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연중 제7일(2/22)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루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7-38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 말을 듣는 사람들아, 잘 들어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라. 그리고 너희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라. 누가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 주고 누가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마저 내어 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빼앗는 사람에게는 되받으려고 하지 마라.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너희가 만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한다. 너희가 만일 자기한테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잘 해 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큼은 한다. 너희가 만일 되받을 가망이 있는 사람에게만 꾸어 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것을 알면 서로 꾸어 준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남에게 좋은 일을 해 주어라. 그리고 되받을 생각을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며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다. 그러니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비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비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남에게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말에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하게 담아서 너희에게 안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남에게 되어 주는 분량만큼 너희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오 나의 자비로운 주여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지난 묵상 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말씀연구>

    자비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 분명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나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는 사람 또한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나를 학대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 또한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누가 내 뺨을 쳤을 때 다른 한쪽마저 돌려대 주는 사람, 겉옷을 빼앗겼을 때 속옷마저 내어 주는 사람.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해 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를 미워하고 나를 박해하고, 피해를 주는 사람에게 잘 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원수 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남을 비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라는 이 말씀. 참으로 어려운 말씀만 골라서 하고 있습니다.

    분명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말씀하셨으니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하겠습니다. 지키는 시늉이라도 하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연습을 한번 해 봅시다.


    27  “(내 말을) 듣고 있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원수들을 사랑하시오. 여러분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28  여러분을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며 여러분을 헐뜯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오.

    제자들의 적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제자들을 중상하고 박해하는 자들과 제자들 개개인의 원수들까지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 명령은 모든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복을 빌어 주며 변호해 주라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이며,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고 증오하며 저주를 내리는 그 사람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단지 자신이 당한 모욕을 용서하는 문제만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용서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십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면 그의 원수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해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증오를 선행으로써 갚아야 한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29  당신의 뺨을 치는 사람에게는 다른 편 뺨마저 내미시오. 당신의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는 속옷도 거절하지 마시오.

    이 말씀을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서 따서 “주도적인 사람이 되어라”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른 뺨을 때린 다는 것은 오른손잡이들에게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손등으로 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수치를 당하고 속으로 “1818”욕을 하는 것 보다는 “그래! 원한다면 왼쪽도 대줄 수 있다. 자 때려 보거라”하는 것이 훨씬 더 주도적입니다.

    겉옷을 빼앗은 사람에게 “그래 속옷도 필요할테니 이것마져 가지고 가거라”라고 한다면 “얼씨구나”하면서 가지고 갈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30  누구든지 당신에게 청하는 사람에게는 주고, 당신 것을 빼앗는 사람에게서는 되찾으려고 하지 마시오.

    완전한 사랑의 특수한 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수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의를 거스르는 폭력에 저항하지 말고, 탄식하지 말고 참고 견디며, 자기 권리까지도 희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명하신 계명이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높은 수준의 권고입니다. 덧셈을 못하는 아이에게 미분 적분을 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사랑으로 지도되어야 합니다. 이 사랑의 덕의 완성을 바란다면 제자들은 이 세상의 명예를 잃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31  그리고 여러분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위해)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그와 같이 그들에게 해 주시오.

    이것은 사랑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내 방식대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대로 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고급 양주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이유식 대신 술을 마시게 하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남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주기를 바라면서 남에게는 내가 해 주고 싶은 대로 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의 이방인이 랍비 샴마이(기원전 30년경의 사람)에게 면회를 청하러 왔습니다. “나를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곧 당신은 내가 한 쪽 발로 서 있는 동안에 모든 율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샴마이는 화를 내며 그 사나이를 쫓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랍비 힐레르는 그 사나이를 제자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네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의 전부이다. 다른 것은 그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가서 이같이 가르쳐라.”


    32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이 무슨 은혜를 베푼단 말입니까? 사실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합니다.

    우리에게는 벗을 사랑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는 원수를 사랑하는 의무보다도 앞선 것이고 또한 큰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가 우정을 우정으로 갚는 것으로 그친다면, 초자연적 샘으로 말미암아 덕을 길러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실 보수, 곧 영원한 생명을 받을 가치는 없습니다. 제 친구를 사랑하는 것만으로써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더라도 그런 사랑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3  여러분에게 잘해 주는 사람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여러분이 무슨 은혜를 베푼단 말입니까? 죄인들도 그만큼은 합니다.

