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그 두제자는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부활 팔일축제 내 수요일(3/30)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던 것처럼, 엠마오의 두 제자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엠마오의 제자들은 주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셨을 때 비로소 눈이 열렸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만찬을 거행할 때에 현존하신다.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을 새로운 현존 양식으로 만나게 된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이날이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 알렐루야.
    복음
    <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그 두 제자는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 루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3-35 [안식일 다음 날] 거기 모였던 예수의 제자들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한 삼 십 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엠마오라는 동네로 걸어가면서 이즈음에 일어난 모든 사건에 대하여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토론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서 나란히 걸어가셨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길을 걸으면서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하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인 채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글레오파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사람으로서 요새 며칠 동안에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다니, 그런 사람이 당신 말고 어디 또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무슨 일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에 관한 일이오. 그분은 하느님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그 하신 일과 말씀에 큰 능력을 보이신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대사제들과 우리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분을 관헌에게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형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처형을 당하셨고, 더구나 그 일이 있은 지도 벌써 사흘째나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인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을 찾아가 보았더니 그분의 시체가 없어졌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천사들이 나타나 그분은 살아 계시다고 일러 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 보았으나 과연 그 여자들의 말대로였고 그 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그들이 찾아가던 동네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 예수께서 더 멀리 가시려는 듯이 보이자 그들은 “이젠 날도 저물어 저녁이 다 되었으니 여기서 우리와 함께 묵어 가십시오.” 하고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예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다.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그들은 곧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가 보았더니 거기에 열한 제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주께서 확실히 다시 살아나셔서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도 길에서 당한 일과 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아들이시어, 저희 영혼과 육신의 구원을 이루어 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빵을 떼어 주실 때, 제자들은 주 예수님을 알아보았도다. 알렐루야.
    영성체후 묵상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현존하여 계십니다. 우리가 성서 말씀 안에서 혹은 성체를 받아 모실 때 주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이성적으로 믿는 사람은 이해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신앙은 인간의 감각과 이성을 초월한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부활하신 분의 현존을 가장 잘 드러내는 큰 성사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주님께서 말씀을 들려주실 때 뜨거운 감동을 받고, 또한 빵을 떼어 주실 때 그분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미사 때에 성서 말씀과 성찬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영성체후 기도
    아버지 하느님, 성자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한 저희를 묵은 죄에서 벗어나 새로워지게 하소서. 우리 주…….
 
저녁노을(모니카) 





♬ Christ is risen Alleluia!) 


이 글은 카테고리: 지난 묵상 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그 두제자는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았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부활 팔일축제 내 수요일(3/30)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던 것처럼, 엠마오의 두 제자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엠마오의 제자들은 주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셨을 때 비로소 눈이 열렸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만찬을 거행할 때에 현존하신다.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을 새로운 현존 양식으로 만나게 된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이날이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 알렐루야.
      복음
      <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그 두 제자는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 루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3-35 [안식일 다음 날] 거기 모였던 예수의 제자들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한 삼 십 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엠마오라는 동네로 걸어가면서 이즈음에 일어난 모든 사건에 대하여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토론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서 나란히 걸어가셨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길을 걸으면서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하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인 채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글레오파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사람으로서 요새 며칠 동안에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다니, 그런 사람이 당신 말고 어디 또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무슨 일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에 관한 일이오. 그분은 하느님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그 하신 일과 말씀에 큰 능력을 보이신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대사제들과 우리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분을 관헌에게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형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처형을 당하셨고, 더구나 그 일이 있은 지도 벌써 사흘째나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인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을 찾아가 보았더니 그분의 시체가 없어졌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천사들이 나타나 그분은 살아 계시다고 일러 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 보았으나 과연 그 여자들의 말대로였고 그 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그들이 찾아가던 동네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 예수께서 더 멀리 가시려는 듯이 보이자 그들은 “이젠 날도 저물어 저녁이 다 되었으니 여기서 우리와 함께 묵어 가십시오.” 하고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예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다.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그들은 곧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가 보았더니 거기에 열한 제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주께서 확실히 다시 살아나셔서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도 길에서 당한 일과 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아들이시어, 저희 영혼과 육신의 구원을 이루어 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빵을 떼어 주실 때, 제자들은 주 예수님을 알아보았도다. 알렐루야.
      영성체후 묵상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현존하여 계십니다. 우리가 성서 말씀 안에서 혹은 성체를 받아 모실 때 주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이성적으로 믿는 사람은 이해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신앙은 인간의 감각과 이성을 초월한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부활하신 분의 현존을 가장 잘 드러내는 큰 성사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주님께서 말씀을 들려주실 때 뜨거운 감동을 받고, 또한 빵을 떼어 주실 때 그분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미사 때에 성서 말씀과 성찬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영성체후 기도
      아버지 하느님, 성자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한 저희를 묵은 죄에서 벗어나 새로워지게 하소서. 우리 주…….
     
