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가!


연중 제6주간 월요일(2/16)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도다. ◎ 알렐루야.
    복음
    <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1-13 그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하느님의 인정을 받은 표가 될 만한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면서 말을 걸어왔다. 예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가!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에 보여 줄 징조는 하나도 없다." 하시고는 그들을 떠나 다시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처음과 같이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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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가!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가!
    이 세대에 보여 줄 징조는 하나도 없다.”

    오늘복음에서 예수님께 기적을 보여달라고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잠재의식속에 있는 예수님을 불신하고 모습에 표징을
    요구했던 바리사이파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이었음을….
    입으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예수님이 저의 구세주라고 했지만
    조금만 힘들고 어려우면 원망하며 예수님을 믿지않으며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시기를 원했던 자신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믿기 보다는 제 마음속에
    우상을 세워놓고 예수님을 믿은 것처럼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끄럽습니다
    오늘독서의 말씀에서 믿음의 시련을 받으면 인내력이 생겨
    완전하고 원만한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지금보다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었을텐데 세속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자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수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려 다짐해봅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저산도 옮기리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바다로 가르리 믿음으로

    주님!
    오늘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당신께 기적을 요구하는
    바리사이파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저에게 당신을 의심하지 않으며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게 해주십시오
    당신을 믿고 사는 것이 참기쁨이며 행복임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당신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수 없다고 하신 당신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참신앙인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새로히 시작되는 한주간 하느님의 축복속에 기쁘게 지내시기를……

    율리안나영명축일인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모든 분들께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21.141.62.211 요셉피나: 자매님! 건강은 어떠십니까?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하십시요.
    오늘 하루도 하느님의 은총이 그 가정에 가득하시길 빕니다. [02/16-04:35]

  2. user#0 님의 말:

    “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가!
    이 세대에 보여 줄 징조는 하나도 없다.”

    오늘복음에서 예수님께 기적을 보여달라고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잠재의식속에 있는 예수님을 불신하고 모습에 표징을
    요구했던 바리사이파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이었음을….
    입으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예수님이 저의 구세주라고 했지만
    조금만 힘들고 어려우면 원망하며 예수님을 믿지않으며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시기를 원했던 자신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믿기 보다는 제 마음속에
    우상을 세워놓고 예수님을 믿은 것처럼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끄럽습니다
    오늘독서의 말씀에서 믿음의 시련을 받으면 인내력이 생겨
    완전하고 원만한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지금보다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었을텐데 세속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자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수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려 다짐해봅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저산도 옮기리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바다로 가르리 믿음으로

    주님!
    오늘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당신께 기적을 요구하는
    바리사이파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저에게 당신을 의심하지 않으며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게 해주십시오
    당신을 믿고 사는 것이 참기쁨이며 행복임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당신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수 없다고 하신 당신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참신앙인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새로히 시작되는 한주간 하느님의 축복속에 기쁘게 지내시기를……

    율리안나영명축일인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모든 분들께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21.141.62.211 요셉피나: 자매님! 건강은 어떠십니까?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하십시요.
    오늘 하루도 하느님의 은총이 그 가정에 가득하시길 빕니다. [02/16-04:35]

  3.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기적을 보여달라고 하자
    “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가! 보여줄 징조는 하
    나도 없다” 하고 탄식하시며 배를 타고 떠나버립니다.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시험하고 떠보려는
    사랑이 없는 무리들에게는 기적 같은 것을 보여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셨기에 아무런 기적도 보여주지 않은 체 탄식하며 떠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누군가를 떠보고 시험하려는 속셈이야말로 참으로 비열한 행동이
    며 사랑이 없는 마음에서 나오는 행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내 안에는 남을 떠보고 시험하려는 속셈은 없었는지?
    내 안에도 과연 조건 없는 사랑이 존재하기나 하는지?
    남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넸을 때 반향 하는 대답이 거칠고
    냉정하더라도 나는 참아낼 수 있는지? 절대로 참을 수 없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라는 사람에게 조건 없이 그냥 베풀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적은 것 같습니다.

