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
▷세례자 요한의 순교◁
<말씀연구>
헤로데가 자신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이 멋진 춤을 추어 그를 기쁘게 해 주자 그에게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헤로디아의 딸은 헤로데에게 아주 무서운 청을 합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청입니다. 헤로디아는 자신의 죄를 떠들고 있는 세례자 요한을 없애려고 자신의 딸을 이용합니다.
오늘도 나의 무모한 욕심과 내 허물을 감추려는 의도 하에 상처입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헤로데의 귀에 예수님의 소문이 들렸는데 헤로데는 예수님을 자신이 목 베어 죽인 세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 그 무렵에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왕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 신하들에게 “그 사람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다. 죽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능력이 어디서 솟아나겠느냐?”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소문이 헤로데의 귀에 들어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나 옛 예언자 중의 하나가 다시 살아난 것이 틀림없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반응을 통해서 이들에게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메시아이심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행동은 자신들과는 다르기에 뭔가는 있는 것 같은데, 그들 생각에 예수님께서 메시아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드러나는 기적과 말씀들을 감출수도 없고…
그래서 그들이 답을 내린 것이 세례자 요한의 부활인 것입니다.
살인자에게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유대의 신앙과 관련이 있는데, 세례자 요한이 부활해서 전보다 커다란 힘으로 기적들을 행한다고 설명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위대한 옛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살아났다는 이야기도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회피하는 답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충만한 신앙에 이르지 못하고, 그분을 인간적인 범주에 귀속시켜 버리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인류에게 기대하시는 그런 반응을 보지지 못합니다. 결국 사람들에 의해 설명되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들은 예수님께서는 부적절한 표현들입니다.
늘 세례자 요한을 죽인 죄의식을 가지고 있던 헤로데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자신이 목을 벤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도 예수님에 대해서 듣기는 했지만 그분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물불 안가리고 자신의 정권 유지에 힘을 써온 그에게는 이제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으로 보입니다. 그는 또 예수님을 죽이려 할 것입니다. 그전에 그랬던 것처럼….
3 일찌기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는데 4 그것은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거듭거듭 간하였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보면 헤로데와 헤로디아가 함께 마차를 타고 가는데 세례자 요한이 그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릅니다.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자 헤로디아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헤로데를 설득합니다. 결국 헤로데는 요한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었습니다.
헤로데 대왕이 죽었을 때, 그 영토는 세 아들에게 분배되었습니다. 아르켈라오는 유다를 차지하고, 헤로데 안티파스는 갈릴래아와 페레아를 차지하고, 필립보는 트라코니티스와 이두레아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런데 헤로데 대왕에게는 또 한 아들(이 아들도 헤로데라고 불렸고, 마태오와 마르코에 따르면 필립보라고 불렸다) 헤로데 필립보는 팔레스티나 바깥 외지에 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토를 분배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로마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헤로데 안티파스가 로마로 가는 도중에 헤로데 필립보를 방문하였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헤로데 필립보는 아리스토 불루의 딸, 헤로데 대왕과 마리안네의 손녀, 자기의 조카 딸인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고 있었습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아레타 왕의 딸을 아내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행하는 동안에 그 집안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동생의 아내(계수)가 되는 헤로디아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에게 결혼을 신청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즉시 응하였습니다. 권력이 없는 헤로데 필립보 보다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헤로데 안티파스가 자신에게 더 큰 것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로마에서 돌아 오자마자 아레타 왕의 딸을 쫓아 내고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 아레타 왕의 딸은 자기 부왕의 궁전이었던 베트라로 달아났습니다. 이 사건이 정치 문제화할 것을 헤로데 안티파스는 미리 생각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아레타 왕은 자기 딸 때문에 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헤로데 안티파스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 안티파스 사건은 동생의 아내이며 자기의 조카벌 되는 헤로디아 사이에 간통죄가 될 뿐 아니라, 레위기(18,1-8)에 따르면 근친상간의 죄도 성립하였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세례자 요한이 체포된 것은 정치적인 이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곧 세례자 요한의 선교가 폭동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엄중한 비난의 소리가 그 체포에 박차를 가하게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5 그래서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했으나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는 민중이 두려워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헤로데는 양심의 소리와 민중의 소리를 들으면서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여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간할 때마다 속으로는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그것을 기꺼이 들어 왔기 때문입니다(마르6,20). 하지만 헤로디아는 요한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6 그 무렵에 마침 헤로데의 생일이 돌아 와서 잔치가 벌어졌는데 헤로디아의 딸이 잔치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헤로데를 매우 기쁘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소녀에게 무엇이든지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제 어미가 시키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마침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헤로데의 생일날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는 춤을 추어 헤로데를 기쁘게해 주었습니다. 살로메는 헤로디아와 전 남편 사이의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잔치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대연회에 양가집 딸을 내놓는 관습은 없었으나 어쨌든 도덕적으로 타락한 궁전이었으니 공주의 신분으로서 구경거리가 되는 것조차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헤로데는 기뻐했습니다. 이 사실은 모두 헤로디아가 꾸민 일이었을 것입니다.
헤로데는 기분이 좋아 즉흥적으로 소원을 말하라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노라고 하면서. 마르코 복음에 따르면 나라의 반이라도 나누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뜻밖에 크게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쟁반에 담은 세례자 요한의 목이었습니다. 참으로 무섭습니다.
9 왕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지만 이미 맹세한 바도 있고 또 손님들이 보는 앞이어서 소녀의 청대로 해 주라는 명령을 내리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 있는 요한의 목을 베어 오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건내자 소녀는 그것을 제 어미에게 갖다 주었다.
헤로데는 놀랐고, 참석한 사람들도 놀랐을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맹세보다 더한 의무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곧 악을 행하지 말라는 자연법까지도 이 맹세에는 이길 수 없었습니다. 악한 맹세이기에 이런 경우에는 맹세로서의 효력이 없지만 헤로데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말만 앞세우는 엉터리란 비난을 면하고 싶어서 가장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가끔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자신에게 충고를 하면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죄를 감추기 위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12 그 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그 시체를 거두어다가 묻고 예수께 가서 알렸다.
제자들은 요한의 장례를 치뤘습니다. 2-3세기 전승에 따르면, 제자들은 요한을 사마리아 동네에 묻었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어두운 감옥 속에서 영원한 도덕을 외쳤기 때문에 선구자는 죽어 갔습니다. 그는 선구자라는 숭고한 사명을 순교라는 설교로써 완수하였던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세례자 요한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당신의 목숨을 내어 놓는 한이 있더라도 진리 편에 서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의 모습을 봅니다. 과연 나는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말 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내세우면서 말하기를 꺼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세례자 요한을 목벤 헤로데나 헤로디아의 모습이 내 모습은 아닙니까?
2. 헤로디아와 살로메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혹시 나는 누구를 이용하여 나의 뜻을 이루거나 나쁜 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또는 정에 이끌리거나, 무지한 상태에서 악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