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부자청년의 대화1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예수님과 부자청년의 대화1


<말씀연구>


영원한 생명에 관심을 가진 청년. 그 청년은 참으로 대단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계명을 충실히 지키면서 하느님 나라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그는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마음입니다. 비록 그가 가진 것을 다 버리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는 평생 재산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는 그 재산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려 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부자청년의 마음이 되어 예수님 앞에 서 봅시다.




16  한번은 어떤 사람이 예수께 와서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 청년은 예수님께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존경의 표시로 무릎도 꿇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곳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예수님께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께 “선하신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아첨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아픈 이들에게, 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들어왔고 또 본 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시는 그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가끔은 그렇게 물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내가 가정 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내가 직장 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그리고 어떻게 해야 더 잘 할 수 있는지를…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호칭을 거부하십니다.


17  예수께서는 “왜 너는 나에게 와서 선한 일에 대하여 묻느냐? 참으로 선하신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의 나라로 들어 가려거든 계명을 지켜라” 하고 대답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호칭을 거부하시는 이유는 당신이 선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청년이 말하는 선하다는 개념을 생각해봅시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모르는 젊은 청년에게는 예수님께서 아무리 선하다고 하더라도 한낱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선하다”고 불리기를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참된 완전 자체이신 하느님에게만 들어맞는 말씀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그 영광을 모두 돌리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추구해야 할 어떤 것으로 인정하는 모든 선은 바로 하느님의 빛 속에서 측정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완전한 선이시며, 인간이 보고 행하는 모든 개개의 선은 하느님 자신이신 절대선에 참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18  그 젊은이가 “어느 계명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언하지 말라. 19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는 계명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이 젊은 청년은 예수님께로부터 율법에 포함되어 있는 규정의 뜻을 권위 있는 설명으로 듣고 싶어 했습니다. 자기 생활과 비교하여 율법이 무엇을 명하는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물어보는 것을 보면 율법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청년에게 하느님께 대한 의무보다는 이웃에 대한 계명을 상기시키십니다. 즉 예수님의 답변은 예수님께서 지향하고 계시는 목적을 가리켜 주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께 순종하고 하느님을 종경하며 살아해야 한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에 관해 물어 볼 정도의 사람이라면 이미 명백히 알고 있는 것이겠지만 다른 것들도 분명하게 인식되어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20  그 젊은이가 “저는 그 모든 것을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무엇을 더 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다시 묻자 21  예수께서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 하셨다.


그런데 이 청년은 뜻밖에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그 모든 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청년의 대답은 자신에 대한 자랑은 아닌 듯 합니다. 그의 성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인 듯 합니다.


청년은 무엇을 더 해야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실 이 청년도 그런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대답은 구약성서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신심 깊은 유다인이라면 스스로 그러한 답변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며, 때로는 율법학자들이 그러한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만일 구약성서가 올바로 이해되고 수많은 상세한 계율이 구약성서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가리지 않았더라면 구원의 길은 이미 구약성서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자기가 하느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키고 있다는 의식은 열심한 히브리인의 마음 안에는 있었습니다. 성실한 랍비들은 항상 율법의 전부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랍비들 가운데에는 인간의 윤리적 능력을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경건한 사람까지도 자기의 죄 때문에 그의 의로움 보다도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생각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청년은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생각하면서도 부족한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젊은이는 일반적인 계율을 초월하는 특별한 가르침을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워 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상과 현실이 부딪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이라는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계명을 실행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그 이상,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지켜야 할 세상으로부터의 이탈뿐만 아니라 완덕을 지향하며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다인들도 토라를 연구하기 위하여 재산을 다 팔아 버린 라삐가 있음을 알고 있었으니, 그것은 베개 삼을 돌조차도 없다고 하신 가난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완전한 청빈에 끌려 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리스도인에 비교하면 보잘것 없는 숫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완전한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히브리인이 사고방식에 따르면, 남에게 적선을 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보화를 얻는 것과 같은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사람은 한 평생 적선을 베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모든 재산을 적선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대신 하늘의 보화를 약속하십니다.


