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말씀연구>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변질되었을 수 있습니다. 행복을 향한 발걸음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불행을 향한 발걸음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17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내려오시어 평지에 서 계셨다. 그러자 그분의 수많은 제자들이 떼지어 (모이고) 또한 온 유대와 예루살렘, 그리고 띠로와 시돈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의 많은 무리가 (모여들었다).
예수님의 주위에는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세 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중심이셨고, 예수님으로부터 힘이 주위로 뻗어 나갔습니다. 이 원들 안으로 들어가 관계를 맺고 또 이를 통하여 예수님과 그들과 관계를 맺은 사람은 누구나 구원의 시대에 주어지는 축복을 함께 나누어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 모여든 군중들은 유대 전역과 유대의 수도 예루살렘, 그리고 해안 지방 띠로와 시돈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지역들은 사도행전에 언급되고 있는 선교 지역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루가는 이 지역들에 세워진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기원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소급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활약에 관한 소식이 이미 팔레스티나 전역은 물론 팔레스티나 이외의 지역에까지 퍼져 있었던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시온이 모든 민족들이 가르침을 받고 율법을 배우고 하느님의 영광의 빛을 받기 위해 순례하러 올 구원의 보고(寶庫)가 되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이 약속은 예수님을 통하여 지금 이루어 지고 있는 것입니다.
20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해 눈을 드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복되어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 나라가 그대들의 것이니. 21 복되어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그대들은 배부르게 되리니. 복되어라, 지금 우는 사람들! 그대들은 웃게 되리니. 22 그대들은 복되도다, 사람들이 인자 때문에 그대들을 미워하면, 또한 그대들을 쫓아내고 모욕하며 그대들의 이름을 사악하다고 내치면! 23 그 날엔 기뻐하고 뛰노시오. 정녕 그대들이 받을 상이 하늘에는 많습니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에게 꼭 그와 같이 대했습니다.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슬퍼하는 사람은 모두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로 여겨지는 가련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 주시면서 그들을 격려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하느님께 희망을 걸 때 하느님께서 어떻게 그들의 편이 되시는지를 역사를 통해 체험하였습니다(이사야 49,13).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바로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에게 더 귀를 기울이십니다(시편86,1).
가난과 굶주림, 그리고 너무나 궁핍하여 슬퍼함 등은 인간을 짓누르는 환경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축복하십니다.
먼저 예수님이 말한 가난한 사람들은 배고프고 짓밟히는 사람들입니다. 즉 종이 주인한테 대들면 맞아 죽던지 팔리던지 이런 상황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고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루가도 전해주다 보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예수님 시대와 상황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루가는 마태오와는 달리 뜻이 안통해도 그대로 전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없이 루가도 지금이란 말을 집어넣어 설명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살지만 장차 행복해 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미래를 내다보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진복선언의 예수님 말씀의 원형은 루가에서 지금만 빼놓으면 예수님 말씀 그대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대들, 부유한 사람들아! 그대들은 스스로 받을 위로를 받고 있으니.
25 불행하여라, 그대들, 지금 배부른 사람들아! 그대들은 굶주리게 되리니.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아! 그대들은 슬퍼하며 울게 되리니.
구원을 선포하는 말씀에 이어 경고의 말씀이 뒤따릅니다. 즉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불행 선언으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들의 설교(이사야 5,8-23)를 다시금 드러내십니다. 불행 선언은 마지막 날의 심판의 형벌과 관계된 것이 아닙니다. 불행 선언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을 차려 회개하도록 하는 경고의 외침이다.
부유한 이들, 배부른 이들, 그리고 웃는 이들은 이 세상의 재화를 소유하여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이를 마음껏 누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완전한 가치 전도가 일어납니다. 그들은 자기 삶의 확고한 기반을 하느님에게서가 아니라 자신의 부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확고한 기반은 자신의 부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구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유한 이들은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기에 폐쇄적이며 파멸의 길을 가는 이들입니다.
26 불행하여라, 모든 사람이 그대들을 좋게 말하면!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에게 꼭 그와 같이 대했습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은 예언자들의 길을 따릅니다. 그들은 동족들로부터 박해와 배척을 받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반대도 받지 않는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거짓 예언자들을 따를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대중과 영합하였고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과 화해하도록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반대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은 어떠했습니까?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과 멸망에 이를 수 있는 길은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까? 불행한 사람입니까?
2.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