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 안의 행위- 안수

다른 이의 머리에 손을 얹는 의식은 비록 그 상황이나 중요성에 있어서 서로 다르지만 신․구약성서 그리고 그리스도교 전례에서 가장 흔히 나타나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의식의 근저에 있는 생각은 어떤 힘이나 자질을 전해 준다는 데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축복을 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구약성서. 구약성서에서 축복 외에 다른 것을 전할 목적으로 안수하는 경우는 이스라엘의 죄를 속죄양에게 씌어 내보내는 예에서 보듯(레위 16, 21-22) 단 한 번만 나온다. 죄나 질병 또는 이와 유사한 것을 짐승이나 새와 같은 살아있는 생명체에 전이시켜 사람에게서 제거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레위 14, 4-7: 즈가 5, 5-10에서도 볼 수 있다.
창세 48, 14에서는 축복을 위한 안수가 행해지는데 야곱(이스라엘)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나쎄와 에브라임에게 안수를 통해 축복을 전하고 있다. 성조들의 축복은 주로 다산(多産)과 관계되는데 위의 두 아들도 “땅위에서 번성하고” “많은 민족을 이루리라”는 축복을 받았다.
안수를 통해 축복을 주는 두 번째 예는 모세의 후계자로 지명되는 여호수아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 이 이야기의 전승은 일관되어 있지 않다. 신명 34, 9를 보면 안수의식이 있었음이 증명되는데 여호수아가 지혜의 영을 받은 것은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이전 전승인 민수 27, 18-30을 보면 여호수아는 이미 지혜의 영을 지니고 있었고 안수의식은 다만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장엄하고도 공적으로 선포하는 역할을 한다. 구약성서의 관점에서 성령의 선물은 어떤 외적인 의식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더 일관된 입장이다(신명 31, 14-14: 민수 11, 25참조). 레위 24, 14와 신명 13, 34에서 안수는 이미 성령이 임했음을 증명하는 순전한 제스쳐로 나타난다.
안수를 사용하는 또 다른 예는 희생제물을 바칠 때이다. 이러한 안수는 레위계 문헌에서 asam으로 표현된 속죄제물 이외에 모든 제물에 대해 사용되었다(번제제물, 레위 1,4; 8, 18; 출애 29, 15; 민수 8, 12; 친교제물, 레위4,4.24.29.33; 출애 29,10;민수 8, 12; 2역대 29, 33). 제물을 바칠 때 하는 안수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아주 상이하다. 이에 대해 많은 가정들이 제시되었지만 본문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제물을 봉헌하는 사람이 사제가 그를 위해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에 대해 그 제물이 자기를 위한 것임을 나타내는 표시로 보인다. 안수의식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있었다고 한다.
때때로 안수는 또한 레위인들의 서임예식의 한 부분으로 가정되기도 한다(민수 8, 5-22). 그러나 본문에 안수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하지만 안수가 서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레위인의 임명에 안수가 포함되는 것은 레위인의 임명의 하나의 희생제물의 봉헌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며 위에서 보듯이 속죄제물 외에 다른 모든 제물에 대해서는 안수가 포함되어 있다.
유다이즘. 그리스도의 공생활 시기에 유다이즘의 교의를 보면 신약성서에 나타난 의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두가지 추가된 고대의식의 적용례를 볼 수 있다. 첫째, 안수가 치료(치유)를 위해 사용되었다. 둘째, 안수는 신약성서 시대에 랍비를 임명하는 의식으로 사용되었다. 최초의 연구에 따르면 “벌금을 부과하는 경우를 재판하는” 판관의 임명과 가르치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rsnt)사이에는 구별이 있는데 전자의 경우는 minnui라고 하며 안수의식이 없는데 반해 후자의 경우에는 성전시대와 예수시대에까지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안수가 행해졌다.
만일 안수가 지닌 근원적인 표상을 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안수가 아주 자연스런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인간의 개념에 관한 히브리인 고유의 사고도 관련지워 생각해야 한다. 이스라엘인들은 인간을 영육일체의 존재로 보았다. 따라서 손은 단순히 도구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자아, 특히 자아가 지닌 권능의 연장(확장)이다. ‘손’은 더 나아가 거의 인칭대명사와 상응하게 되었으며 이사 45, 12를 보면 이 인칭대명사를 강조하기 위해 ‘손’이 사용되었다; “이는 나, 나의 손이었다….”