재산을 버린다는 것은 새로운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일, 가난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베푸는 일, 모든 자연적인 청빈보다도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청년은 이 말씀을 듣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가 모든 것을 버리면 자유롭게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결정을 할까요?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22  그러나 그 젊은이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풀이 죽어 떠나 갔다.


그런데 이런 계명들 중에서 부자 청년이 지키기 어려웠던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가 부자라고 설명되어 있기에 살인이나 도둑질은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가장 큰 유혹은 그가 부리고 있는 일꾼들에게 과중한 노동이나 임금의 체불, 노동에 알맞지 않은 임금의 지불 등의 부정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집착 때문에 남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뒤집에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자청년의 행동은 참으로 솔찍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닌 척 하지도 않고, 거짓으로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그가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라기 보다는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이고 가는 사람 같습니다.




나는 가끔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긍정하는 척 합니다. 그리고 옳은 것도 옳은 것이라고 정확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쉽게 감정을 속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 이 순간만 피하면 되지…하지만 부자 청년은 자신의 감정을 행동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마 평생을 살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갈등하면서 살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모든 것을 정리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을까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부자청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나는 것들이 있으면 함께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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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부자청년의 대화1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주님이 내게 맡기신거.. 잘쓰다가..
    인생의 마침표가 왔을때.. 그 때 사회에 환원하믄 안될까욤…? (__)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거 보니…
    속물을 지나쳐 먹물에 가깝네욤…

    저기 높은 곳에 계신분들은 거기까지 바라시지두 않을거에욤.. (__)
    의무미사두 게으름으로 인해 빠졌으니 말에욤….
    끄응… 나태해져서 큰일이네욤..

    오널 복음 묵상을 보믄 2개있는 넘이 하나 주기가 힘드네욤..
    하나있는거 내어주라하믄.. 무신핑계라두 있는뎅..
    내가 갖구 있는거.. 줄수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겠네욤..
    (아무리 봐두.. 몸으로 때우는거 밖에는…. ㅡ.,ㅡ;;)

    219.249.0.119 이 헬레나: 베로니카자매님!
    오랫만에 자매님의 글을 읽으니 반가움의 눈물이 나오네요
    솔직하고 자매님다운 묵상에 주님께서도 미소짓고 계실거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오셔서 예쁜글 많이 보여주시기를 청해도 되겠지요?
    감사해요 자매님께서 축하해주시니 너무 기쁩니다 안녕 [08/18-19:57]
    203.241.212.59 루실라: 베로니카 자매님 오랜만입니다. 짧은 글 속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좋은묵상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08/19-08:15]

  2. user#0 님의 말:

    주님이 내게 맡기신거.. 잘쓰다가..
    인생의 마침표가 왔을때.. 그 때 사회에 환원하믄 안될까욤…? (__)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거 보니…
    속물을 지나쳐 먹물에 가깝네욤…

    저기 높은 곳에 계신분들은 거기까지 바라시지두 않을거에욤.. (__)
    의무미사두 게으름으로 인해 빠졌으니 말에욤….
    끄응… 나태해져서 큰일이네욤..

    오널 복음 묵상을 보믄 2개있는 넘이 하나 주기가 힘드네욤..
    하나있는거 내어주라하믄.. 무신핑계라두 있는뎅..
    내가 갖구 있는거.. 줄수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겠네욤..
    (아무리 봐두.. 몸으로 때우는거 밖에는…. ㅡ.,ㅡ;;)

    219.249.0.119 이 헬레나: 베로니카자매님!
    오랫만에 자매님의 글을 읽으니 반가움의 눈물이 나오네요
    솔직하고 자매님다운 묵상에 주님께서도 미소짓고 계실거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오셔서 예쁜글 많이 보여주시기를 청해도 되겠지요?
    감사해요 자매님께서 축하해주시니 너무 기쁩니다 안녕 [08/18-19:57]
    203.241.212.59 루실라: 베로니카 자매님 오랜만입니다. 짧은 글 속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좋은묵상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08/1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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