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성사-교의사적 전개(2)

 

3.3.  중세의 성찬례 논쟁1)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민족대이동으로 유럽전체가 혼란을 겪다가 점차로 게르만 족에게로 힘의 중심이 옮겨갔다. 496년 게르만의 한 부족인 프랑켄족의 수장 클로드빅(Chlodwig)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프랑켄족의 집단 개종이 이루어진다. 그들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함께 로마 문명도 함께 수용하지만 고대문명을 복사하는 단계에 머물렀을뿐 그 깊이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고대인들은 원형-모형의 사고 지평에서 정신적이고 초월적인 원형이 세상 사물 속에, 모형 속에 숨겨진 채로 현존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 사물은 정신적이고 초월적인 원형을 담고 있는 실재 상징이 된다고 보았고, 정신적인 실재와 가시적인 상징은 단계적인 일치를 이룬다고 여겼다. 그러나 게르만 족에게는 정신적, 비가시적인 것이 아니라 가시적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야말로 실재로 존재하는 것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에게는 정신적인 실재가 가시적인 상징 안에 현존한다는 실재상징의 사고체계가 그들에게는 낮설었다. 그래서 고대교회처럼 전례적인 상징행동을 전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현존한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고, 단지 성변화 즉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가를 정확히 설명하는 데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런 변화가 2차에 걸친 ‘성찬례 논쟁’의 배경을 이룬다.


이른바 첫번째 성찬례 논쟁은 한 수도원 내부에서 치루어졌. 코르비(Corbie)의 베네딕또 수도원의 원장인 파스카시우스 라드베르투스(Paschasius Radbertus, +859)는 “주님의 몸과 피에 관해서(De corpore et sanquine Domini)”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역사적인 예수의 몸과 성체를 완전히 동일시하면서 성찬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매일 반복된다고 보았다. 이에 반대해서 같은 수도원의 수사 라트람누스(Rathramnus, +868 이후)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내세웠다, ‘빵과 포도주는 성변화를 통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figura)이 될 뿐이다. 그의 몸과 피는 신적인 능력과 함께 상징의 베일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을 실제로(in veritate) 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상징 안에서, 신비와 능력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영한다고 하겠다’. 라트람누스는 그리스도의 몸의 실제적 현존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역사적인 그리스도의 몸과 성체를 완전히 동일시하려는 것을 거부하였을 뿐이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이 매일 새롭게 반복된다는 주장을 거부하였다. 대신에 그는 단 한 번의 수난과 죽음이 신비 속에서 재현(repraesentatio)된다고 표현하였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ata2020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