    당연한 것을 했다고 해서 칭찬받을 것은 없습니다. 가끔은 평화의 인사를 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형식적으로 하는 인사, 아는 사람에게만 하는 인사,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밖에 나오면 아는체도 안하는 나의 모습. 어찌보면 이 말씀은 성당에서 내가 아는 사람과만 인사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내가 아는 사람과만 인사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사해 줄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4  여러분이 되받을 가망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여러분이 무슨 은혜를 베푼단 말입니까?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성싶으면 (같은) 죄인들에게 꾸어 줍니다.

    35  그러니 여러분은 원수들을 사랑하고 잘해 주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받을 상이 많을 것이고 또한 여러분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사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도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이 있었으나 이웃이란 유다인에게 있어서 오직 유다인들 만을 가리켰습니다.  한 사람의 유다인이 고통을 받고 있는 이방인을 보고 그를 도와 줄 의무가 있냐고 물었을 때, 율법학자는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 원수를 미워하여라…”라는 말은 구약성서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말렉 사람(출애17,14)과 암몬 사람과 모압사람(신명23,4-6)을 적으로 보라는 말이 있으므로, 율법학자들은 그들을 “미워해야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사실 모세와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사람은 될 수 있는 한 이방인과 교제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하느님에 대한 흠숭을 우상숭배로 타락시키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한 이 명령이 이방인을 미워하는 구실의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방인과 교제하지 말라고 한 이스라엘인은 이방인에 대해서라면 정의를 행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그들을 속여도, 그들로부터 물건을 훔쳐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아마 그래서 지금도 유다인들은 그렇게 무차별하게 보복을 하고, 자기 민족 외에는 박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안에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수를 미워한다는 본능적인 마음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람에게서나 자연히 솟아나는 이 무서운 욕망의 흐름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수련을 해야만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나를 박해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의 악에 대해서 우리는 기도로써, 사랑으로써 응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필요하다면 물질적으로도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합니다(마태25,35-45). 곧 선인에게도 악인에게도 구별 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닮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무 힘든 조건을 제시하십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36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여러분도 자비롭게 되시오.”

    어떤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일까요? 타인을 자신의 틀 안에 가두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단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용서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37  “(남을) 심판하지 마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심판받지 않을 것입니다. (남을) 불의하다고 단정하지 마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불의하다고 단정받지 않을 것입니다. (남을) 용서하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용서받을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나의 행동은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행동의 척도가 됩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너그러우심을 바란다면 우리 스스로도 이웃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심판 받을 사람이기에 남을 심판해서는 안됩니다. 남을 나쁘게 단정 지어서도 안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제일 많이 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 사람은 어떻고, 이 사람은 어떻고…. 이것은 하느님만이 하시는 것이니 내가 그것을 하면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에게 용서를 받기를 원한다면 남을 먼저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남에게는 용서받기 원하면서도 나에게 잘못한 사람은 왜 그리도 용서가 안되는지…마치 무자비한 종의 비유에 나오는 무자비한 종이 바로 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38  (남에게) 주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받을 것입니다. 좋은 되를,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한 되를 여러분의 품에 (안겨) 주실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되어 주는 되만큼 여러분에게 도로 되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칙 하나를 말씀해 주십니다. 남에게 주면 받을 것이라는 것. 황금율에서도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하느님께서도 나에게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넘치도록 후하게…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미운 사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남 욕 안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덜 미워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얼마나 남 욕 안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2.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습니다. 용서해주면 나 또한 용서를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내가 남에게 주면 나 또한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물론 주시면 좋고 안 주시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내가 남에게 주어서 혹시 도로 받은 적이 있으면 함께 나눠 주세요. 후하게 받은 적이 있으면 …

  2. user#0 님의 말: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말씀연구>

    자비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 분명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나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는 사람 또한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나를 학대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 또한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누가 내 뺨을 쳤을 때 다른 한쪽마저 돌려대 주는 사람, 겉옷을 빼앗겼을 때 속옷마저 내어 주는 사람.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해 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를 미워하고 나를 박해하고, 피해를 주는 사람에게 잘 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원수 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남을 비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라는 이 말씀. 참으로 어려운 말씀만 골라서 하고 있습니다.

    분명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말씀하셨으니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하겠습니다. 지키는 시늉이라도 하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연습을 한번 해 봅시다.


    27  “(내 말을) 듣고 있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원수들을 사랑하시오. 여러분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28  여러분을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며 여러분을 헐뜯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오.

