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


성전을 정화 하시는 예수님


<말씀연구>


우리도 그렇지만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온 세계의 유다인들은 봉헌물과 희생 제물을 성전에 바쳤습니다. 그 봉헌물과 희생 제물을 사제들이 관리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정말 손쉽게 돈을 벌어들이는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집인 성전이 돈벌고 권력잡는 짓을 경건한 예절로 변장시키는 장소로 둔갑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익금의 상대 부분을 세금 바치듯 사제들에게 바치는 장사치들을 쫓아냄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짓누르고 빼앗는 종교 지도자들을 고발하십니다. 이어서 성전의 멸망을 예고함으로써 그들의 종교 제도가 이미 망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이 참된 성전임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돌이나 시멘트로 지은 건물이아니라 인간의 몸과 마음 안에 그리고 따뜻한 인간 공동체와 신앙 공동체 안에 거처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13  유다인들의 과월절1)이 가까와지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다.


예루살렘 도시가 해발 760미터 가량 되고, 갈릴래아 호수는 해저 200미터 가량 되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향해 갈 때는 “올라가다”라는 표현이 으레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해방절을 맞이하여 순례 차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14  그리고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금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을 둘러 엎으셨다. 16  그리고 비둘기 장수들에게 “이것들을 거두어 가라.


성전 뜰은 이방인의 광장이라고 부르는 하급 광장이었고 그 곳까지는 이방인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통은 그 곳에서도 항상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름길로 지나다니는 일조차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특히 과월절 전후에는 무시되고 있었습니다. 순례자들이 바치는 제물은 상거래의 구실이 되었습니다. 성궤 부근의 회랑에 매어 놓은 소, 양 파는 점포, 광장 어디에나 벌려 놓은 환금상 등에 의해 이 거룩한 성전이 소아시아의 색채를 띤 아수라장 같은 큰 장터가 되어 있었습니다. 순례자들은 성전에 바칠 제물(부자의 경우 소 한 마리 혹은 양, 가난한 사람의 경우는 비둘기 한 마리)과 성전세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세는 성전 세겔로 바쳐야 했는데 시중에는 로마 화폐만을 사용했기에 성전에서는 환전상이 필요 했습니다.


그런데 사제들은 거룩한 곳을 더럽히는 장사꾼들의 상거래를 말리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상거래를 통해 큰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셔나는 예루살렘 멸망 전의 한 신심깊은 율법학자의 탄식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사제이지만 그의 자식들은 재무관이었다. 그들의 사위는 성전의 검사관이며 그들의 하인들은 우리들에게 달려 들어 몽둥이로 때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채찍을 만들어 소와 양을 모두 쫓아버립니다.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셨고 그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제물로 비둘기를 팔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친절하게 “이것들을 거두어 가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비둘기장을 열어 비둘기를 놓아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하고 꾸짖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왜 당신께서 그렇게 하셨는지를 설명하십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부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것을 통해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세례자 요한이 메시아에 대하여 선언한 것이 바로 당신임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유다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더욱 죽여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




17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의 머리에는 ‘하느님이시여,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 하신 성서의 말씀이 떠올랐다.


쩌렁쩌렁한 예수님의 꾸지람을 들은 상인들은 당황하여 성전에서 물러갔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거리낌없이 단행하신 강한 이 정화 행동은 시편 69편 9절에서 “당신 집을 향한 내 열정이 나를 불사릅니다”라고 한 것의 실현이라고 생각게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 예수님의 이러한 열정은 내가 본받아야할 열정입니다.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될 수 있도록 내 열정을 바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향할 것 입니다.




18  그 때에 유다인들이 나서서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데, 당신에게 이럴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시오. 도대체 무슨 기적을 보여 주겠소?” 하고 예수께 대들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서 시비를 걸어옵니다. 즉 자신들이 인정할 만한 표징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9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생각하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사람들은 돌로 지은 성전, 46년이나 걸려서 지은 성전을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이 성전임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허물도록(죽음으로) 자유롭게 내주지만, 사흘 안에 다시 세우실(부활) 것입니다. 그리고 찬미와 경배를 드릴 성전이 예수님 자신임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이 기도문 안에 잘 나타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찬미와 경배와 감사는 예수님 안에서 시작되고,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예수님과 함께 드리게 될 것입니다.




20  그들이 예수께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 육 년이나 걸렸는데, 그래 당신은 그것을 사흘이면 다시 세우겠단 말이오?” 하고 또 대들었다. 21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뒤에야 이 말씀을 생각하고 비로소 성서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


성전은 헤로데 대왕이 기원전 20-19년 경부터 성전 신축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46년 뒤라면 서기 27-28년경으로 곧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에 성전 정화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성전 개축공사에는 상당히 많은 인원이 동원 되어야 했습니다. 요세푸스 플라비우스는 이 공사가 완성되었을 때 약 18,000명의 인부가 고용에서 풀려났다고 하였습니다. 즉 그 만큼 많은 인원이 동원되어 긴 시간이 걸린 것을 사흘 만에 다시 세운다고 하니 대들만도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이후에야 비로서 이 말씀을 깨닫게 되었으니 유다인들이 얼마나 예수님을 황당한 사람으로 생각했는지는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합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성전을 성전답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성당에서 나는 성전을 어떻게 만들고 있습니까? 놀이터로 만들고 있습니까?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고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성전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어떻게 기도하고 찬미하고 있습니까? 하루에 몇 번이나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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