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성사-성서적 근거(2)

 

2.3.   최후의 만찬


예수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예상하면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였는데, 신약성서는 4가지 최후만찬 기사를 전한다: 마태 26,26-29, 마르 14,22-25, 루가 22,14-20, 1고린 11, 23-26. 요한복음은 ‘성찬례 제정기사’ 대신에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만을 전한다(요한 13,1-20). 




신약성서가 전하는 최후만찬 기사는 역사적으로 예수의 최후만찬 사실을 반영하지만, 신문보도나 경찰조서처럼 글자 그대로의 사실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초기 교회공동체의 전례적 실천과 신학적 해석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현재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마르꼬의 기사와 바오로의 기사는 가장 오래된 텍스트로 간주되는데, 이 둘은 지금은 현존하지 않는 원본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서로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추정된다.




“루가는 각각의 부분에서 언어적으로[…] 그리고 내용상 바오로 보다도 오래되었다. 즉 루가는 바오로 전승 형태의 바오로 이전의 전승에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르꼬는 이보다도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왜냐하면 그는 언어적 측면에서 바오로나 루가가 보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된 전승을 지니고 있다. 즉 마르꼬에서 발견되는 많은 수의 아라메어 표현들을 미루어서 마르꼬의 기사는 우리에게 전승된 모든 최후만찬 기사들중 가장 원래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는 바오로가 전하는 전승형태가 45년 이전에 그리스 지역에서 형성되고 다듬어진 최후만찬 전승이라는 것을 보았다. 40년대 초에 최후만찬 전승이 다듬어지는 이런 과정에서 루가의 텍스트가 형성되었다. 그 이전에 마르꼬가 언어적으로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는 아라메어 전승이 있었다. 따라서 이 전승은 예수의 죽음 이후 십년 안쪽의 것이다”.1)




                      







아라메어 전승 (40년 이전)










바오로  이전의  전승형태(45년 이전)







고린토 교회의 구전 보도(49/50년)







바오로의 고린토 전서(55년경)









마르꼬 복음(68년경)







마태오 복음(75년경)









루가복음(80년경)






1) 예수는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예상하면서 이에 대한 해석을 한다는 점에서 최후만찬은 그 이전의 여타의 식사공동체와는 구분이 된다. 물론 최후만찬은 예수께서 자신의 제자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한 식사(마르 2,16; 루가 15,2), 즉 메시아 시대에 하느님과 함께하는 구원의 공동체를 선취하는 식사와 밀접히 연결된다. 그러나 최후만찬은 그 식사공동체와 비교해서 분명히 하나의 전환점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예수가 함께 함으로써 공동체가 가능했지만, 최후만찬은 예수의 다가온 죽음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상황을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2) 최후만찬이 출애급을 기념해서 매해 거행되는 파스카 만찬이었다는 설(대표적으로 J.Gnilka) 과 단지 이별만찬이었다는 설(R.Schnackenburg)이 아직도 맞서고 있다. 네 복음서는 모두 예수께서 목요일 저녁에 최후만찬을 드시고, 금요일 오후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고 전한다(마르 15,42; 요한 19,31). 그러나 공관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일에 최후만찬을 지냈고(마태 26,17; 마르 14,12; 루가 22,7이하), 요한복음에 의하면 최후의 만찬은 파스카 축일 전날 저녁에 있었다(요한 18,28). 오랫동안 대부분의 주석학자들은 공관복음이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반영한다고 여기면서 최후만찬이 파스카 만찬이었다고 간주하였다. 이에 비해서 요한복음은 요한의 고유한 신학적 계획에 따라서 서술되었기 때문에 날자가 틀린다고 보았다. 예수에 대한 요한의 전형적인 표현은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36)인데, 요한은 자신의 신학적 견해에 따라서 예수가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서 성전에서 양들이 도살되는 바로 그 시간(금요일 오후 2시 30분경)에 십자가에 처형되었고, 최후만찬은 목요일 저녁 때에 거행된 것으로 서술했다는 것이다.