신약성서. 예수는 치유하는 행위 가운데 한결같이 안수를 사용하였다. 또한 사도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르 6, 5; 16, 18; 루가 4, 40; 사도 5, 12; 9, 17등에 예수와 사도들이 치유때 행하는 일상적인 양식이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예수와 사도들이 행한 안수는 꿈란 본문에 예시되어 있다(Genesis Apocryphon). 예수께서 손을 얹어 어린이를 축복하신 일(마르 10, 13-16; 마태 19, 13-15; 루가 18, 15-17)은 구약성서에서부터 계속된 관습이며 또한 신약성서시대에도 증명된다. 루가 24, 50에서 보듯 예수께서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신 일은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이어서 나오는 성령을 보내시리라는 약속과 연결되어 있으며 성령을 선사하는 사도들의 안수의식과 일부 관련을 지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도시대. 성서 문헌 속에서 이미 언급되고 교회 안에서 계속 이어진 안수 행위에 덧붙혀 이 시대에는 안수에 관한 그리스도교 고유의 두 가지 새로운 용도를 보여 준다.
서임의식(Rite of Ordinatino). 유대인 공동체에서 안수를 서임의식에 사용하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교 내의 서임에 안수가 도입된 것은 확실하다. 만일 사도 13,1-3이 단지 의심스런 해석을 줄 뿐이라면 (여기서는 안수 예식이 단지 축복정도만 되어 있다.) 사도 6,1-6; 1디모 4,14; 5,22; 2디모 1,6은 서임을 위한 안수를 명백히 보여준다. 여기서 안수 예식은 바오로 자신에 의해서 행해지거나(1디모 1,6) 디모테오에 의해 행해진다(1디모 5,22). 또한 원로들이 이 의식에 함께 참여한다(1디모 4,14). 서임은 지역 교회에 의한 선출이 있고 나서 이루어졌으며 기도와 서임된 이들이 하는 신앙선서와 함께 행해졌다.
더 복잡한 문제는 이들 의식이 가톨릭 교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단계의 교회적 직무와 관련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바오로에 의한 디모테오의 서임은 주교직무를 위한 서임이며(2디모 1,6) 디모테오가 행한 서임은 사제 직무에 관계되고(1디모 5,22), 사도들에 의한 일곱 사람의 서임은 부제직무를 위한 것이었다(사도 6,1-6). 그러나 원로 제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여러 본문들을(사도 14,22; 디도 1,5) 보면 이 본문들이 항상 원로들을 사제로 생각하고 있는지, 아니면 규율적인 문제에 한하여 지역교회를 주재하는 ‘연장자’정도로 보고 있는지 결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도들을 직접 계승한 제자들의 시대에 επισκοποι, πρεσβυτεροι, διακονοι라는 용어는 세 가지 서열상의 질서를 보여주고 이들 용어에는 단지 규율상의 측면뿐만 아니라 전례적인 권능도 부여되었다. 이 시대에 이들은 위의 세 가지 용어가 지닌 엄정한 의미 그대로 주교며 사제, 그리고 부제들이었다. 그러나 예로니모는 사도 20,17의 (πρεσβυτεροι)를 여전히 ‘연장자(majores natu)’정도로 이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안수는 동․서방 교회 모두에서 보편적으로 서임을 위한 행위로 수용되었다. 더 나아가 안수는 동정녀들의 봉헌 때도 사용되는 경향을 보였는데(R. Metz, 로마교회에서 동정녀들의 봉헌, 파리 1984 참조) 이와같이 전통과 동떨어진 안수의 사용은 곧 폐기되었다. 사제의 서임에서 Porrectio instrumentorum, 즉 사제직에 관한 표상과 수단의 전달이 시간이 경과하면서 대단한 특권을 얻게되었지만 사도좌 회칙 Sacramentum ordinis(1947)는 기도를 동반한 안수를 성품성사 예식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재차 강조하였다.
