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다원주의

종교다원주의란 “종교의 다원성”, “다종교 상황”, “종교 다원 현상”, “다종교의 공존”이라는 여러 가지 명칭들에서 드러나듯, 한 사회 내에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해 있는 사실을 중시하면서 종교를 신학 해석의 주요 관건으로 삼는 신학의 한 흐름이다. 그것은 세계 와 우리 사회 안에서 여러 종교들이 공존해 왔고 또 공존해 있는 역사적 및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고 종교 다원현상을 신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리스도교가 타종교와 맺고 있는 관계를 규명하고 나아가 타종교의 구원적 가치도 논의한다.
이 다원주의가 표방하는 신학적 논의의 출발점은 역사적 상대주의, 종교간의 대화, 인간
해방 또는 사회발전 등 세 가지이다. “모든 역사적 종교는 상대적이다”, 모든 종교는 “탁
월한 종교적 본질을 이루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올바르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
행(올바른 실행), 곧 인간해방은 역사적 종교들의 현실 지반이다. 이 세 가지 기본 전제로
부터 출발하여 다원주의는 모든 종교가 동등한 수준 위에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세운다.
다원주의에 치우친 종교 신학은 타종교의 모든 신학적 평가의 바탕과 근본 관심이 획기
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바탕이 그 동안 “교회 중심주의”에서 “그리스도
중심주의”로 전환하였는데. 타종교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이제는 “신(하느님) 중심주의”
를 넘어 “구원 중심주의”로 이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가 공통분모로 삼고 있는
구원을 중심으로 타종교를 평가해야 한다. 또한 그 근본 관심은 그리스도의 유일성(“그리
스도가 유일한 구세주”라는 사실)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 아니라, 구원, 곧 인간해방과
사회복지를 추진하고자 타종교와 함께 펼치는 “올바른 실행”인 것이다.
이처럼 다원주의는 “신 중심주의” 또는 “구원 중심주의”를 제시함으로써 우리 교회를 여
러 종교들 중 하나로 여겨 교회와 그리스도를 격하시키며 타종교와 관련된 그리스도교의
고유성과 근본 핵심을 뿌리째 뒤흔든다. 그것은 가톨릭교회의 정체,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 신원을 의문시한다. 다원주의는 그리스도교의 근본 핵심에 두 가
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스도는 과연 인간과 세상의 유일하고 보편적인 구세주이
신가? 타종교도 그리스도교 못지 않게 참 진리를 보유하고 있는 구원의 종교인가? 이 질
문에 답하면서 다원주의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부인하면
서까지 타종교의 구원적 가치를 최대한 주장한다. 다음과 같은 급진적 주장도 서슴지 않
는다. “하느님의 강생(사람되심)은 그리스도교의 생존을 위한 신화적 언어이다”, “그리스
도는 예수와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 부처. 마호매트 역시 예수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일 수 있다.” 이런 주장은 그리스도교의 절대성과 정체성 및 유효성을 해친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을 따라 타종교를 온전히 이해하고 최대한 존중하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사회발전과 인간해방을 위해 함께 진력해야 한다. 그리고 타종교의 진
리들 안에 포함되어 있는 구원적 가치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다원주의의 급진적
주장에서 그리고 다원주의에 대한 그릇된 이해와 그 확산에서 빚어지는 종교 혼합주의,
무비판주의는 분명 가톨릭 신앙의 고유성과 확고한 가치를 위협한다. 타종교에 대한 존중
및 이해, 타종교의 구원적 가치에 대한 인정이 그리스도교를 타종교와 같은 수준으로 격
하시키는 주장으로 이어져서는 결코 안된다. 종교간의 대화나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이
가톨릭 신앙의 고유성과 근본 핵심을 약화시키거나 포기할 정 도로 타종교를 지나치게
평가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되어서는 안된다.
진리의 표현은 상대적이지만 그 핵심 내용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으며, 종교간의 대화
는 다양한 종교들의 차이와 고유성을 말살하는 합의 도출이 되어서는 안되며, 종교의 궁
극 목표가 단순한 사회 발전이나 인간해방에 국한될 수 없다. 그리스도교는 그 종교적 진
리에서는 타종교와 함께 합치할 수 있으나 그 근본 핵심에서는 타종교와 구분되는 고유
성과 절대성을 지닌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에 관한 진리를 가르치고 몸소 온전히
실행하신 분일 뿐 아니라 또한 그분 자신이 진리 자제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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