    제자들의 적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제자들을 중상하고 박해하는 자들과 제자들 개개인의 원수들까지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 명령은 모든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복을 빌어 주며 변호해 주라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이며,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고 증오하며 저주를 내리는 그 사람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단지 자신이 당한 모욕을 용서하는 문제만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용서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십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면 그의 원수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해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증오를 선행으로써 갚아야 한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29  당신의 뺨을 치는 사람에게는 다른 편 뺨마저 내미시오. 당신의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는 속옷도 거절하지 마시오.

    이 말씀을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서 따서 “주도적인 사람이 되어라”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른 뺨을 때린 다는 것은 오른손잡이들에게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손등으로 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수치를 당하고 속으로 “1818”욕을 하는 것 보다는 “그래! 원한다면 왼쪽도 대줄 수 있다. 자 때려 보거라”하는 것이 훨씬 더 주도적입니다.

    겉옷을 빼앗은 사람에게 “그래 속옷도 필요할테니 이것마져 가지고 가거라”라고 한다면 “얼씨구나”하면서 가지고 갈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30  누구든지 당신에게 청하는 사람에게는 주고, 당신 것을 빼앗는 사람에게서는 되찾으려고 하지 마시오.

    완전한 사랑의 특수한 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수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의를 거스르는 폭력에 저항하지 말고, 탄식하지 말고 참고 견디며, 자기 권리까지도 희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명하신 계명이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높은 수준의 권고입니다. 덧셈을 못하는 아이에게 미분 적분을 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사랑으로 지도되어야 합니다. 이 사랑의 덕의 완성을 바란다면 제자들은 이 세상의 명예를 잃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31  그리고 여러분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위해)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그와 같이 그들에게 해 주시오.

    이것은 사랑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내 방식대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대로 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고급 양주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이유식 대신 술을 마시게 하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남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주기를 바라면서 남에게는 내가 해 주고 싶은 대로 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의 이방인이 랍비 샴마이(기원전 30년경의 사람)에게 면회를 청하러 왔습니다. “나를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곧 당신은 내가 한 쪽 발로 서 있는 동안에 모든 율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샴마이는 화를 내며 그 사나이를 쫓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랍비 힐레르는 그 사나이를 제자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네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의 전부이다. 다른 것은 그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가서 이같이 가르쳐라.”


    32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이 무슨 은혜를 베푼단 말입니까? 사실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합니다.

    우리에게는 벗을 사랑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는 원수를 사랑하는 의무보다도 앞선 것이고 또한 큰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가 우정을 우정으로 갚는 것으로 그친다면, 초자연적 샘으로 말미암아 덕을 길러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실 보수, 곧 영원한 생명을 받을 가치는 없습니다. 제 친구를 사랑하는 것만으로써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더라도 그런 사랑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3  여러분에게 잘해 주는 사람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여러분이 무슨 은혜를 베푼단 말입니까? 죄인들도 그만큼은 합니다.

    당연한 것을 했다고 해서 칭찬받을 것은 없습니다. 가끔은 평화의 인사를 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형식적으로 하는 인사, 아는 사람에게만 하는 인사,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밖에 나오면 아는체도 안하는 나의 모습. 어찌보면 이 말씀은 성당에서 내가 아는 사람과만 인사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내가 아는 사람과만 인사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사해 줄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4  여러분이 되받을 가망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여러분이 무슨 은혜를 베푼단 말입니까?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성싶으면 (같은) 죄인들에게 꾸어 줍니다.

    35  그러니 여러분은 원수들을 사랑하고 잘해 주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받을 상이 많을 것이고 또한 여러분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사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도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이 있었으나 이웃이란 유다인에게 있어서 오직 유다인들 만을 가리켰습니다.  한 사람의 유다인이 고통을 받고 있는 이방인을 보고 그를 도와 줄 의무가 있냐고 물었을 때, 율법학자는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 원수를 미워하여라…”라는 말은 구약성서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말렉 사람(출애17,14)과 암몬 사람과 모압사람(신명23,4-6)을 적으로 보라는 말이 있으므로, 율법학자들은 그들을 “미워해야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사실 모세와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사람은 될 수 있는 한 이방인과 교제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하느님에 대한 흠숭을 우상숭배로 타락시키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한 이 명령이 이방인을 미워하는 구실의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방인과 교제하지 말라고 한 이스라엘인은 이방인에 대해서라면 정의를 행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그들을 속여도, 그들로부터 물건을 훔쳐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아마 그래서 지금도 유다인들은 그렇게 무차별하게 보복을 하고, 자기 민족 외에는 박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안에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수를 미워한다는 본능적인 마음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람에게서나 자연히 솟아나는 이 무서운 욕망의 흐름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수련을 해야만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나를 박해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의 악에 대해서 우리는 기도로써, 사랑으로써 응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필요하다면 물질적으로도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합니다(마태25,35-45). 곧 선인에게도 악인에게도 구별 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닮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무 힘든 조건을 제시하십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36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여러분도 자비롭게 되시오.”

