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교회

 

3. 교의사적인 전개


마리아에 대한 진술의 역사적인 형태는 그 당시 신학의 전체적인 상황과 맞물려 있다. 이는 마리아에 대한 교의사적인 전개의 중요한 단계를 살펴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3.1. 고대교회


교부시대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두 가지 관련점에서 신학적으로 언급되었다. 우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을 구체화하고 확실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 그리고 수덕(修德)과 영성 생활의 모범으로 삼고자(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마리아에 대해서 언급하였던 것이다. 이 두가지 관심사는 가끔 서로 경쟁 관계에 처하였다.




3.1.1. 교부신학에서의 마리아


교회 역사의 처음 몇 세기는 그리스도론적 전망 아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神性)과 참된 인성(人性)에 대한 신앙의 확신을 올바로 생각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의견을 모으는 투쟁의 과정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 과정은 칼체돈 공의회(451)의 교의적 결정으로서 일단 종결을 지었다. 고대교회의 신학자들은 마리아론적 진술의 형태로도 그리스도론적 토론에 참여하였다. 즉 성령에 의한 동정 잉태의 언급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신앙고백을 강화하였고, 예수의 탄생을 주제로 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에 대한 신앙고백에 영향을 주었다.


2세기의 호교 교부들은 특별히 유다와 영지주의 계통의 가현론자(假現論者)들에게 도전을 받았다. 가현론자들은 이원론적인 전체하에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참된 육체를 지닐 수 없다고 확신하면서, 예수는 가짜 육체(dokema)를 취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서 호교 교부들은 예수가 태어난 사실을 그의 참된 인성에 대한 증명으로 이해하였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117년 경)은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 가문 출신으로서 마리아로부터 유래하고 실제로 태어나서 먹고 마신 분”(Trall. 9,1)으로 고백하였다. 이냐시오는 주님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마리아의 동정성과 출산도 하느님에 의해 이룩된 신비에 속한다고 보았다(Eph.19,1).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냐시오가 마리아의 동정성을 언급하면서 성령에 의한 잉태를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고, 출산 그 자체를 기적적인 사건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예수의 출산이 보통의 출산과는 다르다(나중에 얘기하듯이 ‘출생 중의 동정’)고 받아들이는 것은 이냐시오의 반가현론적 관심에 오히려 거스리는 것이라고 하겠다.


순교자 유스띠노(+165년 경)의 저작에서 동정잉태에 관한 고백이 여러 차례 언급된다. 그는 당시의 유다인들 집단과의 대화에서 이사 7,14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이 약속이 하느님의 아들의 동정잉태를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본다(Dial. 43,3-7). 그는 이방인들 사이에 동정으로 잉태된 신의 아들들에 관한 신화적 상상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그가 어떤 성관계도 없는 마리아의 잉태에 관해서 얘기할 때에는 이런 신화적 상상과는 구분을 지었다(Apol. I 21-22; 32-33). 또한 유스띠노에게서 나중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하와와 마리아의 비교가 처음으로 명확하게 나타나는데, 구원론적 맥락에서 이를 언급하였다. 즉 유스띠노는 하느님께서 아담의 옆구리에서 기적적으로 하와를 만드신 것은 하느님의 아들이 성령의 힘에 의해 잉태된 것의 예표(豫標)라고 보았던 것이다(Dial. 84,1-2; 100, 4-5).


리옹의 이레네오(+202년 경)는 구원론적 관점에서 사도 바오로에게서 발견되는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의 비교(로마 5,12-21)를 하와와 마리아에게 적용시킨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창조사업의 완전한 재건으로 성취되었다는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죄로 말미암아 야기된 역사의 요소들이 위치하고 있는 자리에 구원의 요소가 들어섰다고 본다. 즉 아담 대신에 그리스도가 등장하고, 원죄의 나무 대신에 십자가 나무가 심어졌다. 이와 상응해서 마리아는 새로운 하와가 되었다. 아담의 경우에는 한 여인, 즉 살아 있는 자들의 어머니인 하와가 연관되어 있고, 제2의 아담 역시 한 여인, 즉 동정녀 마리아가 연관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하와와 마리아도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하와는 순명하지 않았으나 새로운 하와인 마리아는 순종했다. 그리고 두 여인 모두가 각각 한 남자를 곁따랐으나 끝까지 동정녀로 머문 것은 마리아였다. 마리아는 천사에게 대답한 그녀의 말 속에 이미 드러난 대로 (루가 1,38)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따름으로써, 하와의 죄로 말미암아 엉클어진 매듭을 다시 풀어낼 수 있게 했다. “하와의 불순명이 묶어 놓은 매듭을 마리아의 순명이 풀어주었고, 처녀 하와가 불신으로 맺어 놓은 것을 동정 마리아가 믿음으로 풀었다”(Adv.Haer. III 22,4). 여기서 언급된 반명제(反命題)는 마리아론에서 계속 생동적으로 머문다. 즉 하와를 통해서는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해서는 삶이 왔다는 것이다.


