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의 마리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만 해도 마리아를 교의와는 동떨어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거나 지나치게 과장하며 표현함으로써 신학과는 동떨어진 어떤 하나의 독립되고 폐쇄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서론부인 52항에서 마리아와 그리스도와의 연결을 개략적으로 논하고 있다. 공의회는 “사도 바울로의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하여, 하느님께서는 인류의 보편적 구원을 위한 당신의 계획을 완성하기 위하여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셨음을 밝히면서,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신조로 명확히 신앙고백을 나타내어,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 안에서의 구원의 신비를 밝혀 놓았다.1) 그리고 구원을 이룩하기 위하여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파견되는 하느님의 아들이 나자렛 동정녀 마리아의 이 구원계획 수락(Fiat)으로 성신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어 탄생하셨음을 고백함으로써, 마리아와 그리스도와의 직접적 일치를 밝혀 놓았다.”2) 즉, 공의회는 ‘신비체의 머리인 그리스도’를 낳은 마리아의 신적모성의 위치와 아들과의 긴밀한 일치는 그리스도의 강생의 질서 안에서 드러남을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마리아의 위치와 역할을 성서에 근거하여3) 보다 상세히 다루고 있는 부분은 교회헌장 8장의 제2부인 ‘구원계획 안에서의 성모의 역할’ 55-59항이다. 55항에서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의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성부의 구원계획에 의해 구약에서 이미 예언된 마리아를 다루고 있으며4), 56항에서는 ‘예수 탄생 수태예고 때의 마리아’, 57-59항에서는 각각 ‘성 마리아와 예수’, ‘예수의 공생활 안에 마리아’, ‘예수 승천 후의 마리아’ 라는 제목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안의 마리아를 밝혀 나가고 있다.
4.1. 구세주의 어머니
우리는 구세주의 어머니를 교회헌장 56항5)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오랜 그리스도교적 신앙고백문들은 한결같이 마리아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라고 선포했다.6) “교회의 반성이 우리 구세주 예수의 하느님의 아들 됨과, 인성과 신성이라는 본성의 이원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적 위격의 단일성에 대한 점점 더 명시적인 의식과 표현에 도달했을 때, 거기에 따라서 교회의 믿음과 정신 안에는 처음부터 예수의 어머니, 이 신인(神人)의 어머니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임이 확실해졌다.7) 그리고 실지로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친임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대하게 이미 교의로 선포되었다.”8) 제2차 바티칸공의회 역시 교회 53항과 교회 56항에서 이 가르침을 재확인하고 있다.
공의회는 교회 56항에서 ‘예수 탄생 수태예고 때의 마리아’라는 제목 아래,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것임을 마리아에게 미리 알리는 성모영보와 여기에 대한 마리아의 자유로운 순명과 응답 그리고 교부들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그 순명과 응답이 바로 인류에게 구원의 생명을 가져왔음을 밝히고 있다.
