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
<말씀연구>
성당에 가면 먼저 어디를 가십니까? 사무실에 가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곧장 성전으로 들어가십니다. 예전에 어느 신부님께서 아주 멋진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으십니다.
“앞으로 나를 만나러 올 때는 꼭 성당에 들어가 인사하고 오세요. 그리고 가실 때도 인사하고 가세요. 제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더 중요하시지 않습니까? 성당에 와서 사무실에만 일 보고 가시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제관에만 일을 보시고 예수님께 인사 안 드리고 가시는 일이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45 예수께서는 성전으로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46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 로 만들었다.”
성전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목적지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모습은 말라기의 말씀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너희가 애타게 기다리는 너희의 상전이 곧 자기 궁궐에 나타나리라. 너희는 그가 와서 계약을 맺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느냐?”(말라기3,1)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이방인의 광장이라고 불러 온 성전 안은 제물로 바칠 짐승의 시장터가 되어 있었고, 그 곳에는 환전상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이 성전을 더럽히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상인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사실 상거래는 하느님의 집에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어야 합니다. 거래상들과, 이 거래를 허용하고 그럼으로써 이익을 챙기는 유대 당국자들은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써 뿐만 아니라 특히 행위로써 예언자들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메시아 시대를 위한 다음과 같은 예언을 성취시키셨습니다.
“그 날이 오면, 다시는 만군의 야훼의 전에 장사꾼이 있지 못하리라”(즈가리야 14,21)
즉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 그 올바른 자리로 되돌려지고 재물을 섬기는 일이 배제되는 것입니다.
도둑의 소굴을 하느님의 집으로 만드신 예수님. 사실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외국에 사는 사람들이 성전에 와서 무엇인가를 사서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해서는 환전이 필요했고, 멀리서 희생제물을 바치러 온 사람들이 먼 거리를 소나 양이나 비둘기 등을 손수 몰고 오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제물을 준비하지 않고 가까운데서 사서 봉헌하려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만일 우리가 주일마다 봉헌하는 봉헌금을 형식적으로 아이들에게 주고, 주머니에서 형식적으로 꺼내서 봉헌한다면 우리 또한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던 사람들의 마음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성전정화도 그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봉헌의 의미를 참되게 하고, 그리고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몫인 듯 합니다.
47 예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간이 크신 예수님이십니다. 지금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당을 하고 있는데 태연하게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시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사꾼들을 추방하신 것은 성전의 존엄성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지닌 사제와 율법학자들에게 정면으로 시비를 건 것과 똑같습니다.
열두 살 때에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부모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이제 예수님께서는 친히 성전에서 가르치십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자녀가 아버지의 집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성전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제가 성전에서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성전에서 사제의 가르침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가 그 가르침을 듣고 실천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대제관들과 율사들과 그리고 백성의 유력자들이 그분을 없애 버릴 방도를 찾았으나 48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백성이 모두 그분의 말씀을 듣는 데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중들의 역할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역사 안에서 보더라도 민중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성전을 정화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유대인 영적 지도자들의 원수로 만드셨습니다.
대사제들과 사제 가문의 귀족들은 성전 경내에서 이루어지는 매매에서 영리를 얻었습니다. 공직에 있는 대사제는 유대인 최고 당국인 최고의회(산헤드린)의 의장이었습니다. 이 최고의회는 사제 가문의 가족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일반 귀족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파멸시키려고 작정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군중은 예수님께 붙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군중의 힘은 큽니다. 하지만 그 힘이 분산되었을 경우에는 별것 아닙니다.
이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남몰래 없애 버릴 기회를 노립니다.
문득 고속도로를 점령하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군중의 힘이 크다고 하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촛불시위와 고속도로 점령 시위는 차원이 다른 것 같습니다. 내 뜻을 주장하기 위해 단체 행동을 하면 안 되지만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 단체 행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일은 꼭 지켜야 하니 주일에 미사가자고 단체 행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외출하는 부모를 성당 가자고 자녀들이 단체로 행동하면 어떨까요? 공동체 내에서도 그렇게 여러 명이 달려 들어서 신앙에로 초대한다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내가 꼽을 수 있는 성당에서의 꼴불견 3가지를 대라면 무엇을 대시겠습니까?
2. 내 마음의 성전도 정화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