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서 제일 낮은 사람이 제일 높은 사람이다

  • user#0 님의 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또 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겁이 많고 순했던 아들녀석은 덩치는 또래 아이들보다 컸는데도
    유치원 다닐 때부터 친구들이나 또래의 아이들에게 맞고 들어와서 속이 많이
    상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유도선수인 친구가 괴롭히며 업으라고 했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고 눈을 때려 2.0이었던 시력이 0으로 나왔습니다 담임선생님 께서도
    매일 맞기만 아들녀석 때문에 속이 상하셨는지 아이들이 때리면 맞지만 말고 같이
    대항하라고 하셨답니다 그때 아들녀석이 선생님한테 친구가 때린다고 같이 때리면
    싸움이 끝나지 않고 친구가 아플까봐 참고 맞는다고 말에 선생님께서도 할 말이
    없었다면서 아들에게 선생님이 부끄러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마태 18,4)

    오늘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또 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 해보니 영세 한 후 몇 년 동안 성당에서 하는 것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짜증이 난 적이 없고 신부님이나 수녀님들께서 말씀하실 때에도 의심 없이 믿고 순수했던
    자신 교우 들 애게도 보기와는 달리 순진하고 꾸밈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요즈음의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니 순수하고 꾸밈없던 모습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때가 많이 낀 거울 같은 모습에 부끄럽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어릴 때도 눈치없고 약지 못하다고 형제들에게 곰이라는 놀림을 받아 속이 상했는데
    지금 생각을 해보니 때 묻지 않고 순수했던 저의 모습은 간데없고 죄와 상처로 얼룩진
    자신의 모습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있게 하느님의 자녀로 살았다고 말씀을 드릴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 예쁘게 보이지 않아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어린이만은 못 할지라도 영세 한 후 몆 년 동안의 모습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또 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묵상하며

  • user#0 님의 말:

    “너희 중에서 제일 낮은 사람이 제일 높은 사람이다”

    주님!
    어제 하루종일 ….
    복음말씀을 묵상하려 컴 앞에 앉아 읽어 보고 또 읽고….
    묵상을 하려했지만 피곤하다는 생각 뿐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눈은 왜 그렇게 아픈지…..
    그런데도 한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도 묵상은 되지 않고 잡 생각으로 머릿 속만
    복잡해 묵상을 포기하고 잠을 청했지만 복잡한 머릿 속이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아침…
    복음말씀을 또 읽어봐도 여전히 묵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주님!
    이렇게 당신의 말씀하나 묵상을 하는데도 세속적인 생각들로 가득차 있으면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당신의 말씀이 첫째가 아니라 세속의 일이 첫째인 저의 머릿 속이
    당신의 말씀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에 묵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주님!
    당신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지요?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제가 묵상이 되지 않았던 것은 저의 마음 속에 당신의 말씀보다는
    저의 생각들로 가득차있어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에도…
    당신의 말씀보다는 세속적인 모든 일들이 떠오르니…..
    참 신앙인이 되기에는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세속의 일들이 저의 머릿 속을 꽉 채우고 있으니 당신의 말씀이
    제 귀에 들리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아직도….

    “너희 중에서 제일 낮은 사람이 제일 높은 사람이다”

    묵상하며

    218.150.127.160 요한신부: 누군가가 “나는 참 신앙인이야!”라고 말한다면 교만이 아닐까요? 늘 부족하다고 말하겠지요. 열심한 사람일수록….좋은 하루 되세요 [09/26-09:45]

  • user#0 님의 말:

    “너희 중에서 제일 낮은 사람이 제일 높은 사람이다”

    주님!
    어제 하루종일 ….
    복음말씀을 묵상하려 컴 앞에 앉아 읽어 보고 또 읽고….
    묵상을 하려했지만 피곤하다는 생각 뿐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눈은 왜 그렇게 아픈지…..
    그런데도 한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도 묵상은 되지 않고 잡 생각으로 머릿 속만
    복잡해 묵상을 포기하고 잠을 청했지만 복잡한 머릿 속이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아침…
    복음말씀을 또 읽어봐도 여전히 묵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주님!
    이렇게 당신의 말씀하나 묵상을 하는데도 세속적인 생각들로 가득차 있으면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당신의 말씀이 첫째가 아니라 세속의 일이 첫째인 저의 머릿 속이
    당신의 말씀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에 묵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주님!
    당신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지요?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제가 묵상이 되지 않았던 것은 저의 마음 속에 당신의 말씀보다는
    저의 생각들로 가득차있어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에도…
    당신의 말씀보다는 세속적인 모든 일들이 떠오르니…..
    참 신앙인이 되기에는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세속의 일들이 저의 머릿 속을 꽉 채우고 있으니 당신의 말씀이
    제 귀에 들리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아직도….