공의회는 제일 먼저 구원의 주인공이신 성부를 등장시킨다. 성부는 영원으로부터 자유로운 명으로 구원을 주도하시어 인류에게는 구세주를, 그리고 구세주에게는 인류로부터 간택된 어머니를 주시려는 뜻을 두시어 인류와 혈육을 같이하고 공동운명을 지닌 ‘말씀’의 육신을 낳아 그로 하여금 인류의 구원사업을 이루게 하셨다.9)
구세사 안에서의 하느님의 활동은 다른 곳에서처럼 여기서도 인간의 자유를 무시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확실히 하느님 손 안에 있는 도구이다. 그러나 그녀는 죽은 도구가 아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마리아와 자유롭게 인격적으로 이야기하고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그녀의 응답을 기다린다.10) 그래서 ‘성모영보(annunciatio)’가 있게 된 것이다. “성모영보(루가 1,26-38)는 마리아를 연구하는 교회사상의 우선적인 자료이다. 신학과 주석을 비롯하여 전례까지도 마리아의 신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것을 원초적으로 또 규범적으로 가장 중요함을 지적하고 있다.”11)
마리아는 <하느님의 명을 받은 천사로부터 ‘은총이 가득하시다’(루가 1,28)는 인사를 받으셨고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루가 1,38)하고 대답하셨다>(교회 56) 공의회가 인용한 루가의 성모영보 사화는 예수에 대한 마리아의 육체적 모성의 사실들을 헤아리며 그리스도의 육체적 사건의 결과로서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루가는 마리아가 직접 행한 순명의 응답을 직접 우리에게 말하면서, 신앙 안에서 이 순명의 동의를 통하여 여인들 중의 복된 자가 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12)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마리아는 일차적으로 그녀의 절대적인 신앙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모친이 되었고 그 다음에 비로소 육체적으로 모친이 되었다는 사실이다.13) 이 사실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교회의 교부들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성 아우구스띠노는 이렇게 말한다 : 복되신 마리아 자신은 믿음으로 잉태하신 분을 믿음으로 출산하였다. 왜냐하면 성자를 그녀에게 맡기자. 이루어질 것으로 믿어 ‘성신께서 감싸주시리라’는 천사의 응답을 수락하셨기 때문이다. 천사가 이 말을 할 때에 그녀는 신앙으로 가득 차서 그리스도를 태중에 잉태하기 이전에 영신으로 잉태하여,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Fiat mihi secundum verbum tuum)’라고 응답하였다.”14) 성 대 레오 교황도 이 확언을 받아 이렇게 가르쳤다.:“다윗 왕가의 혈통을 받은 동정녀가 간택되었다. 거룩한 잉태로 출산해야 하는 그녀는 육신으로 보다 영신으로 먼저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아들을 잉태하셨다.”15) 그리고 이렇게 한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질서 안에서 신적모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성모영보 때의 마리아의 의식적이고 자유로운 동의 응답의 결과는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는데 하나는, 강생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질서 안에서의 신적모성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서 설명한 대로이다. 또 하나는 마리아의 완전한 봉헌이다. <아드님의 인격과 사업에 당신 자신 주님의 종이 되어> 신앙의 순종으로 승낙하여 인류구원에 협력하셨다. 공의회는 이것을 명확한 단어와 문장으로 밝혀 놓고 있다.:<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받아들이시고 당신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서 당신 아드님의 인격과 사명에 온전히 바치셨다.>(교회 56) 「주님의 여종으로서」 「아드님의 인격과 사업에 바치신 분」이라는 말마디는 중요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탄생 수태예고 때에 이 구원신비의 진가와 아드님의 공적사명(公的使命)의 첫 순간부터 마리아의 적극적 개입을 지시해 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리아 자신의 완전한 봉헌으로 마리아는 인류구원의 협력자가 되었다. 공의회는 구원의 역사에 영향을 준 마리아의 적극적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성 이레네우스의 말을 인용하여 마리아가 아들의 구원사업에 협력하셨다는 뜻으로 ‘구원의 원인’이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16) 이제부터 마리아의 길은 「혼자」가 아니고 「함께」 그리고 「밑에서」 라는 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그녀는 주님의 종으로서,17) 하느님의 은총을 드러내심으로 인류에게 적극적으로 봉사하신 것이다.18)
그리고 공의회는 예수 탄생 수태예고 안에서 인류 구원사업에 협력한 마리아의 역할을 제시해 주는 구체적인 네 가지 중요한 증거를 보이고 있다. 공의회 문헌에 따라 이를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⑴ <마리아는 이레네오의 말씀대로 순명함으로써 자신과 인류 전체를 위한 구원의 원인이 되셨다.>19) 여기에 대해서는 앞서 설명한대로 이다.
⑵ <그러기에 적지 않은 옛 교부들이 설교 중에 이레네오와 함께 ‘에바의 불순명이 묶어 놓은 매듭을 마리아의 순명이 풀어 주었고, 처녀 에바가 불신으로 맺어 놓은 것을 동정 마리아가 믿음으로 풀어 주었다’고 즐겨 주장하였다.>20)
실제로 하와는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명을 어겼다. 하느님께서는 그 열매를 먹는 사람들에게 벌을 명하였다. 그러나 하와는 거짓말로써 유혹하는 뱀의 말을 믿었다. 반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계획을 예고하는 천사의 말을 믿었고 주의 겸손한 종으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였다.”21) 그리하여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류는 죄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⑶ <에바와 비교하여 마리아를 ‘산 사람들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하와의 모성은 육체적 모성이나 마리아의 모성은 초자연적 생명의 질서 안에서 갖는 영적모성이다.
