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2. 종교 개혁자들의 입장
중세 후기의 잘못된 신앙 생활에 대항해서 루터(M.Luther, +1546)는 삼중 신앙고백 “sola gratia – sola fide – sola scriptura”을 내세운다1). 성사론에 있어서도 이 기준을 따르려고 했다. 루터는 먼저 성서에 나타난대로의 그리스도의 성사 제정 의도를 찾게 되었다. 이런 노력은 성사의 숫자를 셋, 혹은 둘로 제한하도록 이끌었다: 세례, 성체, 고백. 루터는 De captivitate Babylonica ecclesiae(교회의 바빌론 유배, 1520년 저술)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내 자신은 일곱가지 성사를 부정하고 우선적으로 세 가지 성사를, 즉 세례, 참회, 성체성사만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 그리고 만일 내가 성서의 용어 사용에 따라 얘기하기를 원한다면, 오로지 단 하나의 성사와 세 가지 성사적 표지가 있을 뿐이다”.2) 나중에 루터는 고해성사를 성사에서 제외시키는데, 그 이유는 고해성사가 가시적인 요소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두 성사와 함께 언급했던 고해성사는 가시적인 표지와 하느님으로부터의 설립이 빠져있다. 이는 이미 내가 얘기한 바와 같이 세례에로의 귀환일 뿐이다”.3)
루터는 성사를 표지(signum)로 보는데, 이는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서 설정되었고, 그래서 실제로 은총을 전해주는 표지이다. 루터의 성사 이해에 있어서 가장 큰 중요성을 띠는 것은 속임이 없고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약속(promissio)이다. 성사는 말이 없이 사용되는 구원의 도구가 아니라 말씀의, 정확히 얘기하면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의 다른 형태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구원 약속은 성사 안에서 선포된 말씀을 통해 인간에게 전달되고, 이 말씀을 믿게 되면 인간은 구원된다. “본래적인 의미에서 성사들이란 표지와 연계되어서 약속을 표현해주는 것들을 말한다”.4) 이렇게 약속 – 말씀 – 믿음의 관련은 루터에게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루터에 따르면 성사는 하느님 구원의 은총을 전해주는데, 이는 그 안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힘에 의해서 가능하게 된다. 신앙인은 이 말씀을 믿음으로써 성사 은총을 받는다. 이런 맥락에서 루터는 스콜라 신학의 “ex opere operato” 정식을 거부한다. 그는 이 정식이 믿음, 내적인 마음의 참여도 없이 그저 예식을 외적으로 실행함으로써 은총을 자동적으로 야기한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성사이해라고 비판하였다. 그대신 루터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성사를 통해 제공된 보화 (은총)를 받아들이는”5) 개인적 신앙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1517/18년 사이에 쓰여진 히브리서 주석에서 그는 말하기를, “‘성사가 아니라 성사를 통해 드러난 신앙이 의롭게 한다’는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 그리고 복된 아우구스티노의 말씀도 그렇하다: ‘말씀이 (사람을) 의롭게 하는데, 그것이 말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믿어졌기 때문이다’”.6) 이어서 루터는 성사의 수취자가 대죄라는 큰 장애가 없는 한 특별한 준비없이도 성사의 은총이 작용한다는 가르침은 크게 잘못된 오류라고 지적하면서, 모든 성사는 신앙을 통해 정화된 마음을 요구한다고 강조한다.
쯔빙글리(H.Zwingli, +1531)는 “sacramentum”라는 말마디 자체를 비성서적이라고 배격하였다. 교회의 의식은 단지 외적인 인식 또는 고백의 표지일 뿐 은총을 야기하지는 않는다: 세례와 성찬례는 구원을 받아들였다는 순수 영신적인 차원을 밖으로 드러내고, 구원을 가져다주는 그리스도의 업적을 기억하고,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밖으로 알리는 표지일 뿐이다. 세례나 성찬례가 신앙을 일깨우거나 강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고 기존의 신앙을 증거하는 것일 뿐이다.
