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론 강의-들어가는말

 

1. 들어가는 말



서구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만 해도 마리아 신심이 가톨릭 교회에 넓고 깊게 자리하였다. 또한 마리아론은 신학분야에서 양적으로 가장 풍부한 부문이었다. 해마다 마리아에 관한 수천가지의 새로운 저서와 논문들이 발표되고는 하였다.


로랑땡(R.Laurentin)은 이미 1959년에 마리아에 관한 저서는 십여만권에 이르리라고 추측한 바가 있다. 특히 교황 비오 12세(1939-1958) 재위 말년에는 세계 도처에서 마리아에 관한 단체와 학부, 그리고 대회가 융성하였다. 비오 12세가 마리아 성년으로 선포했던 1954년 한해만에도 마리아에 관한 주제로 43개의 대회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국제적인 마리아대회가 1950년부터 시작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날 때까지 진전되었으며, 그 결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예를 들어서 1950년 로마대회는 토론 내용을 13권의 방대한 전집으로 발간하였고, 1954년에는 대회 결과를 무려 18권에 이르는 전집으로, 1958년의 루르드 대회는 16권의 전집으로 종합하였다. 이에 비해서 1965년의 성도밍도 대회는 6권의 책만을 출판하였다. 이는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공의회 이후 급격히 줄어든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물론 열성적인 마리아론 신학자들은 이런 급격한 마리아 신심과 신학의 감소를 매우 유감스러워 하면서 바로 이 때문에 가톨릭 신자들의 열심이 감소되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들은 현재 교회가 처한 위기를 전통깊은 마리아 공경의 소멸과 직접 관련짓기도 하였다. 아주 일리가 없는 지적은 아니지만, 경계해야할 점은 마리아 신심의 이름으로 종파적(小宗派的)인 집단행동을 취하면서 상당히 공격적이거나 과격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 나라의 경우 성모님의 이름으로 낙태 반대 운동을 펴치면서, 이에 대한 주의를 끌기 위해서 나체시위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또한 미국 주교단에서 인정하지 않은 ‘베이사이다의 성모 발현’을 근거로 손으로 영성체하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하면서 장궤를 하고 입으로 영성체하는 것을 고집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마리아 신학과 신심의 급격한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전통적인 마리아론이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수세기 동안 마리아론은 많은 점에서 불균형을 이루며 전개되어 왔다고 하겠다. 이는 대략 세 가지 점으로 요약된다.


1) 종교개혁 이후에 마리아론의 기본방향은 반종교개혁적 입장을 취하였다. 마리아에 관한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의 침묵이나 거부에 대해서 가톨릭측에서는 과도할만큼 풍성하게 마리아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던 것이다. 즉 항상 새롭게 마리아의 특전을 주시하고, 마리아에 대한 명예 칭호가 생겨났으며, 새로운 교의적 정식(定式)을 교회 교도권에 요구하고는 하였다. 간혹 이런 경향으로 말미암아 교회일치에 어려움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염려가 제기되었지만, 이에 대해서는 진리를 삭제하지 않고 선포하는 것이 교회 일치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대응하였다. 마리아는 일치를 원하고 일치를 촉진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맹목적 열심은 설사 그것이 진리의 이름을 내세우더라고 항상 해를 끼친다는 것을 간과하였다.


2) 한가지 사항이 전체와의 관련을 잃어버릴 때에도 위험한데, 바로 이런 것이 마리아론에서 일어났다. 마리아에 대해서 점차로 상세히 다루어지고 전문화되면서 신학의 다른 부분으로부터 격리되기에 이르렀다. 이로 말미암아 마리아에 관한 가르침은 그 근원이 되는 기반을 상실할 위험에 처하였다. 사람들은 열성적으로 마리아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나머지 마리아의 팔에 안긴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예수 아기를 팔에 안은 성모상이 점차로 성모님 혼자 서있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마리아를 더 이상 신앙적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과 동일한 존재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마리아를 “특별한 의미에서 성삼위의 넷째 위격”이라고까지 불렀다.1)


3) 이렇게 마리아론이 신학의 다른 분야로부터 고립되면서 마리아론 자체 내에서 분석과 논증이 시작되었다. 이 분석적 논증은 그리스도의 모친의 모든 탁월성을 전체적 맥락에서 분리시켜서 하나하나 따로 떼어 고찰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그 결과 경건의 이름으로 근거 없는 환상이 묵과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서 팟취(J.Patsch)라는 저자는 마리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는 우선 책의 머리말에서 자신의 의도를 이렇게 밝힌다. “다음의 책에서는 증명할 수 없거나 꾸며낸 것은 일체 배제하고 원전에 의거하여서 마리아상을 묘사하고자 한다”.2)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에 불과했고 사실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다. 저자는 마리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책의 한 부분을 할애한다. “마리아는 아름다웠고 그 민족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상응하였다고 가정해도 좋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어떻게 보였을까? “검고 부드러우면서 빛나는 눈, 검푸른 머리카락, 건강하고 흰 치아, 분홍색 입술, 사랑스러운 입, 가벼운 홍조를 띠는 뺨, 기품 있게 생긴 목, 아주 아름다운 가슴”.3) 저자는 여전히 지어낸 이야기는 배제한다고 하면서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길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조그만 보따리를 든 젊은 여인 마리아가 나자렛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 넓은 들판으로 나간다. 그 들판은 꽃이 가득하고 종달새는 높이 떠 지저귀며, 참새는 곳곳에서 짹짹거리고 숲속에서 들비둘기가 노래하며, 도마뱀은 재빨리 길 위로 지나가고, 풍뎅이는 붕붕거리며 벌들은 윙윙거리고, 나비는 바삐 길을 가는 마리아 주위를 왔가 갔다 하고 있다. 산비탈의 돌사이에로 독성있는 노랗고 검은 무늬의 뱀이 숨어 들어가고, 그루터기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4미터 길이의 검은 구렁이가 재빨리 도망간다. 만물이 생명의 환희에 가득 차 있다. 마리아의 태중에서도 마리아 홀로만 알고 있는 생명이 피어나서 기쁘게 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신비에 가득차고 놀라운 신인적(神人的) 생명이다”.4)