    “너희 중에서 제일 낮은 사람이 제일 높은 사람이다”

    묵상하며

    218.150.127.160 요한신부: 누군가가 “나는 참 신앙인이야!”라고 말한다면 교만이 아닐까요? 늘 부족하다고 말하겠지요. 열심한 사람일수록….좋은 하루 되세요 [09/26-09:45]

  • user#0 님의 말:

     

    가끔은 서열을 따질 때가 있습니다. 누가 높으냐? 누가 어디에 앉아야 되고, 누가 먼저 말해야 하고…, 그런데 그 순서가 잘못되면 서로 불편해 하면서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아마 누가 먼저 뽑힘을 받았느냐? 누가 더 큰 일을 했고, 누가 더 예수님의 신뢰를 받고, 누가 더 능력이 되고…, 그러면서 서로 자리를 놓고 다투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제일 작은 사람이 제일 큰 사람이라고…,


    46  제자들 사이에 그들 중 누가 제일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서로 수군거린 일이 있었다.

    위가 큰 사람이 있습니다. 자장면 3그릇 먹고 공기밥 한그릇 시키는 사람.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아마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르코 복음9,33-34절에서도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가에 대해서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곧잘 라삐들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누가 첫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학파에 따라서 그 대답은 달랐습니다. 의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토라와 미슈나에 정통한 사람이라고 하는 자도 있었고, 원로나 순교자라고 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은 교회에 대해 위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막 조직되어 가고 있는 이 단체에 그러한 허영심이 깃들면 그것은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의 이러한 위험한 생각을 빨리 제거해 주십니다.


    47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속 궁리를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당신 곁에 세우시며

    선택받은 어린이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다투니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아이가 당황하지 않게 사랑스럽게 감싸시면서 그 아이를 제자들 앞에 세우셨을 것입니다. 이 아이는 예수님께서 잘 알고 계신 아이일 수도 있고, 어느 집에 들어가셨는데 그 집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좌우지간 이 아이는 참으로 행복한 아이가 아닐까요?

    어린이에게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바로 의존성입니다. 어린이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려고 합니다.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세.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48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이름으로 이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 모든 이 가운데서 제일 작은 사람이야말로 큰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를 자신과 동등한 자리에 놓고 계십니다.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고아를 받아들이거나 보호해 주는 것은 랍비들이 권장하고 찬양한 선행에 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했을 때, 제자의 신분과 형제애의 정신으로 했을 때, 그것은 곧 예수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어린이는 겸손하고 온유한 예수님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공동체의 기본 법칙입니다. 그런데 유혹이 시작됩니다. 있는 사람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서슴없이 손을 내밀어 줍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손해를 보는 이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신앙인이라면 이런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알아두어야 할 것은 그가 비록 보잘 없다 할지라도  그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49  요한이 여쭈기를 “스승님, 어떤 자가 스승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그를 가로막았습니다.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마귀를 쫓는 의식은, 당시 유다인이나 이방인이 잘 행하던 일이었습니다. 에집트에는 마술에 대하여 기록한 파피루스가 남아있고, 악마를 쫓아 낼 때 사용한 이름도 거의가 유다교의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구마양식 속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는 히브리인의 하느님이신 예수를 의지하여 명령한다.” 이 말은 마술가가 그리스도를 다소나마 알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사마리아 사람 시몬이 사도 베드로에게서 돈을 주고 기적의 힘을 사려고 하였습니다(사도8,18 이하) 당시에는 그런 루의 마술적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과 함께 하지도 않는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요한은 그 일을 못하게 했습니다. 요한의 생각으로는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요한은 자기 행위가 잘못이 아니었나를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도 서로가 드러나지 않고, 서로를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역시! 신자였구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런 사람도 신자였구나…”나는 어떻게 사람들로부터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역시 신자는 다르구나…”하는 평가를 받고 살 것 입니다.


