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의론 Monotheletismus

  단의론  單意論  Monotheletismus

  신학과 교도권은 오랫동안 그리스도 안에 내재하는 신성과 인성에 관한 물음과 씨름해 왔다.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가 아리우스주의의 이단설을 단죄하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결합을 이루고 있다는 가르침을 선포한 후, 451년의 칼케돈 공의회는 그리스도 안에 내재하는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거나 분리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서 일치를 이루고 있다고 결정하였다. 이로써 칼케돈 공의회는 그리스도 안에 오로지 하나의 신성만이 있다고 주장하는 단성론을 단죄하였다.


  단성론을 다시금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과 연결시키기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주교 세르지우스는 그리스도 안에 내재하는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의지의 단일성 안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635년 이래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였던 소프로니우스(Sophronius)는 세르지우스의 주장은 자칫 단성론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세르지우스는 교황 호노리오 1세에게 제소하였으나, 교황은 그리스의 신학에 대해서는 별로 정통하지 못하였다. 교황은 그리스도 안에 내재하는 신성과 인성의 단일성을 윤리적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는 오로지 하나의 의지만이 있다고 주장하였다(단의론). 이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무죄한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교황은 세르지우스에게 보낸 서한에서 ꡒ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고백한다ꡓ라고 밝혔다. 교황 호노리오 1세는 또 다른 서한에서 ꡒ이것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는 새로운 생각일 수도 있다ꡓ라고도 하였다.


  신학적인 오류들을 내포하고 있는 교황 호노리오 1세의 대답은 이른바 ꡐ호노리오 문제ꡑ를 초래하였고, ꡐ호노리오 문제ꡑ는 제1차 바티칸 공의hgl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분위기를 자극하였다. 그 결과 교황 호노리오 1세는 이단자로 고발당하였으나, 그의 후임자들은 교황 호노리오 1세가 이단의 불꽃을 적극적으로 지피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입장을 대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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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의론 Monotheletismus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단의론  單意論  Monotheletismus

      신학과 교도권은 오랫동안 그리스도 안에 내재하는 신성과 인성에 관한 물음과 씨름해 왔다.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가 아리우스주의의 이단설을 단죄하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결합을 이루고 있다는 가르침을 선포한 후, 451년의 칼케돈 공의회는 그리스도 안에 내재하는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거나 분리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서 일치를 이루고 있다고 결정하였다. 이로써 칼케돈 공의회는 그리스도 안에 오로지 하나의 신성만이 있다고 주장하는 단성론을 단죄하였다.

      단성론을 다시금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과 연결시키기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주교 세르지우스는 그리스도 안에 내재하는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의지의 단일성 안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635년 이래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였던 소프로니우스(Sophronius)는 세르지우스의 주장은 자칫 단성론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세르지우스는 교황 호노리오 1세에게 제소하였으나, 교황은 그리스의 신학에 대해서는 별로 정통하지 못하였다. 교황은 그리스도 안에 내재하는 신성과 인성의 단일성을 윤리적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는 오로지 하나의 의지만이 있다고 주장하였다(단의론). 이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무죄한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교황은 세르지우스에게 보낸 서한에서 ꡒ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고백한다ꡓ라고 밝혔다. 교황 호노리오 1세는 또 다른 서한에서 ꡒ이것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는 새로운 생각일 수도 있다ꡓ라고도 하였다.

      신학적인 오류들을 내포하고 있는 교황 호노리오 1세의 대답은 이른바 ꡐ호노리오 문제ꡑ를 초래하였고, ꡐ호노리오 문제ꡑ는 제1차 바티칸 공의hgl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분위기를 자극하였다. 그 결과 교황 호노리오 1세는 이단자로 고발당하였으나, 그의 후임자들은 교황 호노리오 1세가 이단의 불꽃을 적극적으로 지피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입장을 대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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