공관복음서를 따를 때 예수의 체포와 재판 그리고 십자가형이 모두 파스카 축일에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유다인들이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해방절에 과연 재판과 사형집행까지 했을지 의문이 남는다. 그런데 요한복음에 따르면 최후만찬에서부터 십자가 죽음까지의 사건은 파스카 축일 당일이 아니고 그 전날 일어난 것으로서, 무리없이 이해가 가능하다. 이는『바빌론 탈뭇 산헤드린 43a』이 “해방절 전날 저녁 때 사람들은 예수를 매달았다”고 증언하는 것과도 일치한다. 그날을 서기로 환산하면 예수께서는 30년 4월6일 목요일 저녁에 최후만찬을 거행하시고 다음날 7일 금요일 오후에 골고타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2) 그러나 설령 최후만찬이 파스카 만찬이 아니더라도 파스카 축일 분위기 아래서 거행된 것만은 틀림이 없다.3)




3) 예수께서 거행하신 최후만찬은 유다인의 식탁예식에 따른 것은 확실한다.4) 최후만찬 기사에 의하면 예수께서 빵을 쪼개어 나누어 주시면서 그리고 축복의 기도를 한 잔을 건네 주시면서 해석의 말씀을 덧붙이신다. 성서가 전하는 해석의 말씀에는 초대교회의 해석이 섞여있어서 예수의 아라메어 말씀을 절대적으로 정확하게 복원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핵심부분의 말씀은 역사적으로 확실하다고 간주된다. 즉 예수께서는 빵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이는 나의 몸이다”, 잔을 주시면서 “이 잔은 많은 사람들을(= 모든 이들을) 위한 나의 피다”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빵은 예수의 몸으로서 단지 그의 일부분인 물리적인 육신이 아니라 예수 자신, 즉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헌신하는 예수 자신을 의미한다. 피는 단순히 몸안에 있는 혈액만을 의미하지 않고 역시 예수 자신을 가르키며 피를 흘린다는 것을 남을 위해서 극도로, 죽기까지 헌신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잔에 대한 말씀은 그동안의 예수의 헌신의 삶이 극도에까지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다른 이들을 위하여 특히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을 위한 예수 삶의 흐름이 죽기까지에 이르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 또한 많은 이들,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이들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이다. 예수는 식사중에 이렇게 해석된 빵과 잔을 제자들에게 전하면서 자신의 죽음과 운명에 참여하는 공동체에 초대하신다. 빵과 잔을 전하는 행동은 식사에 참여한 이들을 함께 엮으려는 것으로써, 이 식사의 근본적 형태가 친교적 일치(communio)임을 표현한다.




4) 가장 오래된 전승을 전하는 마르꼬와 바오로의 최후만찬 기사에는 계약의 사상은 물론 속죄의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피로써 체결되는 계약에 대한 언급과 “너희를 위하여” (혹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쏟는 피라는 말이 가장 오래된 성찬례 전승에 속하여 있다.


바오로와 루가가 인용한 전승에 의한면 “이 잔은 내 피로 맺은 새로운 계약이다” (루가에서는 “너희를 위하여 쏟는 피”라고 첨가되었다)(1고린 11,25; 루가 22,20). 마르꼬와 마태오에 의하면 “이는 내 계약을 피로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쏟는 것입니다”(마르 14,24; 마태 26,28). 이 두 전승에서는 잔을 전하는 것이 계약의 주제와 (쏟은) 피라는 주제와 연결되는데, 이는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상이한 계약의 전승들이 자리하고있다: “계약의 피”라는 말은 도살한 짐승의 피로 맺은 시나이 계약 (출애 24,8)과 이를 기억하여 매해 거행하는 예루살렘의 성전에서의 축제를 가르키고 있는데, 이는 제관계의 전통과 가까이 있음을 나타낸다. 이에 비해서 “새로운 계약”이라는 말은 예언자와 종말론적 전통에 유래한다: “그 날 이후에는” 하느님과 사람이 결합하는데, 이는 사제와 제사에 의한 중개로서가 아니라 사람 내면의 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심장을 주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계명을 마음 속에 새겨두며, 모두는 하느님과 친숙하게 되고, 그래서 아무도 다른 사람 위에서 가르치지 않게 될 것이다 (참조: 예레 31,33-34).




5) 예수는 자신이 대속한다는 생각으로, 즉 이사야서의 야훼의 종의 노래(52장과 53장)가 전하는 태도로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독특한 정황이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즉 구속에 대한 사상이 아직은 예수의 죽음과 결부되지 않고 부활과 성령강림과 결부되어 숙고되던 신약성서 초기의 전승에서 비록 덜 전개된 상태이기는 해도 대속의 사상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속사상은 예수께로부터 유래되었고, 그 당시의 제대로 전개되지 않고 불투명한 상태로 전승되다가 나중에 깊이 숙고하게 되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R.Pesch의 견해).