    저녁노을(모니카) 
    
    
    
    
    
    ♬ Christ is risen Alleluia!) 
    
    
    

  2. user#0 님의 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

    <말씀연구>

    몇몇 여인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아직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지 않고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13  마침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그 날 예루살렘에서 육십 스타디온1)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이 두 제자는 여자들이 돌아왔을 때 사도들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과월절을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다가 부활하신 그 날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삼심리쯤 떨어진 곳이라고 했는데 원문에는 60스다지오(스타디온)이라고 했습니다. 1스다지오는 185미터이니 그들의 목적지는 예루살렘에서 11키로 떨어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걸어 가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화재는 스승 예수님의 마지막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돌아온 여자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것은 그 빈 무덤이었습니다. 하지만 부활에 대한 믿음까지 인도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빈 무덤 이야기를 듣고 부활을 믿게 되었다면 제자들과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한 나그네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눈이 가리워져서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하지만 그분과 함께 동행을 하게 됩니다. 그분께서 물으셨습니다.

    17  “걸어가면서 서로 주고받는 말들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제자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멈추어 섰습니다. 생각 만해도 눈물이 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글레오파는 마리아의 남편(요한 19,25)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당황을 해서 물었습니다.

    18  “당신도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는데 당신만이 이 며칠 동안에 거기서 일어난 일을 몰랐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19  “무슨 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듣고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글레오파는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뜻을 가르치도록 파견을 받은 위대한 예언자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신 일과 말씀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함께 계시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증명하고도 남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예언자로 받아들였지만 대사제와 지도자들은 이분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설명을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생각하고 희망을 걸고 있었는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벌써 사흘째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여인들의 소식도 전해주고 있습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들이 우리로 하여금 넋을 잃게 했습니다. 그들이 아침에 무덤에 갔다가 23  예수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을 보았는데 이들이 그분은 살아 계시다고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가운데 몇 사람이 무덤에 가 보았더니 과연 여자들이 말한 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글레오파의 말투에서는 불신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여자들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빈 무덤을 보고도, 천사들의 말을 듣고도 이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만일 다시 살아나셨다면 왜 자신들에게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시는가?…이 두 사람은 희망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25 “참, 아둔하구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굼뜬 사람들 같으니. 26  그리스도는 이런 고난을 겪고 자기 영광을 누리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27  그리고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의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메시아에 대하여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알아 듣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예언에 있어서 그들은 영광의 나라의 광채에만 눈이 어두어져 있었지, 그 참뜻과 가르침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국가적인 야망에 집착하여 소경이 되어 있던 그들은 이 세상의 구원사업을 하시는 메시아의 인격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가 받아야 할 수난은 섭리적인 계획에 따른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지금 그 계획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실현되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서 전체를 연결시켜서 당신에 관한 말씀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메시아의 수난, 치욕, 죽음이 그 영광을 전제조건으로 하여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더 멀리 가시려는 듯이 보이자 그들은 예수님을 붙들었습니다.

    29 “이미 날도 저물어 저녁이 되었으니 우리와 함께 머뭅시다”

    예전 공동체 성가에 나와있던 “엠마우스”라는 성가가 생각납니다. “서산에 노을이 고우나 우리는 어둠에 잠겼사오니, 우리와 함께 주여 드시어. 이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주님의 길만을 재촉하시면 어느 세월에 또 뵈오리이까. 누추한 집이오나 따스하오니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되었습니다. 어떤 분인지 알수 없으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에 매료가 되어 예수님을 붙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문득 제자들의 마음이 돋보입니다. 나보다 나은 신앙의 스승을 모시려는 마음, 자신들의 무지한 머리를 깨우쳐 주시는 분과 좀더 함께 있으려는 마음. 그분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내 삶 안에서도 나보다 나은 스승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중요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뵌 것입니다.