⑷ <가끔 ‘에바를 통하여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하여 생명이 왔다’고 주장한다.>
이상 교부들의 4가지의 증언을 통하여 공의회는 마리아의 신적모성과 구원역사 안에서 그녀의 적극적 역할을 명백히 하고 있다. 교부들의 증언내용은 하와는 죄를 지음으로써 그 죄를 후손에게 전하는 죽음의 원인이 되었고, 하느님의 명에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멸망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영적 죽음과 육신의 부패를 가져오게 했지만, 이와는 반대로 마리아는 자유로운 순종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아가는 영적모성의 원인이 되어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가져다주게 되었다. 따라서 마리아는 은총의 원천이신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 협력하시어 죽음을 생명으로 옮기는데 기여한 것이다.22)
4.2. 구세주의 협력자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의 마리아를 다루면서, 앞서 56항에서 언급된 자유로운 신앙 안에서 발휘된 응답인 ‘예’(Fiat)의 구원적 연장(延長)에 대해 57-59항에 걸쳐서 다루고 있다.23) 그리고 그 정점은 58항에서 다루는 십자 정사(釘死) 밑에선 마리아이다. 예수의 일생 동안 아들의 구원 사업에 함께 협력한 마리아의 역할에 대해서 유아기(57항), 공생활(58항), 승천후(59항)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모두 10번에 걸쳐 성서구절이 인용되고 있어 성서와 성전에 기초한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의 마리아의 위치와 역할을 확립하고자 하는 공의회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24)
지금부터 우리는 구세주의 협력자로서 마리아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58항25)에서 일생 동안 펼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이 그 한 곳에로 모여 정점을 이루는 십자가의 죽음에서의 마리아의 역할과 일치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58항에서는 예수의 공생활 동안의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일치를 3가지로 나누어 언급하고 있다.
첫째, 「시초부터」(in initio) 예수의 공생활과의 일치가 뚜렷이 나타난다. 공의회의 의도를 간결하게 표현하는 말은 「동정심을 억제하지 못하고」와 「전구로써」란 말이다. 「동정심」과 「전구」라는 이 말은 마리아의 모성의 마음과 아들에 대한 그녀의 특권의 발로이다.
둘째, 「설교하시는 동안에」 마리아가 군중 가운데서 아드님의 설교에 참여한 것은 바로 예수의 구원사업에 있어서 마리아와 아드님 예수와의 긴밀한 일치를 나타내고 있는 장면이다. 「설교 과정에 있어서는 성자께서 천국은 혈육의 인연을 초월하는 것이므로 성모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듣고 지키는 사람은(루가 2,19.15) 복되다고 선언하시는(마르 3,35; 루가 11,27-28) 그 말씀을 충실히 받아들이셨다.」 공의회가 여기서 제시한 루가 11,2826)은 예수께서 마리아를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하신 말씀도 아니오, 마리아를 꾸짖고자 하신 말씀도 아니다. 앞서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그녀는 신앙의 응답을 발하여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충실히 행한 이로서 그 복됨의 첫 참여자이고 모델이다. 이렇게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자신의 전 나그네 생활 동안에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것을 잘 간직하고, 그 가르침에 잘 순종하여 신앙의 나그네 길을 걸으신 분이다.27)
셋째, 「십자 정사(釘死)에 이르기까지 아드님과의 일치를 충실히 보존하셨다」는 문구로 마리아가 골고타의 십자가 아래 서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공의회는 마리아의 행위를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의 협력의 하나로 간주하고 또 이런 정신에 따라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서 계셨다는 사실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다.
