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스스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예수님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이 하는 것과 같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셨고, 정결례를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율법의 혁명자로 생각했을까요? 모든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가르치러 오신 분으로 생각했을까요?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유언비어를 퍼뜨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회의 암과 같은 존재이다. 그분이 더 활보하시면 우리 사회는 기강이 무너진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의미를 바로 잡고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구약은 하느님이 예수님을 보내시어 인류를 결합시키는 신약의 예비이며, 그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로마3,21.10,4). 실물이 나타나면 이제 그림자는 존재를 감추고 사라져도 좋습니다. 성숙은 미숙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파괴가 아니라 건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명하는 도덕을 조금도 파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가져다 준 개혁은 넓고 또한 깊은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침범할 수 없는 율법을 가르쳤으나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위로의 하느님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는 똑같은 구약성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확실히 다른 종교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안에서 율법의 영속성과 그리하여 완전하게 지켜야 됨을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18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일 점”은 히브리말의 욧드를 말합니다. 이것은 히브리말 알파베트 중 가장 작은 글자입니다. “일 획”은 히브리말 알파베트의 서로 비슷한 글자를 구별하기 위한 세로 세운 자획이었습니다.


율법은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 불완전이 보충되어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아직도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모세의 율법이라는 좁은 의미에 국한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에 따라 개량되고 완성된 보편적인 율법의 이미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19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조그마한 일에 있어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것은 복음의 완덕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완전한 義에는 자기의 의무를 완전히 수행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하느님 계획의 중대한 점에 대해 거역하는 것이 아니므로 단순히 소죄에 머물고, 나늘 나라로부터 배척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늘 나라에서 높은 영광을 받지 못할 뿐입니다. 이것은 주로 계명을 스스로 지키며, 타인에게도 가르칠 의무가 있는 지도계급에 대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지키는 계명 중 그 의미를 상실하고 형식적으로 지키는 계명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2. 내가 지키는 계명 중에 나도 모르게 남을 어기도록 만드는 것은 어떤 것이 있으며, 고의로 어기게 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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