    30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식탁에) 자리잡으시자 빵을 드시고 찬양하신 다음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31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리어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서 사라지셨다.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자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성체성사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평범한 보통 식사였습니다. 그런데 눈이 열려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 빵을 떼어 주시는 모습 안에서 예수님을 알아 보게 된 것입니다. 항상 하시던 동작을 보고서 그들의 눈이 열린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항상 듣던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알아 뵌 것처럼 말입니다. 눈앞에 앉아 계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사라져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32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해 주셨을 때에 [우리 안에서]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가끔은 말씀을 읽을 때 이렇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결코 뜨거움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을 열어 말씀을 대해 보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전에는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말씀이 살아 숨쉬기 때문에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숨쉴 수 있도록 하십시오.


    34  “정말 주님은 부활하여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그들은 즉시 일어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밤길을 걸었습니다. 기쁨에 넘쳐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난 예수님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기쁨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곳에 가보니 시몬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 기쁨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처럼 그렇게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으십니까?


    2.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자 즉시 밤길을 달려 교회 공동체에게로 갔습니다. 그들은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까?

  3. user#0 님의 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

    <말씀연구>

    몇몇 여인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아직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지 않고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13  마침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그 날 예루살렘에서 육십 스타디온1)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이 두 제자는 여자들이 돌아왔을 때 사도들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과월절을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다가 부활하신 그 날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삼심리쯤 떨어진 곳이라고 했는데 원문에는 60스다지오(스타디온)이라고 했습니다. 1스다지오는 185미터이니 그들의 목적지는 예루살렘에서 11키로 떨어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걸어 가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화재는 스승 예수님의 마지막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돌아온 여자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것은 그 빈 무덤이었습니다. 하지만 부활에 대한 믿음까지 인도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빈 무덤 이야기를 듣고 부활을 믿게 되었다면 제자들과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한 나그네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눈이 가리워져서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하지만 그분과 함께 동행을 하게 됩니다. 그분께서 물으셨습니다.

    17  “걸어가면서 서로 주고받는 말들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제자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멈추어 섰습니다. 생각 만해도 눈물이 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글레오파는 마리아의 남편(요한 19,25)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당황을 해서 물었습니다.

    18  “당신도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는데 당신만이 이 며칠 동안에 거기서 일어난 일을 몰랐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19  “무슨 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듣고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글레오파는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뜻을 가르치도록 파견을 받은 위대한 예언자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신 일과 말씀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함께 계시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증명하고도 남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예언자로 받아들였지만 대사제와 지도자들은 이분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설명을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생각하고 희망을 걸고 있었는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벌써 사흘째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여인들의 소식도 전해주고 있습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들이 우리로 하여금 넋을 잃게 했습니다. 그들이 아침에 무덤에 갔다가 23  예수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을 보았는데 이들이 그분은 살아 계시다고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가운데 몇 사람이 무덤에 가 보았더니 과연 여자들이 말한 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글레오파의 말투에서는 불신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여자들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빈 무덤을 보고도, 천사들의 말을 듣고도 이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만일 다시 살아나셨다면 왜 자신들에게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시는가?…이 두 사람은 희망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25 “참, 아둔하구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굼뜬 사람들 같으니. 26  그리스도는 이런 고난을 겪고 자기 영광을 누리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27  그리고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의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메시아에 대하여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알아 듣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예언에 있어서 그들은 영광의 나라의 광채에만 눈이 어두어져 있었지, 그 참뜻과 가르침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국가적인 야망에 집착하여 소경이 되어 있던 그들은 이 세상의 구원사업을 하시는 메시아의 인격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가 받아야 할 수난은 섭리적인 계획에 따른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지금 그 계획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실현되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서 전체를 연결시켜서 당신에 관한 말씀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메시아의 수난, 치욕, 죽음이 그 영광을 전제조건으로 하여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더 멀리 가시려는 듯이 보이자 그들은 예수님을 붙들었습니다.

    29 “이미 날도 저물어 저녁이 되었으니 우리와 함께 머뭅시다”

    예전 공동체 성가에 나와있던 “엠마우스”라는 성가가 생각납니다. “서산에 노을이 고우나 우리는 어둠에 잠겼사오니, 우리와 함께 주여 드시어. 이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주님의 길만을 재촉하시면 어느 세월에 또 뵈오리이까. 누추한 집이오나 따스하오니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되었습니다. 어떤 분인지 알수 없으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에 매료가 되어 예수님을 붙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문득 제자들의 마음이 돋보입니다. 나보다 나은 신앙의 스승을 모시려는 마음, 자신들의 무지한 머리를 깨우쳐 주시는 분과 좀더 함께 있으려는 마음. 그분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내 삶 안에서도 나보다 나은 스승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중요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뵌 것입니다.