“마리아가 십자가 밑에 서 계셨다는 것은 구세주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생애 중에 가정 중요한 「때」였다. 가나의 혼인잔치 때에 예수는 마리아에게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고 말씀하셨는데 십자가 상에서 예수의 「때」가 왔던 것이고 그것은 동시에 마리아의 「때」였다. 공의회가 그리스도의 공생활 중에 드러나 마리아의 협력, 일치에 관해서 언급할 때 가나안의 혼인잔치를 맨 먼저 기록하고 있는 것도 이것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28)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마리아의 협력’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있어서 두 사람의 동등한 협력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마리아가 특수한 방법으로 협력한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시며 우리와 하느님과의 화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리아의 협력은 그리스도 자신이 어머니의 공적을 자신의 구속공로에 합쳐서 아버지께 바치신 것이다. 여기에 ‘협력자 마리아’의 참 뜻이 있다. 마리아의 공적과 그리스도의 공적은 동등한 것이 아니며 마리아의 공적은 그리스도의 공적에 의해서만 효력을 갖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공적 없이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29)
따라서 마리아의 협력은 그리스도 구원사업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에 대한 사랑과 고통에 찬 마음의 일치이다. 그래서 <거기서 성모는 당신 외 아드님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셨고,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써 함께 바치셨으며 당신이 낳으신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셨다.>
그리고 십자가 아래 서 계신 마리아의 일치, 협력은 골고타 십자가의 희생에 대한 완전한 일치 행위로서 하느님께서 마리아께 요구하신 것이다. 또한 이것은 영보 때 발한 ‘Fiat’이 절정에 달한 것이다.30) 그 때문에 공의회는 「섭리대로」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이 계획에 동의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부활과 중재의 공적에 우리를 결합시킨 것이다.31)
끝으로 공의회는 예수의 공생활 동안의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일치를 3가지로 나누어 언급한 뒤, 58항 끝에서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란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써 마리아가 제자의 어머니가 되신 것을 밝히고 있다. 공의회가 이 문구의 각주에서 비오 12세의 「그리스도와 신비체」32)회칙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마리아의 영적모성 즉,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신적모성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여겨진다.33)
이제 우리는 이 끝부분에서도 미약하게 나마 언급하고 있는 마리아와 교회의 관계성을 다음 장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4.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의 마리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만 해도 마리아를 교의와는 동떨어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거나 지나치게 과장하며 표현함으로써 신학과는 동떨어진 어떤 하나의 독립되고 폐쇄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서론부인 52항에서 마리아와 그리스도와의 연결을 개략적으로 논하고 있다. 공의회는 “사도 바울로의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하여, 하느님께서는 인류의 보편적 구원을 위한 당신의 계획을 완성하기 위하여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셨음을 밝히면서,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신조로 명확히 신앙고백을 나타내어,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 안에서의 구원의 신비를 밝혀 놓았다.1) 그리고 구원을 이룩하기 위하여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파견되는 하느님의 아들이 나자렛 동정녀 마리아의 이 구원계획 수락(Fiat)으로 성신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어 탄생하셨음을 고백함으로써, 마리아와 그리스도와의 직접적 일치를 밝혀 놓았다.”2) 즉, 공의회는 ‘신비체의 머리인 그리스도’를 낳은 마리아의 신적모성의 위치와 아들과의 긴밀한 일치는 그리스도의 강생의 질서 안에서 드러남을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마리아의 위치와 역할을 성서에 근거하여3) 보다 상세히 다루고 있는 부분은 교회헌장 8장의 제2부인 ‘구원계획 안에서의 성모의 역할’ 55-59항이다. 55항에서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의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성부의 구원계획에 의해 구약에서 이미 예언된 마리아를 다루고 있으며4), 56항에서는 ‘예수 탄생 수태예고 때의 마리아’, 57-59항에서는 각각 ‘성 마리아와 예수’, ‘예수의 공생활 안에 마리아’, ‘예수 승천 후의 마리아’ 라는 제목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안의 마리아를 밝혀 나가고 있다.
