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렐루야.
○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을 할 것이다.>
† 루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9
그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께
"요한의 제자들은 물론이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제자들까지도 자주 단식하며 기도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합니까?"
하며 따지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잔칫집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그들을 단식하게 할 수 있겠느냐?
이제 때가 오면 신랑을 빼앗길 것이니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을 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을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못 쓰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새 옷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새 술을 헌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릴 것이니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는 못 쓰게 된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또 묵은 포도주를 마셔 본 사람은 '묵은 것이 더 좋다.'
하면서 새 것을 마시려 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알렐루야.
○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을 할 것이다.>
† 루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9
그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께
"요한의 제자들은 물론이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제자들까지도 자주 단식하며 기도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합니까?"
하며 따지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잔칫집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그들을 단식하게 할 수 있겠느냐?
이제 때가 오면 신랑을 빼앗길 것이니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을 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을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못 쓰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새 옷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새 술을 헌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릴 것이니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는 못 쓰게 된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또 묵은 포도주를 마셔 본 사람은 '묵은 것이 더 좋다.'
하면서 새 것을 마시려 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헌 옷에 깁는 사람은 없다.”
“새 술을 헌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또 묵은 포도주를 마셔본 사람은
‘묵은 것이 더 좋다.’ 하면서 새것을 마시려하지 않는다.”
오늘 말씀안에서는 당신의 진리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지만
시대와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따라서 달리 해석되어 전해지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하느님의 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면
신약시대의 예수님은 과감하게 신앙의 장애가 되는 것을 없애버리고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그동안 너무나 작은 것들에 집착하며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성격상 지나간 일들을 잊어버리거나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는지라
비교적 많은 시간들을 과거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늘 헌 옷에 새 옷을 대고 깁는 격이 되었던 일이 많았으며
헌 부대를 부여안고 마음을 쓰기에 말씀을 묵상하고 또 배우고 익힌다고는
하지만 행동으로 변화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것 같습니다.
복음을 실천하는것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 새 부대에 새 술을
담는 일일진대 늘 변화하지 못하고 과거의 편한함속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진정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유로움을
만끽하지 못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는 등 신앙생활에 열심인가 하다가도 또 어느
순간 세상의 근심걱정에 매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실망감이 들기도 하지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자신이 밉지만 세상에
속해 사는 동안은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허탈해집니다.
주님!
새 부대에 담은 포도주처럼, 흘러간 시간들에 집착하지 않고 신선하고
새로운 사랑의 삶을 살아가도록 가끔씩은 제 속에 꽉찬 허영과 이기심의
찌꺼기를 말끔히 비워내는 정화된 마음을 허락하소서. 아멘.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헌 옷에 깁는 사람은 없다.”
“새 술을 헌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또 묵은 포도주를 마셔본 사람은
‘묵은 것이 더 좋다.’ 하면서 새것을 마시려하지 않는다.”
오늘 말씀안에서는 당신의 진리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지만
시대와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따라서 달리 해석되어 전해지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하느님의 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면
신약시대의 예수님은 과감하게 신앙의 장애가 되는 것을 없애버리고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그동안 너무나 작은 것들에 집착하며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성격상 지나간 일들을 잊어버리거나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는지라
비교적 많은 시간들을 과거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늘 헌 옷에 새 옷을 대고 깁는 격이 되었던 일이 많았으며
헌 부대를 부여안고 마음을 쓰기에 말씀을 묵상하고 또 배우고 익힌다고는
하지만 행동으로 변화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것 같습니다.
복음을 실천하는것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 새 부대에 새 술을
담는 일일진대 늘 변화하지 못하고 과거의 편한함속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진정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유로움을
만끽하지 못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는 등 신앙생활에 열심인가 하다가도 또 어느
순간 세상의 근심걱정에 매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실망감이 들기도 하지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자신이 밉지만 세상에
속해 사는 동안은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허탈해집니다.
주님!
