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을 지르러 왔다.
<말씀연구>
이 말씀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앞에서 어떤 말씀이 나왔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충실하지 못한 종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 앞에는 기다리는 이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즉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메시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구원의 때는 바로 평화의 때이고, 메시아는 평화를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메시아에게 이것을 기대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탄생은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나 평화와 구원의 시대가 밝아 오기 전엔 다툼과 분열과 불화의 시기가 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언자 미가는 구원의 때에 앞서 오게 될 이 재난과 분쟁의 시기를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아들이 아비를 우습게보고 딸이 어미를 거역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맞서는 세상, 식구끼리 원수가 되었다. 그러나 나만은 야훼를 우러르고 하느님께서 구해 주시기를 기다리리라. 나의 하느님께서 내 소원을 들어주시기 바라면서”(미가 7,6-7)
그 말씀을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습니다. 사실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다면, 이제부터 세 사람이 두 사람을 반대하고 두 사람이 세 사람을 반대하여 갈라질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반대하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은 어머니를 반대하며 시어머니가 자기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반대하며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사람들은 분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분은 메시아다”“저분은 그냥 예언자다”“저분은 사기꾼이다.”“저분은 죄인이다”“저분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각자의 선택은 서로를 갈라놓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열과 불화는 마지막 때를 특징짓는 사건들, 각각의 모든 사람들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그러한 사건들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표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사람들이 온전히 자신을 믿었으면 좋을 텐데 믿지 않으니 굉장히 마음이 아프셨던 것 같습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습니다. 불이 이미 타오른다면야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내가 받을 세례가 있습니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나는 얼마나 마음 죄일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그 불은 조금씩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하느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드리는 것이 바로 사랑과 믿음의 불입니다. 그런데 그 불이 아직 활활 타오르지 않기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휘발유나 석유가 되어 그들을 타오르게 하려 하십니다. 그 그 휘발유나 석유는 바로 당신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받으실 고통의 세례인 것입니다.
<함께 묵상해요>
1.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설마 곧 오시겠어?” 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고, “조금 더 있다가 신앙생활 해도 되지”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그런 마음이 나에게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2. 가정 안에서 믿지 않는 이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전교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보다 힘들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신앙생활 하는 것을 다 보았기 때문에 “우리 성당가요”하면 “야! 너나 잘해!”“나는 성당 안다녀도 너 만큼은 해!”… 뭐 이런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는 포기하게 되고 “그래! 언젠가는 때가 오겠지?”하면서 기다리게 됩니다.
이런 가정에 하나의 믿음을 주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