쯔빙글리에 반대해서 루터는『신앙고백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성사는 “그리스도인임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표지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분발시키고 견고케하기 위한 우리에 대한 하느님 의지의 표지요 증거이다”.7) 또 쯔빙글리와는 달리 성사가 은총 전달한다는 것도 강조한다: “성사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 의지의 표시로서, 인간 상호간의 표시만이 아니고”, “은총의 표시이다”.8)
칼빈(J.Calvin, +1564)은 성사는 거룩한 은총의 가시적인 표지라는 아우구스티노의 성사 개념을 따르면서, 성사가 증거의 특성을 지닌다고 주장한다.9) “성사는 외적인 표시로서 그 안에서 우리에 대한 하느님 은총의 증거가 강하게 되며, 동시에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심이 증거된다”. 칼빈은 성사의 목적을 신앙을 증가시키고, 강하게 하는 데에 있다고 보았다. “성사들은 신앙을 견고케하고 증가하기 위해서 주님으로 부터 설정되었다”. 그리고 성사가 신앙을 견고하게 하는 것은 성사 자체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힘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성사는 “성령의 작용이 없이는 공허하고 본질이 빠진채로 있으나 성령이 내재하여 작용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 큰 힘으로 채워진다”.10) 이밖에도 칼빈은 그의 예정설에 입각해서 성사는 오직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그 효과를 발휘한다고 보았다.
칼빈을 따르는 개혁파의 신앙고백에서 성사 이해는 전적으로 하느님 말씀의 신학에 의해서 규정된다. 선포된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이며 생생한 현존이 공동체와 개개의 신앙인에게 가능하게 되는데, “가시적인 말씀”으로서의 성사는 선포된 말씀에 속한다. 그리고 성사는 “하느님 은총의 외적인 표지” 혹은 “성령을 통한 봉인”으로 일컬어 질 수도 있다. 말씀은 신앙을 일깨우고, 성사는 일깨워진 말씀에 대한 신앙을 견고케한다. 그러므로 성사는 우선적으로 약한 신앙의 소유자를 위해서 있다. 성사를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없어도 된다는 것이 개혁파들의 견해이다.
4.3.3. 트리엔트 공의회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은 종교 개혁자들에 대한 응답으로써 트리엔트 공의회 (1545-1563)를 개최하였다. 여기에서 성사 일반론에 대해 광범위하게 교의적으로 논의를 했는데, 이를 통해서 종교 개혁자들의 오류를 단죄하는 동시에 가톨릭 교회 내의 잘못된 성사 실천을 개혁하려고 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성사 일반에 대한 교의 (1547년, DS 1610-1613)
1. 만일 누가 신약의 성사 모두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제정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혹은 성사들이 세례, 견진, 성체, 고해, 종부, 신품 그리고 혼배, 이렇게 일곱보다 많다거나 적다고 한다면, 혹은 이 성사들 중의 어떤 하나라도 본래적이고 진정한 성사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2. 만일 누가 이러한 신약의 성사들이 예식과 외적인 예절의 차이 외에는 구약의 성사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3. 만일 누가 이러한 신약의 성사들이 서로 동등해서 어떤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결코 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4. 만일 누가 신약의 성사들이 구원에 필수적이지 않고 없어도 된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 비록 각 개인을 위해서 모든 성사들이 다 필요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 사람들이 성사들 없이 또는 성사에 대한 원의 없이도 신앙만으로도 하느님께 의화의 은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5. 만일 누가 이러한 성사들이 오직 신앙을 양육할 목적으로만 설정되었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6. 만일 누가 신약의 성사들이 그들이 표시하는 은총을 담고 있지 않다고 말하거나, 혹은 아무런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non ponentibus obicem) 은총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마치 성사들이 신앙을 통하여 받게 되는 은총이나 義化에 대한 순수한 외적인 표지일 뿐이고, 사람들 앞에서 신앙인과 비신앙인들을 구별하여 주는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에 대한 일종의 표식인 것처럼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7. 만일 누가 은총의 부여가 하느님에 의하여 좌우되는 한, 비록 성사들을 올바르게 받았을지라도 이러한 성사들을 통하여 은총이 모두에게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어떤 때에 그리고 일부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8. 