새 부대에 담은 포도주처럼, 흘러간 시간들에 집착하지 않고 신선하고
새로운 사랑의 삶을 살아가도록 가끔씩은 제 속에 꽉찬 허영과 이기심의
찌꺼기를 말끔히 비워내는 정화된 마음을 허락하소서. 아멘.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을 할 것이다.> † 루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9 그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께 "요한의 제자들은 물론이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제자들까지도 자주 단식하며 기도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합니까?" 하며 따지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잔칫집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그들을 단식하게 할 수 있겠느냐? 이제 때가 오면 신랑을 빼앗길 것이니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을 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을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못 쓰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새 옷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새 술을 헌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릴 것이니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는 못 쓰게 된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또 묵은 포도주를 마셔 본 사람은 '묵은 것이 더 좋다.' 하면서 새 것을 마시려 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오소서. 성령님!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헌 옷에 깁는 사람은 없다.”
“새 술을 헌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또 묵은 포도주를 마셔본 사람은
‘묵은 것이 더 좋다.’ 하면서 새것을 마시려하지 않는다.”
오늘 말씀안에서는 당신의 진리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지만
시대와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따라서 달리 해석되어 전해지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하느님의 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면
신약시대의 예수님은 과감하게 신앙의 장애가 되는 것을 없애버리고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그동안 너무나 작은 것들에 집착하며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성격상 지나간 일들을 잊어버리거나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는지라
비교적 많은 시간들을 과거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늘 헌 옷에 새 옷을 대고 깁는 격이 되었던 일이 많았으며
헌 부대를 부여안고 마음을 쓰기에 말씀을 묵상하고 또 배우고 익힌다고는
하지만 행동으로 변화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것 같습니다.
복음을 실천하는것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 새 부대에 새 술을
담는 일일진대 늘 변화하지 못하고 과거의 편한함속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진정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유로움을
만끽하지 못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는 등 신앙생활에 열심인가 하다가도 또 어느
순간 세상의 근심걱정에 매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실망감이 들기도 하지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자신이 밉지만 세상에
속해 사는 동안은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허탈해집니다.
주님!
새 부대에 담은 포도주처럼, 흘러간 시간들에 집착하지 않고 신선하고
새로운 사랑의 삶을 살아가도록 가끔씩은 제 속에 꽉찬 허영과 이기심의
찌꺼기를 말끔히 비워내는 정화된 마음을 허락하소서. 아멘.
오소서. 성령님!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헌 옷에 깁는 사람은 없다.”
“새 술을 헌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또 묵은 포도주를 마셔본 사람은
‘묵은 것이 더 좋다.’ 하면서 새것을 마시려하지 않는다.”
오늘 말씀안에서는 당신의 진리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지만
시대와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따라서 달리 해석되어 전해지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하느님의 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면
신약시대의 예수님은 과감하게 신앙의 장애가 되는 것을 없애버리고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그동안 너무나 작은 것들에 집착하며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성격상 지나간 일들을 잊어버리거나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는지라
비교적 많은 시간들을 과거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늘 헌 옷에 새 옷을 대고 깁는 격이 되었던 일이 많았으며
헌 부대를 부여안고 마음을 쓰기에 말씀을 묵상하고 또 배우고 익힌다고는
하지만 행동으로 변화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것 같습니다.
복음을 실천하는것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 새 부대에 새 술을
담는 일일진대 늘 변화하지 못하고 과거의 편한함속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진정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유로움을
만끽하지 못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는 등 신앙생활에 열심인가 하다가도 또 어느
순간 세상의 근심걱정에 매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실망감이 들기도 하지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자신이 밉지만 세상에
속해 사는 동안은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허탈해집니다.
주님!
새 부대에 담은 포도주처럼, 흘러간 시간들에 집착하지 않고 신선하고
새로운 사랑의 삶을 살아가도록 가끔씩은 제 속에 꽉찬 허영과 이기심의
찌꺼기를 말끔히 비워내는 정화된 마음을 허락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