6) 오래된 최후만찬 전승에서 발견되는 한가지 중요한 내용은 이른바 종말론적 전망인데, 이에 대해서는 마르꼬가 가장 오래된 표현을 보존하고 있다고 추측된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로운 것을 마실 그 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더 이상 마시지 않겠습니다”(마르 14,25; 참조: 마태 26,29; 루가 22,15-18; 1고린 11,26). 이 말씀에서 무엇보다도 신학적으로 중요한 점은 예수의 죽음과 하느님 나라의 결정적인 도래 사이의 “중간 기간”이 전제되었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서 예수는 루가가 나중에 교회의 시간이라고 표현한 기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여기서 예수가 이미 부활 이전에 자신의 죽음과 하느님 나라의 완전한 도래 사이에 이 식사공동체의 반복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가능성이 열린다. 예수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 그리고 자신과 제자들의 공동체가 자신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 유지되리라는 희망과 확신을 표시하였다.




7) 루가 22,19 그리고 1고린 11,25에는 “여러분은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시오”라는 반복 명령이 나오지만, 가장 오랜 전승을 보존하는 마르꼬 기사에는 나오지 않는다. “최후만찬을 거듭 행하라는 반복령은 예수 친히 내리신 명령이 아니고 본디 초대교회의 성찬전례 규정이었을 가능성이 짙다.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의 전례규정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바뀌어 설명어(들)에 덧붙여졌을 것이다”.5) 교회는 그 시작부터 예수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성찬례를 교회 삶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서로 친교를 맺고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그리고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떼고 신명나는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들었다”(사도 2,46). “부활 이후의 공동체는 ―성령 안에서 현존하시는 현양된 주님의 인도로― 부활 이전의 식사공동체 그리고 특별히 제자들과의 최후만찬를 새로운 방식으로 (즉 감사하면서 기억하고 성령의 내림을 청하면서) 계속함으로써 부활 이전의 식사공동체(특히 최후만찬)가 교회에 선사된 주님의 선물이라고 주장하였다”.6)


이미 (루가도 사용하는) 바오로 이전의 성찬례 전승에서 “여러분은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시오”라는 반복 명령이 텍스트에 기입되었다고 추정된다. 바오로는 40년경 안티오키아에 머무르면서 성찬례 전승을 대하였는데, 그 당시 이미 그곳에는 정기적으로 성찬례가 거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찬례를 반복하라는 예수의 명령이 전승 안에 기입된 상태였을 것이다.




8) 루가는 자신의 최후만찬 기사에서 초대교회 공동체가 제기한 질문에 두 가지로 답을 제시한다.7) 즉 초대교회에서는 어떻게 예수를 실제적이고 효과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가, 살아있으나 함께 하지 않는 예수와 어떻게 인격적 연결이 가능한가를 질문하게 되었다. 루가는 이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예식의 전통에서, 다른 두 번째 대답은 유언(遺言)의 전통에서 찾았는데, 두 전통이 서로 상충되는 것은 아니다. 예식의 전통 혹은 ‘전례적 전통’은 예수와 십자가 사건의 새로운 현존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즉 제자들은 전례적으로 성찬의 거행을 통해서 예수를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이와는 달리 유언의 전통은 떠나는 이가 남긴 “유언”(testament) 자체에 비중을 둔다. 이 유언의 전통은 예수의 고별사라는 문학 형식으로 나타난다. 요한복음은 전례적 전통을 의도적으로 유언의 전통으로 대치하였다. 이에 비해서 루가는 전례적 전통(22,19-20)을 고별사에 삽입시켜서 전체적으로 유언 전통의 형식을 취하였다. 루가에게 중요했던 것은 단지 성사적 행동의 제정만이 예수 유언의 내용이 아니고 간곡한 권고들도 유언에 속한다. 즉 섬기는 사람이 되라는 권고(22,24-30), 역경 중에 깨어있으라는 권고(22,31-38)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서의 성찬의 완성을 기다리라는 권고(22,15-16) 등이다. 이로써 루가는 그 시대의 신앙인들에게 예수는 무엇을 중요시하였는지를 기억하게 하였다. 즉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단지 전례적 열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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