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성사의 역사적 변천

 

1). 초대교회부터 8세기까지의 발전.


   야고보서의 가르침을 반영해주는 초대교회의 문헌은 극히 적고, 병자도유를 위한 규범은 8세기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초세기에는 신자들이 기름을 소유하고 개별적 용도에 사용하는 것을 중요시한 것 같다. 주교가 미사성제 중에 기름을 성대하게 축복하는 기도 안에서 우선적으로 본연의 교회적이며 성사적인 요소를 보았다. 이러한 축성기도들은 피상적으로 볼 때 우선 육체적 질병치료의 의학적 증상을 주로 도유의 효과로서 목전에 두었던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특히 본래의 로마식 기름 축성기도는 대개 육체적 치유 효과를 강조하고 있으며 부수적으로 영신적이며 정신적 효과를 말하고 있고 가끔 죄사함도 언급한다. 하지만 좀더 광범위하고 상세하게 육체적 건강회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축성기도들을 고찰한다면 전인적이고도 깊은 구원의 지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종교적 목적을 지니고 있다. 즉 순수 세속적이 아니라 정신적이며 구원론적인 기대를 간직한 것이다. 그리고 병자성사의 대상자는 죽음에 임박한 상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병과 각종 병세에 있는 자였다. 기름을 발라 주는 이는 주교와 사제뿐 아니라 평신도들 그리고 병자 자신도 될 수 있었고 방법도 다양했다. 7-8세기에 비로소 평신도가 병자들에게 축성된 기름을 발라주는 행위가 중단되었고 사제의 역할이 명확해 졌다. 8세기말부터 소위 ‘규범들’이 생겨나고 병자방문과 병자도유에 관한 풍부한 문헌들이 나타난다.




   2). 카롤링거 시대의 병사성사 실천의 불행한 변화.


   이 시기에는 평신도들이 병자도유를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사제들에 의한 병자도유도 힘들게 하였다. 또한 이 시기의 규범들은 병자에게 무거운 속죄행위를 부과하여(부부간의 성행위 금지, 금육과 단식 등) 신자들은 병이 회복되면 그 속죄행위를 이행해야 했고, 성사를 집전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터무니없는 사례비 때문에 가능한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기까지 성사를 미루었다. 또한 성사 대상자도 당시의 급격히 높은 사망률 때문에 죽을병에 걸린 자들과 죽어 가는 자들에게만 국한되었다. 이런 일련의 상황 속에서 일생에 단 한 번만 허용되며 그 대상도 죽음을 맞은 자들을 위한 성사라는 의미를 갖는 종부(終傅)성사라는 용어가 생겨나게 했다. 치유를 위한 ‘도유’가 ‘죽음의 축성’이 되고 만 것이다. 또한 이 시기에 도유의 의미는 죄의 용서에 국한되었다.






   3). 스콜라 신학의 이론적 정립 노력.


   성서와 사도적 전승에 대한 고찰도 없이 또한 풍부한 동방교회 전승과의 단절된 상황하에서 앞시대의 ‘종부성사’ 개념 아래 진행된 스콜라 신학자들의 연구는 성사의 구성요소, 본질, 효과 등의 신학적 이론 정립에 있어 완전히 그릇된 길로 접어들게 하고 만다. 성사를 받는데 있어서의 사목적인 속죄규정, 전제조건으로서의 죽음의 임박성, 비싼 집전비, 비반복성, 어린이에 대한 집전의 법적 제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적 치유를 도외시한 영적인 치유사상 등은 오히려 성사 발전에 있어 퇴보를 가져왔다. 성 토마스는 ‘이 성사가 마지막 성사이며, 어떤 의미에서 모든 영적 치유의 완성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이 성사를 통해 영광을 받을 준비를 갖춘다. 여기서 종부성사란 이름이 나왔다. 그 결과 분별없이 모든 병자에게 이 성사를 베풀어서는 안되고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만 주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였다. 이제 이 성사를 권하는 것은 병자가 죽을 것이라는 사형선고로 여겨졌다. 그래서 병자의 친척들은 사제를 부르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었다. 그들은 병자가 의식을 잃거나 혼수상태에 이를 때까지 또는 죽을 때가지 기다림으로써, 잘 “살기”위해 필요했었을 이 성사를 환자로부터 박탈하였다.




   4). 트리엔트 공의회.


   트리엔트 공의회는 개혁자들의 곡해에 반대해서 그것의 성사적 설정(종부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되었고 성 야고보에 의해 결정되었고 선포된 성사이다), 병자들을 위한 영속적 구원(성사의 효과는 병자에게 은총을 베풀고 죄를 용서하며 위로를 주는 것이다), 집전예식의 본질적이며 성서적 합법성(로마교회의 관행은 야고보 사도의 생각에 역행되지는 않는다. 즉 야고보 사도는 죽어 가는 이들에게 도유성사를 주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야고보가 말한 ‘원로들’이란 서품 받은 사제들을 뜻한다. 따라서 사제만이 이 성사의 집전자이다)을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공의회 최종 결의문은 죽음의 극한 고통 중에 있는 병자에게 ‘만’이 아니라 ‘특별히’ 죽음이 임박한 자를 위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 대상이 일반적인 병자와 임종자들에게로 확대 적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효력에 있어서도 죄의 사함과 병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강하게 해줄 뿐 아니라, 영원의 구원을 위하여 유익하다면 ‘때때로’ 육신의 치유(건강)도 이루어 준다는 면도 인정하였다. 또한 반복의 가능성도 인정하여 병자성사에 대한 쇄신되고 심화된 교회적 이해의 갱신의 길을 다시 열어놓았다. 하지만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수정되고 쇄신된 병자성사의 강조점은 답보상태를 면치못하고 그 후 다시 전성기의 스콜라 신학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렇게 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신학자들과 신학저서들, 교회법 학자들과 교회법이 스콜라 신학의 전통적 사상을 유지시켜 왔다.




   5)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반적인 전례쇄신의 일환으로 병자성사의 쇄신과 개정을 촉구했고 올바른 이해의 길을 마련하고자 했다(전례헌장 73-75항). 종전의 ‘종부성사’라는 용어를 ‘병자성사’라는 용어로 변경하는 것에서부터 성사를 받을 대상자, 반복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쇄신을 단행했고 이를 새 병자성사 예식서를 통해 구체화시켰다. 예식서 9항은 병자가 이 성사를 받은 뒤 건강을 회복하였다가 다시 병들었을 경우라든가, 또는 동일한 병세가 계속되다가 중태에 빠지게 되는 경우에는 반복해서 실시할 수 있다고 하며, 10항은 위험한 병 때문에 외과 수술을 받아야 할 때마다 병자는 수술 전에 이 성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11항은 노환으로 말미암아 기력이 많이 쇠진해지는 노인들에게는 병세의 위험성이 목전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이 성사를 줄 수 있다고 하며, 12항은 어린이들에게도 그들이 이 성사로써 힘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이미 이성의 활동을 갖추었을 때에는 병자성사를 줄 수 있다고 한다. 14항에서는 병자들이 비록 의식이나 이성의 활동을 상실하고 있더라도, 의식이 있을 때라면 믿는 마음으로 아마도 병자의 성사를 청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그들에게 성사를 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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