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견디면 여러분의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말씀연구>
상황에 따라서 움직이는 경우가 생깁니다. 평상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가 조그마한 시련이라도 주어진다면 변해 버리고 맙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참고 견디며 변치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터인데 회당과 감옥으로 넘길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 이름 때문에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려갈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회당과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당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사도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 사도는 서른 아홉 대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고, 죽을 뻔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들이 당해야 할 것을 알고 계셨으며 그것을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 두셨습니다.
13 그것은 여러분이 증언할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증언할 기회가 된 것입니다. 사도들을 박해자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증언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셨다가 부활하셨다는 것.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하게 된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기뻐했습니다(사도행전5,41 참조).
제자들의 큰 바람, 열렬한 소망은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박해는 제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증언할 많은 기회를 주었습니다. 법정은 복음의 설교를 위해 마련되었고, 감옥은 교회의 선교 활동을 넓혀 주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스테파노는 산헤드린 앞에 섰고, 바울로는 총독들 앞에 나타나 그리스도와 복음을 그들에게 전하였습니다. 흩어진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각지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그런 박해 상황은 없지만 매 순간 예수님을 증언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가정에서 가족들과 이야기 하다가, 사소한 말다툼이나 오해 속에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직장 안에서, 그리고 운전을 하는 거리에서도…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제가 하겠습니다!”
“먼저 가세요. 양보하겠습니다.”
사도들은 말로 예수님을 증거 하였고, 행동으로 그것이 옳음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나는 말로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지만 행동으로는 예수님을 부정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4 그러니 여러분 마음에 새겨 두시오. 여러분은 변론할 말을 미리 생각하지 마시오. 15 내가 여러분에게 구변과 지혜를 줄 터인데, 여러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지혜에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박해 때에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될 한 가지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법정에서 어떻게 항변할까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법정에 섰을 대에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도록 미리 항변의 말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들에게 언변과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그가 말할 때에 함께 계시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출애4,12).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원수들 앞에서 제자들이 믿음을 고백하고 당신을 증언하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순전히 인간적인 말솜씨와 인간적인 지혜에만 의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전에 야인시대의 김두환씨가 멋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옥중에서도 맞아 가면서 일본에 굽히지 않는 그 모습, 자신의 신념을 어떠한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그 모습.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렇게 박해를 당했습니다. 김두환보다 더 멋진 분들이 바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요, 예수님의 제자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의 변호인이 되시고, 무엇을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신 이 말씀은 교회 역사 안에서 분명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보호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초대 교회의 순교자들은 그것을 믿고 침착하게 박해자들을 대한 반면에,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지레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나는 것뿐입니다.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에서 석총이라는 중이 궁예를 향하여 퍼붓는 독설. “당신은 미륵이 아니오”라는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습니까?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던 석총.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진리와 목숨을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여러분을 넘겨 주고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죽일 것입니다.
17 여러분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초대 교회에서 이벽의 아버지나 이승훈의 아버지가 얼마나 아들의 배교를 위해 노력했습니까?
“네 이놈! 네놈이 창조주를 믿어서 부모와 일가친척이 몰살을 당해도 좋다는 말이냐? 천주학쟁이들은 애미․아비도 몰라본다고 하는데 네가 나라에서 금하는 천주학을 해서 애미․아비가 죽음을 당한다면 그것이 곧 그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너로 인해 이 애비가 벼슬을 잃는다면 그것이 이 아비를 위하는 일이겠느냐? 네 어미가 종으로 끌려가는 것이 네 어미를 위한 행동이겠느냐? 너를 낳아서 길러준 은공은 보답하지 못할망정 적어도 해는 끼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냐? 이놈아! 어떻게 하겠느냐?”
………………………………………….소설 신유박해중 이승훈의 갈등에서…
유다가 그랬던 것처럼 친척과 친지들이 제자들을 적에게 넘기는 일이 일어났고, 지금도 신앙 때문에 가정 안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그런 분들에게 힘을 내라고 해 주시는 말씀인 듯 합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는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경우는 신앙적인 교육을 안 시키는 데서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자녀가 시험 때 성당에 가지 않더라도 부모는 자녀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권하지도 않습니다. 성당에 가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아이들이 성장하면 성당에 다닐까요? 자녀들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하느님께로 가지 못한다면 그들이 영원한 생명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자녀를 박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18 그러나 여러분의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우리 인간들의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그들이 목숨을 잃고 멸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게 하느님 나라를 향에 달려오는 사람들로 보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박해받는 제자들은 원수들의 방자한 무력에 내맡겨지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박해받는 교회를 지켜보시며 당신의 손을 그 위에 뻗으십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는 얼마만큼 예수님께서 우리를 생각해 주시는지 알수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는 신앙 때문에 겪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좋은 결과를 이루게 해 주실 것입니다. 믿고 그분께 의지합시다…
19 여러분이 참고 견디면 여러분의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참고 견딘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먼 미래보다 지금 앞에 당면한 문제들이 나를 힘들게 만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참으로 많은 어려움이 밀려옵니다. 신자들과의 갈등, 그리고 가족들과의 갈등…그런 갈등 속에서 가끔은 이런 분심도 듭니다. “내가 이러면서까지 신앙생활을 해야 하나…좀 쉬었다가 성당 다니면 안될까?…”
이런 마음이 들었던 나에게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굳게 믿고 참고 견디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믿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주변에서 찾아 이야기 해 봅시다.
2. 내 자녀나 가족에게 신앙을 권면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은 어떤 것이며, 그들과의 대화에서 말문이 막혀 버릴 때는 언제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