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며 죽음을 예고하셔서 제자들을 슬프게 하시더니
고기 입속에 액수까지 정확한 돈을 꺼내서 그걸 성전세로 내라고 하시니 그 때 제자들의 마음은 또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저는 예수님이 ‘비위를 건드릴 것 없다’ 는 말씀이 와 닿았습니다.
전지 전능한 하느님의 아들이시면서도 말이죠.
살아가면서 이 사람 저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게 되는데,
남들에게 비위 상한 적도 많고 저 또한 남에게 비위를 건드린 적도 많았습니다.
며칠 전에는 한 달에 한 번하는 모임을 쉰다는 메일이 왔는데 글쎄,
세상에나 – 어쩌면 그런식으로 메일을 보낸답니까?
여러 사람에게 보내게 된다면 그럴 수도 있겠고 공식적인 ‘공문’ 이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핸드폰에 메세지를 보내고 전 핸드폰이 없는 관계로 저에게만 메일을 보내 받게 됬는데,
두어줄 쓴 말이 ‘딱딱’ 그 자체였어요.
” 이것이 뭣이여? 나완 친하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으니 바늘 만한 틈구멍도 허용하기 싫다는 거야 뭐야?”
메일을 열어 보다가 속이 상해서 바로 ‘삭제’ 하면서 혼자 그렇게 중얼 거리고,
며칠 후 전화 통화를 하게되어 어떻게 그런 식으로 메일을 보냈느냐고 하니까
호호호 웃으면서 알았다고 다음엔 ‘니끼하게’ 써서 보내겠다나 어쩐다나?
그런데 그렇게 말을 하고서도 서운한 것있죠? 저도 속이 어지간히 좁은가봐요.
전화 상으로 그렇게 한 것으로 모자라 ‘비위를 좀더 상하도록 강하게’ 뭘 어떻게 할까 연구도 해봤으니까요………..
메일 때문만은 아닌 것이 전부터 서운한 것이 있기 때문인데 이해하자 하는 마음과 별 것도 아닌 것으로 분심 드는 마음이 스스로 속이 상하는 것이지요.
이런 저인지라 오늘 예수님이 ‘비위를 건드리지 않게’ 세금을 내라고 하시는 부분을 대하면서
마음에 안드는 사람에게도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자’ 이런 묵상을 하였답니다.
그리고 그런 작은 부분에서 속좁게 나오는 제 자신에게 저도 호호호 웃어 줍니다.
오늘 접한 ‘비위’라는 단어가 진짜로 확 와 닿았으며 속도 시원하네요 –
이 헬레나: 저도 오늘 저희를 괴롭혀온 사람을 만나 무조건 저희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몇년동안 괴롭힘을 당하니 너무 힘들어…..
저희보다 나이도 더 많은 사람들이라 정중하게 인사를 했지요
그런데 집에오니 기분이 상하는 것은 제가 속이 좁은탓일까요?
그래도 제가 먼저 화해를 청했다는 사실이 제 자신도 놀랐습니다 [08/12-00: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