    “이 세대에게는 보여줄 징조가 하나도 없다” 하신
    오늘의 말씀에서도 사랑이 적고 믿음이 약한 세대를 향해 탄식하시고
    어떤 기적도 보여주지 않으신 것처럼 저의 약한 믿음과 무딘 마음을
    보시고 아무런 기적도 보여주시지 않았음을 제가 마음깊이 깨달을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주님!
    제가 비록 믿음이 약하고 사랑이 부족하여 주님께 징표를 보여달라고
    떼 쓴 적도 많았지만 정말 힘들고 어려웠을 때는 주님만이 희망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조건 없이 사랑해 주신 것처럼 저도 언제나 순수한 마음으로
    당신을 향하게 하시고 어떠한 경우라도 저를 떠나지 마소서..
    주님께서 제 안에 머무르고 또한 제가 당신 안에 머물러 있을 때 참 기쁨
    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흐르는 곡 – 주님을 사랑합니다

  4.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기적을 보여달라고 하자
    “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가! 보여줄 징조는 하
    나도 없다” 하고 탄식하시며 배를 타고 떠나버립니다.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시험하고 떠보려는
    사랑이 없는 무리들에게는 기적 같은 것을 보여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셨기에 아무런 기적도 보여주지 않은 체 탄식하며 떠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누군가를 떠보고 시험하려는 속셈이야말로 참으로 비열한 행동이
    며 사랑이 없는 마음에서 나오는 행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내 안에는 남을 떠보고 시험하려는 속셈은 없었는지?
    내 안에도 과연 조건 없는 사랑이 존재하기나 하는지?
    남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넸을 때 반향 하는 대답이 거칠고
    냉정하더라도 나는 참아낼 수 있는지? 절대로 참을 수 없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라는 사람에게 조건 없이 그냥 베풀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적은 것 같습니다.

    “이 세대에게는 보여줄 징조가 하나도 없다” 하신
    오늘의 말씀에서도 사랑이 적고 믿음이 약한 세대를 향해 탄식하시고
    어떤 기적도 보여주지 않으신 것처럼 저의 약한 믿음과 무딘 마음을
    보시고 아무런 기적도 보여주시지 않았음을 제가 마음깊이 깨달을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주님!
    제가 비록 믿음이 약하고 사랑이 부족하여 주님께 징표를 보여달라고
    떼 쓴 적도 많았지만 정말 힘들고 어려웠을 때는 주님만이 희망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조건 없이 사랑해 주신 것처럼 저도 언제나 순수한 마음으로
    당신을 향하게 하시고 어떠한 경우라도 저를 떠나지 마소서..
    주님께서 제 안에 머무르고 또한 제가 당신 안에 머물러 있을 때 참 기쁨
    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흐르는 곡 – 주님을 사랑합니다

  5. user#0 님의 말:


    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가!
    [2004/2/16 복음(마르꼬 8,11-13)묵상]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복음(마르꼬 8,11-13)
    
    그 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의 속을 떠 보려고 
    하느님의 인정을 받은 표가 될 만한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면서 말을 걸어 왔다. 
    예수께서는 마음 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가!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에 보여 줄 징조는 하나도 없다.” 하시고는 
    그들을 떠나 다시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다.
    
    묵상
    
    재밌는 통계가 하나 있습니다.
    시골 성당과 도시 성당을 비교한 것인데요…
    시골 성당 신자들과 도시 성당 신자들 중에 어느 쪽 신자들이 점(占)집에 잘 갈 것 같으세요?
    의외로 도시 성당 신자들이 점 보러 잘 간답니다.
    시골 성당 신자들은 거의 가지 않는다네요.
    왜 이런 통계가 나왔을 거 같으세요?
    
    시골 성당 신자들은 어떤 일(우환 등등)이 생기면 그것은 당연히 하느님의 섭리이겠거니 생각한답니다.
    그런데 도시 성당 신자들은 꼭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어찌될지 답을 들어보고 싶어한다네요.
    물론 가톨릭 신자로서 점을 보러 간다는 것은 대죄입니다만, 왜 시골과 도시가 다른지 생각해볼만한 문제입니다.
    딱히 시골이 아니더라도 도시 빈민촌에 사시는 신자들도 시골분들과 다를 바 없다네요.
    다시 여쭙겠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극한 상황에 처해보셨습니까?
    늪에 빠졌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눈물을 쏟아내며 살려달라고 악을 지를겁니다.
    그러다 누군가 나타나서 썪은 동앗줄이라도 던져준다면 그걸 부여잡고 살기위해 발버둥을 치지요.
    그런데 턱까지 오는 평범한 물에 빠졌는데 썪은 동앗줄 던져주면 더 튼튼한 밧줄 던져달라고 소리칩니다.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어렵게 사시는 이들은 어디 하소연 할 길이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께만 매달리지요. 모든 일이 하느님의 섭리이겠거니하고 삽니다.
    그러나 좀 괜찮게 산다 싶으면 하느님의 섭리는 둘째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더 좋은 점괘를 찾고
    그것도 아니다 싶으면 부적을 챙기고 심하면 굿판까지 벌립니다.
    
