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대가 왜 그리도 악할까?
군중이 모여들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왜 당신께로 모여오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9 군중이 모여들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 시작하였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입니다. 표징을 찾지만 요나의 표징 밖에는 아무런 표징도 이 세대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좀더 자신들의 눈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그들이 원하는 기적을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요나의 기적을 말씀하십니다.
잘해보자고 하면서 뒤에서 딴 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취지로 만나고 연락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로 불신하고, 서로 오해하고, 나를 내세우고, 남이 잘되는 꼴을 못보고…,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처음에 하느님을 향했던 마음들이 어떠했는지…
유다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분명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그 어떤 표징도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믿음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결코 예수님을 떠보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보낸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죽으셔서 묻히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면 더 이상 기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부활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30 사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인자도 이 세대에게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징표였습니다. 기적을 동반한 그의 선교는 그들을 회개하게 했습니다. 현대에 있어서도 예수님께서는 징표가 되시고 그분의 선교와 기적이 그분의 신적 사명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요나의 선교와 사명에 엉켜 있던 주요한 사건들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이교인에 대한 설교, 야훼를 거슬렀기 때문에 빠져 죽게 된 선원들을 구하려고 한 그의 헌신, 그 기적적 구출, 회개한 사람들, 야훼께서 니느웨 사람에게 주신 용서 등을 유다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은 받아들였지만 예수님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지금 우리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요나의 설교를 듣고 니느웨 사람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재를 뒤집어쓰고 속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요나보다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니느웨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삶의 모습을 바꿔야 합니다. 불신하는 마음, 분열시키려는 마음, 소유하려는 마음, 교만하려는 마음, 내가 중심이 되려고 하는 마음. 이런 마음들을 모두 버리고 침묵 가운데 내 할 바를 충실히 해야 할 것입니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으켜져서 이들을 단죄할 것입니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보시오, 여기 솔로몬보다 더 큰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실례를 드셨습니다. 하나는 솔로몬 왕 당시의 일입니다. 남쪽 나라의 여왕은 이스라엘에서 명성이 높은 솔로몬 왕의 지혜를 배우려고 먼 여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지혜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비교한다면 별것이 아닙니다. 유다인들은 그분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여행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로 앞에 계시니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귀를 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이 받은 선물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심판하실 그 날, 세바의 여왕이 그들이 일부러 눈을 감고 소경이 된 것을 죄라고 단정하기 위해 일어설 것입니다.
남방 여왕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사순절 내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말씀들에 대해서 궁금한 것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세례 받은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신앙인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부활하여 이 세대를 단죄할 것입니다. 그들은 요나의 선포로 회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보시오, 여기 요나보다 더 큰 사람을!”
두 번째 실례는 니느웨 사람들입니다. 이 이방인들은 그들에게는 외국 사람에 지나지 않는 유다의 예언자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긴 하지만, 그의 사명, 그의 헤아릴 수 없는 기적이 그 얼마나 뛰어났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또 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심판날에 니느웨의 이방인에게 단죄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옆에 있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상대방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의견을 수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물어보는 것이 내 뜻을 재차 확인하고 상대방의 뜻이 무엇이든지 간에 내 뜻대로 해 버리는 행동.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막아 버리고, 좋은 소리만 듣기를 원하는 나. 오늘도 나는 요나의 설교에 귀를 막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면서…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것은 꼭 해야지” 라고 결심했지만 아직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변에 누가 있느냐에 의해 삶의 방향이 결정 됩니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의해 슬기롭게 변화될 수도 있고, 더 어리석게 될 수도 있습니다. 솔로몬은 너무도 지혜로웠고, 하느님을 공경했지만 나중에 후궁들의 꾐에 빠져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바보온달은 평강공주를 만나서 삶의 변화를 맛보았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를 만나서 벌을 면했고, 나는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 줍시다. 슬기로운 사람이 되어 함께 있는 사람들이 더욱 행복해 질 수 있도록 사순절 기간 동안 노력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