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이름은 요한

 

아기 이름은 요한


<말씀연구>


57  엘리사벳은 해산할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58  그의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당신의 자비를 크게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서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아이를 낳지 못하던 여인이 아이를 낳았을 때, 그 기쁨은 얼마나 클까요?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아닐까요? 엘리사벳은 이웃과 친척들과 함께 기뻐합니다.


그런데 아이 못 낳은 여인의 고통을 생각해 봅니다.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이곳 저곳을 다녀 보았지만 결국 아이를 낳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점쟁이가 이렇게 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하여 그렇게 하였지만 결국 아이를 낳지 못하였고, 급기야는 미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고통은 본인 스스로부터도 있었겠지만 주변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을 주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향한 자기 욕심의 분출, 그것은 바로 고통입니다.




59  여드레가 되던 날 그들은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러 왔는데,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가리야라고 부르고자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여드레만에 아이에게 할례를 베풀었습니다(창세17,12,21;4;레위12,3). 이 날의 예절은 사제의 권리가 아니었고, 어떤 이스라엘 사람도, 또 여자라도 집행할 수가 있었습니다(마카베오 상1,60; 마카베오 하6,10). 할례는 즈가리야의 집에서 이루어졌고, 엘리사벳도 그 곳에 있었습니다. 율법을 따르면(레위12,4) 여인은 산후 40일 동안 집 밖으로 나다닐 수 없었습니다.


할례는 하느님과 맺는 계약의 표시였기 때문에 어린이가 뽑힌 백성의 한 사람이 되는 이 날 새로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지어 주는 것도 유다 관습을 어기는 일이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주려고 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버지 즈가리야가 말을 못하는 주변 사람들이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것 같습니다. 좌우지간 사람들은 아기의 이름을 즈가리야라고 지으려고 합니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대답하기를 “안됩니다. 아기는 요한이라 불러야 합니다” 하였다.


아들의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아버지의 권리였습니다. 말을 못하는 즈가리야였지만 아내 엘리사벳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할멈! 아이 이름은 요한으로 하라구 했어…”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문득 간섭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 일이 아니면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막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리 말못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권위를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를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존중 받고 싶습니다. 아무리 보잘것 없어도…




61  그러자 그들은 “당신 친척들 가운데 그런 이름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면서


62  아기 아버지에게 (손짓으로) 시늉하여 아기를 어떻게 부르고자 하는지 물었다.


“아이 이름은 요한으로 할꺼유…”엘리사벳의 행동. 이것은 그들이 보기에 아버지의 권리를 침해했고(자기들이 먼저 침해했는데), 또 아들 이름은 친척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는 관습에도 어긋났습니다. 좌우지간 그들은 요한이라는 이름을 못마땅해 합니다. 자신들이 지어준 이름이 선택되지 않아서일까요? 그렇다고 말 못하는 아버지를 붙들고 이야기 하고 있으니…




63  이에 즈가리야가 작은 칠판을 청하여 “아기 이름은 요한이다”  라고 쓰니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아기 이름은 요한” 천사가 일러준 이름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부이며,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은 엘리사벳과 즈가리야. 그들은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입니다.




64  바로 이 때 즈가리야는 그 입이 열리고 그 혀가 풀려서 말을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하느님의 뜻을 의심한 즈가리야.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실현했을 때야 비로소 벌로 받게 된 것이 풀리게 됩니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 까요? 얼마나 아들 요한이 원망스러웠을까요? 하지만 즈가리야는 기뻤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찬양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느님을 찬미하다가 조금이라도 서운하면 등을 돌리는 저 자신이기에 즈가리야의 모습은 존경스럽게만 보입니다.


내 입이 열려서 하느님을 찬양했으면 합니다. 남을 험담하고, 욕하고, 이간질하고, 상처주던 입으로 이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으면 합니다.




65  그러자 그 이웃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했고, 이 모든 일은 온 유대 산골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까?” 하고 말하였다. 과연 주님의 손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다.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큰일을 해 주셨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나와 늘 함께 계시다는 것을.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나 내 주변의 신앙인들의 모습을 생각하고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아기 이름을 지을 때 먼저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아기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나눠 봅시다.




2.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 집니다. “아기 이름은 요한!” 오늘 이 장면을 묵상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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