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말씀연구>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는 것이 오늘 제자들의 행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적당한 식당에서 밥조차 먹을 수 없는 상황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 먹는 행동을 보면 말입니다.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시는 스승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그리고 예수님은 얼마나 배가 고프셨을까요? 어떤 행위를 판단하기에 앞서,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중요한 것에 마음을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안식일에는 신경을 썼지만 안식일의 주인에게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더 중요한 것에 마음 쓰는 연습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1 그 무렵,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를 지나 가시게 되었는데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이삭을 잘라 먹었다. 2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저것 보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밀 이삭을 그 자리에서 잘라 먹는 것은 율법이 분명하게 허용하는 일이었으며 예부터 관습으로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웃집 밭에 서 있는 곡식 이삭을 손으로 잘라 먹는 것은 괜찮지만 이웃집 밭에서 있는 곡식 이삭에 낫을 대면 안 된다”(신명기 23,25). 문제는 평상시 같으면 전혀 문제가 없지만 그 날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막지 않고 내버려 두셨기 때문에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엄격한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극히 사소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일정한 거리밖에 걸을 수가 없었고 생활에 필요한 손일만 할 수 있었습니다. 곡식을 따서 비비는 것조차도 금지된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에 해서 안 될 일로서 39 조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금지 조항은 파종, 경작, 수확, 밀단을 묶는 것, 밀을 타작하는 것, 한 마리의 짐승이라도 잡아 서는 안 될 것, 또 그것을 죽이는 것, 그 껍질을 벗기는 일, 소금에 저리는 일, 그 가죽을 보존하기 위해 약을 발라 두는 것 등등이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 안 되는 밀이삭을 자른 것을 수확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면서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이야기와 성전에서 일하는 사제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제자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이야기 해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최종적인 증명과 결정적인 반박 논증은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한에 대한 믿음이 이미 존재함을 전제하고 계십니다. 메시아의 혼인 잔치가 있을 때는 단식할 아무런 이유가 없듯이 안식일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안식일 율법에 대한 해석과 안식일을 지내는 방법은 모두 주님이신예수님께 예속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의존하여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대담하게 안식일을 지냈으며 결국은 주간의 첫째 날로 안식일을 대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에게 물려주신 예수님의 권한에 근거한 것입니다.
3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다윗의 일행이 굶주렸을 때에 다윗의 한 일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4 그는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서 그 일행과 함께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지 않았느냐? 그것은 사제들밖에는 다윗도 그 일행도 먹을 수 없는 빵이었다.
사울로부터 도망을 치고 있을 때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놉에 있는 성막 속에 보관되어 있는 거룩한 빵을 자기와 자기 동료들에게 주게 하였습니다(사무엘 상 21,1-7). 이 빵은 사제들만 먹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전례적인 규정이 생명을 유지시켜야 하는 의무만큼 중요하다고는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을 무시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에게 있어서 안식일에 대한 규정은 제단에 안치되어 있는 빵에 대한 규정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경우에는 그러한 규정을 어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특별한 상황에 처해 계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니 더욱 당연한 것입니다.
5 또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는 사제들이 안식일의 규정을 어겨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책에서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성전에서 일하는 사제들은 희생 제물을 준비하고, 죽이며 예물을 모아들이고 제기를 깨끗이 닦는 등 안식일에 온갖 손일을 다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예외적으로 허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율법서에도 명백히 규정되고 있습니다. 사제들은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해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습니다.
6 잘 들어라.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런 면제 규정이 성전을 섬기는 사제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제만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성전보다 더 큰 이에게는 말할 나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더 많은 자유를 행사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말씀이 또 바리사이들에게는 귀에 거슬렸을 것입니다.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성전보다 더 큰 이는 하느님 단 한 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현존을 보증해 주는 성전보다 더 큰 성소(聖所)는 생각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에게는 이 말씀이 성전의 거룩함을 거슬렀다고 법적인 고소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은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것만 보증되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하느님께서 볼 수 있게 현존하여 계시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나에게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는 무죄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정의보다도 자비를 더 소중히 여기십니다.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라는 호세아 예언자의 말씀(호세아 6,6)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앞선 예언자들이 끈질기게 역설하던 올바른 가치 질서를 다시 한 번 주장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원하시며 순종과 신뢰와 사랑과 참된 정의를 원하십니다. 마음이 하느님께로 간다면 순종과 신뢰와 참된 정의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그러한 후에야 비로소 인간의 제사는 하느님의 마음에 들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식적인 규정 사항을 애써 지키고 전례적 규정을 세세하게 이행한다 해도 사랑의 의무는 결코 면제될 수 없습니다. 마음 없는 제사, 마음에만 있고 행동 없는 제사. 어느 한 가지만을 하느님께 드린다면 우리는 결코 하느님의 뜻을 완전하게 지키지 못한 것이 됩니다.
