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은 어디 있습니까?

 

아홉은 어디 있습니까?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


 


나병 환자 열 사람. 아홉은 유다인이었고, 하나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성숙한 믿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성장하고 감사드리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그는 치유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의 인생은 예수님 안에서 감사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과 마주치셨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님께 소리쳤습니다.


12  그런데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자 나병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오다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예수님, 스승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였다.


예수님 시대에 보면 나병환자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 되었지만 성벽이 있는 고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고, 사람들 가까이에 가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애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들의 구성을 보면 재미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유다인들 속에 사마리아 사람이 끼어있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 돼지’ 취급했는데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아마도 나병이라는 비참함이 그들 사이에 공동적인 유대를 형성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간의 민족적 적대감 까지 잊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들도 “하느님의 자녀”라는 공동적인 신분이 있기에 형제요 자매라고 부를 수 있고, 더욱 친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다른 이들 보다도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떤 조건 때문에, 자신의 이익 때문에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하느님의 자녀의 특권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갈라져 서로 등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자비를 청했습니다.


여기서 스승님이라는 칭호는 성서에서 사도들이 그분의 능력에 압도당하였을 때, 그분의 영광에 깜짝 놀랐을 때, 또는 곤경 중에서 도움을 필요로 했을 때 사도들이 예수님께 드린 칭호였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이 칭호를 드리면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어떠한 조건도 걸지 않으십니다.


14  예수께서 보시고는 그들에게 “가서 제관들에게 당신들의 (몸)을 보이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나병환자들이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제들에게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사제들이 “이 사람 병이 다 나았습니다”라고 선언해야만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들을 사제들에게 보내신 것은 결국 “너는 다 나았으니 공동체로 돌아가거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나병환자 열 사람은 아무 조건도 없이 예수님께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10명이 구원되었는데 이방인 한 사람만이 돌아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들 드리고 있습니다. 그 사마리아 사람은 이스라엘의 자녀들 가운데 들지 않는 이방인 중의 한 사람이었기에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의 선물에 오직 감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사마리아 사람은 기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뿐 이심을 알고 있었기에 하느님을 찬양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발 앞에 엎드린 다는 것은 깊은 존경의 표시입니다. 지금 큰 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엎드려 존경을 표시하는 방법은 또 하느님께 올리는 존경을 의미했습니다(마태26,39;1고린14,25;묵시록7,11.11,16).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무런 감사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선물을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이 치유 받은 것은 하느님의 대변인으로부터 자신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이 얼마나 있을까요?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식사를 감사할 줄도 모르고 투덜거리는 남편과 아이들. 남편과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길지 모르겠지만 과연 그것이 당연한 것이겠습니까?


남편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여 봉급을 타오면 그것을 아무런 고마움 없이 써 버리는 아내와 아이들. 남편의 눈에도 아내와 아이들의 행동이 당연하다고 여겨질까요?




17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홉은 어디 있습니까?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랑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잊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그들은 아마도 자신의 성한 몸을 사제에게 보이고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서둘렀을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이 집에 가 있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고쳐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감사를 드려야 했음이 당연한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수능을 하루 앞둔 날 복음말씀이 이 말씀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미사에 참례하고 성사를 보고 강복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수능이 끝나고 그날 성당에 와서 감사미사를 바친 학생은 단 한명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을 한번쯤은 감사하다고 여겨 보십시오. 두 눈이 있음을,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음을, 가족이 있음을, 부모가 있음을, 직장에 다니고 있음을, 그리고 내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18  이 외국인 밖에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되돌아온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19  그러고서는 그에게 “일어나 가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치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이방인은 예수님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가르침의 탁월성을 인정했고,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임을 믿었습니다. 믿는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


여기서 또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믿음으로 구원되지만 그 믿음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어야 합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2. 치유 받은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입니까?



211.229.166.182 지나가는 나그네: 주님!
당신이 찾는 아홉사람중에 제가 있음을 느낍니다.
당신이 제게 생명을 주셨어도
감사할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자였으니 말입니다.
되려 당신께 흉터없이 완벽하게 낫게해 주지 않았다고
당신을 원망하고 살아가는 저입니다.
이렇게
모든지체나 정신을 멀쩡하게 만들어 주셨는데도 감사는 커녕
왜 코가 못생겼나… 눈은 어떻구…
피부가 좀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왕 어머니 배속을 빌려 만들어 주실바에 키도 좀 크게 만들어 주실것이지… [11/11-21:57]
211.229.166.182 지나가는 나그네: 정말 끝없이 불평만 늘어놓고 살아갔습니다.
그러면서 대대손손 이어온 신앙의 자손이라며
영세자들에게 교리가 어쩌구 하며 아는체는 엄청했습니다.
그들의 열심한 모습을 보면 괜히 무슨 꼬투리가 없을까 살펴보구…
저렇게 열심히 하다가 언제 냉담할지…
신앙에 뿌리가 얕아서 말야… 쯔쯔거리며 목에다 힘줫던 저
그들이 헌금을 많이내면 쥐뿔도 없으면서 푼수라했습니다 [11/11-21:58]
211.229.166.182 지나가는 나그네: 그것뿐입니까
교무금 많이내는것도 참견하면서
안다는 주제에 그들이 영혼까지 콩나라 팥나라 간섭을 했습니다.
주님!
머리 조아려 아룁니다.
이런말을 주절대는 제 심정 너무 당신께 창피하고 부끄럽습니다.
이놈은 당신이 줘도 줘도 감사할줄 모르는 놈…
신앙이 얼마나 오래됐느냐보다 얼마나 깊은가가 중요한건데
전 유대인과 똑같은 그런사람였습니다.
언제였나요…
텔레비에서 대상을 받은 아이의 소감을 들은적이 있었습니다. [11/11-21:59]
211.229.166.182 지나가는 나그네:
아나운서가 제일 먼저 누구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냐고 했더니
아이가 큰소리로 그러더군요
저는요! 제일 먼저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그 다음 부모님 기타 다른 사람들을 열거했습니다.
주님!
당신을 안다면서 당신께 뭘 드렸는지…
잘 되면 제가 잘나서 그런거고 못 되면 당신탓을 일삼은 저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그 아이처럼 당신을 먼저 찾고
감사하는 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1/11-21:59]

220.76.179.133 송이: ㅋㅋ 저도 늘 궁금했긴 했는데…잘 몰라서 그러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11/11-23:33]
219.249.0.238 이 헬레나: 격식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라도 함께 묵상하수 있음에 감사드리고
싶네요 언제나 깊은묵상 으로 함께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구요
자주 들어오셔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안녕 [11/12-01:03]

이 글은 카테고리: 지난 묵상 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