입문예식(Rites and Initiation). 사도시대에 안수가 새롭게 적용된 또 다른 예는 세례 후 성령의 은사를 부여하는데 있었다. 다소 애매한 본문인 히브 6,1-3은 차치 하고서라도 이와같은 새로운 성사적 예식에 관한 두 개의 뚜렷한 증거가 있는데 사도 8,2-25; 19,1-6이 이를 말해주는 본문들이다. 이들 세 가지 관련된 본문들 외에 신약성서 안에는 이러한 세례 후 예식에 관한 언급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리고 2세기 그리스도교 저자들은 이 문제에 관해 거의 침묵을 지키고 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몇 가지 문제가 야기된다. 안수의식이 그리스도교 입문에 있어서 일상적인 요소인가 아니면 예외적인 요소인가? 안수의식은 세례에 의해 이미 성령은 주어진다는 바오로 신학의 영향과 크리스마 성유로 세례 후 도유를 하는 새로운 의식의 영향으로 인해 자취를 감추었는가? 만일 안수 의식이 세례와 결합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은사를 두 가지로 구분해 왔으며 인호(sphragis)를 성령의 두 번째 은사로 이해해왔다고 보아야 하는가? 만일 이러한 은사를 용인한다면 세례 후에 주어지는 성령의 은사가 지닌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몇몇 학자들은 총체적인 해결을 시도하면서 세례의 의한 은사의 시작과 안수를 각각 전자는 물로 씻음으로써 죄를 사해주는 세례로서, 후자는 하느님의 교회와 백성 가운데로 충만하게 참여케하는 성령의 세례로서 이해하여 서로 구분하였다. 바오로는 이들 두 가지 은사를 결합시켜 세례와 연관지었다. 이후 바오로의 개념은 전반적인 지지를 얻었으며 2세기에 주도적인 학설이 되었다. 바오로의 사상을 동방교회에서 계속 지지를 얻었지만 세례에 따른 성령의 은사는 새롭게 도입된 예식, 즉 크리스마 또는 Myron으로 도유하는 예식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게 되었다. 라틴 교회에서는 은사에 관한 두 가지 구분이 여전히 뚜렷하게 존재했으며 안수가 세례 후 예식으로 다시 부각되었다.
『재세례에 관하여(De Rebaptismate)』의 저자는 바오로 이전의 원시적인 교의에 더 가까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이단들은 세례를 베풀 수는 있으나 안수로써 성령을 부여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치쁘리아노는 이단자에 의해 베풀어진 것은 세례이든, 안수이든 모두 무효하다고 하였다. 스테파노 1세 교황은 이들 두 가지 모두 유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저변에는 안수를 통해 이단자들과 화해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어떤 이들은 1디모 5,22를 근거로 안수가 회개자들과의 재화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지만 근거가 희박하다. 초세기에 있어서 화해를 위한 의식의 역사는 대단히 복잡하다.
현재까지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을 근거로 몇 가지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교회의 탄생시기에는 세례를 통한 은사와 성령의 은사 사이에는 뚜렷한 구분이 있었다. 이 두 번째 은사는 항상 같은 방식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아무런 의식도 없이, 또 어떤 때는 안수에 의해 주어졌다. 이 경우 세례를 받는 그 순간에 안수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교의 입문이 복잡한 과정임을 인식했던 것 같다. 따라서 비록 안수가 행해지고 있었지만 이 의식에 대해 명시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바오로와 그의 제자들은 안수의식을 입문 과정에 결합시켰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 두 가지 은사를 구분했으며 이 구분에 의해 인호라는 말을 성령의 특별한 은사로 유보할 수 있었다. 이후에 이 용어는 세례 후에 받는 은사를 지칭하게 되었다.
교회가 이러한 구분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만 그리스 교회가 세례시 크리스마 성유로 도유하는 예식을 도입하여 다른 무엇보다 이 예식을 강조하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초세기에는 세례 후 행하는 안수에 관한 언급이 빈번하지 않지만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주요 인물들(아타나시오, 치릴로)은 이에 관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몇몇 후기 그리스 저자들은 “크리스마” 대신에 “안수”로 환원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인 변화가 도입되었다는 증거는 볼 수 없다. 다만 이들이 안수에 강조를 둔 것은 사도행전이나 히브리서를 주석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스 교회의 이들 저자들에 비해 라틴 교회의 저자들은 세례 후에 행하는 안수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세례 후에 받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 일치된 견해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세례시의 은사와 세례 후에 받는 은사 사이의 구별을 더욱 부각시켰다. 오늘날 라틴 교회 예식에서 안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 Decretum Pro Armenis, 그리고 교회법전에 따라 견진성사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견지성사는 안수하는 고대의 예식을 대체 시켰거나 동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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