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는…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다는 것. 참 어렵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하느님 나라를 말씀하시는데…예수님도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단들 우리가 얼마나 알아듣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비유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26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 놓았다.


씨는 이미 뿌려져 있습니다. 이제 주목해야 할 것은 씨가 아니라 씨의 성장입니다.




27  하루 하루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모른다.


씨 뿌리는 사람의 구실은 희미하기만 합니다. 자기 일을 끝내자 그는 씨의 성장에 간섭하려 들지 않고 나날의 일상생활로 돌아갔습니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알찬 낟알이 맺힌다.


땅이 활동하여 씨를 싹트게 합니다. 목마른 싹을 비가 적셔주고, 태양이 비추어 자라게 하고, 달빛으로 쉬게 합니다. 바람이 시원하게 만들어 주고 구름이 해를 가져 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열매를 맺게 됩니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추수 때가 된 줄을 알고 곧 낫을 댄다.”


씨 뿌리는 사람은 씨에게 이렇게 자라고, 열매 맺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땅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비와 구름과 햇살과 바람으로 도와줍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씨에게 맡깁니다.


한 번 뿌려진 씨가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독특한 에너지로서 혼자 성장하듯이 하느님 나라도 한 번 세워지면 완성하기까지 스스로 발전해 갈 충분한 내재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맡겨만 두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끊임없이 보이지 않게 활동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간섭하지는 않으십니다. 완전한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십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씨는 싹이 트고 자라면서 조금의 갈증도 견딜 줄 알아야 하고, 더위도, 추위도, 바람의 흔들림도 견딜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시들거나 말라비틀어지거나 쭉정이만 열매 맺게 됩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는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씨와도 같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30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를 무엇에 견주며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또 고민하십니다. 어떻게 견주어서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겨자씨에 비유해 주십니다.




31  그것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더욱 작은 것이지만


32  심어 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


겨자씨는 몹시 작은 씨입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3-4미터로 자라기도 합니다. 겨자씨를 좋아하는 작은 여러 가지 새들이 그 가지에 모여 듭니다. 새들이 둥지를 만들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머물려고 옵니다.


땅에 떨어진 겨자씨는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신비스러울 만큼 성장하는 것과 같이, 처음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하느님 나라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발전을 할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일치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커다란 교회를 이룹니다. 세상의 가톨릭 신자들을 생각해 본다면 겨자씨의 비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닙니다. 나 하나는 보잘것없지만 나 같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서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내 신앙이 지금은 보잘것없지만 서서히 자라나 언젠가는 예비자들과 초심자들이 내 안에 깃들 정도로, 나에게 신앙을 배우고, 도움을 청할 정도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33  예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비유로써 말씀을 전하셨다.


34  그들에게는 이렇게 비유로만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에게는 따로 일일이 그 뜻을 풀이해 주셨다.


그릇이 되는 만큼 줄 수 있습니다. 1리터의 그릇에는 많아야 1리터의 기름을 담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상황은 다릅니다. 제자들은 많은 기름을 담아 세상 사람들에게 퍼 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릇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는 따로 일일이 그 뜻을 풀이해 주시는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하느님 나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한번 씩 설명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스스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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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씨앗을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앗은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모른다.>

    해마다 해동 할때쯤이면 화단이나 나무들을 유심히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 모진 추위에도 어김없이 준비를 하고 있다가
    죽은듯이 황량하던 대지를 뚫고 혹은 나무결 사이로 파아란 움이 트는 것입니다.
    사계절 모두를 다 좋아 하지만
    졸업시즌이 지나고 입학이 시작되는 삼월경이면 하느님의 오묘하신
    섭리에 신비로움으로 마음이 현란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일년중 이시기가 가장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무엇이나 시기가 있습니다.
    파종할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습니다.
    전업농가였던 우리집…아버지께서는 곡식은 물론이며
    채소들 까지도 이듬해 파종할 씨앗을 종자로 보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녀시절 기억으로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 조그마한 파 씨에서 어김없이 파가 나오고
    눈으로는 구분이 되지 않는 무우씨나 배추씨가 파종을 하고 싹이 트면
    그 속성이 여실히 드러 난다는 것입니다.

    해마다 하시는 반복되는 일이었습니다. 늘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이
    어느날 너무도 신기하고 놀랍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화단에서 화초가 싹이 틀때와 꽃봉오리를 맺어 꽃을피울때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그리고 그에 합당한 색을 꽃피우는지
    어디서 그러한 색채가 나오는지 놀랍고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때로는 개미들이 줄지어 어디론가 행진하는 것을 보며 또다시 놀랍니다
    그들 나름대로는 무엇인가 목적을 가지고 가는지는 모르겠으나
    평소에 보이지 않던 개미들이 오징어 부스러기라도 떨어져 있으면
    떼를 지어 몰려있는 것을 보며 하찮은 미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그들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아주 미세한 씨앗을 볼때나 작은 개미의 분주한 움직임을 골똘히 보면서
    생각합니다.

    -아! 우리의 힘으로는 저 작은 것 하나도 생명을 부어 넣어 줄 수 없구나…..