4.1. 구세주의 어머니
우리는 구세주의 어머니를 교회헌장 56항5)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오랜 그리스도교적 신앙고백문들은 한결같이 마리아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라고 선포했다.6) “교회의 반성이 우리 구세주 예수의 하느님의 아들 됨과, 인성과 신성이라는 본성의 이원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적 위격의 단일성에 대한 점점 더 명시적인 의식과 표현에 도달했을 때, 거기에 따라서 교회의 믿음과 정신 안에는 처음부터 예수의 어머니, 이 신인(神人)의 어머니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임이 확실해졌다.7) 그리고 실지로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친임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대하게 이미 교의로 선포되었다.”8) 제2차 바티칸공의회 역시 교회 53항과 교회 56항에서 이 가르침을 재확인하고 있다.
공의회는 교회 56항에서 ‘예수 탄생 수태예고 때의 마리아’라는 제목 아래,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것임을 마리아에게 미리 알리는 성모영보와 여기에 대한 마리아의 자유로운 순명과 응답 그리고 교부들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그 순명과 응답이 바로 인류에게 구원의 생명을 가져왔음을 밝히고 있다.
공의회는 제일 먼저 구원의 주인공이신 성부를 등장시킨다. 성부는 영원으로부터 자유로운 명으로 구원을 주도하시어 인류에게는 구세주를, 그리고 구세주에게는 인류로부터 간택된 어머니를 주시려는 뜻을 두시어 인류와 혈육을 같이하고 공동운명을 지닌 ‘말씀’의 육신을 낳아 그로 하여금 인류의 구원사업을 이루게 하셨다.9)
구세사 안에서의 하느님의 활동은 다른 곳에서처럼 여기서도 인간의 자유를 무시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확실히 하느님 손 안에 있는 도구이다. 그러나 그녀는 죽은 도구가 아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마리아와 자유롭게 인격적으로 이야기하고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그녀의 응답을 기다린다.10) 그래서 ‘성모영보(annunciatio)’가 있게 된 것이다. “성모영보(루가 1,26-38)는 마리아를 연구하는 교회사상의 우선적인 자료이다. 신학과 주석을 비롯하여 전례까지도 마리아의 신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것을 원초적으로 또 규범적으로 가장 중요함을 지적하고 있다.”11)
마리아는 <하느님의 명을 받은 천사로부터 ‘은총이 가득하시다’(루가 1,28)는 인사를 받으셨고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루가 1,38)하고 대답하셨다>(교회 56) 공의회가 인용한 루가의 성모영보 사화는 예수에 대한 마리아의 육체적 모성의 사실들을 헤아리며 그리스도의 육체적 사건의 결과로서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루가는 마리아가 직접 행한 순명의 응답을 직접 우리에게 말하면서, 신앙 안에서 이 순명의 동의를 통하여 여인들 중의 복된 자가 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12)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마리아는 일차적으로 그녀의 절대적인 신앙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모친이 되었고 그 다음에 비로소 육체적으로 모친이 되었다는 사실이다.13) 이 사실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교회의 교부들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성 아우구스띠노는 이렇게 말한다 : 복되신 마리아 자신은 믿음으로 잉태하신 분을 믿음으로 출산하였다. 왜냐하면 성자를 그녀에게 맡기자. 이루어질 것으로 믿어 ‘성신께서 감싸주시리라’는 천사의 응답을 수락하셨기 때문이다. 천사가 이 말을 할 때에 그녀는 신앙으로 가득 차서 그리스도를 태중에 잉태하기 이전에 영신으로 잉태하여,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Fiat mihi secundum verbum tuum)’라고 응답하였다.”14) 성 대 레오 교황도 이 확언을 받아 이렇게 가르쳤다.:“다윗 왕가의 혈통을 받은 동정녀가 간택되었다. 거룩한 잉태로 출산해야 하는 그녀는 육신으로 보다 영신으로 먼저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아들을 잉태하셨다.”15) 그리고 이렇게 한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질서 안에서 신적모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성모영보 때의 마리아의 의식적이고 자유로운 동의 응답의 결과는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는데 하나는, 강생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질서 안에서의 신적모성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서 설명한 대로이다. 또 하나는 마리아의 완전한 봉헌이다. <아드님의 인격과 사업에 당신 자신 주님의 종이 되어> 신앙의 순종으로 승낙하여 인류구원에 협력하셨다. 