초대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이렇게 아담과 그리스도를 유형론적으로 비교하면서 하와와 마리아의 관계도 비교하게 되었다. 그들은 더 나아가서 하와와 교회의 관계도 유형론적으로 고찰하였다. 하와가 첫째 아담의 반려자이듯이 교회는 둘째 아담의 신부, 반려자라는 것이다. 이런 비교에 대한 충분한 근거는 성서가 제공하였다(에페 5,25-32 참조). 여기서 하와로 말미암아 야기된 비구원의 상태를 회복하는 새로운 하와로서의 마리아와 둘째 아담의 반려자인 제2의 하와로서의 교회를 비교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고 하겠다. 이 점을 최초로 인식한 것은 이레네오였다. “하느님께서 구원의 표징이 되도록 신앙을 통해서 동정녀로부터 기묘하고 헤아릴 수 없는 방식으로 선사하신 새로운 탄생에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Adv.Haer. IV 33,4). 여기서 이레네오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마리아로부터의 탄생과 관련짓는다. 그는 계속해서 마리아의 품을 교회의 품과 동일시한다. “예수를 동정녀로부터 탄생한 임마누엘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당신 피조물의 합일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었고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분은 스스로 순결한 분으로서 순결한 모태를 열어 놓았는데, 그 모태란 다시 말하면 하느님을 위해 인간을 다시 출산하고 그분 스스로 순결하게 만든 모태를 말한다”(Adv.Haer. 33,11). 이렇게 이레네오는 동정녀이며 어머니인 마리아를 세례로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이들에게 어머니가 되는 교회와 유사하다고 본다.


동방과 서방에서 3세기와 4세기에 걸쳐서 성령에 의한 동정잉태에 대한 고백이 점차로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대한 교리로 발전하였다. 마태오와 루가 복음은 마리아가 남자의 도움 없이 성령에 의해서 예수를 출산하였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기에, 교부들은 마리아의 동정 잉태는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차차 마리아가 신체의 아무런 손상이나 고통을 당하지 않고 출산했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되었다. 물론 떼루뚤리아노(+ 220년 이후)같은 교부는 마리아의 “동정성”을 “남자와 관련된”(quoad virum) 즉 남자의 협조 없이 이루어진 출산의 의미로 이해하고, 출산 과정 자체와는 관련시키지 않았다(Adv. Marx. IV 21,4). 한편 오리게네스(+ 254경)는 출생시의 동정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주저하였지만, 마리아의 동정성을 (떼루뚤리아노 처럼) 남자의 협조 없이 이루어진 출산의 의미로 이해하면서, 예수의 출생 이전과 이후에도 지속되는 사실(“virginitas ante partum et post partum”)로서 받아들였다(In Lc. 14).


하지만 동방의 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215년 이전)는 예수께서 마리아의 동정성에 손상을 주지 않는 기적적인 방식으로, “출산 중의 동정으로”(“virginitas in partu”) 태어나셨다는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다(Strom. VII 16; 93,7). 니싸의 그레고리오(+394)는 마리아께서 “죄에 물듦 없이”, 고통없이 출산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받아들이고 출애 3,2에 나오는 불꽂이 이는데도 타지 않는 가시나무 떨기를 마리아의 기적적인 출산과 관련시킨다. 가시나무 떨기가 불꽃을 품고서도 타지 않듯이 마리아도 예수 아기를 낳고 동정성이 손상되지 않은 채로 머물렀다는 것이다(Or. Dom I). 그레고리오는 이런 의미에서 하와와 마리아를 유형론적으로 비교하고 발전시켰다. 즉 죄의 결과로 하와는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출산하였지만, 결백한 동정녀 마리아는 큰 기쁨 속에서 아들을 출산하였다는 것이다(Hom. in Cant. 11,5; In Chr. Res. V). 서방에서는 베로나의 제노(+372경), 암브로시오(+397), 아우구스티노(+430) 등에 의해서 마리아의 동정성은 출산 중에도 손상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점차로 공고하게 되었다.


암브로시오와 아우구스티노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가 동정으로 잉태되고 출산된 것이 구원론적 이유에서 “필연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아우구스티노는 뻴라지우스(+418 이후)와의 논쟁 중에 형성된 자신의 원죄론과 관련지어서, 죄없는 거룩한 한 인간(구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가능성을 동정잉태와 필연적으로 연결지었던 것이다. 즉 아우구스티노는 아담의 죄가 남녀의 성관계를 매개로 한 번식을 통해서 후손에게 계속 전달된다고 보았고, 그래서 절대로 죄가 없는 그리스도는 성관계 없는 동정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야만 했다고 결론짓는다. 그리스도는 육적인 욕망의 길을 통해서 인간이 되기를 원치 않았기에 아무 남자도 아버지로 삼기를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아우구스티노의 주장에는 인간의 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명백하게 깔려있다. 특히 금욕적인 경향을 지닌 이들은 아우구스티노의 이론을 환영하면서 수용하였다.