만일 누가 신약의 성사들을 통하여 은총이 사효적으로 (ex opere operato) 부여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 약속을 믿는 신앙만으로 은총을 얻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9. 만일 누가 세례와 견진 그리고 신품, 세 가지 성사들이 영혼에 인호를, 즉 영신적이고 지워질 수 없는 표지로써, 이것 때문에 이 성사들은 반복될 수 없다, 각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10. 만일 누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선포하고 모든 성사들을 거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11. 만일 누가 성사 집전자들이 성사를 유효하게 거행하고 부여할 때에 적어도 교회가 행하는 것을 행한다는 의향이 그들에게 요구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12. 만일 누가 중한 죄의 상태에 있는 성사 집전자는 비록 성사를 유효하게 거행하고 부여하는 데에 요구되는 모든 본질적인 것을 준수하더라도 성사를 유효하게 거행하거나 성사를 부여하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13. 만일 누가 장엄한 성사 거행에 사용되는 전통적이고 인준된 가톨릭 교회의 예절들을 경시해도 된다고 하거나, 혹은 집전자들이 이를 죄를 범함 없이 임의로 생략할 수 있다고 하거나, 혹은 교회의 모든 사목자들이 이를 다른 새로운 예절로 변경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성사에 관한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의결정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1) 성사 일반에 대한 교의적 결정사항에는 성사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단지 성체성사에 대한 결정에서 언급하기를: 성사란 “거룩한 것의 표징이며, 보이지 않는 은총의 보이는 형태이다.”11)
2) 성사가 일곱 가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세례, 견진, 성체, 고백, 병자, 신품 그리고 병자성사”는 “우리 주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설정되었다”, 일곱가지 모두 “본래적이며 실제의 성사이다” (DS 1601).
3) 공의회는 성사들이 “서로 동등하여서, 어떤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도 결코 더 큰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견해를 배척하였는데 (DS 1603), 이로써 세례와 성체성사와 다른 성사와의 구분을 둘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4) 공의회는 칼빈의 주장에 반대하여서 “성사들이 오직 신앙을 양육할 목적으로만 설정되었다”는 것을 거부하였다 (DS 1605).
5) 이름을 거명하지 않은 채 쯔빙글리의 견해에 반대하여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누가 신약의 성사들이 그들이 의미하는 은총을 담고 있지 않다고 말하거나, 혹은 성사들이 아무런 장해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은총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 마치 성사들이 신앙을 통하여 받게 되는 은총이나 의화에 대해 순전히 외적인 표지일 뿐이며, 사람들 가운데서 신앙심을 갖고 있는 사람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하여 주는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에 대한 일종의 표식인 것처럼 말한다면, 그는 파문될 지어다” (DS 1606).
6) 트리엔트 공의회는 “아무런 장애를 갖고 있지 않는 사람에게 은총이 부여된다”고 말하는데, 이를 볼 때 공의회는 성사의 사효적 효력과 함께 개인의 준비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단지 좀 더 적극적인 표현을 쓰지 못한 이유는 유아세례를 성사적으로 정당화되지 못할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6) 종교 개혁자들 모두에게 배척받은 스콜라 신학의 정식 “ex opere operato”를 공의회는 명백하게 변호하였다(DS 1608).
트리엔트 공의회는 새로운 성사론을 제시하기 보다는 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을 수호하는 선에서 종교개혁자들에 대처하였다. 당시의 복합적인 상황 때문에 공의회는 종교개혁자들의 견해 중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제대로 평가하거나 받아들이지를 못하였다. 그들이 말씀과 신앙에 중요성을 부여하였던 점은 충분히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또한 공의회는 그리스도에 의한 설정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호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이 지금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또 교의로서 신앙의 구속력을 갖지만, 좀더 깊이 고찰되고 재 해석되어야 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보설: 트리엔트 공의회와 교회일치을 위한 대화
1) 공의회는 일반 성사론에 대한 교의결정 8항에서 “사효적으로 (ex opere operato)” 와 “신앙만으로 (sola fide)”란 두 정식의 대치되어 나타나는데, 얼핏 보기에 이것은 종파간의 논쟁점을 정확하게 표현한듯 하다. 그러나 교회일치를 지향한 새로운 연구는 종교 개혁자들의 비난이나 트리엔트 공의회의 비난 모두 대부분는 상대방의 입장을 비켜갔다는 것을 밝혀냈다.