    50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로막지 마시오. 사실 여러분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여러분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함께 일을 하면서도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해야만 된다고, 내가  중심이 되어서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근본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의 표면적인 결과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했는지 그 의향을 더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랑은 더 이상 일 못하겠어!”라는 말을 함부로 뱉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마귀를 쫓아내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요한이 말하는 이름 모르는 구마사와 스큐아의 아들들(사도행전19,13-17)의 경우입니다. 이 두 가지는 어느 것이다 다 마귀를 쫓아내는 행위이지만, 오늘 요한이 말하는 구마는 불쌍한 사람을 악마에게서 해방시켜 주려는 것이고, 뒤의 것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구마사는 적어도 함축적으로 예수님의 권위와 세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물론 사도들과 같은 믿음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보면서 그는 결국 믿음에로 이끌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금지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욕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은 결국 예수님을 지지하는 결과를 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교회 공동체에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예수님과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는 교회의 봉사자들은 결국 예수님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일치를 도모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신자가 아니면서도 신자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본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사람을 보면 어떤 느낌을 가지십니까?



    2. 신자이면서도 신자가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신앙을 거부하는 행동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내가 그에게 권고의 이야기를 해 준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겠습니까?


  • user#0 님의 말:

     

    가끔은 서열을 따질 때가 있습니다. 누가 높으냐? 누가 어디에 앉아야 되고, 누가 먼저 말해야 하고…, 그런데 그 순서가 잘못되면 서로 불편해 하면서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아마 누가 먼저 뽑힘을 받았느냐? 누가 더 큰 일을 했고, 누가 더 예수님의 신뢰를 받고, 누가 더 능력이 되고…, 그러면서 서로 자리를 놓고 다투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제일 작은 사람이 제일 큰 사람이라고…,


    46  제자들 사이에 그들 중 누가 제일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서로 수군거린 일이 있었다.

    위가 큰 사람이 있습니다. 자장면 3그릇 먹고 공기밥 한그릇 시키는 사람.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아마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르코 복음9,33-34절에서도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가에 대해서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곧잘 라삐들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누가 첫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학파에 따라서 그 대답은 달랐습니다. 의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토라와 미슈나에 정통한 사람이라고 하는 자도 있었고, 원로나 순교자라고 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은 교회에 대해 위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막 조직되어 가고 있는 이 단체에 그러한 허영심이 깃들면 그것은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의 이러한 위험한 생각을 빨리 제거해 주십니다.


    47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속 궁리를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당신 곁에 세우시며

    선택받은 어린이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다투니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아이가 당황하지 않게 사랑스럽게 감싸시면서 그 아이를 제자들 앞에 세우셨을 것입니다. 이 아이는 예수님께서 잘 알고 계신 아이일 수도 있고, 어느 집에 들어가셨는데 그 집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좌우지간 이 아이는 참으로 행복한 아이가 아닐까요?

    어린이에게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바로 의존성입니다. 어린이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려고 합니다.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세.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48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이름으로 이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 모든 이 가운데서 제일 작은 사람이야말로 큰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를 자신과 동등한 자리에 놓고 계십니다.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고아를 받아들이거나 보호해 주는 것은 랍비들이 권장하고 찬양한 선행에 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했을 때, 제자의 신분과 형제애의 정신으로 했을 때, 그것은 곧 예수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어린이는 겸손하고 온유한 예수님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공동체의 기본 법칙입니다. 그런데 유혹이 시작됩니다. 있는 사람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서슴없이 손을 내밀어 줍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손해를 보는 이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신앙인이라면 이런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알아두어야 할 것은 그가 비록 보잘 없다 할지라도  그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49  요한이 여쭈기를 “스승님, 어떤 자가 스승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그를 가로막았습니다.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마귀를 쫓는 의식은, 당시 유다인이나 이방인이 잘 행하던 일이었습니다. 에집트에는 마술에 대하여 기록한 파피루스가 남아있고, 악마를 쫓아 낼 때 사용한 이름도 거의가 유다교의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구마양식 속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는 히브리인의 하느님이신 예수를 의지하여 명령한다.” 이 말은 마술가가 그리스도를 다소나마 알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사마리아 사람 시몬이 사도 베드로에게서 돈을 주고 기적의 힘을 사려고 하였습니다(사도8,18 이하) 당시에는 그런 루의 마술적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과 함께 하지도 않는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요한은 그 일을 못하게 했습니다. 요한의 생각으로는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요한은 자기 행위가 잘못이 아니었나를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도 서로가 드러나지 않고, 서로를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역시! 신자였구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런 사람도 신자였구나…”나는 어떻게 사람들로부터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역시 신자는 다르구나…”하는 평가를 받고 살 것 입니다.