3.1.2. 고대교회의 교회교도권의 견해


고대교회의 공의회들은 로고스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고 탄생되었다는 신앙고백문을 작성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일차적으로 그리스도론적 지향이 작용하였다. 첫 5세기 동안에 가장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신학적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하는 물음이었던 것이다. 비로소 6,7세기에 이르러서 마리아 자신에 대한 명백한 관심을 드러내는 시노드와 공의회의 발표문이 발견된다.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을 부정한 아리우스의 이단에 대처하기 위해서 개최된 니체아 공의회(325년)는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느님과 동일한 본성을 지녔다고 선언하면서, 하느님 아들이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다”(DS 125)고 고백한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는 이를 좀더 세분해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다”(DS 150)고 표현한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마리아에게 “하느님을 낳은 분”(theotokos)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는데, 그 이전에 과연 이 칭호가 신학적으로 합당한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 역시 그리스도론에 관련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네스토리오(+451)는 이 칭호를 거부하였는데, 왜냐하면 그는 이 칭호에서 그가 대항해서 싸워온 단성론의 자취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神人 兩性을 엄격히 구분하였던 그는 이 칭호 대신에 마리아를 “그리스도를 낳은 분”(christotokos)라고 불렀다. 에페소 공의회는 단성론적 경향이 강한 알렉산드리아 신학파에 친근한 대다수 참석자에 힘입어서, “거룩한 동정녀”는 “하느님으로부터 오시어 육신을 취하신 말씀을 육적으로 낳으셨기 때문에” 마리아를 진실로 “하느님을 낳은 분”으로서 부를 것을 가르쳤다(DS 252). 에페소 공의회의 교부들은 “theotokos” 칭호을 거부하는 것은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이해될 위험이 있다고 보고서 이에 대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칼체돈 공의회(451년)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관계를 “뒤섞이지도 않고 뒤바뀌지도 않으며 나눠지지도 않고 갈라지지도 않게”(DS 302)라고 정리하고서, “그리스도를 낳은 분”이라는 칭호도 정통 신앙이라고 받아들였다.


교황 레오 1세(440-461)가 콘스탄틴노플의 총대주교 플라비아노에게 보낸 편지 ―이 편지의 내용은 칼체돈 공의회에서 수용되었다―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라는 신앙고백을 그리스도론적 전망에서 요약하고 있다. 즉 마리아는 성령으로 인하여 말씀을 잉태하셨는데, 그는 참된 하느님이시다. 또한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을 실제로 낳았는데, 그는 참된 인간이시다(DS 290-292). 그런데 교황 레오도 예수의 출생은 마리아의 동정성을 손상하지 않는 기적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면서 마리아가 출산 중에도 동정이었음을 받아들였다(DS 291).


공의회 문헌에서 처음으로 “평생 동정”이라는 칭호가 나타난 것은 비로소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이다. 이 공의회는 “거룩하고 영광에 가득찬 하느님의 어머니요 평생 동정이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DS 422) 말씀이 육신을 취하셨다고 고백하도록 촉구하였던 것이다.


aeiparthenos(평생 동정)이라는 표현은 4세기 초에 오리게네스의 제자이며 주교인 알렉산드리아의 베드로(+311)에게서 처음으로 발견된다. 그는 이 표현을 theotokos라는 칭호에 곁들여서 부차적으로 사용하였다. 4세기 후반의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오(Ephiphanius, +403)에게서 전래된 세례 신앙고백문에는 “거룩하고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DS 44)라는 표현이 나온다.


649년의 라테란 시노드에서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대해서 좀더 분명하게 표현한다. “거룩한 교부들의 가르침에 따라서 본래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참으로 거룩하고 평생 동정이시며 무죄한 마리아가 하느님을 낳으신 분이라고 고백하지 않는다면 파문될지어다. 왜냐하면 그분은 본래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참으로 하느님이신 말씀, 영원으로부터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태어나신 그 말씀을 마지막 날에 씨없이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성을 손상하지 않고 출산하였으며, 출산 후에도 동정성이 손상되지 않고 지속되었기 때문이다”(DS 503).


교부시대의 마리아론은 처음에는 구원사적―그리스도론적 동기에서 출발하였지만 점차로 마리아 자신의 인물과 운명에 분명하게 관심을 두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순교자와 성인들이 전례 안에서 점점 더 확고한 공경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또한 금욕적인 수덕생활의 영향을 받으면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라는 신앙고백도 내용적으로 변화되었다. 즉 이 신앙고백은 원래 하느님의 아들이 성령에 의해서 잉태되었다는 것을 주안점(主眼點)으로 삼았지만, 점차로 마리아가 예수를 출산하기 전, 출산 동안, 출산 이후에도 동정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성령에 의한 마리아의 동정 잉태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으로 확대되었던 것이다. theotokos(하느님을 낳으신 분)이라는 칭호가 아직 그리스도론적 논쟁의 맥락 속에 있다면, 마리아를 aeiparthenos(평생 동정녀)라고 표현하는 것은 점차로 마리아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변화된 상황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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