“ex opere operato”란 정식의 이해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규정되었다: 개혁자들 측에서는 성사의 수취 면을 보았고, 가톨릭 측에서는 성사의 수여면을 보았다. 각기 다른 관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개혁자들의 입장에서는 가톨릭이 ex opere operato를 긍정한 것를 성사가 구원을 자동적으로 야기함을 긍정하는 뜻으로 보게되고, 가톨릭 측에서는 개혁자들이 ex opere operato를 거부하는 것를 대체로 성사의 효력발생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양편 모두 이런 해석을 배척한다. 가톨릭 교회가 이 정식을 통해서 의도하는 바는 성사는 하느님이 친히 제정하신 것임으로 인간의 남용에 의하여 허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톨릭 측에서 성사가 신앙과 아무 상관도 없다고 주장한 일은 없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신앙만으로”라는 표현으로 강조하는 바는 “모든 구원과 은총이 신앙만으로 인간에게 전달되듯이, 교회의 성례전에 의한 그리스도의 구원도 신앙만으로 효력을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견해의 본의는 그리스도인이 마치 성사를 받는 것을 하나의 ‘선행’인 양, 그래서 하느님이 은총으로 보답할 책임이 있는 공로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신교의 교리에 의하면 성례전의 효력이 신앙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말도 아니다. 이 오해를 배제하기 위해서 루터교측에서는 ”불신자의 먹음“(manducatio impiorum)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신앙은 성례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므로 불신자들도 성찬을 받아 먹을 때에는 – 그로써 구원에 이르지는 못하나 – 참으로 주의 몸을 먹는다는 것이다”.12)
2) 서로 다른 용어 사용도 상대편의 입장을 오해하도록 이끌었다. 이는 특별히 신앙(fides)이란 개념에 해당된다. 로마의 신학자들은 협의의 신앙 개념 (의견, 무엇이 옳는 의미로써의 신앙)에서 출발한데에 비해, 개혁자들은 다른 의미의 “신앙 개념, 즉 그 수용이 실존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이를 가톨릭의 전통에서는 성화은총(gratia gratum faciens)이라고 별도로 칭하였다…이런 의미에서 카논 5에서 협의의 신앙 개념에서 출발하여 배척하는 입장, 즉 성사는 “오로지 신앙을 양육하기 위해서 있다”는 표현은 개혁자들의 견해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은 않는다. 왜냐하면 개혁자들에게 신앙은 가톨릭의 견해로 성사를 통해 효과를 내는 것 모두를 포함하기 때문이다”.13)
3) 이와 비슷하게 성사의 “제정”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先理解가 영향을 미쳤다. 양편 모두에게 그리스도에 의한 제정이 성사의 본질적인 요소에 해당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사의 제정(institutio)에 대한 중세의 이해는 현대의 역사적으로 각인된 사고 방식보다는 더 광범위 하였다; 즉 성사는 십자가와 부활, 성령의 전달 그리고 사도들의 파견 속에서 실현된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을 통해 시작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제정’(institutio)은 부활 이후의 교회 생활에서의 성사의 발전까지도 포함하는데, 여기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제정과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작용 사이에 그 어떤 원칙적인 구별도 두지 않았다. 이런 어투가 성사에 대한 트리엔트 공의회 결정 까논 1조의 배경을 이룬다 (DS 1601). 개혁자들의 이해는 이와는 구분이 되었는데, 즉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통한 혹은 명시적인 하느님의 위탁 (mandatum Dei)을 통한 제정, 그래서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제정을 의미했다”.14) 바로 여기에서 성사의 수에 대한 논쟁을 이해할 수 있다.
4.4.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의 신학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의 성사신학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론에 치중한 스콜라 신학의 성향을 계속 따랐다. 그러나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의 신학은 성사론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달라진 내용을 갖도록 이끌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동시에 성사론은 전반적으로 반 종교개혁적으로 강조되었다. 즉 프로테스탄 측은 말씀 위주의 신학을 전개하였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가톨릭 측은 성사에 치중하였다. 그리고 성사의 효력, 성사집전자의 의도, 성사 효력을 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등에 대한 논의에 머물렀다.

