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빵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바로 그 생명의 빵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 저 사람 혹시 미친 사람 아닌가?”….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생명을 얻고 싶으면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된다고 되풀이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60 제자들 가운데 여럿이 이 말씀을 듣고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하며 수군거렸다.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 설교 전체를 믿지 못함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 파견된 분으로 받아들일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오늘의 나의 모습입니다. 성체 성사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얼마나 확신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요, 하느님이심을 확고하게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복잡한 기계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의 사용 방법을 알고 나면 얼마나 유용하게 쓸 수 있는지 그는 모릅니다. 자신의 머리를 탓하지 않고 기계를 탓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해서 그 말씀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다 해서 하느님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61 예수께서 제자들이 당신이 말씀을 못마땅해 하는 것을 알아채시고 “내 말이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숨은 생각까지도 보시는 예수님. 예수님을 따르기를 거부하고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에 의해 파견되셨다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지 못하는 이들이 부활과 승천을 체험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할까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들이 살아계신 예수님을 체험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못 믿겠소.”라고 말할까요?
63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육체가 영원한 생명을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종교는 다이어트교이고, 그들이 믿고 있는 신은 “건강신”입니다. 뭐가 몸에 좋다면, 뭐가 살이 빠진다면 우르르 몰려듭니다. 성체가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고 한다면 매일 미사참례자 수가 엄청 늘어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고, 듣는 청중들은 그것을 육적인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사람의 살과 피를 먹을 수도 없을 뿐더러, 그것이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잊은 것이 있습니다. 그분의 살과 피는 나의 살과 피와 전혀 다릅니다. 성분은 같지만 서로 다른 흑연과 다이아몬드처럼 그렇게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나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누구며 자기를 배반할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예수께서는 또 이어서 “그래서 나는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이 아니면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참으로 힘드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과 허락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누구는 허락하셨기에 예수님을 따를 수 있고, 누구는 허락하지 않으셨기에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면 결국 내가 예수님을 안 따르고 있는 것은 하느님 책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무리 아버지가 엄하시다 하더라도 자녀가 무엇인가를 한다고 할 때 끝까지 말리시지는 않습니다. 나중에는 잘 해보라고 격려를 해주십니다. 부르심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한다고 할 때(사제나 수도자, 평신도..기타 성소) 그분께서는 말리지 않으십니다. “그래? 그럼 한번 열심히 해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마음이 있다면 그분께서는 이끌어 주십니다. 아버지의 허락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믿음의 생활을 하고 싶어 할 때 하느님께서는 힘을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내가 의심하고, 따지고, 반항하지 않고 나를 맡기고 믿음의 은혜를 찾으려 한다면 아버지께서는 나를 이끌어 주십니다. 아버지의 허락은 나의 마음을 전제로 합니다.
66 이 때부터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물러 갔으며 더 이상 따라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께서는 열 두 제자를 보시고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 가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수님께 위기가 닥친 듯 보입니다.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더 이상 따라 다니지 않았다”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들은 떠나면서 예수님을 탓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의 무딘 마음과 어리석은 머리를 탓해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도 떠날 것이냐고 묻습니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 69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압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베드로 사도는 멋진 신앙을 고백합니다. 예수님 외에 이 세상에서 믿고 따라 갈 많나 분은 없다는 것.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 그래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이 말씀 중에 와 닿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리고 어떤 느낌이 들고 있습니까?
2.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육적인 것에 마음을 두는 사람은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시몬 베드로의 고백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라는 말씀을 나는 어떻게 고백할 수 있을까요?
루실라: 베드로의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하신 이 말씀이 가장 와 닿는답니다.좋은말씀 감사드리며 행복한 주일 되시기 바랍니다 [08/24-07:20]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자신이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히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음을 짐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세미나를 받아보면 어떤이는 쓰러지기도 하고 어떤이는 이상한 말을
하고 어떤이는 통곡을 하면서 한 없이 울기도 합니다.
마음이 굳어서 인지 나에게는 별다른 현상이 나타나지 않아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고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나
좌충우돌 하는 사람. 정신신경적인 이상을 보이는 사람을 봤을때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엔가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 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한결 같이 비난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그 사람이 오히려 딱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인격을 형성하게 된 연유에 대하여
궁금해 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세미나에서 나에게는 왜 은사가 이루어 지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른이를 받아들이는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성령세미나에서 내가 체험 하지 않았다고 해서
거기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참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는 없는 일입니다.
나에게 그러한 체험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내가 어린이 같이 단순하지 않아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얼마나 돼겠습니까?
나의 머리로 알 수 있고 나의 지식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것들은
빙산의 일 각도 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우리 능력으로 모두 이해하려는 것은 오만한 생각입니다.
그저 믿을 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 –
갓 깨어난 병아리가 어미 품을 떠나지 못하듯
우리는 주님만을 따라 다닐 뿐입니다.
이 말씀이 가슴에 꼬~~~옥 와 닿네요
주님만을 따라다니면 행복 할텐데 세속적인 근심과 욕심으로 주님을
멀리하게 되니 힘이 듭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08/24-08:07]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자신이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히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음을 짐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세미나를 받아보면 어떤이는 쓰러지기도 하고 어떤이는 이상한 말을
하고 어떤이는 통곡을 하면서 한 없이 울기도 합니다.
마음이 굳어서 인지 나에게는 별다른 현상이 나타나지 않아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고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나
좌충우돌 하는 사람. 정신신경적인 이상을 보이는 사람을 봤을때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엔가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 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한결 같이 비난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그 사람이 오히려 딱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인격을 형성하게 된 연유에 대하여
궁금해 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세미나에서 나에게는 왜 은사가 이루어 지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른이를 받아들이는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성령세미나에서 내가 체험 하지 않았다고 해서
거기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참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는 없는 일입니다.
나에게 그러한 체험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내가 어린이 같이 단순하지 않아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얼마나 돼겠습니까?
나의 머리로 알 수 있고 나의 지식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것들은
빙산의 일 각도 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우리 능력으로 모두 이해하려는 것은 오만한 생각입니다.
그저 믿을 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 –
갓 깨어난 병아리가 어미 품을 떠나지 못하듯
우리는 주님만을 따라 다닐 뿐입니다.
이 말씀이 가슴에 꼬~~~옥 와 닿네요
주님만을 따라다니면 행복 할텐데 세속적인 근심과 욕심으로 주님을
멀리하게 되니 힘이 듭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08/24-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