공의회는 이것을 명확한 단어와 문장으로 밝혀 놓고 있다.:<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받아들이시고 당신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서 당신 아드님의 인격과 사명에 온전히 바치셨다.>(교회 56) 「주님의 여종으로서」 「아드님의 인격과 사업에 바치신 분」이라는 말마디는 중요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탄생 수태예고 때에 이 구원신비의 진가와 아드님의 공적사명(公的使命)의 첫 순간부터 마리아의 적극적 개입을 지시해 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리아 자신의 완전한 봉헌으로 마리아는 인류구원의 협력자가 되었다. 공의회는 구원의 역사에 영향을 준 마리아의 적극적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성 이레네우스의 말을 인용하여 마리아가 아들의 구원사업에 협력하셨다는 뜻으로 ‘구원의 원인’이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16) 이제부터 마리아의 길은 「혼자」가 아니고 「함께」 그리고 「밑에서」 라는 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그녀는 주님의 종으로서,17) 하느님의 은총을 드러내심으로 인류에게 적극적으로 봉사하신 것이다.18)
그리고 공의회는 예수 탄생 수태예고 안에서 인류 구원사업에 협력한 마리아의 역할을 제시해 주는 구체적인 네 가지 중요한 증거를 보이고 있다. 공의회 문헌에 따라 이를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⑴ <마리아는 이레네오의 말씀대로 순명함으로써 자신과 인류 전체를 위한 구원의 원인이 되셨다.>19) 여기에 대해서는 앞서 설명한대로 이다.
⑵ <그러기에 적지 않은 옛 교부들이 설교 중에 이레네오와 함께 ‘에바의 불순명이 묶어 놓은 매듭을 마리아의 순명이 풀어 주었고, 처녀 에바가 불신으로 맺어 놓은 것을 동정 마리아가 믿음으로 풀어 주었다’고 즐겨 주장하였다.>20)
실제로 하와는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명을 어겼다. 하느님께서는 그 열매를 먹는 사람들에게 벌을 명하였다. 그러나 하와는 거짓말로써 유혹하는 뱀의 말을 믿었다. 반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계획을 예고하는 천사의 말을 믿었고 주의 겸손한 종으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였다.”21) 그리하여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류는 죄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⑶ <에바와 비교하여 마리아를 ‘산 사람들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하와의 모성은 육체적 모성이나 마리아의 모성은 초자연적 생명의 질서 안에서 갖는 영적모성이다.
⑷ <가끔 ‘에바를 통하여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하여 생명이 왔다’고 주장한다.>
이상 교부들의 4가지의 증언을 통하여 공의회는 마리아의 신적모성과 구원역사 안에서 그녀의 적극적 역할을 명백히 하고 있다. 교부들의 증언내용은 하와는 죄를 지음으로써 그 죄를 후손에게 전하는 죽음의 원인이 되었고, 하느님의 명에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멸망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영적 죽음과 육신의 부패를 가져오게 했지만, 이와는 반대로 마리아는 자유로운 순종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아가는 영적모성의 원인이 되어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가져다주게 되었다. 따라서 마리아는 은총의 원천이신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 협력하시어 죽음을 생명으로 옮기는데 기여한 것이다.22)
4.2. 구세주의 협력자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의 마리아를 다루면서, 앞서 56항에서 언급된 자유로운 신앙 안에서 발휘된 응답인 ‘예’(Fiat)의 구원적 연장(延長)에 대해 57-59항에 걸쳐서 다루고 있다.23) 그리고 그 정점은 58항에서 다루는 십자 정사(釘死) 밑에선 마리아이다. 예수의 일생 동안 아들의 구원 사업에 함께 협력한 마리아의 역할에 대해서 유아기(57항), 공생활(58항), 승천후(59항)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모두 10번에 걸쳐 성서구절이 인용되고 있어 성서와 성전에 기초한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의 마리아의 위치와 역할을 확립하고자 하는 공의회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24)
지금부터 우리는 구세주의 협력자로서 마리아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58항25)에서 일생 동안 펼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이 그 한 곳에로 모여 정점을 이루는 십자가의 죽음에서의 마리아의 역할과 일치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58항에서는 예수의 공생활 동안의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일치를 3가지로 나누어 언급하고 있다.