4.3.2. 종교 개혁자들의 입장
중세 후기의 잘못된 신앙 생활에 대항해서 루터(M.Luther, +1546)는 삼중 신앙고백 “sola gratia – sola fide – sola scriptura”을 내세운다1). 성사론에 있어서도 이 기준을 따르려고 했다. 루터는 먼저 성서에 나타난대로의 그리스도의 성사 제정 의도를 찾게 되었다. 이런 노력은 성사의 숫자를 셋, 혹은 둘로 제한하도록 이끌었다: 세례, 성체, 고백. 루터는 De captivitate Babylonica ecclesiae(교회의 바빌론 유배, 1520년 저술)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내 자신은 일곱가지 성사를 부정하고 우선적으로 세 가지 성사를, 즉 세례, 참회, 성체성사만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 그리고 만일 내가 성서의 용어 사용에 따라 얘기하기를 원한다면, 오로지 단 하나의 성사와 세 가지 성사적 표지가 있을 뿐이다”.2) 나중에 루터는 고해성사를 성사에서 제외시키는데, 그 이유는 고해성사가 가시적인 요소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두 성사와 함께 언급했던 고해성사는 가시적인 표지와 하느님으로부터의 설립이 빠져있다. 이는 이미 내가 얘기한 바와 같이 세례에로의 귀환일 뿐이다”.3)
루터는 성사를 표지(signum)로 보는데, 이는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서 설정되었고, 그래서 실제로 은총을 전해주는 표지이다. 루터의 성사 이해에 있어서 가장 큰 중요성을 띠는 것은 속임이 없고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약속(promissio)이다. 성사는 말이 없이 사용되는 구원의 도구가 아니라 말씀의, 정확히 얘기하면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의 다른 형태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구원 약속은 성사 안에서 선포된 말씀을 통해 인간에게 전달되고, 이 말씀을 믿게 되면 인간은 구원된다. “본래적인 의미에서 성사들이란 표지와 연계되어서 약속을 표현해주는 것들을 말한다”.4) 이렇게 약속 – 말씀 – 믿음의 관련은 루터에게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루터에 따르면 성사는 하느님 구원의 은총을 전해주는데, 이는 그 안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힘에 의해서 가능하게 된다. 신앙인은 이 말씀을 믿음으로써 성사 은총을 받는다. 이런 맥락에서 루터는 스콜라 신학의 “ex opere operato” 정식을 거부한다. 그는 이 정식이 믿음, 내적인 마음의 참여도 없이 그저 예식을 외적으로 실행함으로써 은총을 자동적으로 야기한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성사이해라고 비판하였다. 그대신 루터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성사를 통해 제공된 보화 (은총)를 받아들이는”5) 개인적 신앙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1517/18년 사이에 쓰여진 히브리서 주석에서 그는 말하기를, “‘성사가 아니라 성사를 통해 드러난 신앙이 의롭게 한다’는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 그리고 복된 아우구스티노의 말씀도 그렇하다: ‘말씀이 (사람을) 의롭게 하는데, 그것이 말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믿어졌기 때문이다’”.6) 이어서 루터는 성사의 수취자가 대죄라는 큰 장애가 없는 한 특별한 준비없이도 성사의 은총이 작용한다는 가르침은 크게 잘못된 오류라고 지적하면서, 모든 성사는 신앙을 통해 정화된 마음을 요구한다고 강조한다.
쯔빙글리(H.Zwingli, +1531)는 “sacramentum”라는 말마디 자체를 비성서적이라고 배격하였다. 교회의 의식은 단지 외적인 인식 또는 고백의 표지일 뿐 은총을 야기하지는 않는다: 세례와 성찬례는 구원을 받아들였다는 순수 영신적인 차원을 밖으로 드러내고, 구원을 가져다주는 그리스도의 업적을 기억하고,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밖으로 알리는 표지일 뿐이다. 세례나 성찬례가 신앙을 일깨우거나 강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고 기존의 신앙을 증거하는 것일 뿐이다.