    어제 주일 복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봅시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사람의 아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내어 쫓기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럴 때에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그러나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기적을 보여달라합니다.
    기적이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예수님의 기적은 가난한 사람, 굶주리고 있는 사람, 우는 사람, 욕을 먹고 누명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베풀어질 것이구요.
    애절하게 예수님의 발목을 붙잡고 살려달라 외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혹시 기도모임등에 나가시면서 신비로운 체험을 원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평소엔 안하던 묵주기도를 아이가 입시시험 치른다하여 갑자기 열심히 기도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묵주반지나 십자가나 기적의 패등의 목걸이를 악세사리나 부적처럼 착용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가!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에 보여 줄 징조는 하나도 없다.”
    
    하느님은 우리와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도 중요하고, 또 ‘소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과 소망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이고, 하느님의 사랑을 갈구하는 소망입니다.
    혹시 우리 지금 ‘기복신앙(祈福信仰)’에 너무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봐야 하겠습니다.
    
    내 형제 여러분,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 때 여러분은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믿음의 시련을 받으면 인내력이 생긴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인내력을 한껏 발휘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조금도 흠잡을 데 없이 완전하고도 원만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야고 1,2-4)
    오늘 제1독서 중의 말씀입니다.
    
    기도
    
    예수님, 우리가 바래야 할 것은 이미 당신께서 가르쳐 주셨나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Written by Paulus
    

  6. user#0 님의 말:


    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가!
    [2004/2/16 복음(마르꼬 8,11-13)묵상]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복음(마르꼬 8,11-13)
    
    그 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의 속을 떠 보려고 
    하느님의 인정을 받은 표가 될 만한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면서 말을 걸어 왔다. 
    예수께서는 마음 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가!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에 보여 줄 징조는 하나도 없다.” 하시고는 
    그들을 떠나 다시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다.
    
    묵상
    
    재밌는 통계가 하나 있습니다.
    시골 성당과 도시 성당을 비교한 것인데요…
    시골 성당 신자들과 도시 성당 신자들 중에 어느 쪽 신자들이 점(占)집에 잘 갈 것 같으세요?
    의외로 도시 성당 신자들이 점 보러 잘 간답니다.
    시골 성당 신자들은 거의 가지 않는다네요.
    왜 이런 통계가 나왔을 거 같으세요?
    
    시골 성당 신자들은 어떤 일(우환 등등)이 생기면 그것은 당연히 하느님의 섭리이겠거니 생각한답니다.
    그런데 도시 성당 신자들은 꼭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어찌될지 답을 들어보고 싶어한다네요.
    물론 가톨릭 신자로서 점을 보러 간다는 것은 대죄입니다만, 왜 시골과 도시가 다른지 생각해볼만한 문제입니다.
    딱히 시골이 아니더라도 도시 빈민촌에 사시는 신자들도 시골분들과 다를 바 없다네요.
    다시 여쭙겠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극한 상황에 처해보셨습니까?
    늪에 빠졌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눈물을 쏟아내며 살려달라고 악을 지를겁니다.
    그러다 누군가 나타나서 썪은 동앗줄이라도 던져준다면 그걸 부여잡고 살기위해 발버둥을 치지요.
    그런데 턱까지 오는 평범한 물에 빠졌는데 썪은 동앗줄 던져주면 더 튼튼한 밧줄 던져달라고 소리칩니다.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어렵게 사시는 이들은 어디 하소연 할 길이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께만 매달리지요. 모든 일이 하느님의 섭리이겠거니하고 삽니다.
    그러나 좀 괜찮게 산다 싶으면 하느님의 섭리는 둘째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더 좋은 점괘를 찾고
    그것도 아니다 싶으면 부적을 챙기고 심하면 굿판까지 벌립니다.
    
    어제 주일 복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봅시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사람의 아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내어 쫓기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럴 때에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그러나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기적을 보여달라합니다.
    기적이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예수님의 기적은 가난한 사람, 굶주리고 있는 사람, 우는 사람, 욕을 먹고 누명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베풀어질 것이구요.
    애절하게 예수님의 발목을 붙잡고 살려달라 외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혹시 기도모임등에 나가시면서 신비로운 체험을 원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평소엔 안하던 묵주기도를 아이가 입시시험 치른다하여 갑자기 열심히 기도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묵주반지나 십자가나 기적의 패등의 목걸이를 악세사리나 부적처럼 착용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가!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에 보여 줄 징조는 하나도 없다.”
    