    어떤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일까요? 타인을 자신의 틀 안에 가두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단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용서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37  “(남을) 심판하지 마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심판받지 않을 것입니다. (남을) 불의하다고 단정하지 마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불의하다고 단정받지 않을 것입니다. (남을) 용서하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용서받을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나의 행동은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행동의 척도가 됩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너그러우심을 바란다면 우리 스스로도 이웃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심판 받을 사람이기에 남을 심판해서는 안됩니다. 남을 나쁘게 단정 지어서도 안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제일 많이 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 사람은 어떻고, 이 사람은 어떻고…. 이것은 하느님만이 하시는 것이니 내가 그것을 하면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에게 용서를 받기를 원한다면 남을 먼저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남에게는 용서받기 원하면서도 나에게 잘못한 사람은 왜 그리도 용서가 안되는지…마치 무자비한 종의 비유에 나오는 무자비한 종이 바로 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38  (남에게) 주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받을 것입니다. 좋은 되를,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한 되를 여러분의 품에 (안겨) 주실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되어 주는 되만큼 여러분에게 도로 되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칙 하나를 말씀해 주십니다. 남에게 주면 받을 것이라는 것. 황금율에서도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하느님께서도 나에게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넘치도록 후하게…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미운 사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남 욕 안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덜 미워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얼마나 남 욕 안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2.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습니다. 용서해주면 나 또한 용서를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내가 남에게 주면 나 또한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물론 주시면 좋고 안 주시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내가 남에게 주어서 혹시 도로 받은 적이 있으면 함께 나눠 주세요. 후하게 받은 적이 있으면 …

  3. user#0 님의 말: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주님!
    오늘당신께서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며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시는 말씀에 복음을 묵상하면서
    제 자신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며 남에게 좋은일을 하라고 하셨지만
    저는 저에게 잘하는 사람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잘할수 있지만 제가 싫어하는 사람을 사랑하지는 못하는
    속물임을 잘알고 있기에 오늘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당신께서 원하시는 원수를 사랑하며 좋은일을 하라고 하신
    말씀을 지킬자신이 없는 저 이기에 복음을 읽고 또 읽어보면서
    어제저녁부터 묵상을 하려했지만 정리가 되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주님!
    저는 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미워하고 그 사람이
    잘못되기를 바랜적이 많았습니다
    요즈음 은“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 저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는사람이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이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밤새도록 묵상을 하고 또해봐도 성찰이 되지 않고 저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기에는 저의 신앙심과
    인간성으로는 너무 벅차고 어렵다는 사실이 더 힘들게 했습니다
    주님!
    예전에 본당신부님께서 저에게 죽어도 저의 자존심은 3일동안 살아있을
    거라고 하신적이 있지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었는데 복음을 묵상하면서제 자신을
    성찰해보니 교만한 마음과 하느님께 순종하는 믿음이 부족했기에
    겸손해지라고 깨우치는 말씀이었다는 것을깨달았습니다
    싫은사람은 표정부터 관리가 되지않으니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남을 판단할 자격이 저에게는 없는데도 저에게 상처를

     준다는 이유로 미워했던 자신 남을 미워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제 자신이 너무도 잘알고 있습니다

    하지만주님!
    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고 계시니까요
    자비로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고 계시니까요
    원수를 사랑하도록 노력을 해 보겠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고 계시니까요

    사랑이신주님!

    저에게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수있는 믿음을 주십시요
    저에게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게해주십시오
    아멘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이 성서말씀을 묵상하며