    30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식탁에) 자리잡으시자 빵을 드시고 찬양하신 다음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31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리어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서 사라지셨다.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자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성체성사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평범한 보통 식사였습니다. 그런데 눈이 열려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 빵을 떼어 주시는 모습 안에서 예수님을 알아 보게 된 것입니다. 항상 하시던 동작을 보고서 그들의 눈이 열린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항상 듣던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알아 뵌 것처럼 말입니다. 눈앞에 앉아 계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사라져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32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해 주셨을 때에 [우리 안에서]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가끔은 말씀을 읽을 때 이렇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결코 뜨거움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을 열어 말씀을 대해 보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전에는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말씀이 살아 숨쉬기 때문에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숨쉴 수 있도록 하십시오.


    34  “정말 주님은 부활하여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그들은 즉시 일어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밤길을 걸었습니다. 기쁨에 넘쳐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난 예수님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기쁨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곳에 가보니 시몬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 기쁨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처럼 그렇게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으십니까?


    2.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자 즉시 밤길을 달려 교회 공동체에게로 갔습니다. 그들은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까?

  4. user#0 님의 말:

    “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

    주님!
    어제는요?
    저희 집에 손님으로 오신 할아버지께서 저에게 몇년 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혼자 사신다고 하시며 반찬을 조금 달라고 했습니다
    항상 깔끔하게 다니시는 분이라 혼자 사신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순간 반찬을 드리며 가끔씩 저희 집에 오시면
    밑반찬을 드리겠다고 했더니 할아버지께서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가시면서 하신 말씀에 제가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어 후회가 되었습니다
    이유는요 할아버지께서 교직에 계시다 정년퇴직을 하셨다는 말씀에……..
    더구나 자식들이 모두 잘살고 있는데 한달에 한번 씩 밖에 오지 않는다는
    말씀에 할아버지보다 더 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더구나 연금도 나와서
    생활이 불편하지도 않으실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괜한 동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고 형편이 어려워 힘들게 살고있는 데레사가 생각이 났습니다
    장애자인 데레사는 힘들어도 항상 웃으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있는데
    데레사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기위한 선행을 하는 것
    같은 생각에 부끄러웠습니다

    주님!
    섣부른 동정은 교만이지요?
    섣부른 선행은 위선이지요?
    주님!
    오늘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교만하고 위선적인 사람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당신께서는 언제나 제 곁에서 지켜보시고 계시는데…..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보여주기 위한 선행을 베풀엇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주님!
    그런데도 아직도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저는 눈 뜬 장님이지요?
    아직도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으니………
    참 한심한 헬레나 입니다
    주님!
    그렇지요?

    “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

    묵상하며

  5. user#0 님의 말:

    “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

    주님!
    어제는요?
    저희 집에 손님으로 오신 할아버지께서 저에게 몇년 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혼자 사신다고 하시며 반찬을 조금 달라고 했습니다
    항상 깔끔하게 다니시는 분이라 혼자 사신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순간 반찬을 드리며 가끔씩 저희 집에 오시면
    밑반찬을 드리겠다고 했더니 할아버지께서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가시면서 하신 말씀에 제가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어 후회가 되었습니다
    이유는요 할아버지께서 교직에 계시다 정년퇴직을 하셨다는 말씀에……..
    더구나 자식들이 모두 잘살고 있는데 한달에 한번 씩 밖에 오지 않는다는
    말씀에 할아버지보다 더 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더구나 연금도 나와서
    생활이 불편하지도 않으실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괜한 동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고 형편이 어려워 힘들게 살고있는 데레사가 생각이 났습니다
    장애자인 데레사는 힘들어도 항상 웃으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있는데
    데레사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기위한 선행을 하는 것
    같은 생각에 부끄러웠습니다

    주님!
    섣부른 동정은 교만이지요?
    섣부른 선행은 위선이지요?
    주님!
    오늘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교만하고 위선적인 사람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당신께서는 언제나 제 곁에서 지켜보시고 계시는데…..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보여주기 위한 선행을 베풀엇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주님!
    그런데도 아직도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저는 눈 뜬 장님이지요?
    아직도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으니………
    참 한심한 헬레나 입니다
    주님!
    그렇지요?

    “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

    묵상하며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