만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있었다면 이유 없이 죄 없는 제자들을 꾸짖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고생한다고 근사한 식당에 가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주지 않았을까요?
8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규정이 폐지되었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지만, 안식일 규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십니다. 안식일 규정보다 더 중요한 의무들이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의무들을 더 촉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으니 성전이나 성전 예배보다는 예수님께 더 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붙들고서 사랑을 고백하지 말고, 눈앞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밀 이삭을 잘라먹는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향해 내가 베풀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나눠보고, 바리사이파 사람의 마음이 되에 내가 남을 단죄하고 판단하는 부분은 어떤 부분이 있는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2.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자신을 합리화 시키려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남이 하면 안 되지만 내가 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비록 행동으로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신앙은 행동과 마음이 어떻게 일치하려고 노력하는지 나눠 봅시다.

주님.
길이시고
진리 자체이신 당신께
생명 자체이신 당신께 시비를 걸었습니다.
당신을 알아보지 못함은 무슨 연유이더이까?
무엇이나 된 듯한 교만,
아노라는 지식,
체험된 인식의 범주에서 내려다 보는 자만이 방종을 열매 맺어
진정한 당신의 면모를 놓쳤습니다.
“내가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들어라.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아! 눈이 가리고,
귀가 먹어 당신의 말씀을 알아 듣지 못하고
엄위의 당신을 가난하게 하였습니다.
용서하소서.
이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아, 주여! 용서하소서.’
안식일의 주인이신 당신이시여!
당신을 안식일의 주인으로 늘 고백하게 하소서.
느끼게합니다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하느님께 사랑을 드리는 그 모습에
믿음이 부족한 제 자신 부럽기도 하지요
행복한 나날 되세요 안녕 [09/06-23:53]
주님.
길이시고
진리 자체이신 당신께
생명 자체이신 당신께 시비를 걸었습니다.
당신을 알아보지 못함은 무슨 연유이더이까?
무엇이나 된 듯한 교만,
아노라는 지식,
체험된 인식의 범주에서 내려다 보는 자만이 방종을 열매 맺어
진정한 당신의 면모를 놓쳤습니다.
“내가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들어라.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아! 눈이 가리고,
귀가 먹어 당신의 말씀을 알아 듣지 못하고
엄위의 당신을 가난하게 하였습니다.
용서하소서.
이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아, 주여! 용서하소서.’
안식일의 주인이신 당신이시여!
당신을 안식일의 주인으로 늘 고백하게 하소서.
느끼게합니다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하느님께 사랑을 드리는 그 모습에
믿음이 부족한 제 자신 부럽기도 하지요
행복한 나날 되세요 안녕 [09/06-23:53]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본당에서 행사가 있을 때 성당주방에서 음식준비를 하느라
미사를 대충(?) 때울 때가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미사를 대충 때우는 사람들 대부분이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에 무엇이 더 중요 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미사가 중요 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본당의 행사진행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 이었다는 핑계를 댔지만
솔직히 어떤 때에는 지루하다고 생각을 할 때도 있었던 미사를
일한다는 핑계로 대충 때우면서도 하느님께 죄송한 마음보다는 주일을
궐하지 않았다는 세속적인생각이 더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하신말씀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 본질은 잊어 버리고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주일미사보다는 행사준비에 더 신경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으로는 언제나 하느님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궐하면 안된다고 떠들어 댔지만
정작 중요한 주님께 대한 마음은 언제나 세속적인 생각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있었던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입으로만 안식일의 주인이 하느님이라고 떠드는 가식적인 모습이 아닌
행동으로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며 증거 하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
저의 이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비를 청해 봅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하느님 한분이라는 고백을 할수 있는 신앙인이
되게 해 달라고….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묵상하며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본당에서 행사가 있을 때 성당주방에서 음식준비를 하느라
미사를 대충(?) 때울 때가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미사를 대충 때우는 사람들 대부분이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에 무엇이 더 중요 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미사가 중요 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본당의 행사진행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 이었다는 핑계를 댔지만
솔직히 어떤 때에는 지루하다고 생각을 할 때도 있었던 미사를
일한다는 핑계로 대충 때우면서도 하느님께 죄송한 마음보다는 주일을
궐하지 않았다는 세속적인생각이 더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하신말씀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 본질은 잊어 버리고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주일미사보다는 행사준비에 더 신경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으로는 언제나 하느님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궐하면 안된다고 떠들어 댔지만
정작 중요한 주님께 대한 마음은 언제나 세속적인 생각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있었던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입으로만 안식일의 주인이 하느님이라고 떠드는 가식적인 모습이 아닌
행동으로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며 증거 하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
저의 이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비를 청해 봅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하느님 한분이라는 고백을 할수 있는 신앙인이
되게 해 달라고….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묵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