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는 것도 모릅니까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는 것도 모릅니까


<말씀연구>


죽은 사람의 부활을 바라보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오늘 유다인들은 라자로의 부활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지도자들에게 일러 바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은 그 놀라운 일을 하시는 예수님을 어떻게 해치워야 할지 작당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이를 살려 주신 대신 예수님은 죽게 됩니다.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대신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십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47 “그 사람이 많은 기적을 나타내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그대로 내버려 두면 누구나 다 그를 믿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로마인들이 와서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백성을 짓밟고 말 것입니다” .


산헤드린은 유다 마카베오 시대부터 존속해 오던(마카베오상 7,33) 유다 백성의 통치를 맡은 최고의회입니다. 예수님의 전도사업 기간 동안 산헤드린은 하층 귀족들을 대표하는 원로들, 전직 대사제들과 대사제를 배출한 가족의 일원들인 대사제장들, 그리고 대부분 바리사이파에 속하였던 종교법률가인 율법학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로마의 지배 하에서 이 의회는 유다인을 다스리는 최고기관이었고 완전히 독립하여 종교문제를 관할하였으나 시민을 다스리는 일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제한된 권한을 가졌습니다.  또한 산헤드린은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었으나 그 선고를 인정하고 형을 집행하는 것은 로마 총독에게 일임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같은 분이심을 선포하는 오만불손한 태도(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죽어야할 이유입니다.


둘째로, 만일 예수님께서 자유롭게 활동하신다면 백성들은 그분을 메시아라고 생각하고 독립을 위해 폭동을 일으키고 궐기하게 될 것임을 고민합니다. 그리고 폭동이 일어나면 로마인들이 이스라엘에 허용하고 있던 작은 권력도 빼앗을 것임이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대사제들의 권위는 떨어지고 나라는 짓밟히고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가끔은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가야파의 이 말. 지금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후회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49  그 해의 대사제인 가야파가 그 자리에 와 있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그렇게 아둔합니까?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는 것도 모릅니까?”


가야파! 그는 이 문제에 대한 가장 현명한 정치적 해결점이라고 생각하는 묘안임을 알려주는 동시에, 예수님의 죽음을 갖고 올 무의식적인 예언을 말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대책은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구체적인 계획까지는 세웠지만 남의손을 빌어서 없애려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가야파는 18년부터 36년까지 대사제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빌라도와 같은 인물 밑에서 그렇게도 오랫동안 대사제직을 누리고 있던 점으로 보아서도 그는팔레스티나에 있어서 로마정치의 추종자였다고 추리됩니다. 그는 현실주의자였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기주의자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무죄냐 유죄냐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로 그보다 앞서 예수님을 국가 이익의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51  이 말은 가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사제로서 예언을 한 셈이다. 그 예언은 예수께서 유다 민족을 대신해서 죽게 되리라는 것과 52  자기 민족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 죽는다는 뜻이었다.


가야파는 정치적 이해를 위해 예수님을 희생 제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한 말의 뜻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 이방인 모두를 위해서 죽으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부패한 가야파의 입을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말씀하십니다. 부족한 나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일을 하시는데,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려고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무슨 말을 했는 지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




53  그 날부터 그들은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이제 이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구체적으로 실해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이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가장 좋은 기회를 기다릴 것입니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미온적인 것이 아니라, 명백한 결의입니다.


이미 수단과 방법의 선택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불행하게도 내가 그 수단이 되어서는 안될텐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때가 아직 다가오지 않았기에 제자들과 함께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예루살렘에서 25키로쯤 떨어져 있는 곳)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런데 과월절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벌써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예수님께서 명절에 참례하시느냐? 안하시느냐? 에 있었습니다.


56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그가 명절에 참례할 것 같지는 않지요?”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일하시는 예수님이었다면 예루살렘에는 올라가지 않으시겠지만 구속사업을 하시기 위해 오신 그분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가끔은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 작은 일 하나에도 관심을 갖고 추진해야 하겠습니다.




<함께 생각해 보아요>


1. 혹시 공동체에서 일을 추진하다가 다른 사람을 모함하게 되거나, 그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결정해 버리는 경우는 없습니까? 아니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일을 추진하는 경우는 없었습니까?




2. 만일 내가 예수님이었다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처럼 올바른 일을 위해 나 자신을 내어놓은 적이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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