쯔빙글리에 반대해서 루터는『신앙고백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성사는 “그리스도인임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표지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분발시키고 견고케하기 위한 우리에 대한 하느님 의지의 표지요 증거이다”.7) 또 쯔빙글리와는 달리 성사가 은총 전달한다는 것도 강조한다: “성사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 의지의 표시로서, 인간 상호간의 표시만이 아니고”, “은총의 표시이다”.8)
칼빈(J.Calvin, +1564)은 성사는 거룩한 은총의 가시적인 표지라는 아우구스티노의 성사 개념을 따르면서, 성사가 증거의 특성을 지닌다고 주장한다.9) “성사는 외적인 표시로서 그 안에서 우리에 대한 하느님 은총의 증거가 강하게 되며, 동시에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심이 증거된다”. 칼빈은 성사의 목적을 신앙을 증가시키고, 강하게 하는 데에 있다고 보았다. “성사들은 신앙을 견고케하고 증가하기 위해서 주님으로 부터 설정되었다”. 그리고 성사가 신앙을 견고하게 하는 것은 성사 자체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힘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성사는 “성령의 작용이 없이는 공허하고 본질이 빠진채로 있으나 성령이 내재하여 작용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 큰 힘으로 채워진다”.10) 이밖에도 칼빈은 그의 예정설에 입각해서 성사는 오직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그 효과를 발휘한다고 보았다.
칼빈을 따르는 개혁파의 신앙고백에서 성사 이해는 전적으로 하느님 말씀의 신학에 의해서 규정된다. 선포된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이며 생생한 현존이 공동체와 개개의 신앙인에게 가능하게 되는데, “가시적인 말씀”으로서의 성사는 선포된 말씀에 속한다. 그리고 성사는 “하느님 은총의 외적인 표지” 혹은 “성령을 통한 봉인”으로 일컬어 질 수도 있다. 말씀은 신앙을 일깨우고, 성사는 일깨워진 말씀에 대한 신앙을 견고케한다. 그러므로 성사는 우선적으로 약한 신앙의 소유자를 위해서 있다. 성사를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없어도 된다는 것이 개혁파들의 견해이다.
4.3.3. 트리엔트 공의회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은 종교 개혁자들에 대한 응답으로써 트리엔트 공의회 (1545-1563)를 개최하였다. 여기에서 성사 일반론에 대해 광범위하게 교의적으로 논의를 했는데, 이를 통해서 종교 개혁자들의 오류를 단죄하는 동시에 가톨릭 교회 내의 잘못된 성사 실천을 개혁하려고 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성사 일반에 대한 교의 (1547년, DS 1610-1613)
1. 만일 누가 신약의 성사 모두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제정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혹은 성사들이 세례, 견진, 성체, 고해, 종부, 신품 그리고 혼배, 이렇게 일곱보다 많다거나 적다고 한다면, 혹은 이 성사들 중의 어떤 하나라도 본래적이고 진정한 성사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2. 만일 누가 이러한 신약의 성사들이 예식과 외적인 예절의 차이 외에는 구약의 성사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3. 만일 누가 이러한 신약의 성사들이 서로 동등해서 어떤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결코 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4. 만일 누가 신약의 성사들이 구원에 필수적이지 않고 없어도 된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 비록 각 개인을 위해서 모든 성사들이 다 필요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 사람들이 성사들 없이 또는 성사에 대한 원의 없이도 신앙만으로도 하느님께 의화의 은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5. 만일 누가 이러한 성사들이 오직 신앙을 양육할 목적으로만 설정되었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6. 만일 누가 신약의 성사들이 그들이 표시하는 은총을 담고 있지 않다고 말하거나, 혹은 아무런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non ponentibus obicem) 은총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마치 성사들이 신앙을 통하여 받게 되는 은총이나 義化에 대한 순수한 외적인 표지일 뿐이고, 사람들 앞에서 신앙인과 비신앙인들을 구별하여 주는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에 대한 일종의 표식인 것처럼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7. 만일 누가 은총의 부여가 하느님에 의하여 좌우되는 한, 비록 성사들을 올바르게 받았을지라도 이러한 성사들을 통하여 은총이 모두에게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어떤 때에 그리고 일부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8. 