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대를 무엇과 비교할까?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과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을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기들 멋대로 하려는 아이들, 자기가 좋은 것만 하려는 아이들, 자기 중심적으로 놀려고 하는 아이들. 그들이 바로 유다인들이었습니다.
16 “이 세대를 무엇과 비교할까? 장터에 앉아 다른 아이들에게 소리지르는 어린이들과 같습니다.
17 그들은 ‘너희를 상대로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다. 우리가 통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길거리에서 노는 아이들은 변덕스럽고 기분에 따라 움직이며 예측할 수 없는 럭비공과도 같이 뛰어 놉니다.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즐거운 가락을 연주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흥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울한 곡조와 장송곡을 불러 보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여전히 냉담한 태도를 보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만 하려고 하는 아이들. 함께 놀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있다면 잔치집 놀이 할 사아이들 따로 모여 놀고, 초상집 놀이 할 아이들 따로 모여서 노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말씀 안으로 초대를 하십니다. 구원하시기 위함을 모르는 유다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의미를 설명하십니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귀신들렸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19 인자가 와서는 먹고 마시니까 ‘보아라,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로구나’ 하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요한은 아주 엄격한 속죄의 생활을 하였기에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미쳤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요한은 그들의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그들을 즐겁게 해 줄 수도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지도 않았으므로 그를 서슴없이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버림받은 이들,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기를 꺼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너무 세속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가끔 열심한 사람들이 매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 너만 혼자 잘나서 그려냐? 신부님께 아부하려고 그러냐? 그렇게 하면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시간 많이 남아서 신앙생활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돈이 너무도 많이 남아서 교무금 내고 헌금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자기가 내지 않으려고 하니 남도 내지 못하게 하는 듯 합니다. 자기가 기도하지 않으려고 하니 남도 못하게 하는 듯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행한 일로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뭐라 해도, 자신들의 잣대에 맞춘다 하더라도 그릇된 것은 그릇된 것으로 판명날 것입니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이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요한을 엄한 속죄의 설교가로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기쁨의 전달자로, 천상의 신랑으로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들을 귀가 있고 볼 눈이 있는 사람들,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감각과 느낌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하느님의 일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과 예수님의 행적을 볼 수만 있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가르침과 요한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볼 눈이 없는 사람이 그릇된 해석으로 많은 이들을 현혹시킵니다. 오늘도 우리들 곁에서 말입니다. 어쩌면 그가 바로 나 일수도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삶, 행위)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초대하시는 놀이는 무엇입니까?
2. 나는 옳다고 우기며 내기까지 하다가 혹시 내가 틀린 적은 없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