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통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통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이 세대 사람들을 향한 꾸지람


<말씀연구>


세례자 요한을 비웃고, 예수님을 비웃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멋대로 놀아나는 아이들로 그들을 비유하시면서 꾸지람을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갔어도,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예수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오셔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무딘 마음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꾸지람을 내리십니다.




31  그러니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과 비교할까? 그들이 무엇과 같을까? 32  장터에 앉아 서로 소리지르는 어린이들과 같으니 그들은 ‘너희를 상대로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다. 우리가 통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고 말합니다.


놀이를 하려고 거리에 모인 아이들. 저마다 말을 주고 받으며 모두 자기 마음에 드는 놀이를 하려고 하나 의견이 맞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결혼식 놀이를 하려 했고 다른 아이들은 장례식 놀이를 하려고 했습니다. 한편의 아이들이 피리를 불면서 상대편 아이들에게 춤을 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집을 부리면서 그냥 있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례식 놀이를 하려고 슬퍼하며 곡을 하였지만 상대편 아이들은 이제 결혼식 놀이를 하려고 합니다. 누가 이렇게 고집센 어린이들을 만족시켜 줄 것인가?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은 친구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내 뜻을 버리고 친구의 뜻을 받아들여 줄 때 나는 친구와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구원의 길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데 있습니다.




33  사실 요한 세례자가 와서는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니까 ‘귀신들렸다’ 고 여러분은 말합니다. 34  인자가 와서는 먹고 마시니까 ‘보아라,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로구나’ 하고 여러분은 말합니다.


사람들의 완고함은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을 비난하는데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을 너무 금욕적이라고 생각하여 미쳤다고 말했고, 예수님은 별로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겼을 뿐 아니라 세리들이나 죄인들과 사귀는 세속적인 사람이라고 단정해 버렸습니다. 유다인들은 요한의 엄격한 생활, 혹은 예수님의 예사로운 생활, 그 어느 쪽도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본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부님들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 “가볍다. 신부답지 않다”라고 단정해 버리고, 좀 무게를 잡으면 “거만하다. 저렇게 어려워서야 누가 다가갈 수 있겠는가?”하고 말해버립니다. 그런데 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서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35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모든 자녀들로 말미암아 드러났습니다.”


지혜를 가진, 어린이와 같은 사람만이 하느님께서 하시는 그 모든 일들 가운데서 하느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깨닫기 위해서는 지혜롭게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즉 인간은 지혜롭게 변화되어야 하고 지혜로 가득 차있어야 하며, 지혜가 생각하고 판단하듯이 생각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일반 대중이 요한을 메시아의 선구자로 알아보면서 예수님께 의심을 품지 않았을 대, 그것은 인간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를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루가10,21)라고 기도하신 이유입니다. 인간적인 지혜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당신의 지혜와 계시를 주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고집만을 피우는 그런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의 말씀에 순명하고, 가식 없이 대하며,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 자녀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하느님께서 옳다는 것을 드러낼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상대방이 어떻게 나와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 것 만을 고집하고 남의 것은 결코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 내 안에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의 주장을 무산시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혹시 그렇게 하다가 오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과 같이 당황하게 된 적은 없습니까?






2. 지혜로운 생활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가끔은 나태해 지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지혜롭게 이겨냈는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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