만일 누가 신약의 성사들을 통하여 은총이 사효적으로 (ex opere operato) 부여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 약속을 믿는 신앙만으로 은총을 얻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9. 만일 누가 세례와 견진 그리고 신품, 세 가지 성사들이 영혼에 인호를, 즉 영신적이고 지워질 수 없는 표지로써, 이것 때문에 이 성사들은 반복될 수 없다, 각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10. 만일 누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선포하고 모든 성사들을 거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11. 만일 누가 성사 집전자들이 성사를 유효하게 거행하고 부여할 때에 적어도 교회가 행하는 것을 행한다는 의향이 그들에게 요구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12. 만일 누가 중한 죄의 상태에 있는 성사 집전자는 비록 성사를 유효하게 거행하고 부여하는 데에 요구되는 모든 본질적인 것을 준수하더라도 성사를 유효하게 거행하거나 성사를 부여하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13. 만일 누가 장엄한 성사 거행에 사용되는 전통적이고 인준된 가톨릭 교회의 예절들을 경시해도 된다고 하거나, 혹은 집전자들이 이를 죄를 범함 없이 임의로 생략할 수 있다고 하거나, 혹은 교회의 모든 사목자들이 이를 다른 새로운 예절로 변경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
성사에 관한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의결정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1) 성사 일반에 대한 교의적 결정사항에는 성사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단지 성체성사에 대한 결정에서 언급하기를: 성사란 “거룩한 것의 표징이며, 보이지 않는 은총의 보이는 형태이다.”11)
2) 성사가 일곱 가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세례, 견진, 성체, 고백, 병자, 신품 그리고 병자성사”는 “우리 주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설정되었다”, 일곱가지 모두 “본래적이며 실제의 성사이다” (DS 1601).
3) 공의회는 성사들이 “서로 동등하여서, 어떤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도 결코 더 큰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견해를 배척하였는데 (DS 1603), 이로써 세례와 성체성사와 다른 성사와의 구분을 둘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4) 공의회는 칼빈의 주장에 반대하여서 “성사들이 오직 신앙을 양육할 목적으로만 설정되었다”는 것을 거부하였다 (DS 1605).
5) 이름을 거명하지 않은 채 쯔빙글리의 견해에 반대하여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누가 신약의 성사들이 그들이 의미하는 은총을 담고 있지 않다고 말하거나, 혹은 성사들이 아무런 장해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은총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 마치 성사들이 신앙을 통하여 받게 되는 은총이나 의화에 대해 순전히 외적인 표지일 뿐이며, 사람들 가운데서 신앙심을 갖고 있는 사람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하여 주는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에 대한 일종의 표식인 것처럼 말한다면, 그는 파문될 지어다” (DS 1606).
6) 트리엔트 공의회는 “아무런 장애를 갖고 있지 않는 사람에게 은총이 부여된다”고 말하는데, 이를 볼 때 공의회는 성사의 사효적 효력과 함께 개인의 준비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단지 좀 더 적극적인 표현을 쓰지 못한 이유는 유아세례를 성사적으로 정당화되지 못할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6) 종교 개혁자들 모두에게 배척받은 스콜라 신학의 정식 “ex opere operato”를 공의회는 명백하게 변호하였다(DS 1608).
트리엔트 공의회는 새로운 성사론을 제시하기 보다는 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을 수호하는 선에서 종교개혁자들에 대처하였다. 당시의 복합적인 상황 때문에 공의회는 종교개혁자들의 견해 중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제대로 평가하거나 받아들이지를 못하였다. 그들이 말씀과 신앙에 중요성을 부여하였던 점은 충분히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또한 공의회는 그리스도에 의한 설정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호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이 지금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또 교의로서 신앙의 구속력을 갖지만, 좀더 깊이 고찰되고 재 해석되어야 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보설: 트리엔트 공의회와 교회일치을 위한 대화
1) 공의회는 일반 성사론에 대한 교의결정 8항에서 “사효적으로 (ex opere operato)” 와 “신앙만으로 (sola fide)”란 두 정식의 대치되어 나타나는데, 얼핏 보기에 이것은 종파간의 논쟁점을 정확하게 표현한듯 하다. 그러나 교회일치를 지향한 새로운 연구는 종교 개혁자들의 비난이나 트리엔트 공의회의 비난 모두 대부분는 상대방의 입장을 비켜갔다는 것을 밝혀냈다.