  4. user#0 님의 말: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주님!
    오늘당신께서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며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시는 말씀에 복음을 묵상하면서
    제 자신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며 남에게 좋은일을 하라고 하셨지만
    저는 저에게 잘하는 사람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잘할수 있지만 제가 싫어하는 사람을 사랑하지는 못하는
    속물임을 잘알고 있기에 오늘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당신께서 원하시는 원수를 사랑하며 좋은일을 하라고 하신
    말씀을 지킬자신이 없는 저 이기에 복음을 읽고 또 읽어보면서
    어제저녁부터 묵상을 하려했지만 정리가 되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주님!
    저는 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미워하고 그 사람이
    잘못되기를 바랜적이 많았습니다
    요즈음 은“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 저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는사람이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이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밤새도록 묵상을 하고 또해봐도 성찰이 되지 않고 저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기에는 저의 신앙심과
    인간성으로는 너무 벅차고 어렵다는 사실이 더 힘들게 했습니다
    주님!
    예전에 본당신부님께서 저에게 죽어도 저의 자존심은 3일동안 살아있을
    거라고 하신적이 있지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었는데 복음을 묵상하면서제 자신을
    성찰해보니 교만한 마음과 하느님께 순종하는 믿음이 부족했기에
    겸손해지라고 깨우치는 말씀이었다는 것을깨달았습니다
    싫은사람은 표정부터 관리가 되지않으니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남을 판단할 자격이 저에게는 없는데도 저에게 상처를

     준다는 이유로 미워했던 자신 남을 미워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제 자신이 너무도 잘알고 있습니다

    하지만주님!
    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고 계시니까요
    자비로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고 계시니까요
    원수를 사랑하도록 노력을 해 보겠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고 계시니까요

    사랑이신주님!

    저에게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수있는 믿음을 주십시요
    저에게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게해주십시오
    아멘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이 성서말씀을 묵상하며

  5.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하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에게 축복해 주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원수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저 조금 미운 사람 사랑하기도 힘든데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그저 미워하지 않게만 해달라고 기도
    하기도 힘들었는데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왼뺨을 치거든 오른 뺨도 대어
    주라고 하시니 정말 어찌해야 하는지?
    오늘 저희에게 보내신 메시지는 한 차원 높아진 것 같습니다.
    원수마저도 사랑해야 한다면 원한관계나 미움이 없는 이웃들을 사랑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는 말씀인데 그것마저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에게 잘하는 사람에게만 잘한다면 무엇이 다르냐?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한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자비로우시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운 것같이 너희들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하신 말씀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시는 예수님 앞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저도 자비하신 아버지 당신을 따르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조건 없이 주셨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자비로우신 것처럼
    저를 아프게 한 이웃과도 조건 없는 사랑을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부족하기만 한 저이기에 어느 순간 불쑥불쑥 찾아드는 서운함과
    분노를 저는 어찌해 볼 수가 없습니다.
    원수마저도 사랑하라는 당신의 말씀을 아직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미움을 사랑으로 갚고 저주의 말을 축복의 말로 되돌려 주라 하시는
    당신의 말씀을 새기며 자비로운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이 성찰해 보는 오늘 보내야겠습니다.

    사랑하올 주님 !
    아직 상처 많은 제 마음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당신의 사랑과 자비로 저의 아픈 상처 어루만져 주시고
    주님의 위로로 깨끗하게 치유 받고 당신처럼 자비로운 사람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 안에 평화로이 머물기 원합니다. 아멘.

  6.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하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에게 축복해 주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원수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저 조금 미운 사람 사랑하기도 힘든데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그저 미워하지 않게만 해달라고 기도
    하기도 힘들었는데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왼뺨을 치거든 오른 뺨도 대어
    주라고 하시니 정말 어찌해야 하는지?
    오늘 저희에게 보내신 메시지는 한 차원 높아진 것 같습니다.
    원수마저도 사랑해야 한다면 원한관계나 미움이 없는 이웃들을 사랑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는 말씀인데 그것마저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에게 잘하는 사람에게만 잘한다면 무엇이 다르냐?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한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자비로우시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운 것같이 너희들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하신 말씀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시는 예수님 앞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저도 자비하신 아버지 당신을 따르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조건 없이 주셨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자비로우신 것처럼
    저를 아프게 한 이웃과도 조건 없는 사랑을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부족하기만 한 저이기에 어느 순간 불쑥불쑥 찾아드는 서운함과
    분노를 저는 어찌해 볼 수가 없습니다.
    원수마저도 사랑하라는 당신의 말씀을 아직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미움을 사랑으로 갚고 저주의 말을 축복의 말로 되돌려 주라 하시는
    당신의 말씀을 새기며 자비로운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이 성찰해 보는 오늘 보내야겠습니다.

    사랑하올 주님 !
    아직 상처 많은 제 마음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당신의 사랑과 자비로 저의 아픈 상처 어루만져 주시고
    주님의 위로로 깨끗하게 치유 받고 당신처럼 자비로운 사람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 안에 평화로이 머물기 원합니다. 아멘.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