    하느님은 우리와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도 중요하고, 또 ‘소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과 소망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이고, 하느님의 사랑을 갈구하는 소망입니다.
    혹시 우리 지금 ‘기복신앙(祈福信仰)’에 너무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봐야 하겠습니다.
    
    내 형제 여러분,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 때 여러분은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믿음의 시련을 받으면 인내력이 생긴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인내력을 한껏 발휘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조금도 흠잡을 데 없이 완전하고도 원만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야고 1,2-4)
    오늘 제1독서 중의 말씀입니다.
    
    기도
    
    예수님, 우리가 바래야 할 것은 이미 당신께서 가르쳐 주셨나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Written by Paulus
    

  7. user#0 님의 말:

    “조금도 의심을 품지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의심을 품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흔들리는 바다 물결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예 주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합니다.
    의심을 품은 사람은 마음이 헷갈려 행동이 불안정합니다.”
    이런저런 세상방법대로 사는게 잘 사는줄알고 남들보다 더 노력했으나
    하느님 뜻대로 사는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는듯 했다.
    이제서야 하느님사랑 안으로 들어와 살려고 일찍자고 일찍일어나
    새벽미사 드리고 가족들 식사후 출근,등교하고 집안일한다.
    항상 늦게 자고 피곤하니 가족들 모두 건강과 생활의 질서가 무너져
    불화의 원인이되니 가정은 늘 불안정했습니다.
    재물도 하느님의 축복이 있어야 함을 모르고 맞벌이 한다고 돌아다니니
    평화스럽지 못한 생활은 대책없었다.
    기도생활과 성서묵상하며 주변정리하려니 주변의 그동안의 일들
    정리가 쉽지않지만
    “만일 여러분 중에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하느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아무도 나무라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후하게 주시는
    하느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제서야 하느님과 가까이 살며 드리는 새벽미사는 한주일동안을
    행복하게 하십니다.

  8. user#0 님의 말:

    “조금도 의심을 품지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의심을 품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흔들리는 바다 물결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예 주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합니다.
    의심을 품은 사람은 마음이 헷갈려 행동이 불안정합니다.”
    이런저런 세상방법대로 사는게 잘 사는줄알고 남들보다 더 노력했으나
    하느님 뜻대로 사는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는듯 했다.
    이제서야 하느님사랑 안으로 들어와 살려고 일찍자고 일찍일어나
    새벽미사 드리고 가족들 식사후 출근,등교하고 집안일한다.
    항상 늦게 자고 피곤하니 가족들 모두 건강과 생활의 질서가 무너져
    불화의 원인이되니 가정은 늘 불안정했습니다.
    재물도 하느님의 축복이 있어야 함을 모르고 맞벌이 한다고 돌아다니니
    평화스럽지 못한 생활은 대책없었다.
    기도생활과 성서묵상하며 주변정리하려니 주변의 그동안의 일들
    정리가 쉽지않지만
    “만일 여러분 중에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하느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아무도 나무라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후하게 주시는
    하느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제서야 하느님과 가까이 살며 드리는 새벽미사는 한주일동안을
    행복하게 하십니다.

  9. user#0 님의 말:

    ‘하느님의 인정을 받은 표가 될 만한 기적’

    하느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그것이 진정 믿음일 수 있을까요?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어둠 뒤에
    하느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이미 확실히 알고 그것을 겪는다면
    그것이 진정 인내이고 믿음일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인정을 받은 표가 될 만한 기적’이란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것도, 다른 누가 행하는 것도 아닐것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일겁니다..

    홀홀단신, 아무런 권력도 없는 남루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것..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과 어둠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부르는것..

    그것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인정을 받은 표가 될 만한 기적’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내 안에서 기적을 봅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이것이, 내 안의 기적입니다…

    아멘.

  10. user#0 님의 말:

    ‘하느님의 인정을 받은 표가 될 만한 기적’

    하느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그것이 진정 믿음일 수 있을까요?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어둠 뒤에
    하느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이미 확실히 알고 그것을 겪는다면
    그것이 진정 인내이고 믿음일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인정을 받은 표가 될 만한 기적’이란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것도, 다른 누가 행하는 것도 아닐것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일겁니다..

    홀홀단신, 아무런 권력도 없는 남루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것..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과 어둠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부르는것..

    그것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인정을 받은 표가 될 만한 기적’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내 안에서 기적을 봅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이것이, 내 안의 기적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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