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말씀연구>
“울면서 후회하네”. “또는 있을 때 잘 할 것을…”이런 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셨지만 주님을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가는 곳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가는 곳은 전혀 다른 곳입니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간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찾다가 자기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을 터이니 내가 가는 곳에는 오지 못할 것이다.”
인정하지 못하고, 고집을 피우고, 불신을 드린 사람들! 그들도 이 다음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고백했던 것처럼. 하지만 죄 속에서 죽게 될 그들은 결코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는 가지 못할 것입니다. 죄는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점점 더 선과 빛과 진리를 거슬리는 쪽으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거슬리는 죄입니다(마태12,31-32;마르3,28-30;루가12,10). 이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하심에 한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의 손길을 그들의 자유의지로 거역했기에 각자에게 주어진 모든 희망을 차 버린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스스로 소경이 되어 예수님을 알아보려 하지 않았고, 스스로 귀머거리가 되어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스스로 앉은뱅이가 되어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은 유다인들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가 가는 곳에 우리는 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니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자살은 지옥에 떨어지기 알맞은 하느님께 대한 불경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모습은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께서 혹시 자살하시려는 것이 아닌가 하며 어리석은 주장을 하게 됩니다. 또한 이 말은 예수님께는 커다란 모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중얼거림에 관심을 두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지만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24 그래서 나는 너희가 자기 죄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죽으리라고 한 것이다. 만일 너희가 내가 그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그와 같이 죄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죽고 말 것이다.”
인간은 생각과 생활과 소망하는 모든 것을 세상에 근거해서 맺어져 있습니다. 즉 세상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은 아래에서 왔고 아래로 갈 사람들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속해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도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두 다리는 땅에 붙어 있다 하지만 눈은 언제나 하늘을 향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능성을 열어 주십니다. 당신을 믿기만 한다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바로 당신이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다면 베짜타 못가의 병자처럼 그렇게 38년을 기다려도 구원의 물 속에는 못 들어 갈 것입니다. 아니 온 생애를 기다려도 말입니다.
죄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들은 예수님의 신원을 또 묻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가끔은 눈에 보이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상대방의 말을 믿어 줄 것은 믿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많은 일을 보고도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초상집에 가서 실컷 울고도 “누가 죽었냐고”묻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처음부터 내가 누구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느냐? 26 나는 너희에 대해서 할 말도 많고 판단할 것도 많지만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기에 나도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그대로 이 세상에 말할 뿐이다.”
예수님의 아버지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도 않고, 인정할 수도 없는 유다인들. 그들은 마치 예수님이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진실을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더 이상 어떻게 하실 말씀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실 뿐인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28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 내가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만 말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시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 온 세상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이 모두 아버지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와 종속, 하느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이후에 그것을 똑똑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30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사람.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하는 사람일까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불신에 가득찬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은 누구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2. 알아듣는 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삶 안에서, 특히 가까이 있는 경우 더더욱 못 알아 보고, 못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 내가 못보고 못 알아듣는 것들이 있습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내나 아이들에게, 직장 동료나 친구들에게…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요한8,21-30)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시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제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끔씩 나는 누구인가?그리고 당신은 누구인가?
하며 남편에게 질문을 할때가 있습니다
남편과 살면서 중요한 일을 결정할때나 집안의 행사등 여러 가지 일로 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남편의 일방적인 결정을 했을때 그 결과가 좋지않게
나타났을때마다 마음이 상해서 하는 저의 질문입니다
그때마다 순진한 남편은 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하나뿐인 아내라고…
그런말을 하는 남편이 더 저의 마음을 속상하게 할때가 있기에
저는 항상 제가 없어야 아내의 소중함을 알것이라고 하며 남편한테 불평을 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도 얼마나 마음이 상하셨을까 생각해봅니다
당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셨을 예수님의 심정이 …..
요즈음은 저의 마음이 닫혀있는탓인지 사람에 대한 실망과 믿음이 점점 없어지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TV의 광고에서 나오는 멘트에서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는”내용이 있습니다
그 선전을 보면서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을뿐 인데 요즈음 저의 마음이 정말로
사랑은 움직이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제가 집을 샀을때 집등기를 나중에 해주겠다는 매도인의 말을듣고 그렇게
하라고 대답을 했던 남편을 보고 본당신부님께서 아시고 하느님외에는 아무도 믿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시며
등기를 받으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예사로 들었었는데 정말 사람의 마음도 변할 수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 하느님만이 변치않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하며 예수님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는 행동을 믿을까하는 생각이……
사랑도 움직이는 것같이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변할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사람의 마음은 더 그럴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세상의 모든 것이 변할수 있는데도 제가 믿고 있는 사람이나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나
모든 것에 대해 기대나 희망은 이제 버려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기대가 큰 만큼 절망이 크기에 …..
오직 변치않는 분은 하느님뿐 이심을 믿고 그동안에 마음 상했던 모든 것에 대한
것을 저의 욕심으로 생각하며 하느님만이 저의 영원한 사랑이심을 믿으며 얼마남지
않은 사순시기를 잘 보내어 부활의 기쁨을 맞고 싶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
당신만이 저의 영원한 사랑이심을 깨닫게 해주신 당신을
사랑할수 있게 저의 마음이 변치않을 믿음을 주십시오
아멘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요한8,21-30)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시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제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끔씩 나는 누구인가?그리고 당신은 누구인가?