첫째, 「시초부터」(in initio) 예수의 공생활과의 일치가 뚜렷이 나타난다. 공의회의 의도를 간결하게 표현하는 말은 「동정심을 억제하지 못하고」와 「전구로써」란 말이다. 「동정심」과 「전구」라는 이 말은 마리아의 모성의 마음과 아들에 대한 그녀의 특권의 발로이다.
둘째, 「설교하시는 동안에」 마리아가 군중 가운데서 아드님의 설교에 참여한 것은 바로 예수의 구원사업에 있어서 마리아와 아드님 예수와의 긴밀한 일치를 나타내고 있는 장면이다. 「설교 과정에 있어서는 성자께서 천국은 혈육의 인연을 초월하는 것이므로 성모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듣고 지키는 사람은(루가 2,19.15) 복되다고 선언하시는(마르 3,35; 루가 11,27-28) 그 말씀을 충실히 받아들이셨다.」 공의회가 여기서 제시한 루가 11,2826)은 예수께서 마리아를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하신 말씀도 아니오, 마리아를 꾸짖고자 하신 말씀도 아니다. 앞서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그녀는 신앙의 응답을 발하여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충실히 행한 이로서 그 복됨의 첫 참여자이고 모델이다. 이렇게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자신의 전 나그네 생활 동안에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것을 잘 간직하고, 그 가르침에 잘 순종하여 신앙의 나그네 길을 걸으신 분이다.27)
셋째, 「십자 정사(釘死)에 이르기까지 아드님과의 일치를 충실히 보존하셨다」는 문구로 마리아가 골고타의 십자가 아래 서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공의회는 마리아의 행위를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의 협력의 하나로 간주하고 또 이런 정신에 따라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서 계셨다는 사실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다.
“마리아가 십자가 밑에 서 계셨다는 것은 구세주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생애 중에 가정 중요한 「때」였다. 가나의 혼인잔치 때에 예수는 마리아에게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고 말씀하셨는데 십자가 상에서 예수의 「때」가 왔던 것이고 그것은 동시에 마리아의 「때」였다. 공의회가 그리스도의 공생활 중에 드러나 마리아의 협력, 일치에 관해서 언급할 때 가나안의 혼인잔치를 맨 먼저 기록하고 있는 것도 이것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28)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마리아의 협력’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있어서 두 사람의 동등한 협력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마리아가 특수한 방법으로 협력한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시며 우리와 하느님과의 화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리아의 협력은 그리스도 자신이 어머니의 공적을 자신의 구속공로에 합쳐서 아버지께 바치신 것이다. 여기에 ‘협력자 마리아’의 참 뜻이 있다. 마리아의 공적과 그리스도의 공적은 동등한 것이 아니며 마리아의 공적은 그리스도의 공적에 의해서만 효력을 갖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공적 없이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29)
따라서 마리아의 협력은 그리스도 구원사업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에 대한 사랑과 고통에 찬 마음의 일치이다. 그래서 <거기서 성모는 당신 외 아드님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셨고,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써 함께 바치셨으며 당신이 낳으신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셨다.>
그리고 십자가 아래 서 계신 마리아의 일치, 협력은 골고타 십자가의 희생에 대한 완전한 일치 행위로서 하느님께서 마리아께 요구하신 것이다. 또한 이것은 영보 때 발한 ‘Fiat’이 절정에 달한 것이다.30) 그 때문에 공의회는 「섭리대로」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이 계획에 동의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부활과 중재의 공적에 우리를 결합시킨 것이다.31)
끝으로 공의회는 예수의 공생활 동안의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일치를 3가지로 나누어 언급한 뒤, 58항 끝에서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란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써 마리아가 제자의 어머니가 되신 것을 밝히고 있다. 공의회가 이 문구의 각주에서 비오 12세의 「그리스도와 신비체」32)회칙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마리아의 영적모성 즉,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신적모성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여겨진다.33)
이제 우리는 이 끝부분에서도 미약하게 나마 언급하고 있는 마리아와 교회의 관계성을 다음 장에서 살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