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와 예수의 동정탄생

 I. 마리아와 예수의 동정 탄생

 1. 신앙의 첫 선언




    2세기 초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우스에게 있어서, 신앙의 첫 양식에서부터 예수의 동정 탄생에 대한 언급이 발견된다. 사도적 케리그마에 대한 내용을 실천적으로 이끌어내는 첫 단계에서, 이냐시우스는 가현주의자들을 논박하는 맥락 안에서 다음과 같이 이 언급을 기술하고 있다. :




    우리 주님께서는 육에 따라 참으로 다윗의 자손이시며 하느님의 의지와 능력에 따라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참으로 동정녀에게서 나셨으며, 요한에 의해 세례를 받으셨고 […], 본시오 빌라도와 헤로데 왕 통치아래서 육으로 우리를 위해 참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1).


    우리 하느님 예수-그리스도께서 신적 경륜에 따라 마리아의 품 안에 들어오셨으며 다윗의 후손에서 그리고 성령으로 나셨다. 그분은 태어나셨으며 그분의 수난으로 물을 정화시키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셨다2).




    신앙 고백의 이 본문 안에 일찍이 들어온 이후, 예수의 동정 탄생에 대한 확신은 신앙 고백으로 항상 남아 있게 되며 이는 신경 집필에 있어서 길잡이가 될 것이다 : 이러한 신앙 고백은 서방에서 ‘사도 신경’이라 불리게 될 본문의 첫 증언이 되는 히뽈리뚜스 신경 안에 나타난다 ; 이 신앙 고백은 동방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안에 다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신앙 고백은 신앙의 전통적인 두 큰 양식에 속하게 된다. 이러한 양식의 설정 시기에 이 신앙 고백은 교회 교부들의 일치된 증언의 대상이 되었다. 두 번째 시기에는 이 신앙 고백이 서방에서도 양식 안에 고정된다 :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레랭스(Lérins)의 빈첸씨우스(Vincentius)는 이 신앙 고백이 신앙의 기준을 확인하고 있다고 한다 : “모든 곳에서, 언제나 그리고 모두에 의해 믿게 된 것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시오”3). 이 신앙 고백은 동시에 신경의 그 가치와 분리될 수 없는 실재적인 사실로 이해되었다4).


    예수의 동정 탄생 혹은 잉태는 우선 마리아에 관계된 신비가 아니다. 이것은 예수의 인격을 첫 자리에 두는 그리스도론적인 소재이다. 분명하게 확인된 실재가 동정 마리아를 위한 존경과 영광의 원천이 되는 것은, 어떤 충격에 의한 되돌이처럼, 두 번째 단계밖에 아니다.


    이러한 확인은 그리스도론의 흐름 안에서 뚜렷한 자리를 차지한다. 예수의 신성에 대한 근본적인 증거가 직접적으로 여기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 예수의 신성은 부활과 주님이 되게 한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사도적 증언에 근거를 둔다. 따라서 동정 잉태는 그리스도의 신성 긍정에 있어서 이차적이며 그것은 신앙의 전체 체계에 짐을 지우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이 ‘증거’는 아니지만 예수의 기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신앙에 대한 우선적인 가르침 안에서 주어진 하나의 표지이다. 이것은 예수의 기원을 재인식하도록 초대된 이미 주어진 신앙이다. 동정 잉태는 예수의 인간적이며 동시에 신적인 기원에 몰두한다. 동정 잉태에 대한 확신이 인지되는 것은 그리스도론의 이러한 폭넓은 논리적 일관성의 품안에서이다. 라찡거(J. Ratzinger)는 잘 알려진 양식으로 이 관점에 대해 분명히 한다 :


 


   교회의 신앙에 의하면 예수의 신자성(神子性)은 예수가 어떤 아버지도 갖지 않았다는 데 그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예수의 신성에 관한 교리는 예수가 정상적으로 인간 혼배에서 출생했다 할지라도 조금도 변치 않을 것이다5).



    동정 잉태의 고유 목적은 예수의 인간적 기원 측면에서 말씀의 육화에 대한 하나의 표지를 제시하는 데 있으며 이 신성에 대한 모든 입양주의적인 해석을 미리 고발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고대 교회는 이와 같이 교회의 신경과 교회 신앙의 표명 안에서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대해 말하도록 이끌어준 예수의 동정 잉태에 대한 고백을 고집했던 것이다. 육화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마리아의 이러한 유일무이한 관계가 그녀의 동정 모성을 특별히 강조하여 설정된다. 이러한 관계에 신뢰를 둔 고찰이 마리아에 대한 교의의 전체 발전에 있어서 근저에 자리잡고 있다.


    예수의 동정 잉태의 실재가 새로운 이의 제기의 대상이 된 것은 20여 년 전의 일이다. 여기에 가담한 자들은 사실성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거부하면서 전적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고수하기를 바랐다6). 이러한 의미에서 이 확신에 대한 순수 교의적인 기능을 의심하면서 모든 분명한 교의적 정의의 부재를 내세웠다. 우리가 만약 이러한 분위기에 젖어 있다면, 동정 잉태가 수많은 공의회 문헌들을 통해, 특히 칼체돈 공의회의 정의를 통해, 언급되거나 제안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에 대한 가장 분명한 본문을 649년의 라테란 공의회의 문헌에서 발견할 수 있다 :




    어느 누가, 거룩한 교부들을 따라, 거룩하시고 언제나 동정이시며 죄없으신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친이라는 사실을 본래 뜻하는 바대로 그리고 진실된 의미로 고백하지 않는다면 단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모든 세기가 있기 이전에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낳음을 받은 말씀이신 하느님을 때가 다 되어(세기가 다할 때), 인간의 개입(씨앗) 없이, 특별하고 진실되게 성령으로 잉태하셨고, 물듦이 없이 그분을 낳으셨고 그녀의 동정성은 출산 후에 추호도 변하지 않은 채 남아있기 때문이다7).




    이 문헌의 주안점이 마리아의 신적 모성에 있지만, 동정 모성을 고려한 표명이 아주 분명하고 실재적이다. 교회의 항구한 가르침은 이를 구원 역사 사건처럼 하나의 교의로 제안했다. 특히 신앙 고백의 신경 안에 나타나는 동정 잉태의 현존은  모든 공의회의 정의보다 훨씬 비중이 큰 교의적 가치를 지닌다.  


    이처럼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 있는 신앙에 대한 최초 선언이 면밀하게 성서의 가르침을 취하고 있다 : 마리아는 예수의 동정 어머니이시다. 이러한 충실성이 동정 잉태에 대한 고대 논쟁 중에서 더욱 더 분명하게 표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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