하며 남편에게 질문을 할때가 있습니다
남편과 살면서 중요한 일을 결정할때나 집안의 행사등 여러 가지 일로 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남편의 일방적인 결정을 했을때 그 결과가 좋지않게
나타났을때마다 마음이 상해서 하는 저의 질문입니다
그때마다 순진한 남편은 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하나뿐인 아내라고…
그런말을 하는 남편이 더 저의 마음을 속상하게 할때가 있기에
저는 항상 제가 없어야 아내의 소중함을 알것이라고 하며 남편한테 불평을 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도 얼마나 마음이 상하셨을까 생각해봅니다
당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셨을 예수님의 심정이 …..
요즈음은 저의 마음이 닫혀있는탓인지 사람에 대한 실망과 믿음이 점점 없어지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TV의 광고에서 나오는 멘트에서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는”내용이 있습니다
그 선전을 보면서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을뿐 인데 요즈음 저의 마음이 정말로
사랑은 움직이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제가 집을 샀을때 집등기를 나중에 해주겠다는 매도인의 말을듣고 그렇게
하라고 대답을 했던 남편을 보고 본당신부님께서 아시고 하느님외에는 아무도 믿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시며
등기를 받으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예사로 들었었는데 정말 사람의 마음도 변할 수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 하느님만이 변치않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하며 예수님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는 행동을 믿을까하는 생각이……
사랑도 움직이는 것같이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변할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사람의 마음은 더 그럴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세상의 모든 것이 변할수 있는데도 제가 믿고 있는 사람이나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나
모든 것에 대해 기대나 희망은 이제 버려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기대가 큰 만큼 절망이 크기에 …..
오직 변치않는 분은 하느님뿐 이심을 믿고 그동안에 마음 상했던 모든 것에 대한
것을 저의 욕심으로 생각하며 하느님만이 저의 영원한 사랑이심을 믿으며 얼마남지
않은 사순시기를 잘 보내어 부활의 기쁨을 맞고 싶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
당신만이 저의 영원한 사랑이심을 깨닫게 해주신 당신을
사랑할수 있게 저의 마음이 변치않을 믿음을 주십시오
아멘
2. 알아듣는 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삶 안에서, 특히 가까이 있는 경우 더더욱 못 알아 보고, 못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 내가 못보고 못 알아듣는 것들이 있습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내나 아이들에게, 직장 동료나 친구들에게…
제가 사는 아파트에 어떤 고약한 사람이 삽니다.
엘레베이터의 버튼에 붙여진 층수를 표시하는 스티커를 자꾸 떼어내서 보기에도 흉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A/S기사가 와서 다시 붙여놓으면 다시 떼어가고..
한번은 제가 스티커가 또 떼어진 걸 보며 어느 집 자식인지.. 가정 교육을 어떻게 시킨거야.. 하며 화를 냈더니 제 아내는 아이들이 뭐 그럴 수도 있지요 뭐… 하는 겁니다…
순간 무안해서 괜히 제 아내한테 “나를 무시하는 거야 ” 따졌지요..
착한 제 아내는 “그게 아니구..” 하며 달래주었습니다.
또 다른 일화..
결혼식을 가기위해 대절한 버스에서 어느 나이 지긋한 하객들이 왁자지껄하게 술마시고 소란스럽게 했습니다. 제 바로 뒷자리에서요.. 나이값도 못한다고 흉을 보았더니. 그 때 아내는 좋은 날 그럴 수도 있지요 뭐.. 그러는 겁니다..
또 무안해졌지요..
그래서 저는 제 아내의 행동에서
제가 저 자신과 이웃에게 너무 엄격한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 되었습니다.
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해야겠습니다.
2. 알아듣는 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삶 안에서, 특히 가까이 있는 경우 더더욱 못 알아 보고, 못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 내가 못보고 못 알아듣는 것들이 있습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내나 아이들에게, 직장 동료나 친구들에게…
제가 사는 아파트에 어떤 고약한 사람이 삽니다.
엘레베이터의 버튼에 붙여진 층수를 표시하는 스티커를 자꾸 떼어내서 보기에도 흉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A/S기사가 와서 다시 붙여놓으면 다시 떼어가고..
한번은 제가 스티커가 또 떼어진 걸 보며 어느 집 자식인지.. 가정 교육을 어떻게 시킨거야.. 하며 화를 냈더니 제 아내는 아이들이 뭐 그럴 수도 있지요 뭐… 하는 겁니다…
순간 무안해서 괜히 제 아내한테 “나를 무시하는 거야 ” 따졌지요..
착한 제 아내는 “그게 아니구..” 하며 달래주었습니다.
또 다른 일화..
결혼식을 가기위해 대절한 버스에서 어느 나이 지긋한 하객들이 왁자지껄하게 술마시고 소란스럽게 했습니다. 제 바로 뒷자리에서요.. 나이값도 못한다고 흉을 보았더니. 그 때 아내는 좋은 날 그럴 수도 있지요 뭐.. 그러는 겁니다..
또 무안해졌지요..
그래서 저는 제 아내의 행동에서
제가 저 자신과 이웃에게 너무 엄격한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 되었습니다.
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