“ex opere operato”란 정식의 이해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규정되었다: 개혁자들 측에서는 성사의 수취 면을 보았고, 가톨릭 측에서는 성사의 수여면을 보았다. 각기 다른 관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개혁자들의 입장에서는 가톨릭이 ex opere operato를 긍정한 것를 성사가 구원을 자동적으로 야기함을 긍정하는 뜻으로 보게되고, 가톨릭 측에서는 개혁자들이 ex opere operato를 거부하는 것를 대체로 성사의 효력발생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양편 모두 이런 해석을 배척한다. 가톨릭 교회가 이 정식을 통해서 의도하는 바는 성사는 하느님이 친히 제정하신 것임으로 인간의 남용에 의하여 허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톨릭 측에서 성사가 신앙과 아무 상관도 없다고 주장한 일은 없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신앙만으로”라는 표현으로 강조하는 바는 “모든 구원과 은총이 신앙만으로 인간에게 전달되듯이, 교회의 성례전에 의한 그리스도의 구원도 신앙만으로 효력을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견해의 본의는 그리스도인이 마치 성사를 받는 것을 하나의 ‘선행’인 양, 그래서 하느님이 은총으로 보답할 책임이 있는 공로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신교의 교리에 의하면 성례전의 효력이 신앙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말도 아니다. 이 오해를 배제하기 위해서 루터교측에서는 ”불신자의 먹음“(manducatio impiorum)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신앙은 성례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므로 불신자들도 성찬을 받아 먹을 때에는 – 그로써 구원에 이르지는 못하나 – 참으로 주의 몸을 먹는다는 것이다”.12)
2) 서로 다른 용어 사용도 상대편의 입장을 오해하도록 이끌었다. 이는 특별히 신앙(fides)이란 개념에 해당된다. 로마의 신학자들은 협의의 신앙 개념 (의견, 무엇이 옳는 의미로써의 신앙)에서 출발한데에 비해, 개혁자들은 다른 의미의 “신앙 개념, 즉 그 수용이 실존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이를 가톨릭의 전통에서는 성화은총(gratia gratum faciens)이라고 별도로 칭하였다…이런 의미에서 카논 5에서 협의의 신앙 개념에서 출발하여 배척하는 입장, 즉 성사는 “오로지 신앙을 양육하기 위해서 있다”는 표현은 개혁자들의 견해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은 않는다. 왜냐하면 개혁자들에게 신앙은 가톨릭의 견해로 성사를 통해 효과를 내는 것 모두를 포함하기 때문이다”.13)
3) 이와 비슷하게 성사의 “제정”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先理解가 영향을 미쳤다. 양편 모두에게 그리스도에 의한 제정이 성사의 본질적인 요소에 해당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사의 제정(institutio)에 대한 중세의 이해는 현대의 역사적으로 각인된 사고 방식보다는 더 광범위 하였다; 즉 성사는 십자가와 부활, 성령의 전달 그리고 사도들의 파견 속에서 실현된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을 통해 시작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제정’(institutio)은 부활 이후의 교회 생활에서의 성사의 발전까지도 포함하는데, 여기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제정과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작용 사이에 그 어떤 원칙적인 구별도 두지 않았다. 이런 어투가 성사에 대한 트리엔트 공의회 결정 까논 1조의 배경을 이룬다 (DS 1601). 개혁자들의 이해는 이와는 구분이 되었는데, 즉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통한 혹은 명시적인 하느님의 위탁 (mandatum Dei)을 통한 제정, 그래서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제정을 의미했다”.14) 바로 여기에서 성사의 수에 대한 논쟁을 이해할 수 있다.
4.4.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의 신학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의 성사신학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론에 치중한 스콜라 신학의 성향을 계속 따랐다. 그러나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의 신학은 성사론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달라진 내용을 갖도록 이끌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동시에 성사론은 전반적으로 반 종교개혁적으로 강조되었다. 즉 프로테스탄 측은 말씀 위주의 신학을 전개하였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가톨릭 측은 성사에 치중하였다. 그리고 성사의 효력, 성사집전자의 의도, 성사 효력을 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등에 대한 논의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