    50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로막지 마시오. 사실 여러분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여러분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함께 일을 하면서도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해야만 된다고, 내가  중심이 되어서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근본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의 표면적인 결과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했는지 그 의향을 더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랑은 더 이상 일 못하겠어!”라는 말을 함부로 뱉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마귀를 쫓아내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요한이 말하는 이름 모르는 구마사와 스큐아의 아들들(사도행전19,13-17)의 경우입니다. 이 두 가지는 어느 것이다 다 마귀를 쫓아내는 행위이지만, 오늘 요한이 말하는 구마는 불쌍한 사람을 악마에게서 해방시켜 주려는 것이고, 뒤의 것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구마사는 적어도 함축적으로 예수님의 권위와 세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물론 사도들과 같은 믿음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보면서 그는 결국 믿음에로 이끌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금지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욕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은 결국 예수님을 지지하는 결과를 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교회 공동체에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예수님과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는 교회의 봉사자들은 결국 예수님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일치를 도모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신자가 아니면서도 신자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본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사람을 보면 어떤 느낌을 가지십니까?



    2. 신자이면서도 신자가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신앙을 거부하는 행동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내가 그에게 권고의 이야기를 해 준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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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9/27)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사람의 아들은 섬기러 오셨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오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너희 중에서 제일 낮은 사람이 제일 높은 사람이다.> † 루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46-50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누가 제일 높으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서 말다툼이 일어났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또 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중에서 제일 낮은 사람이 제일 높은 사람이다." 요한이 나서서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았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니 막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주님을 찬양하여라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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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 중에서 제일 낮은 사람이 제일 높은 사람이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또 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겁이 많고 순했던 아들녀석은 덩치는 또래 아이들보다 컸는데도
      유치원 다닐 때부터 친구들이나 또래의 아이들에게 맞고 들어와서 속이 많이
      상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유도선수인 친구가 괴롭히며 업으라고 했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고 눈을 때려 2.0이었던 시력이 0으로 나왔습니다 담임선생님 께서도
      매일 맞기만 아들녀석 때문에 속이 상하셨는지 아이들이 때리면 맞지만 말고 같이
      대항하라고 하셨답니다 그때 아들녀석이 선생님한테 친구가 때린다고 같이 때리면
      싸움이 끝나지 않고 친구가 아플까봐 참고 맞는다고 말에 선생님께서도 할 말이
      없었다면서 아들에게 선생님이 부끄러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마태 18,4)

      오늘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또 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 해보니 영세 한 후 몇 년 동안 성당에서 하는 것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짜증이 난 적이 없고 신부님이나 수녀님들께서 말씀하실 때에도 의심 없이 믿고 순수했던
      자신 교우 들 애게도 보기와는 달리 순진하고 꾸밈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요즈음의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니 순수하고 꾸밈없던 모습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때가 많이 낀 거울 같은 모습에 부끄럽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어릴 때도 눈치없고 약지 못하다고 형제들에게 곰이라는 놀림을 받아 속이 상했는데
      지금 생각을 해보니 때 묻지 않고 순수했던 저의 모습은 간데없고 죄와 상처로 얼룩진
      자신의 모습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있게 하느님의 자녀로 살았다고 말씀을 드릴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 예쁘게 보이지 않아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어린이만은 못 할지라도 영세 한 후 몆 년 동안의 모습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또 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묵상하며

     
    ♬ 주님을 찬양하여라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 주님을 찬양하여라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