    눈으로 보아서는 그저 하나의 작은 점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파 씨에서
    뿌리가 내리고 파아란 파를 틔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 자연스러운일이 어찌 놀라운일이 아닐 수 있을까?

    아버지께서는 종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거둘 수 없음을 잘 아시기 때문에
    곡식이나 채소를 거두시며 소중하게 파종할 종자를 보관하십니다.
    혹시 종자가 없으시면 장에 가시어 사다가 뿌리십니다.

    뿌리는 일이야 농부가 할 수 있지만 기르는 것은 그냥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콩을 경작하고 싶으면 콩을 뿌리고 쌀을 얻고 싶으면 볍씨를 뿌립니다.
    붉은 꽃을 보고 싶으면 붉은 꽃모종이 있어야 하고
    장미를 보고싶으면 장미꽃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는 심고 뿌릴뿐 그 속성은 그냥 지니고 있는 것
    우리가 어찌하지 못합니다.

    하느님나라에 대해서 어찌 우리가 말로 다 할수 있겠습니까?
    물고기가 육지의 생활을 상상도 하지 못하듯
    우리도 하느님 나라를 잘 알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오묘하고 신비로운 일로 가득한
    이 모든것을 보며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저 머리를 조아릴 뿐입니다.

    미약한 피조물이 하느님을 이해 하려는 것 자체가 교만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이 신비로움을 우리에게 알리시려니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우셨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주 하느님 아침 하늘이 새날을 알리고 모든 피조물이 주께 찬미의 노래를 올리나이다.–
    아멘

    211.42.85.34 아만도: 저희는 이제 몸과 마음을 모아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아멘 [01/30-09:19]

  2. user#0 님의 말:

    <씨앗을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앗은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모른다.>

    해마다 해동 할때쯤이면 화단이나 나무들을 유심히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 모진 추위에도 어김없이 준비를 하고 있다가
    죽은듯이 황량하던 대지를 뚫고 혹은 나무결 사이로 파아란 움이 트는 것입니다.
    사계절 모두를 다 좋아 하지만
    졸업시즌이 지나고 입학이 시작되는 삼월경이면 하느님의 오묘하신
    섭리에 신비로움으로 마음이 현란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일년중 이시기가 가장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무엇이나 시기가 있습니다.
    파종할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습니다.
    전업농가였던 우리집…아버지께서는 곡식은 물론이며
    채소들 까지도 이듬해 파종할 씨앗을 종자로 보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녀시절 기억으로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 조그마한 파 씨에서 어김없이 파가 나오고
    눈으로는 구분이 되지 않는 무우씨나 배추씨가 파종을 하고 싹이 트면
    그 속성이 여실히 드러 난다는 것입니다.

    해마다 하시는 반복되는 일이었습니다. 늘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이
    어느날 너무도 신기하고 놀랍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화단에서 화초가 싹이 틀때와 꽃봉오리를 맺어 꽃을피울때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그리고 그에 합당한 색을 꽃피우는지
    어디서 그러한 색채가 나오는지 놀랍고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때로는 개미들이 줄지어 어디론가 행진하는 것을 보며 또다시 놀랍니다
    그들 나름대로는 무엇인가 목적을 가지고 가는지는 모르겠으나
    평소에 보이지 않던 개미들이 오징어 부스러기라도 떨어져 있으면
    떼를 지어 몰려있는 것을 보며 하찮은 미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그들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아주 미세한 씨앗을 볼때나 작은 개미의 분주한 움직임을 골똘히 보면서
    생각합니다.

    -아! 우리의 힘으로는 저 작은 것 하나도 생명을 부어 넣어 줄 수 없구나…..

    눈으로 보아서는 그저 하나의 작은 점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파 씨에서
    뿌리가 내리고 파아란 파를 틔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 자연스러운일이 어찌 놀라운일이 아닐 수 있을까?

    아버지께서는 종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거둘 수 없음을 잘 아시기 때문에
    곡식이나 채소를 거두시며 소중하게 파종할 종자를 보관하십니다.
    혹시 종자가 없으시면 장에 가시어 사다가 뿌리십니다.

    뿌리는 일이야 농부가 할 수 있지만 기르는 것은 그냥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콩을 경작하고 싶으면 콩을 뿌리고 쌀을 얻고 싶으면 볍씨를 뿌립니다.
    붉은 꽃을 보고 싶으면 붉은 꽃모종이 있어야 하고
    장미를 보고싶으면 장미꽃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는 심고 뿌릴뿐 그 속성은 그냥 지니고 있는 것
    우리가 어찌하지 못합니다.

    하느님나라에 대해서 어찌 우리가 말로 다 할수 있겠습니까?
    물고기가 육지의 생활을 상상도 하지 못하듯
    우리도 하느님 나라를 잘 알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오묘하고 신비로운 일로 가득한
    이 모든것을 보며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저 머리를 조아릴 뿐입니다.

    미약한 피조물이 하느님을 이해 하려는 것 자체가 교만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이 신비로움을 우리에게 알리시려니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우셨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주 하느님 아침 하늘이 새날을 알리고 모든 피조물이 주께 찬미의 노래를 올리나이다.–
    아멘

    211.42.85.34 아만도: 저희는 이제 몸과 마음을 모아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아멘 [01/3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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