이런 낭만에서는 내용적 모순을 별로 문제 삼지 않는다. 이 저자는 마리아의 죽음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단정한다. “마리아의 사망 시간이나 연령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다음의 것을 알고 있다. “하느님 어머니는 질병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불타서 그리고 예수와 천국에 대한 동경에 가득차 피안으로 건너가신 것이다. 마리아의 육신은 이런 내적인 충동을 더 이상 견디어 낼 수 없었던 것이다”.5)




마리아에 대한 확실한 자료가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저자는 이렇게 이상할 정도로 상세한 서술을 하게 되었을까? 그런 서술의 근원은 아마도 저자의 신심적인 종교적 감정에 있을 것이다. 마리아 신심서와 신학서에 적지 않게 나타난 과장된 표현은 종교적 감정의 발산이라고 하겠다. 전통적으로 신학에서는 감정적 측면을 너무 무시하였고, 이 점은 교회의 공식적인 영성생활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금세기 초기에 현대주의자들은 교회 생활 영역의 핵심부에 감정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자 추구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단죄를 받으면서 그들의 시도도 실패하였다. 강단 신학은 신스콜라 신학의 메마른 이성주의(Rationalismus)에 사로잡혀 있었고, 이런 이성주의는 인간의 정적인 힘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였다.


신자들은 어느 시대나 하느님께 이르는 험란한 길을 함께 걸어 갈 수 있는 동행인을 갈구한다. 신학적으로는 누구보다도 앞서 예수의 인간적 면모을 발굴해서 이들의 갈망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통적 그리스도론은 지속적으로 예수의 신성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단성론(單性論, Monophysitism)적 경향으로 기울고 있어서 이런 방향으로 나가기가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완성되고 온전한 인간인 하느님의 모친외에 다른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 사람들은 예수에게 허용하지 않았던 면모들을 점차로 마리아에게 적용하게 된다.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영예와 장점을 마리아에게 부여하였다. 이렇게 되어 마리아의 모습은 점차로 그 아드님의 모습과 합치되고, 자주 마리아의 모습에 예수의 모습이 가리워지는 듯 보였다. 이렇게 해서 다음과 같은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세상의 심판자인 그리스도가 엄격하면 바로 마리아에게 갈지어다. 마리아가 곧 도와주실 것이다.” 17세기의 한 저명한 마리아론 신학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벌을 주시려 하고, 마리아는 구원하시려고 한다. 예수에게는 정의가 있고 마리아에게는 온유함이 있다”.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마리아론은 가장 확대된 신학부문으로 발전되었다. 당시 가톨릭 신학의 다른 부분은 보수적인 면모를 보였고, 신학분야에서 개혁은 큰 불신과 의혹 속에 주시를 받았는데, 유독 마리아론에서만 항상 새롭고 대담한 생각이 쉽게 형성되었다. 사람들은 이런 새로운 생각들이 확고한 기반에 입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마음을 쓰지 않았다. 마리아의 영광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은 “하느님은 그렇게 행하실 수 있으셨고, 그래야 마땅하였으며, 사실로 그렇게 행하셨다(Deus potuit, decuit, ergo facit)”는 원리를 개발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전제하에서 제약이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마리아에 대해서 충분히 말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De Maria numquam satis)”라는 주장이 대두된 것도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하겠다. 이렇게 마리아에 대한 과도한 예찬을 하는 이들 대부분은 교회의 가르침과 교회생활의 다른 영역에서는 매우 엄격하게 현상 유지를 주창하며, 조그만 변화도 용납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보수주의자들이다.


이런 경향은 근래에까지 지속되어 왔고 또 아직도 많은 곳에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금세기 중엽에 있었던 마리아론적 과열상태는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과열행위는 교회의 쇄신과 발전에도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유럽의 교회가 그러하듯이) 마리아에 관해서 일체 침묵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극단에 대한 또다른 극단이라고 하겠다. 마리아 신심은 가톨릭 교회의 유구하고도 아름다운 전통이기에, 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중요하고 귀중한 자산을 잃는 것이다. 문제는 마리아 신심과 신학이 얼마나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올바른 위치를 차지하도록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마리아의 생애와 구세사적 역할에 관해서 고찰하고 이를 신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은 가톨릭 신학에서 배제될 수 없는 불가결의 과제라고 하겠다.


이런 과제를 이행하는 첫단계는 성서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서는 모든 신학적 인식의 규범이 되는 근본 기반인데7), 이 점은 마리아론에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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