희망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바깥으로 나오신 당신께 절 올렸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있는 소리 다하여 당신 앞에 재롱을 떨었습니다.
그 동안 상해드린 성심께 마음아파
아는 노래 모르는 노래 부르며 수선을 피웠습니다.
주님.
당신 성심을 바라보니 손으로 옷을 헤집으시며
“안나! 나를 보라.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나를 보라.”
말씀하시는 듯 하여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예수성심이여!
모든 사제들을 지켜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