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수난예고와 높은 자리를 원하는 제베대오의 가족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어가 죽게 될 것임을. 그러나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그런데 제자들은 아직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죽으러 가시는 예수님을 제자들은 왕위에 오르시기 위해 가시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야고보와 요한)과 어머니가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어머니 살로메(완전한 자라는 뜻)는 예수님께 큰 절을 하면서 청탁을 합니다. 인사 청탁 입니다. 어머니 자신이 이런 청을 하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아들들 쪽에서 원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시는 도중에 열 두 제자를 가까이 불러 조용히 말씀하셨다. 18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어 가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이다. 19 그리고 이방인들의 손에 넘어 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며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이나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세 번 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예고에서는 베드로의 강력한 반대가 뒤따랐으며 베드로는 예수님의 신랄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두 번째의 예고에서는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높은 자가 될 것인지를 따지는 수치스러운 논쟁이 뒤따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관심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습니다.
20 그 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예수께 왔는데 그 어머니는 무엇인가를 청할 양으로 엎드려 절을 하였다. 21 예수께서 그 부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은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세 번째 예고에 대한 반응은 제베대오의 아들들의 부탁입니다. 이런 부탁은 예수님의 말씀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모욕을 생각하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앞으로 다가올 영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고 계시는데 그들은 영광의 옥좌에 앉을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열 두 옥좌를 약속하셨는데 살로메는 그 첫째 자리를 두 아들에게 주시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살로메는 그 자리가 이 나라의 자리인지, 내세의 나라에 있는 자리인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살로메가 성모님의 자매였다고 하니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형제가 없으니 사촌인대 야고보와 요한에게 마땅히 그 자리를 주어도 좋으리라고 그녀는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22 그래서 예수께서 그 형제들에게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마실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제자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으며 부활하신 주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실 때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낮은 데서 생각하고 있는 반면, 예수님께서는 높은 데서 생각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최고의 야심으로 목표하는 것- 옥좌에 앉는 것-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순종의 상급이요 하느님께서 자유롭게 내려 주시는 상급인 것입니다.
영광의 길은 모멸의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마시는 그 잔을 마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잔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제자들 또한 그 잔을 – 죽음의 잔을 마시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는 사도들 중에서 맨 처음의 순교자가 되어 기원 44년 예루살렘에서 목 베임을 당했고(사도12,2), 요한은 투옥당하고 채찍질을 받고,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지고, 그 후 파트모스 섬에 추방되고(묵시1,9;사도4,3:5,40-41) 트라이야누스 황제(98-117년)때 에페소에서 죽을 때까지 고난의 사도직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죽음을 같이한 자들까지도 영광 속에 준비되어 있는 자리를 요구할 권리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그것을 수여해 주십니다. 말씀의 사명은 섭리가 정한 일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24 이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열 제자가 그 형제를 보고 화를 냈다.
이 분노에는 질투가 섞여 있습니다. 하긴 내가 그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내가 하면 괜찮고, 남이 하면 안되고… 다른 제자들은 두 사도가 마시겠다는 잔이 무엇인지를 알았더라면 그렇게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격려를 해 주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그들은 갈 길이 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을 살고 있는 나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화를 내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내가 조금만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해도 화를 내고, 내가 중심이 되지 않아도 화를 내고, 나보다 못한 사람이 인정을 받아도 화를 내고…
25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놓고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27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교와 세상과의 차이를 명확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명예심은 질투심이 되고 불목의 근본이 됩니다. 추잡한 이 욕망이 태어나고 있는 교회를 지도해야 할 제자들 사이에서 생겨난다면 한 순간에 교회는 분열하고 파괴도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와 지도자와, 사업을 구하기 위해, 사도들이 가지고 있는 어리석음, 명예에 대한 죄의 근원을 겸손으로 변화시키려고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가르치심을 몸소 십자가에 달려서 보여 주십니다.
27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남을 지도해야 할 사람들은 자신을 종의 위치로 낮추어야만 합니다. 교황님이 자신을 종들의 종이라고 표현하신 것처럼 그렇게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오늘날의 성직자 수도자들은 어떤 모습인지 스스로가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서 그들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봉사는 가장 진실한 통치 양식입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제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버림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스스로 이웃의 종이 됨으로써 자아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켰습니다(갈라5,13 참조).
28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몸값은 노예를 해방하기 위하여 치르는 돈을 말합니다. 이 말씀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의 노예였음을 알려 주십니다. 여기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으시지만 바오로 사도의 입을 통해 사람은 악마와 죄의 종이었음을 알려줄 것입니다(로마서6장 참조).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몸값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의 목숨을 잃어버리면 그것을 되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목숨은 죽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만일 목숨이 죄와 이기주의로 속속들이 부패외어 완전히 상실되어 버리면 그는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몸값을 치르고자 한다면 그는 다른 데 의존해야만 합니다. 그가 의존할 수 있는 유일한 분, 그리고 몸값을 지불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의 몸값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기까지 봉사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왜 모든 사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일까요? 인류 가운데는 몸값을 대신 치러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일까요? 아무도 몰락한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몸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몸값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죄의 노예로 살아가렵니다. 방해하지 마세요…”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사람(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어머니 살로메는 두 아들을 위해서 무리한 청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자신이 어떤 수모를 당한다 할지라도 자녀가 잘 되면 그것으로 만족해하시는 분들입니다. 살로메의 마음이 되어 내가 내 자녀들을 위해 했던 것 중에 무리한 것은 없었는지를 나눠 봅시다.
2. 섬김을 생각해 보면서 나는 섬기는 사람인가? 섬김을 받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본당에서 만나는 성직자 수도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분들 안에서 내가 발견하는 섬김은 어떤 것이 있는지 함께 나눠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